라이프니츠의 인식론, 성질과 관념에 관한 버클리의 견해

라이프니츠의 인식론

1-1. 스피노자의 인식론에서 그는 자신의 형이상학적 주장, 즉 우리가 지식과 경험에 관하여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의 관념과 신체의 운동이 신인 동시에 자연이기도 한 유일 실체가 드러내는 개별적인 요소의 두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를 적절히 조화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들을 등장시킨다. 라이프니츠의 인식론에도 또한 일상적인 말과 사고를 형이상학적 체계와 일치시키려는 시도가 나온다. 하지만 그의 체계에서는 관념과 운동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 아니고, 둘 사이에는 아무 상호작용이 없는 완전히 독립적인 일련의 사건으로 간주하는데, 이는 스피노자의 체계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 둘은 신의 정신 안에 들어 있는 예정 조화에 따라 서로 연결된다.

1-2. 라이프니츠의 표준적인 모나드론에 따르면, 일반적인 어떤 형태의 인식론이 성립할 수 있는가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정신과 외부 세계 사이의 어떤 관련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감각적 지각을 설명해야 하는가? 그리고 모든 단순 관념이 오직 정신 내부의 산물이라고 하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우리의 본유 관념과 획득 관념을 둘러싼 논쟁에서 무슨 관심을 보일 수 있는가? 라이프니츠의 가장 중요한 저술 <<신인간지성론>>은 인식론에 관한 저술로, 그는 이 저술에서 로크의 경험론적 지식 이론을 상세하게 비판한다. <<신인간지성론>>은 로크의 견해를 대변하는 필랄레테스(Philalethes)와 라이프니츠의 견해를 표명하는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등장해 벌이는 논쟁으로, 이 저술의 각각의 장은 로크의 <<인간지성론>>의 장들과 정확히 대응하며 로크의 주장을 반박한다.

1-3. <<신인간지성론>>에서 라이프니츠가 옹호하는 수많은 견해와 논변들은 훨씬 더 상식적인 형이상학을 지닌 철학자도 얼마든지 채택할 수 있는 것들이다. 라이프니츠도 이 점을 인지하고, 이는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는 철학자도 해가 뜨고 진다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며 스스로를 옹호했다. 모나드론보다 인식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이 저술은 큰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1-4. 경험론자들은 감각 안에 없는 것은 지성 안에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라이프니츠는 ‘지성 자체를 제외하고’ 그렇다 답한다. 우리의 영혼은 존재이고 실체이고 단일체이며, 그 자신과 동일하고 원인이며 관념과 추론이 위치하는 장소이다. 존재와 실체 등의 관념은 오직 영혼이 자신에 대해 반성할 때만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관념들은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본유적이다. 정신은 앞으로 그려 나갈 그림의 밑그림이 수(number)에 의해서 이미 연필로 표시된 캔버스이다.

1-5. 이런 의미에서 본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념의 예로, 라이프니츠는 논리학과 산술, 기하학의 원리를 예로 든다. 라이프니츠는 ‘사각형은 원이 아니다’는 본유적인 반면 ‘단맛은 쓴맛이 아니다’는, 달거나 쓴 느낌은 감각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여 본유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외부 세계는 정신에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하고 영혼의 모든 사고와 행위는 내부에서 발생한다는 주장과 조화시킬 수 있을까?

1-6. 이에 답하려면 라이프니츠가 인간 영혼을 모나드들의 위계질서에서 가장 상위의 모나드로, 즉 인간 신체의 서로 다른 부분과 기관에 대응하는 살아 있는 실재로 여겼음을 알아야 한다. 모나드의 관점에서 보면, 감각으로부터 정신에 어떤 느낌이 생겼다는 말은 곧 상위의 모나드가 지닌 관념 중 일부가 하위의 모나드로부터 발생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하위 모나드들의 지각은 통각(상위 모나드의 자기의식)에 의해 명확해진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는 창이 없어서 외부 세계로부터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말한다. 모나드들은 그 대신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것으로 서로 연결 되는 듯하다.

1-7. 라이프니츠는 이런 생각을 의식의 단계에 관한 탐구로 전환한다. ‘우리 안에 끊임없이 수많은 지각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도록 이끄는 요소들은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런 지각은 통각과 반성이 없이 이루어진다.(G V.46)’ 우리의 의식이 지니는 경험 중 대부분은 수많은 매우 작은 지각들로 구성되는데, 우리는 이 지각에 대해 판명한 관념을 갖지 못한다. 하위 모나드가 지니는 지각의 특징은 혼란스러운 관념이다. 상위 모나드의 통각은 우리의 관념에 명석, 판명함을 부여한다. 혼란스럽기 때문에 감각적 지각이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듯 보인다.

1-8. 그는 의식의 단계 사이의 구별을 본유 관념에 대한 우리가 논리학의 기본 법칙을 인식하기 훨씬 이전에 개별적 진리로부터 배우기 시작한다는 전형적인 반박에 답하는 데 사용한다. ‘일반 원리들은 우리의 사고 안으로 들어와 영혼의 각 부분을 형성하고 이들을 서로 연결한다. … 마치 걷기 위해서 근육과 힘줄이 필요하듯이 이들은 항상 필요하다.’ 정신은 항상 논리에 의지하지만, 논리 법칙을 확인하고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1-9. 로크는 지식을 형성하는 기본 요소가 감각을 통해서 얻는 단순 관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는 단순 관념이라는 개념 자체를 일종의 환상으로 보았다. “나는 누군가가 어떤 감각적 관념을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혼란스럽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런 관념은 자신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여지를 정신에 제공하지 않는다. … 예를 들면 녹색이 파란색과 노란색을 한데 섞은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므로, 따라서 녹색의 관념이 이 두 색의 관념으로 구성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녹색의 관념은 파란색이나 따듯함의 관념과 마찬가지로 단지 외견상 단순하게 보일 뿐이다.(G V.109)” 라이프니츠는 색과 같은 제이성질은 주관적이고 형태와 같은 제일 성질은 객관적이라 하는 로크의 구별을 거부한다. 그는 제일성질과 제이성질 모두 현상일 뿐이라 보았다. 이러한 견해는 이후 버클리에 의해 더욱 완전한 형태로 발전된다.

 

성질과 관념에 관한 버클리의 견해

2-1. <<하일라스와 필로누스 사이의 대화>>에서 버클리는 우선 제이성질이 주관적이라는 로크의 주장에 동조하여 이를 논증한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논증을 통해 제일성질 또한 주관적이라고 주장하며 로크에게 등을 돌린다. 그는 어떤 관념도, 제일성질의 관념조차도 대상과 유사하지 않다고 결론짓는다.

2-2. 대화가 전개되면서 유물론자인 하일라스는, 우리가 물질적 대상 자체가 아닌 오직 대상의 감각 가능한 성질들만을 지각한다는 로크의 전제를 의심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물체의 존재를 옹호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감각 가능한 것이라는 말을 통해 나는 오직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바만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실상 감각은 자신이 직접 지각하는 바가 아닌 그 무엇도 지각하지 않는데, 감각은 추론을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BPW, 138)’ 물질적 대상은 추론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각되지는 않는다. 감각 가능한 대상은 사실상 감각 가능한 수많은 성질들에 지나지 않는데, 이런 성질들은 정신과 무관하다.

2-3. 대화에서 관념론자로 등장하는 필로누스는, 감각 가능한 성질들이 객관적이라는 하일라스의 믿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뜨거움이 주관적임을 보이는 로크의 논증으로 그를 반박한다. 뜨거움의 모든 정도는 감각을 통해 지각된다(그 정도가 높을수록 더 선명히 지각된다). 하지만 매우 높은 정도의 뜨거움은 동시에 큰 고통이다. 물질적 실체는 고통을 느낄 수 없으므로 매우 높은 정도의 뜨거움은 물질적 실체 안에 존재할 수 없다.

2-4. 이 논변은 오류로 가득 차 있는데 버클리는 이를 교묘히 숨긴다. 여러 논변에서 잘못된 진행은 하일라스의 말에 내재하는데, 필로누스는 단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기만 한다. 필로누스가 “감각 가능한 것이 실재한다는 점은 지각을 통해 알게 되는지, 아니면 그것은 지각된다는 사실과 구별되는 무언가로서 정신과 아무 관련이 없는지”에 관해 묻자 하일라스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과 지각된다는 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라고 답한다.

이제 뜨거움을 물리적 관점(힘의 한 형태로서의)이 아니라 지각 가능한 성질로 보고 이에 관해 논의한다고 가정해보자. 존재한다는 것과 지각된다는 것은 서로 별개라는 하일라스의 말은 옳다. 하지만 하일라스는 ‘지각된다는 사실과 구별된다는 점’과 ‘정신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동일시하는 필로누스의 등식을 받아들이면 안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성질이 현실적으로 지각되는 바와는 분명히 구별된다는 점을 강력히 밀고 나가야 한다.

2-5. (1) 필로누스가 “가장 격렬하고 강력한 정도의 뜨거움은 매우 큰 고통이 아닌가”라는 물음에 대해 하일라스는 그렇다고 답한다. (2) 이어서 필로누스는 “지각 능력이 없는 것에게는 쾌락이나 고통의 능력이 있을 수 있는가”를 묻자 하일라스는 결코 그럴 수 없다 답한다. (3) 필로누스는 “자네(하일라스)가 말하는 물질적 실체는 감각 능력이 없는 존재라면 그 실체는 고통의 주체가 될 수 없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하일라스는 절대로 될 수 없다고 답한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하일라스는 일종의 구별을 제시하며 대답해야만 했다. 즉 가장 강한 정도의 뜨거움이 큰 고통을 일으킨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뜨거움이 그 자체로 큰 고통이라는 점은 부정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에서 또한 구별을 해야 한다. 즉 고통을 느낄 능력은 없지만 고통을 일으킬 능력은 있다 답해야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질문에서 그는 물질적 실체가 감각 능력이 없다는 점에 결코 동의하면 안된다. 바위는 감각 능력이 없지만 고양이는 그런 능력을 지닌다. 여기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는 바는 물질적 실체가 감각을 지닐 수 없다 주장하는 로크의 논변이다. 왜냐하면 물질적 실체도 감각을 지니기 때문이다.

2-6. 대화가 반쯤 진행되면 하일라스는 제이성질들이 정신의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제일성질들은 물체 안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로크의 견해를 옹호하려 한다. 이에 필로누스는 로크가 제이성질의 객관성을 부정하면서 사용한 논변들이 제일성질의 객관성에 반대하는 주장을 펴는 것에 똑같이 사용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2-7. 로크는 인간에게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대상이 동물에게는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을 들어 냄새는 실재하는 속성이 아니라 주장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의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대상이, 이보다 더 작은 어떤 동물에게는 거대한 산처럼 보인다는 점을 들어 크기 또한 실재하는 속성이 아니라 주장할 수 있다. 어떤 동일한 대상이 가까이 있는 사람의 눈에는 크고 각진 것으로 보이지만 멀리 있는 사람의 눈에는 작고 둥글게 보인다는 점을 들어, 이 세계에 어떤 크기나 형태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2-8. 하일라스는 물질적 대상 자체를 지각할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이 대상이 관념을 통해 지각된다고 하는 주장을 필로누스는 비웃었다. 실재하는 대상 자체를 볼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색을 띨 수 있는가? 따라서 그는 관념이 정신 외부의 그 어떤 것에 관한 그 어떤 정보라도 우리에게 제공한다는 주장을 옹호할 수 없게 된다.

2-9. 감각적 관념에 관해 언급한 바와 전통적으로 지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보편 관념에 관해 언급하는 버클리의 인식론은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로크는 일반 관념을 형성하는 능력이 인간과 동물 사이의 가장 중요한 차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언어를 사용하고, 언어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관념을 나타내는 의미를 지니는데, 주어를 분류하는 술어와 같은 일반적 단어들은 추상적 일반 관념에 대응된다. <<인간 지식 원리론>>에서 버클리는 로크의 추상화 이론에 대해 전면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버클리는 로크가 추상 관념을 “어떤 특정한 인간이 각각 특유하게 지닌 바를 나타내는 복합 관념은 제쳐두고, 오직 모두에게 공통되는 바만을 유지하여 인간에 대한 추상 관념을 형성한 후 모든 개별적 인간들이 이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다고 보았다.

2-10. 버클리는 이를 불합리한 생각으로 일축한다. ‘나 자신이 형성하는 인간의 관념에는 백색 또는 황갈색 등의 피부색 등이 똑바르거나 아니면 크거나 작거나 등이 반드시 포함된다. 나는 그 어떤 노력을 기울여 생각을 해 보아도 추상 관념을 떠올릴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는 명백한 오류를 저지른다. ‘관념’이라는 용어가 개념을 의미한다면, ‘인간’의 개념이 피부색이나 신장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 개념을 소유한 사람은 누구나 이 사실을 안다. 이 대목에서 버클리는 관념을 일종의 심상으로 여기는 듯한데, 설령 그렇다 해도 여전히 오류를 피할 수 없다. 정신적 심상은 심상의 대상이 지닌 모든 속성을 포함할 필요는 없다.

2-11. 한 대목에서 로크는 삼각형에 대한 일반 관념을 형성하기 위해서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순전히 허튼소리라는 버클리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그는 어떤 종류의 심상을 지니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개념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는 식으로 로크를 공격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로크의 언어 이론에서 잘못된 바는 바로 이 점이며, 그가 잘못된 심상을 선택했거나 심상을 자기모순적인 용어로 서술한 점이 결코 아니다.

2-12. X를 반영하는 심상이나 형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X의 개념을 미리 지녀야 한다. 심상은 자신이 반영하는 바를 규정하는 그 무엇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참나무 잎에 대한 심상은 참나무 잎을 그린 그림과 마찬가지로 잎이나 참나무, 나무 일반, 보이 스카우트 활동, 군대 계급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반영할 수 있다. 그리고 개념은 단지 심상에서 구체적 특성들을 제거한다고 얻어지지 않는다. 또한 결코 심상으로부터 명확하게 도출될 수 없는 다른 개념들도 있는데, 수학적 개념이 그런 예이다.

2-13. 로크에 반대하여 언어에 숙달하는 일과 추상적 일반 관념을 지니는 일을 분리한 버클리의 생각은 옳았다. 하지만 정신적 심상이 언어의 핵심 요소라는 생각은 유지했다. 그는 일반 명사가 하나의 추상적인 심상이 아니라 ‘수많은 특수한 심상들을 서로 구별 없이’ 지시한다고 여겼다. 심상이 사고의 핵심이 아님은 삽화가 책의 핵심이 아님과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심상이 개념을 지닌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개념이 심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회적 혼란과 통치권에 관한 홉스의 견해

1. 사회적 혼란과 통치권에 관한 홉스의 견해

1-1.수아레스와 그로티우스는 여러 나라들이 서로 합의한 도덕적 체계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자연적 질서를 유지하려면 때로는 전쟁도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17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인 홉스는 정치의 본질에 대하여 이와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견해를 드러낸다. 그에 따르면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인 자연 상태에서는 오직 전쟁이 계속 이어질 뿐이며, 도덕철학자의 임무는 정부에 복종함으로써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려는 개인들 사이의 합의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홉스의 대표적 저술 《리바이어던》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룬다,

홉스는 인류의 자연 상태를 매우 비관적인 모습으로 묘사한다. 본성상 인간은 정신적, 육체적 능력이 대체로 평등하지만 목적을 성취하려는 희망도 대체로 평등하기 때문에 서로 적이 된다고 보았다. 각 개인은 경쟁하는 상대방을 불신하며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한다. 개인은 동료들로부터 칭찬받기를 원하면서 그들이 자신을 경멸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원한을 품는다. ‘인간은 본성 안에서 우리를 서로 다투게 만드는 주요 원인 세 가지가 발견되는데 첫째는 경쟁, 둘째는 불신, 셋째는 공명심이다’

사람들을 위압하는 공통 권력이 없는 한 그리고 그런 권력이 형성되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재화와 권력, 명예를 둘러싼 끊임없는 다툼과 통제할 수 없는 경쟁에 휘말린다. 이는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하여 벌이는 전쟁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구 표면에 관한 지식, 시간의 측정, 예술이나 학문이 전혀 성립될 수 없으며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끊임없는 공포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이 고독하고, 가난하고, 험악하고, 잔인하고, 짧다는 점이다.”

어떤 독자들은 이런 묘사가 너무 비관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전 세계가 이런 상황은 아닐지라도 당시의 아메리카는 바로 이런 전쟁 상태에 놓여있었다. 홉스는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여행할 때 무장을 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 가는 편을 선호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반드시 문단속을 한다. 집에 있을 때조차도 금고문을 단단히 잠가둔다. 우리 사회에 엄연히 법률이 있으며 치안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렇게 한다.’

1-2. 홉스는 자연의 전쟁 상태를 묘사하면서 인간이 어떤 사악한 본성 때문에 이런 상태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옳고 그름 또는 정의와 불의 개념이 설 자리가 없다. ‘공통의 권력이 없는 곳에서는 법이 성립할 수 없다. 법이 없는 곳에서는 불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과 기만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두 가지 기본적인 덕이다.’ 마찬가지로 자연상태에서는 재산이나 소유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에 누구든지 무언가를 얻고 지킬 수 있는 한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여긴다.’

철학자들은 습관적으로 자연법(lex naturalis)와 자연권(ius naturalis)을 함께 언급한다. 하지만 홉스는 권과 권리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권리란 무언가를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자유며 법이란 무언가를 반드시 하거나 하지 말라는 명령이라고 말한다. 엄밀한 자연상태에서는 법도 권리도 존재하지 않으나 ‘자연법’은 존재한다. 이는 합리적인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우너리, 즉 생존의 기회를 최대화하려는 처방이다. 각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원하는 자연적 필연성이 존재하는 한 각 개인은 모든 능력을 다하여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보존할 자연권을 지닌다.

인간들이 이런 권리를 유지하는 한 어느 누구도 자연 상태에서의 삶을 안전하게 영위할 수 없다. 따라서 합리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인간은 자연권이 부여한 무제한의 자유 중 일부를 포기하고 결국 다른 사람들과 같은 수준의 자유를 누리는 양보를 받아들인다. 이를 통해 자연법이 등장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자기방어 권리를 제외한 자신의 모든 권리를 중아 권력에게 양도하며 중앙 권력은 처벌이라는 제재를 통하여 자연법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게 된다,

1-3. 다른 여러 자연법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제 삼의 자연법이다. 홉스는 약속(convert)를 특별한 형태의 계약(contract)으로 여기는데 계약이란 상호이익을 고려하여 자신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홉스는 제 삼의 자연법이 없다면 ‘약속은 헛되고 공허한 말에 그칠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한 모든 사람의 권리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여전히 전쟁 상태에 머물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정의와 불의의 개념이 성립하는 기초를 제공하는 것 또한 이 자연법이다. 왜냐하면 불의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며, 불의에 해당하지 않는 모든 것은 정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처럼 약속의 당사자들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약속은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정의의 개념에 앞서 불의의 개념이 먼저 확립되어야하며, 약속을 어김으로써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보다 훨씬 더 큰 처벌의 공포를 강조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함께 약속을 이행하도록 만드는 어떤 강제적 권력이 존재해야한다.’국가가 확립도기 이전에는 이런 권력은 존재하지 않으며 ‘권력의 칼이 없다면 약속은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할 힘을 전혀 갖지 못한다.’

공통의 권력을 형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권력과 힘을 한 사람 또는 하나의 합의체에 양도하는 것인데, 이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의 의지와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의 의지로 환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중앙의 권력은 다수의 사람들 전체를 대표해 국가라고 불리는 하나의 인격으로 통합된다. ‘이리하여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이 탄생한다. 아니 좀 더 경건하게 말하자면 영원불멸하는 신의 가호 아래 인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지상의 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1-4. 하지만 홉스의 이런 설명에는 일종의 악순환이 포함되는 듯하다. 그는 약속을 강제하는 통치자가 없다면 어떤 약속도 구속력을 지닐 수 없다고 말하고 구속력을 지니는 계약을 통하여 권력을 양도받지 않는 한 어떤 통치자도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두 주장은 계약과 통치자가 동시에 등장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다.

홉스는 자신이 왕정주의자라는 점을 일부러 숨기려 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정치이론에서 통치자가 한 개인인지 아니면 집합체인지는 의도적으로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남겨둔다. 그는 통치 체제가 군주정이든 귀족정, 민주정이든 통치권은 절대적이어야한다고 주장한다.

홉스에 따르면 통치자는 모든 법률과 재산권의 근원이다. 그는 국가를 방어하는데 어떤 수단이 필요한지를 결정하며,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할지 아니면 평화를 유지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그의 고유권한이다. 공직자, 공무원 임명, 처벌뿐만 아니라 통치자는 종교 문제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지니는데 어떤 책을 성서로 받아들일지, 해석할지 결정하는 것은 성직자나 장로가 아닌 통치자라고 주장한다.

1-5. 그렇다면 홉스가 생각한 통치자 아래에서 국민에게는 어떤 자유가 있는가? 자유란 단지 법에 저촉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국민은 통치자가 법을 통하여 규제하지 않은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 통치자에게 명령에 따르지 않을 자유가 있는가?이에 대하여 홉스는 ‘결코 없다’고 대답하리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 그는 국민들이 통치자에게 불복종할 자유를 상당히 인정한다.

“만일 통치자가 어떤 사람에게 (설령 그가 정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죽이거나, 손상하거나, 불구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또는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지 말라거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음식이나 공기, 약품 또는 그 외의 어떤 것이라도 사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다면 그 사람은 이런 명령에 따르지 않을 자유를 지닌다. ‘

국민은 자신의 유죄를 자백하고 강요당할 수 없으며, 통치자의 명령을 받더라도 군인으로 전쟁에 나가 싸우지 않아도 된다. 홉스는 남성도 여성과 같이 겁이 많다는 이유로 참전을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도망치는 게 비겁할지는 몰라도 부당한 행위는 아니다. 참전이 의무로 부과되는 때는 위급한 상황뿐이다. 마지막으로 ‘통치자에 대한 국민의 의무는 통치자의 권력이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한에서만 유지되며,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야한다.’ 따라서 만일 통치자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자신의 주요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에는 통치자에 대한 의무 또한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1-6. 《리바이어던》에 등장하는 국가에 관한 이론은 무척 독창적이며 강력한 지적 체계를 드러내며 그것이 지닌 구조는 홉스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 까지 여러 정치철학자의 저술에 크게 반영되었다. 그의 체계는 비록 절대적인 통치권을 강조하지만 전체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는 오직 국민들을 위해서 존재하며 그 반대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홉스는 통치자의 정당성을 신의 권위에 조금도 호소하지 않고, 더욱이 인간 본성의 궁극적 원인이라는 신의 역할에도 전혀 의존하지 않고 오직 국민들 사이의 계약으로부터 직접 이끌어 낸 최초의 철학자이다.

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않은 전쟁

1.정의로운 전쟁과 정의롭지 않은 전쟁

1-1. 전쟁에 대한 유토피아 사람들의 태도에 관하여 논의하면서 모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이 전쟁을 하는 유일한 목적은 오직 사전에 확보했더라면 선전포고를 막을 수 있었을 상황을 얻기 위함이다.‘ 이런 규칙에 따를 경우 무조건 항복이나 전쟁 중 임무를 변경할 가능성 등은 완전히 배제된다. 모어 자신은 헨리 8세가 일으킨 전쟁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정작 정의로운 전쟁과 그렇지 않은 전쟁을 구별할 원리를 체계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런 원리를 제시한 인물은 16세기 말에 등장한 예수회 소속의 신학자 수아레스(Francisco Suarez)였다.

1-2. 수아레스는 아퀴나스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 정의로운 전쟁에 관한 고전적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원리로 요약한다. “첫째, 합법적인 권위를 지닌 당사자에 의해서 선전 포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정당한 원인과 명분이 있어야 한다. 셋째, 전쟁의 개시와 진행 및 승리의 과정에서 적절한 수단과 균형이 드러나야 한다”

수아레스가 말한 합법적인 권위를 지닌 당사자라는 조건은 오직 통치권을 지닌 정부만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나라의 개인이나 집단은 불화를 무력으로 해결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교황은 초국가적 권위를 지니므로 기독교 국가들 사이에서 대립을 해소하는데 개입할 권리를 지닌다.

수아레스는 전쟁의 정당한 원인으로 두 가지를 인정한다. 자신의 나라가 공격받을 경우 무력을 사용해 나라를 방어할 권리를 지닌다. 또한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전쟁이 정당한 경우도 있는데 자신의 나라 또는 동맹국이 당하리라 예상되는 중대한 부당행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공격일 때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승리하리라는 충분한 희망이 있어야하며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무력에 의지한다면 부당행위를 막을 수 없다.

세 번째 조건은 다시 세 요소로 구성된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통치자는 잠재적인 적국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사악함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어야한다. 그렇게 했음에도 사악한 일이 계속된다면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다. 또 전쟁 중에는 반드시 필요한 폭력만을 이용해야하며 끝난 후에는 적절한 보상과 정당한 처벌이 이루어져야한다.

1-3. 수아레스는 이들 중 두 번째 요소가 전쟁과 무관한 사람들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을 금지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가 진정 전쟁과 무관한 사람인가? 자연법은 어린이와 여성들, 무력에 저항할 수 없는 사람들이 무관하다고 말하며 실정법에 따르면 대사와 성직자들에 대한 공격은 금지된다. 하지만 수아레스는 이들을 제외한 무기를 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전쟁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수아레스는 자신들 규칙들이 기본적으로 통치자들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전투 명령을 받는 일반 병사들은 명백한 불의가 드러나지 않는 한 정의롭게 여기기 때문에 통치자만이 스스로 전쟁에 대해 숙고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해 전쟁을 정의롭게 만드는 조건을 충족시킬 의무를 가진다.

1-4. 전쟁의 도덕성에 관한 수아레스의 주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로티우스(Hu해 Grotius)로 이어지면서 훨씬 폭넓게 전파되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법학자이며 외교관이었던 그로티우스는 1625년 위대한 저술 《전쟁과 평화의 법》을 출판했으며 종교에 기초한 법의 개념으로 벗어나기 위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도덕 이론을 제시한다. 그가 종교적 신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종교전쟁을 통해 특정 종교에 대한 신앙이 안정적인 국제 질서를 확립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실재론과 관념론, 관념론의 인식론

실재론 대 관념론

칸트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아프리오리(apriori)한 요소들에 대한 설명은 획기적이지만 인식론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지각한 것이 만약 대부분이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실재하는 외부세계에 관한 어떤 지식이라도 얻을 수 있는가? 란 내용이다. 이 문제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시간과 공간이 경험상 실재적이지만 선험적으로 관념이라 말하면서부터 대두되었는데 시공간에 대하여 칸트는 주관이 없다면 시공간은 없어지며 현상으로서 시공간은 그자체로 현존하지 못하여 오직 우리 안에서만 현존한다고 말 하였다.

시공간을 주관적으로 파악한다면 단순한 현상 너머의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해 칸트는 경험에서 모든 인간에서 속할 수 있는 바와 한 가지 관점에만 속하는 바를 구분해야 한다고 답한다. 또한 칸트는 실재와 현상 사이의 구별은 단순한 경험적인 것일 뿐이라 말하며 첨언한다. 이런 점들로 인하여 칸트를 관념론자로 여기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칸트 이전의 관념론자들과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전의 관념론자인 데카르트나 버클리와 견해를 같이하기 보다는 외부 경험을 전제함으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칸트는 우리의 내부 경험은 오직 외부 경험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변화의 지각은 영속적인 것에 대한 지각을 포함하는 일이라 하며 이 영속적인 것이 자신이 아니기에 경험을 통합하는 주관이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내부 주관을 경험으로 판단하기위하여 외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철학자들이 현상계와 본체계를 구별한다고 주장하지만 단지 현상만이 있는 세계 혹은 감각적 자료의 세계만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며 본체계 역시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에 관한 언급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에 관한 현상이라 말할 수밖에 없기에 어떤 것을 상정해야만 한다. 칸트에 따르자면 이 어떤 것이 선험적 대상이며 이것은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만을 어떤 것의 속성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선험적 대상에 대하여는 어떠한 범주 구분에도 포함되지 않기에 본체계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이해해야한다고 말한다. 칸트의 이런 주장들은 그가 스스로를 선험적 관념론자로 여기면서 동시에 경험적 수준에서 실재론자로 여기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버클리나 데카르트의 견해는 칸트의 견해와 유사성이 덜한데 그의 견해와 좀 더 유사한 입장은 아퀴나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감각과 지성 사이의 협력을 통해서만 지식이 성립한다는 점이다. 즉 경험과 개념을 동시에 파악해야만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퀴나스와 칸트 모두 이러한 주장에 따라 관념론자라 볼 수 도 있지만 아퀴나스의 경우 관념은 정신의 보편으로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사고의 대상이 관념에 대한 것은 아니기에 자연적 대상의 실재를 인정하는 면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칸트의 경우 물자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 버클리와 다른 견해를 지니지만 물자체에 대한 그 어떠한 접근도 불가능하며 언급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저술에서 드러난 물자체는 실제로 현상의 본체로서 어떤 것이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인 듯 보인다.

관념론의 인식론

칸트의 체계는 그의 사후 바로 비판을 받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피히테는 <<순수이성비판>>에 근본적 모순이 내재한다고 비판했다. 그 비판이란 경험이 물자체에서 야기된다는 주장과 원인의 개념이 오직 현상의 영역에서만 적용된다는 주장이 서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런 모순이 있기에 피히테는 이것을 피하기 위해 경험을 정신의 창조물이라 여기는 관념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방법의 일종이라 하였다. 그러나 피히테는 개별적 자아의 주관성에서 세계를 끌어낼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였기에 독일의 관념론은 헤겔에 의해 더 발전되었다. 헤겔은 피히테와 달리 정신의 창조 활동을 세계를 포괄하는 영역까지 끌어올렸으며 이외에도 지식이나 지각의 본성에 대한 여러 가지 통찰을 제시한다.

헤겔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의식 -> 자기의식 -> 이성 이라는 위계질서로 파악하며 그 종류를 구분한다. 이 중 의식은 감각적 의식 지각 오성으로 또 한 번 나누어진다. 감각적 의식은 감각적 자료의 수용 단계로 헤겔 전후의 철학자들에게 가장 확고한 형태의 지식이라 여겨졌지만 헤겔에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헤겔은 감각적 자료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성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하여 완전한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감각자료의 규정을 위해선 보편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지각의 단계에서 지식이 될 수 있지만 그 지식은 불완전한 환영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다양한 감각 경험을 하나의 실체에 속한 속성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비감각적 범주에 호소하여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오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오성의 영역에서 의식을 구성하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되며 자기의식의 단계로 넘어간다. 의식과 자기의식의 단계는 이후 상위의 단계인 이성으로 발전하는데 이성은 자연과 정신 모두를 일종의 무한 정신이라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인식론과 형이상학이 교차 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무한 정신이라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이성은 살아있는 정신의 하나로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의식에 관한 데카르트의 견해

BY 전수민

우리 정신의 내용은 사고들이다. 데카르트는 ‘사고’라는 용어를 매우 폭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지적인 성찰 뿐 아니라 의지, 지성, 상상력, 감각능력의 모든 작용을 비롯한 의식의 대상들을 사고에 포함시킨다. 감각능력과 상상력의 대상이 외부에 현존하지 않더라도 데카르트에 따르면 감각과 상상이라고 부르며 이들이 오직 사고의 양태인 한에서 확실히 우리의 안에 존재한다.

데카르트에게 이해된 감각은 오직 사고 작용뿐인데 육체가 없어도 가능한 이런 명백한 감각은 이후 철학자들이 ‘감각적 자료들’이라고 불렀다. 데카르트 체계의 유지 여부는 이 개념에 일관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결정된다.

‘제삼성찰’에서 데카르트는 사고의 여러 유형 중 하나를 추려 이를 ‘관념’이라고 부른다. 데카르트의 관념은 단어에 대응하는 정신적 요소로 말할 수 있다. 그는 어떤 단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관념이 내 안에 있다는 점을 확신하지 못한 채 그 말을 이해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단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데카르트는 관념을 본유관념, 외부에서 획득한 관념, 내가 만들어낸 관념으로 분류한다. 본유관념에는 사물, 진리 그리고 사고의 관념을 둔다. 외부에서 획득한 관념은 주로 우리가 감각적으로 획득한 관념들을 말하고 우리가 상상과 같은 관념을 내가 만들어낸 관념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자신의 정신 안에 형성된 이런 관념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획득’ 관념들이 외부의 대상으로부터 생겨난 것인지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

하지만 신의 관념은 데카르트의 정신 외부에서 생겨난 듯이 보이는 관념이다. 신의관념과 결합된 완전성은 다른 어떤 것에 비해서 우월하기 때문에 신의 관념은 결코 자신이 만들어 낸 허구일 수 없다. 그런데 어떤 관념의 원인은 반드시 그 관념 자체보다 더욱 실재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세계 안에 오직 그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관념에 대응하는 신이 실재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신은 데카르트가 자신의 정신 외부에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최초의 실재로 데카르트의 인식론체계가 구성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신은 결함이 없기에 우리를 속이지 않고, 이 원리는 데카트르를 회의주의의 미로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실마리역할을 한다.

신이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했으므로 우리가 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모든 것은 참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직관과 같은 순각적인 직관뿐 아니라 경험과 무관한 학문 전체를 확신 할 수 있게 된다.

데카르트는 ‘제육성찰’에 이르러야 물질적 사물들이 존재하며 자신이 육체를 지닌다는 점을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확립한다. 그러면서 지성과 상상력에 차이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는데 상상력은 지성에 추가되는 여분의 능력이며 지성만이 정신의 본질적 능력이라고 여긴다. ‘지성은 작용할 때 정신을 자기 자신에게 향하여 자신 안에 포함된 어떤 관념을 고찰하는데 비해 정신은 물체로 향하여 자신이 이해한 관념과 유사한 물체 안에서 바라본다.’(AT VII.73 ; CSMK II.50)

현대의 철학자들은 데카르트가 정당화해야 하는 평범한 과학적 진리보다 신의 존재를 훨씬 더 의문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전혀 설득력 없는 것으로 여긴다.

만일 신이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면 내가 끊임없이 오류에 빠지는 일을 어떻게 설명 할 것인가에 대한 반박에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우리의 능력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결코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는다. 나는 지성이라는 능력을 지니는데 이를 통해서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며 내가 지성이 제공하는 명석, 판명한 지각의 경우에 대해서만 의지의 판단을 적용하면 결코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 것이며, 내가 명석, 판명한 지각에 이르기 전에 성급한 판단을 내릴 경우에만 오류가 발생한다.

또 아르노는 데카르트가 신에게 호소하여 명석, 판명한 지각을 보증하는 과정에 명백한 순환논증이 포함된다며,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앞서 우리가 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모든 것은 참이라는 점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반박하였다.

이 반박에 대하여 데카르트는 특수한 명석, 판명한 지각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모든 것은 참이라는 일반 원리 사이의 구별에 의존한다며, 개별적인 지각이 참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데는 신의 성실성에 호소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다. 또 내가 지금 여기에 무언가로 존재한다는 점이 명석, 판명하게 지각된다는 사실을 회의할 수 없다 할지라도, 신의 존재를 확립하기 이전이라도 내가 명석, 판명하게 지각하는 모든 것은 참이라는 일반명제는 회의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이 단순한 직관들을 지니는 동안에는 이들을 회의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을 확립하기 위한 어떤 논증도 필요하지 않다. 신의 성실성에 호소하는 일이 필요한 경우는 오직 일반 원리와 관련되는 경우와 개별적인 지각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회의하는 경우뿐이므로 데카르트의 주장은 순환 논증에 빠지지 않는다.

몽테뉴의 회의주의부터 데카르트 대응까지

1-1. 16세기에 접어들면서 회의주의를 새로 유행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했다. 유럽에서 서로 다른 기독교 교파가 충돌하고,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지닌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생겨났다. 또한 이 사실을 인지한 몇몇 사상가들은 진리를 주장할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신념 체계가 존재하는 지 의문을 품었다. 또한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를 비롯한 고대 회의주의자들의 저술이 발견 되면서 인간 인식 능력의 신뢰 가능성에 대한 논증이 주목되었다. 몽테뉴의 <<레몽 세봉을 위한 변명>>은 회의주의를 가장 세련된 형태로 드러낸 저술 중 하나다.

1-2.  몽테뉴는 극단적 회의주의를 선호했다.  아무 것도 인식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편 회의주의의 창시자 피론의 이름을 딴 ‘피론주의적 회의주의’를 선호했다. 몽테뉴는 감각과 지성의 오류 가능성을 보이기 위해 많은 예를 들었다. 주로 섹스투스의 저술을 인용했고, 논증을 진행하면서는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이용했다.  몽테뉴는 섹스투스와 마찬가지로 감각의 오류 가능성을 보이는 데 스토아학파의 논증을 사용하고, 경험과 무관한 지식의 불가능성을 보이는데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논증을 사용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두 학파 모두의 논증을 부정하고, 진정한 지식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3. 몽테뉴는 “귀가 눈에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는가? 촉감이 귀에게, 맛이 촉감에게 거짓말했다는 판결을 내릴 수 있는가?” 라는 루크레티우스의 유명한 대목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몽테뉴는 루크레티우스와 달리 감각들이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결론에 까지 나아가진 않는다. 그는 감각이 참을 전한다는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이성도 똑같이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 ME2. 253)감각과 이성은 서로 협력해 지식을 산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각각 상대방에게 거짓말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의 의지에 속하는 정념은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지각하는 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어떤 기준이란 것이 필요한데, 그런 기준은 성립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몽테뉴는 고대의 회의주의가 축적한 업적에 몇몇 새로운 자료를 더한 것이다.

2-1.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철학을 16세기에 전개된 회의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다. 그는 우선 ‘제일성찰’에서 몽테뉴보다 정돈된 형태의 논증을 제시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내가 지금까지 진정으로 참이라고… 중략… 불 옆에 앉아 있다고 굳게 믿은 것이 어디 한 두번이던가! (AT 7.19; CSMK 2.13) “내가 지금 꿈꾸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래서 내가 눈을 뜨고 있다는 점, 머리를 움직여 본다는 점… 중략… 따라서 최소한 일반적인 종류의 사물들, 눈, 머리, 손, 신체 등은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대상이어야만 한다. (AT 7.20; CSMK 2.14)  그는 꿈을 꾸는 대상들도 결국 상상이 만들어 낸 복합체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는 이런 물체를 구성하는 더욱 단순한 구성요소들 – 즉 연장성, 형태, 크기, 수, 장소, 시간 등- 은 반드시 실재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만일 그렇다면 이런 대상들을 다루는 산술학과 기하학은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내가 잠자든 깨어있든 간에 둘에 셋을 더하면 다섯이며, 사각형에는 네 변이 있다. 이런 명백한 진리를 거짓이라고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한 듯이 보인다.’ 는 논증을 펼쳤다.

2-2 그러나 수학도 데카르트의 회의 대상에서 벗어난 건 아니었다. 이는 수학도 일종의 망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진리의 근원이 되는 최고로 선한 신이 아니라 최고로 강력하고 교활한 악령이 존재하며 … 중략…  단지 이런 것들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존재로 여기려 한다. (AT 7.23; CSMK 2.15) 데카르트는 ‘제이성찰’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논증, 즉 그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명한 논증에 도달함으로써 이런 회의를 끝낸다. 설령 아무리 전능한 악령일지라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생각하도록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떠받치는 확고한 기초다. 언뜻 타당한 듯 보이는 논증이다. 그렇다면 이 논증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이에 대해 회의하는 것 자체가 이미 생각하는 것이므로 ‘나는 생각한다’는 회의 할 수 없는 전제라고 답했다.

2-3 심각한 문제는 ‘나는 생각한다’에서 등장하는 ‘나’에 관련된 것이다. 일인칭 대명사는 그 대명사를 발언하는 사람의 육체와 연결되어 그 의미를 얻게 된다. 자신에게 육체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회의하는 사람이 독백을 하면서 ‘나’ 라는 개념을 사용할 자격을 지니는가? 에 대한 문제다. 어쩌면 데카르트는 ‘사고가 계속된다.’ 라고 말할 자격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이와 유사한 의문으로는 ‘나’와 관련된 ‘존재가 계속된다’이다. 비판자들은 회의 중인 데카르트에게는 지속적인 실체로서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이는 데카르트 자신의 표현을 빌리더라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라는 인간 전체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점. 그 자체로 그것은 오직 그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점을 증명할 뿐이라는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루소

 <<백과전서>>에서 음악과 관련되는 몇몇 항목의 글을 섯던 인물은 훨씬 더 멀리까지 나아가려 했는데 그가 바로 루소다. 1712년 제네바에서 시계공의 아들로 태어났고 칼뱅주의자로 성장했다. 그러나 16세때 도제 일을 하다 도망쳐 토리노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는 바랑 남작부인의 권유로 이루어졌는데 그와 1729년부터 1740년까지 살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루소는 달랑베르나 볼테르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750년 예술과 과학의 진보가 도덕에 유익한 결과를 낳았는지 묻는 현상 응모에 부정적인 논문을 써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에 확장해 4년후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발표했다. 두 저술의 주제는 인간성은 원래 선하지만 사회 제도 때문에 타락한다는 것이다. 루소는 ‘고상한 원시인’이 바람직한 인간상이라 주장했고 이는 과학적, 사회적 진보를 신봉하는 백과전서파 철학자들과 대치되는 것이었다. 볼테르는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인류에 반하는 책이라 하였다.
 루소는 세탁소 여종업원 테레즈 르바쇠르와 오랫동안 생활하며 당시 사회적 관행을 경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루소는 그녀와의 사이에서 다섯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이들을 차례로 고아원에 맡겼다. 루소는 1754년 제네바로 돌아와 시민권을 얻기 위해 칼뱅교도로 다시 개종하기도 했다. 볼테르 역시 제네바에 정착했지만 두 철학자는 서로 좋은 이웃이 되지 못했다. 1756년 루소가 출간한 <<섭리에 관한 편지>>는 이를 증명하는 사례였다. 또한 1761년 <<도덕에관한편지>>를 출간하며 백과전서파 철학자들과 완전 결별했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에 은거한 1758년부터 1761년은 루소에게 매우 생산적인 시기였다. 그는 소설 <<신 엘로이즈>>를 썼는데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또한 두 권의 철학 저술도 썼는데 그중하나는 교육철학 <<에밀>.이며 다른 하나는 정치철학을 다룬 <<사회계약론>>이다. <<사회계약론>>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는 유명한 말로 시작된다. 두 저술은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주장 때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파리와 제네바 모두에서 루소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고 루소는 스위스로 피신했다. 그러던 중 흄의 호의로 영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그의 배은망덕한 태도 때문에 흄은 그에게 등을 돌렸고, 말년에 이르러 파리로 돌아와 생을 보냈다. 이 시기에 가장 큰 업적중 하나인 <<고백론>>을 써냈다. 출판은 사후에 되었다.
 1778년은 볼테르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만년에 접어들며 루소의 저술은 반기독교적 경향이 심해졌다. 평생의 논적이었던 루소와 볼테르는 프랑스의 위대한 인물들이 묻히는 파리의 팡테옹 지하 묘지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루소는 계몽주의 철학자들과 프랑스 및 유럽을 휩쓴 혁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 받는다. <<프랑스혁명>>의 저자 칼라일은 ‘전에 루소라고 불린 인물이 있었다. 그가 쓴 책은 이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책 재판은 초판을 비웃었던 사람들의 가죽으로 장정되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피히테와 셸링, 그리고 헤겔

피히테와 셸링, 그리고 헤겔

Ⅰ. 피히테

1-1. 생애와 시대적 배경

1-1-1. 칸트는 만년에 이르러서까지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는 시도를 했는데, 그 내용은 그가 죽은 후 ⟪유고(Opus Postumum)⟫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에 칸트 자신이 ⟪순수이성비판⟫에서 제시한 몇몇 요소에 대해 불만을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불만은 칸트의 열렬한 지지자들과 제자들에게 그를 비판할 계기를 제공했다. 이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로, 그는 칸트가 사망했을 때 철학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중에 있었다.

1-1-2. 피히테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거위 돌보는 일을 했었는데, 그의 뛰어난 지적 재능을 알아본 자선 사업가인 남작에게 후원을 받아 예나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는 대학에서 레싱과 스피노자, 칸트를 숭배하게 된다. 그는 괴테의 추천으로 1794년 예나 대학 교수로 임명되고, 이곳에서 시인이자 극작가인 실러와 동료로 지낸다. 피히테는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1799년 예나 대학을 떠나게 되고, 한동안 직장을 찾지 못하다가 1810년에 새로 생긴 베를린 대학의 철학부 학장이 된다. 그는 1812년 프랑스에 맞서 저항군에 지원 입대 하였으나, 1814년 발진 티푸스에 전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1-2. 사상

1-2-1. 피히테의 철학적 명성은 1804년에 발표한 ⟪지식학⟫으로 얻게 되는데, 이 책에서 그는 철학의 임무를 경험의 기능성에 대한 선험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라 보며 칸트의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순수한 객관(물자체)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면 독단론의 길을, 자유로운 주관(자아)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면 관념론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의식 전체를 사고하는 주체의 자유로운 경험으로부터 이끌어 내고, 그 자신을 독일 관념론의 창시자로 만들었다.

1-2-2. 모든 것을 자신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자아’란 무엇인가? 피히테는 행위를 하면서 자신의 자기의식에 대한 지적인 직관이 없다면, 인간은 행위할 수 없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의 이론은 개인적 자아가 물질세계 전체를 창조할 수 있다는 유아론(solipsism)에 빠지는 듯 보이지만, 그 자신은 이러한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현상적인 자아를 포함한 모든 현상을 창조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직접적이고 정신적인 생명’이라고 주장했다.

1-2-3. 이는 마치 신에 관해 언급하는 것처럼 보인다. 피히테는 모든 철학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은 현존하는 유한한 자아가 아니라 신적인 이념이라고 말했다. 존재가 아닌 생명이 없으며, 신이 아닌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신적인 존재를 믿는 것은 미신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유신론자라기보다 범신론자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Ⅱ. 셸링

2-1. 피히테 이론을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셸링(F. W. J. Schelling)은, 피히테의 종교철학은 스피노자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1798년 23세의 나이로 예나 대학 교수로 임명된 피히테의 동료였다. 그는 피히테의 철학이 스피노자가 독단적인 형태로 제시했던 이론을 비판적인 형태로 바꾼것이라 보았다. 셸링은 비교적 덜 강경한 형태의 관념론인 자신의 철학 체계인 ‘자연 철학’을 제시했다. 그는 최초의 절대적인 것이 서로 나란히 존재하고 서로 동등한 두 세계, 즉 정신적인 의식이고 물리적인 자연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그는 최초의 절대적인 것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자연이고, 물질적 자연의 체계는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로서의 자연이라고 여겼다.

2-2. 셸링의 체계는 풍부하지만 동시에 난해하다. 현재 영어권에 속하는 나라들에서 그의 저술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 대부분의 철학사에서 셸링은 피히테와 헤겔의 관념론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셸링과 헤겔은 1802~3년에 예나에서 함께 철학 저널 편집자로 일했다.

Ⅲ. 헤겔

생애와 시대배경

3-1. 헤겔이 쓴 최초의 저술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을 비교한 것이었다. 1770년에 태어난 헤겔은 신학을 공부하고 1801년에 예나 대학에서 두 철학자와 함께 지냈다. 그는 1806년 프로이센 군대가 나폴레옹에게 대패하여 예나 대학이 폐쇄될 때 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대학이 문을 닫고 곤궁한 상태에서 그는 유명한 《정신현상학》을 출판한다. 헤겔은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가 된다. 그는 《논리학》을 출판하고 그 다음 해 철학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철학강요》를 출판했다. 그는 1818년 베를린 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1831년 콜레라로 사망하기 전까지 교수직을 유지했다. 그가 베를린 대학 교수로 있는 동안 그가 했던 강의록이 사후에 편집되어 출판된다. 그의 강의록은 철학사를 비롯해 미학, 역사철학 등이 있는데, 이는 그가 매우 독창적이고 폭넓은 지성을 소유했던 학자였음을 보여준다.

3-2. 헤겔이 사상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는 철학에 역사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그가 역사철학을 다룰 당시 고전적인 저술 두 권이 이미 출판되어있었는데, 그 책은 비코의 《새로운 과학》과 헤르더의 《인류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이었다. 이 두 권은 역사 탐구 방법을 검토하고 인류의 진화론적 발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철학 안에서 역사에 특별한 지위를, 그리고 역사 서술에서 철학자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인물은 헤겔이다.

사상

3-3. 헤겔은 철학자가 역사에 대해 일반 역사학자들이 지닐 수 없는 특별한 통찰이 있다고 보았다. 오직 철학자만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이성이고, 세계사는 이성의 전개 과정이라는 점을 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해에 도달하는 방법은 형이상학적 체계를 탐구하는 방법과 역사 자체를 귀납적으로 탐구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역사가 이성의 전개라는 믿음은 신의 섭리에 대한 종교적 신앙과 대응하는데, 헤겔은 형이상학적 이해를 하는 철학자가 신학보다 더 세계의 궁극적 운명과 궁극적인 운명 그리고 그 실현 방법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3-4. 헤겔에 따르면 세계사는 정신(Geist)이 전개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정신의 내적 발전은 구체적인 실재로 통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헤겔은 태초로부터 하늘과 땅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오직 자신을 인식하고 발견하려는 정신의 투쟁일 뿐이라고 보았다. 정신은 사전에 완벽하게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 나아가고 잠재성을 실현하려는 정신의 충동을 동인으로 갖는 것이다. 보편사는 ‘정신이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바에 관해 인식을 점차 드러내고 현실화하는 과정이다’.

3-5. 헤겔은 정신의 존재를 논리학과 관련되는 주제라고 말하며 ‘논리학’을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역사를 논리의 현시로 여기고 동시에 논리학을 역사적인, 대립 및 투쟁과 관련되는 용어로 여긴다. 두 명제가 서로 모순을 이룰 경우 그는 이를 두 명제 사이의 대립으로 표현한다. 두 명제가 서로 싸워 승패가 나뉘는 이것을 ‘변증법’이라 한다. 이는 한 명제(정립)가 다른 명제(반정립)와 싸움을 벌이고 결국 이들 모두를 극복한 제 3의 명제(종합)이 등장하는 과정이다. 정신에 이르기 위해서는 두 단계의 변증법을 거쳐야 한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최초의 정립은 절대적인 것이 순수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어떤 성질도 지니지 않는 순수한 존재는 무와 같으므로 ‘절대적인 것은 무’라는 반정립에 이르게 된다.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을 극복하며, 존재와 무의 결합은 생성이므로 ‘절대적인 것은 생성’이라는 종합에 이른다.

3-6. 생성과 생명 그리고 절대적인 것은 다시 두 번째 단계의 변증법을 제공한다. 헤겔은 절대적인 것을 사고의 주체, 즉 보편적인 사고의 주체로 여기며 이를 ‘개념’이라 불렀다. 이는 지성이 사고를 통하여 산출하는 모든 개념의 총체를 의미한다. 또한 그는 절대적인 것을 사고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자연’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지성이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의 총체라는 의미한다. 이렇게 자기의식이라는 종합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정신이다.

3-7. 헤겔이 생각한 정신의 개념은 처음 접하면 몹시 당황스럽다. 헤겔이 말하는 정신이 신 – 스피노자의 경우처럼 자연과 동일시되는 – 이라고 생각할 수도, 혹은 개인으로서 인간이 지닌 정신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중 어떤 것도 완전히 옳지는 않다. 이들보다 인류에 관해 언급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헤겔은 ‘정신’이라는 용어에 두 가지 형이상학적 요소를 더한다. 첫째, 그는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에 관해 언급한다. 둘째, 그는 세계를 세밀하게 나타나는 나름대로의 생활 주기를 지니는 유기적 전체로 여긴다.

3-8. 헤겔은 우리가 자연의 구체적인 유기체를 볼 때처럼 세계도 그렇게 보기를 요청한다. 그는 식물은 자신의 이념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어린아이는 육체가 발달하고 지적인 기법을 습득하면서 점차 자신의 본성과 이념을 의식하게 되는 예를 들며, 정신이 진보함으로써 이런 발달 과정은 세계를 포괄하는 규모로 재현된다고 보았다. “정신은 개인적이고 유한한 의식으로 여겨져서는 안되며 그 자체로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정신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진보는 가장 풍부한 형태로 세계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보편적 정신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따라서 세계사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정신의 자기의식이 전개되는 역사이다. 정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에 대한 의식이 성장하는 것에 맞춰 자유의 의식을 통해 진보한다.

3-9. 정신의 자유는 정신을 물체와 구별하는 근거가 되는데, 물체는 만유인력과 같은 필연적인 법칙의 제한을 받는다. 세계의 전개는 정신이 자신의 자유를 확장하고 의식해 나가는 과정이다. 국가는 ‘자유의 실현, 즉 절대적인 최종 목표의 실현이며 따라서 오직 그 자체를 위하여 존재한다’. 국가는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은 오직 국가의 구성원이 됨으로써만 가치를 소유하게 된다.

3-10. 어떤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의 정신이 어떤가에 따라 서로 다른 국가들이 서로 다른 특징을 드러낸다. 각 민족에게 한번의, 오직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헤겔은 이 기회가 자기가 살았던 당시 독일 민족의 프로이센 왕국에게 주어졌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정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치 제도가 아니라 철학 자체에서 드러난다. 헤겔은 철학이 진보한다고 굳게 믿었다. 절대적 존재의 자기의식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통해 현존하고, 철학사를 통해 절대적 존재는 자기 자신을 직접 마주보게 된다. 그는 철학사 강의에서 이전의 다양한 철학들을 차례대로 독일 관념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인 발전에 굴복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관념과 인상에 관한 흄의 견해

1. 관념과 인상에 관한 흄의 견해

1-1. 사고와 심성을 동일시하려는 경험론자의 태도는 흄의 철학에서 가장 극단적인 지점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흄은 모든 지각을 ‘관념’이라고 부르는 대신 인상과 관념이라는 두 종류로 구별함으로써 로크와 버클리의 주장을 개선하려한다. 흄은 모든 사람이 감정과 사고의 차이를 안다고 말한다. 감정은 인상, 즉 감각 및 정서와 관련된다. 반면 사고에는 관념이 포함된다.

여기서 흄이 말하는 관념이 정신적 심상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이 관념은 인상과 유사하지만 덜 강력하고 덜 생생하다. 단순 관념은 인상의 모사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옹호하기 위해 그는 사고 실험을 통한 경험에 호소한다. 예컨대, 파란색만 지각하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특정한 색조가 빠져있는 빈자리를 지각한다. 또한 그 사람은 상상력으로 빠져있는 파란색의 색조를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보충하고 이에 따른 관념을 스스로 떠올린다.

이런 사고 실험을 통하여 그는 모든 관념이 인상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자신의 원리에 대한 예외를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례는 무척 드물기 때문에’와 같은 말로 제멋대로 반례를 무시한다. 어쨌든 그는 ‘앞선 이상이 없다면 관념 또한 없다’라는 원리를 형이상학을 공격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1-2. 생생함의 정도를 사용하여 관념과 인상을 구별하는 기준은 생생함에 근거하여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관념, 즉 기억에 관한 관념과 상상에 의한 관념을 구별한다. 그는 기억의 관념이 상상에 의한 관념보다 훨씬 생생하고 강렬하다. 또한 기억과 달리 상상에 의한 관념은 인상이 지닌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과 상상에 의한 관념 모두 자신에 선행하고 대응되는 인상을 지녀야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기억에 관한 관념과 상상에 관한 관념을 구별하는 두 가지 기준이, 즉 생생함과 질서정연함이 마련된다. 하지만 이런 기준들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들을 통해 진정한 기억과 공상적 기억을 구별할 수는 있겠지만 회의의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공상이 기억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압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3. 흄은 기억이 정신 안에 일련의 과거 사건들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에는 수 많은 종류의 기억이 존재하며 상상도 마찬가지로 공상을 펼치는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괄한다. 상상은 착각, 가정, 창조적 독창성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는 기억과 상상 안에 다양한 정신적 사건과 능력, 활동을 모두 포함시킬하지만 이들 모두를 오직 경험론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강요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동시에 흄의 설명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새소리를 듣고 그것의 선율을 정신 안에서 재현할 때 우리는 나와 새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새가 내는 듯이 보이는 생생한 소리를 내가 접한 결과인 것이다. 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지각뿐이라는 경험론의 주장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의 삶 또한 내적 감각의 연속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2-1. 그렇다면 기억과 상상 사이의 차이 또한 내적 감각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 누군가는 이들 사이의 차이가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 자신도 우리가 스스로 믿지 않는 것들을 상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상태를 이런 방식으로 분류한다면 그는 믿음에 적절한 지위를 부여하기 어렵게 된다.

단순히 p를 생각 하는 것과 실제로 p를 믿는 것 사이의 차이가 내용의 차이일 수는 없다. 흄이 표현하듯 믿음은 우리가 믿는 바를 구성하는 관념 또는 관념들에 어떤 특별한 관념을 더함으로써 형성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관념이라도 자유롭게 더할 수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선택해서 믿을 수는 없다. 이를 지지하는 근거는 만약 특별한 관념을 더함으로써 믿음이 형성된다면 누군가는 카이사르가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믿는 것과 카이사르가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서로 전혀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동일한 명제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2.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에서 흄은 믿음이 ‘그저 느슨한 공상이나 몽상과는 다른, 어떤 감정이나 정서를 동반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일종의 인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흄은 이런 생각이 경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믿음은 오직 관념들로만 구성되지만 그는 여전히 관념은 감정에 동의한다고 고집하면서 강력함, 생생함, 견고함, 확고함, 견실함 등의 용어로 예를 든다. 결국 그는 ‘이런 감정 또는 태도의 개념을 완벽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면서 논의를 마친다.

2-3. 믿음의 특징을 생생함으로 설명하려는 흄의 시도는 그의 체계 안에서 난점을 일으킨다. 이와 관련해 흄은 명백한 관념도 아니고 명백한 인상도 아닌 지각에 놀란다. 예컨대, 우리는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 떠나지 않았다는 카이사르의 예에서 이 둘의 기억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의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생생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의 최대 난점은 믿음이 상상을 포함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믿음에 상상이 포함될 경우 강박적인 공상이 실제 믿음보다 생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4. 흄은 뉴턴이 물리학에서 행한 바를 인식론에서 행하기 위하여 관념의 연상을 도입했는데 여기저기 흩어진 매우 적은 언급만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그의 착각에는 다소 안쓰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심리학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는 솔직하게 경험론 전통의 허점과 모순을 인정했다. 그의 통찰은 이 전 철학자들의 심리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계속해서 연구대상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인식론에서 새로운 형태의 회의주의를 제시하면서 크게 기여했다

그의 회의주의는 관념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명제와 사실을 표현하는 명제 사이의 구별로부터 출발하는데 그는 어떤 사실이라도 부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더라도 결코 모순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내일 해가 떠오를 것과 떠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명제 중 후자의 명제를 믿는가?

2-5. 흄은 사실의 문제에 관한 우리의 모든 추론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인과 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가장 단순한 자연의 규칙성도 경험 없이는 확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는 서로 전혀 다른 사건이며 전자로부터 후자를 추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자연의 규칙성을 배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흄은 이에 대한 고찰을 계속해 나간다. 그는 설령 우리가 원인과 결과의 작용을 경험한 후라 할지라도 경험으로부터 이런 결론을 이끌어낼 근거가 과연 이성 안에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미래의 대상이 과거의 대상과 유사하리라고 단지 현상적으로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다음 번에 내가 주잔자를 다시 난로 위에 올려놓았을 때 물이 끓지 않으리라는 가정은 아무런자기모순도 포함하지 않는다. 경험에 근거한 어떤 논증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연의 전행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허용한다면 경험을 신뢰할 만한 인도자로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과거와 유사할 것이라는 시도는 명백한 순환 논증에 빠진다.

2-6. 그렇다면 엄밀한 논증의 수준에서는 회의주의가 승리를 거두는 듯하다. 하지만 흄은 이런 발견 때문에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추론보다 더 강력한 원리인 습관을 통해서 자연의 규칙성을 믿게 된다. ‘두 가지 대상이 -예를 들면 뜨거움과 불꽃이, 무게와 단단함이- 서로 항상 연결되는 것을 본 후에 우리는 하나의 현상이 다른 현상으로부터 등장하리라고 오직 습관적으로 기대할 뿐이다.’ 인간의 삶은 주로 추론이 아니라 습관에 의해서 인도된다.

칸트

1-1 칸트는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데 삶 전체를 바친 인물로 여행도, 결혼도 하지 않았고 어떤 공직도 하지 않았기에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오로지 그의 사상이야기 뿐이다. 루터주의 경건파 가정에서 자랐지만 자유주의적인 신학적 견해를 보였고 항상 엄격하게 정해진 삶을 살았다.

 1-2 칸트는 1760년대부터 진지하게 철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 후 20년 동안 칸트가 출판한 저술은 신중하게 여러 가능성을 보색하는 것이거나 관례상 반드시 써야 하는 것들이었다. 1763년 베를린 학술원에서 ‘형이상학의 진리가 기하학의 진리와 같은 정도로 확실하게 증명될 수 있는가’를 주제로 현상 논물을 모집했는데 칸트는 이 주제에 대해 수학적 방법과 철학적 방법 사이의 많은 결정적인 차이에 주목했다. 수학자들이 명확한 정의에서 출발하여 개념을 형성하고 이를 발전시킨다면 철학자들은 혼란스러운 개념에서 정의에 이르기 위해 개념을 분석한다. 이에 칸트는 수학자들보다 철학자들이 오히려 뉴턴의 방법에 따라야 하며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내적 경험이라는 현상에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1-3 칸트는 라이프니츠와 볼프의 철학에 빠져있을 때 흄이 ‘독단의 잠’에서 깨웠음을 인정한다. 1760년대부터 칸트는 과학적 형이상학의 성립 가능성에 대하여 점점 회의하고 다른 무엇보다도 인과관계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인식될 수 있으며 결코 논리적 필연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1-4 교수로 취임한 후 11년 동안 칸트는 자신의 독창적인 체계를 발전시키는데 전념했고 이 결과가 1781년 《순수이성비판》으로 출판되었다. 칸트의 비판철학의 목표는 철학의 과학화였다. 칸트는 지식을 두 종류로 아프리오리한 지식과 아포스테리오리한 지식으로 구별한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어떤 진리를 인식한다면 그것은 아포스테리오리하다. 반면에 어떤 진리를 모든 경험과 무관하게 인식한다면 그것은 아프리오리하다. 칸트는 모든 지식이 경험과 더불어 시작되지만 경험으로부터 등장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아프리오리하게 인식하는 진리들은 단지 경험의 일반화를 틍해 얻을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칸트는 아프리오리하게 내리는 판단은 분석적인 것과 종합적인 것으로 나뉜다고 보았다. ‘모든 물체는 연장성을 지닌다.’와 같은 분석판단에서는 이미 주어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바가 술어를 통해 더욱 명확히 드러나는데 비해 종합판단에서는 ‘모든 물체는 무게가 있다’처럼 술어가 주어의 내용에 새로운 무언가를 더한다. 아포스테리오리한 명제는 모두 종합적이며, 분석명제는 아프리오리하다. 칸트는 아프리오리하면서 종합적인 명제가 존재한다고 보았고 형이상학을 진정한 학문으로 만들려면 아프리오리한 동시에 종합적인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1-5 인간이 지닌 정신적 능력의 본성과 한계를 붆명히 밝히는 것을 철학자의 첫 번째 임무라고 칸트는 생각했다. 중세철학자들과 합리론자와 같이 칸트는 감성과 지성을 뚜렷하게 구별하고 지성을 오성과 이성으로 나눈다. 오성은 인간의 지식을 형성하기 위하여 감각들을 결합하는 작용을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이성은 오성이 도달할 수 있는 바를 넘어서려는 지성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은 경험과 분리 될 경우 ‘순수이성’이 되는데 이것이 칸트가 비판하려는 대상이다.

1-6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순수 이성에 관하여 언급하기 전에 감성과 오성을 체계적으로 탐구한다. 감성은 ‘선험적 감성론’에서 오성은 ‘선험적 논리학’에서 탐구가 이뤄진다. 칸트는 선험적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는데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지만 현실적 경험이 전하는 바를 넘어선 또는 그 배후의 무언가라는 개념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1-7 선험적 감성론은 대체로 공간과 시간에 대한 탐구이다. 칸트는 감성이 재료와 형식을 지닌다고 말한다. 공간은 외부적 감가의 형식이며, 시간은 내부적 감각의 형식이다. 공간과 시간은 우리의 정신이 발견하는 세계 안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감성이 경험을 형성하면서 부여하는 일종의 틀이다.

1-8 선험적 논리학은 선험적 분석론과 선험적 변증론으로 나뉜다. 분석론에서는 오성을 경험에 타당하게 적용하기 위한 기준들을 제시하고 변증론에서는 이성이 분석론에서 설정된 한계를 넘어서려 할 때 발생하는 환상이 폭로된다. 분석론에서 칸트는 ‘범주들’라고 부르는 일련의 아프리오리한 개념과 ‘원칙들’ 이라고 부르는 일련이 아프리오리한 판단들을 제시한다, 분석론은 핵심적인 두 부분으로 나누어 ‘범주들의 연역’과 ‘원칙들의 체계’로 구성된다.

1-9 분석론 중 첫 번째 절에서 범주들의 연역 또는 정당화가 논의된다. 범주는 특별한 종류의 기본 개념으로 ‘원인’과 ‘실체’의 개념을 범주의 예로 든다. 칸트는 이러한 범주가 없다면 우리는 단편적이고 무질서한 대부분의 경험을 개념화 하거나 파악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칸트는 우리의 모든 지식이 경험과 더불어 시작된다는 경험론자의 주장에 동의 하지만 모든 지식이 경험으로부터 등장한다는 주장은 거부한다.

1-10 분석론 중 두 번째 절에서 해당하는 원칙들의 체계에서는 경험에 관한 수많은 아프리오리한 종합 명제들이 등장한다. 칸트에 주장에 따르면 경험은 연장, 밀도의 두 종류의 크기를 지녀야 한다, 더욱이 우리의 지각들이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된 경우에만 경험이 가능하며 원인과 결과사이의 관계를 먼저 확립하지 않는 한 우리는 객관적인 시간의 연속성을 결코 확보 할 수 없다.

1-11 칸트는 합리론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태도를 취한다. 범주들이 스스로 자신의 적용 가능성을 규정할 수 없으며, 원칙들이 자신의 진리를 스스로 확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아프리오리하게 확립할 수 있는 바는 오직 만일 경험이 가능하려면 이런저런 조건들이 적용되어야 한다. 경험의 가능성은 오직 현실적인 경험 자체에 의해서 드러날 뿐이다.

1-12 칸트는 분석론을 통하여 어떤 범주에도 포섭되지 않고 어떤 규칙에 의해서도 예시되지 않는 순수한 현상이나 감각적 대상의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보인다. 칸트는 ‘선험적 변증론’을 통해 오직 순수 이성을 사용하여 탐구 할 수 있는, 감각을 넘어서는 대상들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것을 살펴본다.

1-13 칸트는 변증론에서 형이상학적, 심리학과 형이상학적 우주론, 형이상학적 신학을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는다.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이성주의 심리학은 ‘나는 생각한다’는 전제를 출발점으로 삼아 비 물질적이고 파괴되지 않고, 개인적이고 불멸하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칸트는 이런 논증의 전개가 다양한 오류를 범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는 네가지 오류를 지적하면서 ‘순수 이성의 오류추리’라고 불렀다.

 

1-14 아프리오리한 우주론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칸트는 네 가지 이율배반을 제시한다. 이율배반은 상반되는 결론에 이르는 한 쌍의 서로 대립하는 논증(정립과 반정립)으로 구성된다. 그 중 첫 번째 것의 정립은 ‘세계에는 시간상 출발점이 있으며 공간상 제한된다’이며 반정립은 ‘세계에는 시간상 출발점이 없으며 공간상 제한이 없다’이다. 칸트는 이 두 가지 모두 증명을 제시하지만 모두 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고 단지 전체로서의 ‘세계’에 관하여 언급할 권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1-15 각각의 이율배반에서 정립은 어떤 연속적인 것이 완전히 멈추게 된다고 주장하며 반정립은 그것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 이율배반은 분할 가능성과 관련되고, 세 번째는 인과성, 네 번째는 우연성과 관련된다. 칸트는 각각의 이율배반에서 정립은 독단론의, 반정립은 경험론의 오류에 빠진다고 생각한다. 네 번째 이율배바에서 칸트는 필연적 존재의 현존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논증들을 제시하고 《순수이성비판》의 뒤이은 절에서는 자연신학에서 주장하는 신의 개념을 계속 검토한다. 그는 신 존재 증명을 세 가지의 기본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각의 증명이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음을 보인다.

 

1-16 60대에 접어들면서 칸트는 윤리학과 미학으로 관심을 돌려 《도덕 형이상학 기초》,《실천이성비판》,《판단력비판》의 저술을 출판한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론이성의 아프리오리한 종합적 원리들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실천 이성의 아프리오리한 종합적 원리들을 비판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1-17 칸트 도덕이론의 출발점은 무조건적으로 선한 유일한 것은 오직 선의지뿐이라는 사실이다. 선의지는 무엇을 성취하는가와는 전혀 무관하다. 선의지의 노력이 좌절될지라도 선의지는 오직 그 자체 만으로 선하다. 의지를 선하게 만드는 바는 그것의 동기가 바로 의무라는 사실이다.

 

1-18 의무로부터 행위하는 것은 도덕 법칙을 존중하여 이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며, 도덕적 명령에 복종하여 행위하는 것이다. 명령에는 가언 명령, 정언 명령 두 종류가 있다. 가언 명령은 만일 당신이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원한다면 이런저런 방식으로 행위하라고 말하는데 비해 정언명령은 당신이 성취하려는 목적과 상관없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행위하라고 한다. 인간의 목적이 다양하므로 수 많은 가언 명령이 존재하는데 비해 정언 명령은 오직 하나뿐으로 ‘오직 동시에 보편법칙이 될 것을 원할 수 있는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 하라’ 이다. 이것을 다른 식으로 말하면 ‘당신 자신의 인격이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 안의 인간성을 단지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하라’ 이다.

 

1-19 세 번째 비판서인 《판단력비판》에서 칸트는 자신이 이전 비판서들에서 과학적, 윤리적 개념에 적용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분석을 아름다움이나 숭고함과 같은 미학적 개념에 적용하려 한다. 미적 취미 판단은 감정에 의존하지만 보편성 타당성을 지니지만 이는 잘못 되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