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 Archives: 선식

KBO 팀간 승패 자료를 github.com 에 올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외대 철학과 스터디 그룹 LOPES의 추선식 입니다.

데이터 분석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학습에 맞게 구성된 데이터가 적고 이런 형태의 자료를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있는 한국의 프로야구 자료로 데이터 분석을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자료를 모으기 위해 KBO 홈페이지에 등록된 2010년도부터 2016년도까지의 야구 자료를 모으고 보기 좋게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수집하고 가공한 자료는 약 7년 치의 한국 프로야구 데이터가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점수와 홈 & 원정팀, 시즌정보 등을 구분하여 경기정보를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7년치의 데이터로 다양한 기록들을 시각화해볼 수 있습니다. 아래 링크로 가시면 자료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choosunsick/KBO_data

##응용사례

  1. 경기 결과열을 만들어 줍니다.
kbo_total$경기결과 <- ifelse(kbo_total$홈팀점수>kbo_total$원정팀점수,"홈승",ifelse(kbo_total$홈팀점수<kbo_total$원정팀점수,"원정승","무"))
  1. 정규시즌만 뽑아 줍니다.
normal_season <- subset(kbo_total,kbo_total$비고=="정규시즌")
doosan <- subset(normal_season,normal_season$홈팀=="두산"|normal_season$원정팀=="두산")
  1. 홈팀과 원정팀의 경기 수를 경기결과에 따라 분류합니다.
home <- aggregate(홈팀점수~홈팀+원정팀+경기결과,doosan,length)
doosan_home <- home[home$홈팀=="두산",]
away <- aggregate(원정팀점수~홈팀+원정팀+경기결과,doosan,length)
doosan_away <- away[away$원정팀=="두산",]
  1. 두산이 홈일 때와 원정일 때의 승리만 따로 뽑아줍니다.
doosan_home_win <- doosan_home[doosan_home$경기결과=="홈승",]
doosan_away_win <- doosan_away[doosan_away$경기결과=="원정승",]
  1. 두산의 열이 중복되므로 지워줍니다.
doosan_home_win <- doosan_home_win[,-1]
doosan_away_win <- doosan_away_win[,-2]
  1. 하나의 자료로 만들어 줍니다.
colnames(doosan_home_win) <- c("상대팀","경기결과","승리횟수")
colnames(doosan_away_win) <- c("상대팀","경기결과","승리횟수")
doosan_win <- rbind(doosan_home_win,doosan_away_win)
  1. 이제 두산의 상대전적(승리)그래프를 그려봅시다.
install.packages("ggplot2")
library(ggplot2)
p <- ggplot(doosan_win,aes(x=상대팀,y=승리횟수,fill= 경기결과))+
geom_bar(stat="identity",colour = "black")+
scale_x_discrete(limits=c("한화","KIA", "SK", "LG", "넥센", "삼성", "롯데", "NC","kt" ))+
theme(axis.text.x= element_text(angle=90, hjust=1))
p+labs(title="두산상대전적그래프")

ps. R에서 플롯을 그렸을 때 한글이 깨질 수 있습니다.

R에서 Gephi 없이 igraph을 이용하여 군집화 하기

안녕하세요. 외대 철학과 스터디그룹 LOPES의 추선식입니다. 이번에는 오직 R만을 이용하여 와인데이터를 분석하고 군집화 해보겠습니다. 앞서 같은 스터디 그룹인 배서연 학우가 쓴 “와인 구매 데이터를 R로 분석하여 Gephi로 군집화, 시각화 하기“에서 Gephi를 이용해서 군집화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글에서 Gephi 없이 R을 이용해서 와인데이터를 군집화하고 그 결과를 서로 비교해보겠습니다.

준비 작업: 『DATA SMART』의 예제 와인데이터 이용하기

원본 와인데이터는 아래 링크로 가서 chapter2를 클릭하여 자료를 다운받으시고, WineKMC 파일 안의 Matrix시트를 R에서 지정한 디렉토리 폴더에 csv형식으로 내보내 사용하시거나 혹은 chapter10를 클릭하여 자료를 다운 받은 다음 그 안의 WineKMC.csv 파일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Wiley: Data Smart: Using Data Science to Transform Information into Insight – John W. Foreman

R로 와인데이터 분석: (코사인 유사도 행렬 구하기 및 Cut-off 하기)

와인데이터의 군집화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작업은 코사인 유사도 행렬을 만드는 것입니다. 코사인유사도는 각 구매자 간 구매데이터의 유사성에 비중을 둔 거리 계산법으로 이 예제에서는 와인 데이터의 구매 유사성을 토대로 구매자들 간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코사인 유사도는 0과 1 사이의 값을 가지는데 코사인 유사도로 나타난 구매자들 간의 거리는 구매 데이터의 유사성 정도에 따라서 유사성이 강하면 그값이 1에 가까우며 유사성이 약할수록 0에 가까워지게 됩니다. 즉 이것으로 구매 데이터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로 바꾸어 이후 군집화의 초석을 쌓는 것입니다.

다음 작업으로는 컷오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는 이유로는 와인 구매 데이터의 유사성을 통해 고객들 간의 모든 관계를 파악할 수 있지만, 그 관계가 너무 많아 데이터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요하지 않은 관계는 지우고 강한 관계가 있는 데이터만 남기는 과정이 바로 컷오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관계만 남기는 방법으로는 앞선 글애서와 똑같이 유사성이 강한 상위 20%만 남기는 것 입니다.

군집화하기: Igraph 패키지를 이용해서 군집화하기

군집화를 위해서는 Igraph 패키지가 필요합니다. 이 패키지가 기존의 Gephi의 기능인 네트워크 그래프를 다루는 일을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Igraph 패키지는 컷오프 한 와인데이터 구매자들 간의 관계를 보고 군집화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을 이용해 R로 시각화를 해볼 순 있지만, 아직 모듈성 최적화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에 군집 간 구분이 힘들기에 모듈성 최적화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Igraph로 군집화 된 것의 모듈성 최적화를 위해walktrap.community 나 multilevel.community 함수를 사용해야 합니다. 각 함수를 사용해서 군집의 최적화 즉 모듈성을 최적화하게 되면 모듈성은 walktrap.community 방식이 더 극대화되지만 두 방식의 모듈성 값 차이는 미세합니다. 두 가지 방식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알고 싶다면 이 두 기능이 내포된 Igraph 패키지와 각 함수에 대하여 Inside-r 링크에서 직접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R 코드 내용: 다음은 전체과정에 대한 R 코드입니다.

R 코드 설명

먼저 코사인 유사도를 구하는 데 필요한 패키지인 lsa를 다운 받습니다. 그 후 군집화에 사용할 패키지인 Igraph패키지를 다운 받습니다. 이제 와인 데이터를 읽어오고 코사인 유사도 그래프를 만들기 위한 작업(행,렬 변환 과 NA값 변환)을 합니다. 기본 작업이 완료되면 cosine 함수를 이용하여 코사인 유사도를 만들고 for 구문으로 대각선의 값을 0으로 바꿔 줍니다. 코사인 유사도 그래프가 완성되었으면 그것에 대한 컷오프 과정을 진행합니다. 컷오프 과정은 앞서 배서연 학우가 올린 글에서 설명되었기에 넘어가겠습니다.

이제 Igraph 패키지를 사용하게 되는데 가장 처음 할 일은 인접성 행렬 그래프를 만드는 것입니다. 인접성 행렬 그래프는 네트워크 데이터를 나타내는 그래프 중 하나로서 인접성 행렬을 통해 네트워크 데이터가 드러내는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네트워크 데이터를 노드와 에지로 표현한 그래프라 할 수 있습니다.

코드에서 graph.adjacency 함수가 인접 행렬 그래프를 만들어 줍니다. graph.adjacency 함수는 방향성과 가중치에 따라서 인접 행렬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기에 여기서는 가중치는 주지 않고 무방향성(undirected)을 설정해 줍니다.
다음으로 Igraph의 walktrap.community 함수를 사용합니다. 이 함수는 무작위 걸음(random walk)을 통해 그 걸음 길이가 짧을수록 같은 군집으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각 사람 간의 군집이 형성되는데 이것을 membership 함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이 군집화 결과를 as.integer 함수를 통해 정수형 벡터로 바꾸어 줍니다.
남은 과정은 이제 기존의 정보들을 덧붙이는 과정입니다. 이것은 기존 와인에 대한 정보를 붙이고 하나의 데이터 벡터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진행하고 나면 최종 결과인 각 군집별 구매한 와인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과 비교해보기: Gephi 와 두 가지 방식(walktrap,multilevel)의 함수 결과 비교

비교하는 것에 앞서 결과를 추측해보자면 같은 군집화 알고리즘을 사용한다면 군집화의 결과가 같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군집화의 결과를 R로 비교해 보기 위해서는 19번째 코드까지 진행하고 그 이후 20번째 코드부터 다르게 진행합니다. 우선 walktrap.community 함수부터 사용해서 사람과 할당 군집목록을 만듭니다. 다음의 코드를 이용합니다.

winedata.wtc <- walktrap.community(winedata.graph)
membership(winedata.wtc)
walktrap.membership <- print(membership(winedata.wtc))
walktrap.community <- data.frame(walktrap.membership)

위 코드로 walktrap 함수의 구매자 별 군집 목록을 만듭니다. 같은 방식으로 multilevel.community 함수를 적용해 구매자 별 군집 목록을 완성합니다. 다음으로는 맨 위 링크에서 Gephi 로 작업한 파일을 Gephi 내부에서 csv 파일 형식으로 내보냅니다. Gephi에서 파일을 내보내는 방법은 gephi의 Data laboratory 섹션에서 Export table을 클릭하여 내보낼 수 있습니다. csv 형식으로 내보낸 파일을 R에서 읽어옵니다. R에서 csv 파일을 읽는 방법은 read.csv 함수를 사용하면 됩니다. 다음과 같이 gephi <- read.csv("CommunitiesGephi.csv") 사용합니다. R에서 불러온 다음엔 Gephi의 군집데이터를 이름을 토대로 다시 정렬해줍니다. 다음의 코드로 정렬할 수 있습니다.

library(plyr)
arrange(gephi,label)
gephi.community <- arrange(gephi,label)

이제 3개 방식의 군집 목록을 R에서 한 번에 비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3개 방식을 한 번에 보는 방법은 cbind()함수를 사용하여 하나의 목록으로 합칠 수 있습니다.

walktrap.class <- walktrap.community$walktrap.membership
comparison.class <- cbind(gephi.community,walktrap.class)
multilevel.class <- multilevel.community$multilevel.membership
comparison.class <- cbind(comparison.class,multilevel.class)

위의 코드를 통해 하나의 목록으로 만들었다면 arrange() 함수를 통해서 방식별 정렬을 하여 비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arrange(comparison.class,modularity_class) 와 같이 Gephi의 군집을 기준으로 다른 방식과 비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가지 방식의 군집화를 비교해본 결과 처음에는 모듈성이 거의 유사하기에 Gephi와 Igraph의 방식들의 군집화 결과가 서로 같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렬을 통해 비교해본 결과 분명히 다르게 군집화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자료, 같은 모듈성이지만 군집화 방식 도구에 따라 군집의 결과가 다르게 나누어진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 ˂˂법률˃˃과 ˂˂티마이오스˃˃

1.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1-1. 플라톤의 이론으로 전환

플라톤의 초기 후반의 대화편에서 언급된 덕에 대한 주장이 소크라테스의 진짜 주장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 플라톤의 대화편 ˂˂메논˃˃ 과 ˂˂파이돈˃˃에서는 덕에 대한 완전히 다른 주장이 제시된다. 그 주장은 ‘덕이나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은 현세에서는 가르칠 수 없고 오직 더 나은 세상을 상기함으로써 그 지식을 회복할 수 있다.’ 라는 것으로 이 주장을 상기설이라 부를 수 있다. 또한 ˂˂파이돈˃˃에서는 이데아론이 도입되는데 그것은 크기에 대한 절대적 동일성을 경험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을 통해 크기뿐만 아니라 다른 절대적인 관념들도 마찬가지로 경험이 아닌 전생을 통해 얻었던 것으로 주장된다.

즉 ˂˂메논˃˃과 ˂˂파이돈˃˃에서 도입된 이론들(상기설과 이데아론)은 플라톤이 제시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보편적 정의와 우리가 일상적 세계에서 대하는 경험적 실재들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며칠을 묘사하는데 이 부분을 통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하여 언급한다.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이데아론이 동시에 소개되지만 실제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플라톤 자신의 이론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개인의 철학이 사라져가고 플라톤주의로 변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1-2. 소크라테스 죽음 이후 플라톤의 생애

소크라테스의 죽음 당시 플라톤은 20대 후반이었으며 자신의 형제들과 달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삼촌들과 달리 정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40세 때 시칠리아로 가서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아테네로 돌아온 후 아카데메이아(Academy)를 세웠고 그 기관에서는 천문학, 수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을 가르치며 여러 사상가들이 의견을 나누었다. 60세 때 시칠리아를 재방문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이후의 방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80세 때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의 생애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에 생애에 대한 분명한 사실들을 알고 싶다면 그의 저술에 포함되는 편지들을 읽는 것이 최선이다. 이 편지에서는 플라톤이 마지막 20년간 행했던 정치적 이상의 구현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된다.

플라톤의 저술들을 오늘날 50만 단어에 이르는데 그 저술들은 고대 후기 학자들에게 많이 인용되며 수많은 대화편 형식의 저술들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양측의 주장들을 고루 살펴 볼 수 있다는 중요성이 있다. 물론 대화편 형식으로 인하여 어느 주장이 플라톤 본인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인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 살펴봐야한다.

2.이데아론

2-1. 이데아론의 배경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견해는 이데아론인데 많은 대화편들에서 암시적이나 당연시되게 주장된다. 하지만 이데아론에 대한 가장 명확한 언급은 일곱 번째 편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편지에 언급된 이데아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지식을 얻으려면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로 이름, 둘째로 정의, 셋째로 형태가 필요하다. 지식자체는 네 번째 요소이며 또한 우리가 요청해야하는 다섯 번째 요소도 있는데 이는 인식 가능한 동시에 진정으로 실재하는 무엇인가이다. 」

플라톤의 언급한 진정으로 실재하는 무엇이 바로 이데아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4가지 요소 즉 이름, 정의, 형태, 지식 등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다른 저술들에서도 이데아를 지칭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형상’(eide)이라는 표현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플라톤은 이 편지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물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른 저술들에서 명백히 제시된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접하는 원들은 결코 완벽한 원이 아니며 우리가 가진 원의 개념은 불완전(경험을 통한 원의 이해)하여 원 자체 즉 원의 이데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데아는 어떤 개인이 지니는 정신적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정신이 지닌 원의 개념은 완벽한 원에 대한 개념이다.

2-2. 이데아론의 원리

플라톤은 주어의 위치와 술어의 위치에 놓인 단어와 문장을 고찰하여 이데아를 도입한다. 하나의 공통적 술어가 많은 개체들에 대하여 참인 경우에 플라톤은 많은 개체들이 이데아를 모방하거나 혹은 분유한다고 표현하여 공통된 이데아가 있다는 원리를 적용한다. 이데아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플라톤의 주장은 6가지 원리로 표현되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공통성의 원리: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F라면 그 까닭은 이들이 F라는 이데아를 한 가지 요소로 분유하거나 모방하기 때문이다.
  2. 분리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인 모든 것들과 구별된다.
  3. 자기서술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 자체이다.
  4. 순수성의 원리: F의 이데아는 다름 아닌 F일 뿐이다.
  5. 유일성의 원리: 오직 F의 이데아만이 진정으로 참으로 전적으로 F이다.

6, 절대성의 원리: 이데아는 영원히 지속되며 어떤 부분으로 나뉘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 또한 감각을 통해 지각되지 않는다.

공통성의 원리는 플라톤만의 이론은 아니지만 플라톤의 특유한 점으로는 ‘공통적으로 지닌’ 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진지하게 추적하여 이데아의 유일성에 대해 논하였다. 분리의 원리는 이데아와 이데아를 드러내는 개체들 사이에 계층 개념과 연결되며 각각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함을 뜻한다. 자기서술의 원리는 이데아가 개체들에 속성으로 드러나게 되는지 설명해준다. 즉 F의 이데아가 F자체이기에 F가 그러한 속성을 가지게 된다.

순수성의 원리는 F의 이데아가 F의 완벽한 표본으로써 혼합되거나 희석될 수 없음을 뜻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만약 순수성의 원리가 없다면 이데아 간의 계층문제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일성의 원리는 이데아만이 오직 진정으로 존재하고 개체들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있음을 뜻하는데 이는 F의 이데아만이 오직 진정으로 F임을 의미한다. 정통적으로 이데아론에서 중요한 특성은 절대성의 원리인데 여기서는 개체들은 변화하는 낮은 세계에 속하는 반면 이데아는 영원불변에 세계에 속함을 나타낸다. 나아가 모든 이데아 중 선의 이데아가 최고이며 인식 가능한 모든 것에 존재함을 뜻한다.

이데아론의 문제는 각 원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분리의 원리와 공통성의 원리, 자기서술의 원리들을 각각 적용하였을 때 무한 역행이 발생함을 플라톤 자신이 ˂˂파르메니데스˃˃에서 지적하였다.

2-3. 이데아론의 적용과 문제들에 대한 현대적 논의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하여 많은 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적용해 답하는데 대표적인 문제가 보편의 문제로 이는 보편명사의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보편 문제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점에서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보편의 문제에 대한 현대의 논의에는 술어, 집합, 전형, 구체적 보편, 등의 용어들이 나오는 데 이들은 모두 이데아와 유사점을 보인다. 이 개념들 모두 플라톤의 이데아가 지닌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지는 못하며 플라톤의 여섯 가지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평범한 개념들(나침반의 동서남북 같은 것)을 통해 검토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물론 플라톤의 원리 자체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기에 어떠한 완벽한 해석도 존재할 수 없다.

3.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는 이데아론의 세분화된 분야로의 확장이 있지만 그러한 응용보다도 정치 제도에 대한 묘사 때문에 더 유명하다. 이 책의 겉으로 드러난 주제는 정의(正義)이다. ˂˂국가˃˃에서는 정의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려하고 그에 반대하는 도전들이 이어진다. 이러한 도전들에 이어 답한 후 플라톤은 개인의 정의에서 도시국가에서의 정의라는 큰 주제로 나아간다. 이 주제에서 플라톤은 정치적 질서가 필요함을 역설한 후 세 가지 계층으로 구성된 도시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 3가지 계층은 1.수호자 2.군인 3.시민으로 구성되며 수호자가 가장 높은 계층이다. 각 계층은 자신들의 일이 있으며 제한 또한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서 드러내는 이러한 정치체제의 틀은 영혼이 지닌 정의의 본성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플라톤은 ˂˂국가˃˃의 후반부에서 다시 정치 이론으로 돌아오는데 그는 자신의 이상국가가 모든 중요한 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말하고 각 계층이 대표하는 덕이 있음을 말하고 각 계층의 노동 분화는 정의로운 국가를 위해서라 말한다. 이상 국가에 대하여 말하고 나서 플라톤은 덜 이상적인 국가들은 이상에서 멀어지며 5가지의 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된다고 말한다. 1.귀족정치로 지혜로운 자가 통치하는 최선의 정치 체제이다. 이후로 2.명예 지상 정치, 3.과두정치, 4.민주정치, 5.전제 정치이며 각 체제로 갈수록 타락한 형태라 설명한다. 왜냐하면 최선의 정치체제에서 덕목을 하나 씩 상실하며 체제가 변하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지혜, 용기, 절제, 불의가 드러난 모습으로 통치자가 덕목을 읽을 때마다 1->2->3->4->5 로 변한다.

4. ˂˂법률˃˃과 ˂˂티마이오스˃˃

4-1. ˂˂법률˃˃

플라톤은 말년에 이르러 철인통치론을 포기하고 이데아론이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다는 생각을 철회한다. 그는 도시국가의 복지와 관련해서 법률의 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법률˃˃에서 묘사한 마그네시아란 도시국가에서 이러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마그네시아는 ˂˂국가˃˃에서의 이상국가적 특징도 지니고 있는데 지혜롭고 탁월한 능력의 공무원들이 최고 권력을 지닌다는 점이나 여러 가지 법률에서 ˂˂국가˃˃에서의 이상국가적 면모를 찾아 볼 수 있다.

˂˂법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은 중반부에 등장하는 입법제도에 관한 설명이다. 대표적으로는 공무원들의 의무나 법률의 목적을 일반시민이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전문을 반드시 포함하게 하는 제도 등이 있다. ˂˂법률˃˃에서는 성행위에 관한 법률로 플라톤의 성도덕을 이론적인 측면에서 논의한다. 플라톤은 고대에는 드물었던 생각인 임신과 출산이 성행위의 본래 목적이라는 개념에 기초해 성윤리를 펼쳐나간다. ˂˂법률˃˃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10권의 신들의 숭배와 이교에 대한 문제의 언급으로 여기서는 플라톤이 제시하는 종교철학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4-2. ˂˂티마이오스˃˃

˂˂티마이오스˃˃의 저술 시기는 ˂˂법률˃˃과 상당히 겹치는 듯 보이는데 여기서는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 세계란 어떤 신성한 존재가 만들어낸 세계로 논의되며 플라톤의 우주론은 아낙사고라스가 불만족스럽게 남겨두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주요 논점으로 삼는다. ˂˂티마이오스˃˃에서는 우주의 시원과 역사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우주가 어느 한 신성한 존재인 창조자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설명된다. 이러한 설명은 마친 창세기와 유사하지만 플라톤이 생각하는 창조자는 유대-기독교의 전통적 창조주와 다르다. 대표적인 차이점은 플라톤이 생각한 창조자는 세계를 무에서 창조하지 않으며 창조과정에서 그의 자유가 최초의 물질들이 지닌 필연적 속성에 의해 제한된다. 또한 플라톤은 세계의 생명들과 세계규정의 근거를 살아있는 원형들 즉 이데아의 세계에서 찾는다.

플라톤의 우주론은 우주가 오직 하나뿐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고 엠페도클레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영향을 받아 세계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고 각 요소들의 구성하는 원자들의 다른 형태에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또한 창조자가 4 요소를 변환하는 방식에서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 등장하는 제일질료를 예견하는 듯 보인다. 나아가 ˂˂티마이오스˃˃에서는 신들의 구별 및 인간 영혼의 삼분법의 발전, 인간의 육체의 형성과 지각 과정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이런 내용의 ≪티마이오스≫는 다른 대화편들이 고대말기에 사라졌다 르네상스에 다시 등장한 것과는 달리 훗날 수세기동안 꾸준한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다.

현대 양상논리학 (중간탈주)

현대 양상논리학

프레게나 러셀, 화이트헤드 등이 명제논리학이나 술어논리학, 기호논리학 등을 연구할 때 다른 논리학자들은 중세이래로 방치되었던 양상논리학(modal logic)을 연구하였다. 양상논리학은 필연성과 가능성 개념의 논리학인데 현대 양상논리학 연구는 함언(implication)에 대한 이론을 통해 그 개념들에 접근한다. 이러한 연구는 루이스의 저작에서부터 시작된다. 루이스는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고안한 개념인 실질 함언(material implication) 이라는 것과 대비하여 엄밀 함언(strict implication) 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이것만이 진정한 함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주장에 이어 실질 함언 기호가 엄밀 함언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호로 대체된 공리 체계를 새웠는데 이것이 양상논리학의 최초 형식 체계가 되었다. 그러나 엄밀 함언 역시 실질 함언과 마찬가지로 역설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루이스의 양상에 관한 연구는 그자체로서 흥미로웠는데 그는 S1~S5까지의 서로 다른 공리체계를 제시했고 각각이 정합성 있고 독립적임을 증명했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체계는 S4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p이다.

(2).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만일 p라면 q이다]라면 필연 적으로 q이다.)

(3).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필연적으로 p라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러한 S4는 필연성과 가능성의 상호 정의 가능성을 활용한다. 즉 ‘필연적으로는 가능하게 아닌 것이 아닌’ 으로 정의될 수 있고, ‘가능하게는 필연적으로 아닌 것이 아닌’ 으로 정의 될 수 있다.

양상논리학에는 수많은 진술들이 있는데 그 진술들의 진리치에 대하여 논리학자들의 의견일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진술들은 양상 연산자가 반복되는 것들인데 이것들의 예로는 S4나 S5가 있다. 이러한 논란은 논리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종교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신의 실존과 관련한 진술과 S5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양상 기호와 술어논리학의 양화사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은데 ‘필연적인’ 과 ‘가능한’의 상호 정의 가능성은 ‘모든’ 과 ‘약간’의 상호 정의 가능성과 유사하다. 또한 양화 이론의 분배법칙과 유사한 분배법칙이 양상논리학에도 있다. 이러한 유사점에 따라 양화를 양상논리학에 도입하여 양상 기호와 양화사를 함께 사용하면 이중 양화와 유사한 체계가 된다. 양화된 양상논리학에서는 양상 기호와 양화사가 놓인 순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그 순서에 따라 문장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양상 기호가 양화사보다 먼저 나오는 문장은 언어 양상(문장 예시는 책에서) 이라하며 양화사가 양상 기호 앞에 나오는 문장은 존재 양상이라 한다.

양화 이론과 양상논리학이 비슷한 점이 있다하여도 동일성 개념을 통해 보았을 경우 그 차이점 역시 드러나게 된다. 그 차이점은 콰인이 말하길 양상논리학은 양화의 문맥과 달리 지칭 대상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지칭대상의 불투명의 정의는 책 참조) 양상 문맥이 불투명한 경우는 쉽게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행성의 수가 9개 일 때 필연적으로 9는 7보다 크다는 옳지만 필연적으로 행성의 수는 7보다 크다는 옳지 않다. 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불투명 때문에 콰인은 양상논리학을 거부했지만 1970년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양상논리학은 꽤 훌륭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대 양상논리학에서 주요 주제는 필연성을 모든 가능 세계에서 옳은 것으로 정의하고 가능성을 일부 가능 세계에서 옳은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양화와 양상 사이의 유사점을 밝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진리는 모든 가능 세계 중 하나인 현실 세계에서만 진리로 간주되는데 가능 세계의 논의에서는 형이상학적 내용을 전혀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 즉 양상 의미론(양상의미론이 이루어지는 예시는 책을 통해서 봅시다)의 경우 어느 모형이든 적절한 형식적 구조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시민 정부에 관한 로크의 견해

1. 시대적 배경

스피노자가 자신의 저술을 쓴 시기는 영국의 찰스 2세의 재위 기간이었는데 이 시기에 영국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왕권신수설이 화두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정주의자인 필머의 저술인 <<가부장제 또는 왕의 자연적 권력>>가 출판 되었다. 물론 저자인 필머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저술은 로크의 손쉬운 비판 대상이 되었다.

2. 로크의 정치사상

2-1. 자연 상태와 재산권에 대한 견해

로크의 정치적 사상이 담긴 저술은 <<시민 정부에 관한 두 논고>>가 있는데 그는 여기서 홉스와 같이 자연 상태에 대한 고찰을 논의의 시작으로 삼는다. 로크는 필머가 인간 본성에 대하여 잘못 파악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판한다. 그러면서 로크는 자연 상태에 사람들은 우열이 없고 모두 정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합의를 이루어 평온하게 살아간다고 주장한다. 로크는 홉스와 같이 자연 상태에 대한 고찰로 정치적 사상을 시작하지만 자연 상태에 대한 견해는 차이가 존재한다. 로크는 자연 상태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자연법을 알고 있고 이 자연법이 자연권을 부여하여서 상호 간의 전쟁 상태가 아니라 주장한다.

로크의 독창적인 부분은 자연 상태의 재산권에 대한 것으로 그는 자연 상태에서 재산이라는 것을 성립시키지 위한 조건으로 노동을 제시한다. 즉 자신의 노동은 명백히 자신의 것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발상으로 노동과 자연적 재화를 결합하며 노동의 대가와 결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권리는 무제한적이지는 않는데 자신의 소비 한도 내에서만 자신의 권리를 지니게 된다. 즉 자연적 재화에 대한 무자비한 손실을 막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권리로서 얻은 재화는 자신의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데 이는 상속권으로 자연적이며 어떤 성문법보다 앞선다.

이러한 재산권에 대한 로크의 견해는 국가의 형성이유로 이어진다. 로크는 재산권이 어떠한 계약보다 앞서며 존재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소유가 불안정함(자연법을 알지만 중앙 권력의 부재로 재산 침해에 대한 방책이 없음)을 파악한다. 이에 따라 재산의 소유 안정화와 재산권 침해에 대한 공적인 처벌권을 위하여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즉 국가는 사람들이 자연적 자유를 일부 국가에 양도하기로 합의하며 상호 간의 안정을 도모하여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한다.

2-2. 국가의 역할과 명시적 동의와 암묵적 동의의 구분

국가의 역할에는 개인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방지와 자연법 준수에 대한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 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다. 그 두 가지는 토지의 경계를 결정하는 것과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역할을 국가가 함으로써 개인의 재산은 필요이상으로 축적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이익 증가로 이루어질 수 있다.

로크는 법의 제정 권리와 법의 집행 권리를 시민들의 공공선을 위한 입법부와 행정부로 양도한다고 보았다. 물론 양도함에 따라 각각의 형태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서로 분리되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행정부가 사형권이 있다면 문제가 발생하는데 어느 누구도 자살할 권리가 없는데 타인을 죽일 권리 또한 없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필머는 타인에 대한 처형권이 신에게서 온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로크는 그러한 사회 계약이 이루어진 전례가 없다는 것으로 반박을 한다.

로크의 주요한 점은 명시적 동의와 암묵적 동의를 구별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정부라도 각 세대의 시민들의 지속적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고 이런 동의는 명시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사회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모두가 암묵적 동의를 한다고 구분한다. 물론 야인의 경우 사회적 이익을 얻을 필요가 없기에 이러한 암묵적 동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2-3. 로크와 홉스의 견해차이 및 로크의 정치론 평가

로크의 정치론과 홉스의 사회계약설과의 차이점은 통치자의 계약 참여 여부이다. 로크의 경우 통치자 또한 사회계약에 참여함으로서 공동체의 신뢰를 받는 관리자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신뢰를 저버리게 될 경우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변경이나 제거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제정한 법률은 3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법률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한다. 둘째 법률은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제정되어야 한다. 셋째 법률은 국민들의 동의가 없이는 어떤 세금도 부과해서는 안 된다.

로크의 정체 체계는 독창적이지도 않고 일관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로크는 자연법 이론과 국가들 사이의 자발적 연합 이론을 원활하진 않지만 연결하였고 이후 큰 영향을 주었다.

스피노자의 정치적 결정론

스피노자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낸 저술은 <<신학정치론>>이 있는데 이는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을 지닌다. 유사한 내용을 지니게 된 이유는 두 철학자 모두 결정론자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같은 견해를 가지고 정치적 논의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자연법 혹은 자연권에 대해 “각 개인이 다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오직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연의 지배적인 법칙이며 권리” 라 설명하면서 이러한 자연법 혹은 자연권은 모든 것에 대하여 해당한다고 말하였다.

스피노자는 개인의 자연권이 이성이 아닌 욕구와 능력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인간은 이성을 따라서 사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증오나 원한 같은 감정은 자연 상태이지만 이것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병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하고 타인과 합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사람 간의 합의는 그 합의의 유용성에 한정되어서만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유용성에 따라 언제든 합의가 깨질 가능성이 있기에 각 개인이 자연권을 양도한 정치 체제에서 계약위반 했을 때 더 큰 불이익이 있을 것을 뒷받침 해주어야한다.

시민사회에서 통치자의 권리는 개인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만 효력이 있다. 이로 인하여 개인의 권리가 국가로의 완전한 양도가 불가능 해지는데 이점에서 홉스와 차이를 보인다. 즉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 의하여 내적 정서를 강요받을 수 없고 자유로운 추론이나 판달 할 자연권을 자진하여 양도하지 않으며 강요당할 수 없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민주정부 아래에서는 모두가(통치자조차도) 개인의 자연권을 사회에 양도하기에 평등하다. 또한 스피노자는 국가에 복종해야하는 이유를 홉스의 견해에서 나아가 국가가 자신의 완전한 자기실현의 삶을 도와준다는 측면에서도 설명하였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국가 이론을 히브리인들의 역사와 연관하여 고찰하였다. 그 결과 그는 몇 가지 구체적 결론을 도출한다. 첫째 성직자가 정치적 권력을 쥐면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둘째 훌륭한 정부는 종교적 신앙과 철학 사상의 자유를 허용한다. 셋째 모든 사람은 자신의 종교나 신념의 자유가 있다. 넷째 군주정이 확립되고 난 이후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실재론과 관념론, 관념론의 인식론

실재론 대 관념론

칸트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아프리오리(apriori)한 요소들에 대한 설명은 획기적이지만 인식론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지각한 것이 만약 대부분이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실재하는 외부세계에 관한 어떤 지식이라도 얻을 수 있는가? 란 내용이다. 이 문제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시간과 공간이 경험상 실재적이지만 선험적으로 관념이라 말하면서부터 대두되었는데 시공간에 대하여 칸트는 주관이 없다면 시공간은 없어지며 현상으로서 시공간은 그자체로 현존하지 못하여 오직 우리 안에서만 현존한다고 말 하였다.

시공간을 주관적으로 파악한다면 단순한 현상 너머의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해 칸트는 경험에서 모든 인간에서 속할 수 있는 바와 한 가지 관점에만 속하는 바를 구분해야 한다고 답한다. 또한 칸트는 실재와 현상 사이의 구별은 단순한 경험적인 것일 뿐이라 말하며 첨언한다. 이런 점들로 인하여 칸트를 관념론자로 여기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칸트 이전의 관념론자들과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전의 관념론자인 데카르트나 버클리와 견해를 같이하기 보다는 외부 경험을 전제함으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칸트는 우리의 내부 경험은 오직 외부 경험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변화의 지각은 영속적인 것에 대한 지각을 포함하는 일이라 하며 이 영속적인 것이 자신이 아니기에 경험을 통합하는 주관이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내부 주관을 경험으로 판단하기위하여 외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철학자들이 현상계와 본체계를 구별한다고 주장하지만 단지 현상만이 있는 세계 혹은 감각적 자료의 세계만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며 본체계 역시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에 관한 언급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에 관한 현상이라 말할 수밖에 없기에 어떤 것을 상정해야만 한다. 칸트에 따르자면 이 어떤 것이 선험적 대상이며 이것은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만을 어떤 것의 속성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선험적 대상에 대하여는 어떠한 범주 구분에도 포함되지 않기에 본체계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이해해야한다고 말한다. 칸트의 이런 주장들은 그가 스스로를 선험적 관념론자로 여기면서 동시에 경험적 수준에서 실재론자로 여기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버클리나 데카르트의 견해는 칸트의 견해와 유사성이 덜한데 그의 견해와 좀 더 유사한 입장은 아퀴나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감각과 지성 사이의 협력을 통해서만 지식이 성립한다는 점이다. 즉 경험과 개념을 동시에 파악해야만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퀴나스와 칸트 모두 이러한 주장에 따라 관념론자라 볼 수 도 있지만 아퀴나스의 경우 관념은 정신의 보편으로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사고의 대상이 관념에 대한 것은 아니기에 자연적 대상의 실재를 인정하는 면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칸트의 경우 물자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 버클리와 다른 견해를 지니지만 물자체에 대한 그 어떠한 접근도 불가능하며 언급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저술에서 드러난 물자체는 실제로 현상의 본체로서 어떤 것이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인 듯 보인다.

관념론의 인식론

칸트의 체계는 그의 사후 바로 비판을 받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피히테는 <<순수이성비판>>에 근본적 모순이 내재한다고 비판했다. 그 비판이란 경험이 물자체에서 야기된다는 주장과 원인의 개념이 오직 현상의 영역에서만 적용된다는 주장이 서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런 모순이 있기에 피히테는 이것을 피하기 위해 경험을 정신의 창조물이라 여기는 관념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방법의 일종이라 하였다. 그러나 피히테는 개별적 자아의 주관성에서 세계를 끌어낼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였기에 독일의 관념론은 헤겔에 의해 더 발전되었다. 헤겔은 피히테와 달리 정신의 창조 활동을 세계를 포괄하는 영역까지 끌어올렸으며 이외에도 지식이나 지각의 본성에 대한 여러 가지 통찰을 제시한다.

헤겔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의식 -> 자기의식 -> 이성 이라는 위계질서로 파악하며 그 종류를 구분한다. 이 중 의식은 감각적 의식 지각 오성으로 또 한 번 나누어진다. 감각적 의식은 감각적 자료의 수용 단계로 헤겔 전후의 철학자들에게 가장 확고한 형태의 지식이라 여겨졌지만 헤겔에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헤겔은 감각적 자료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성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하여 완전한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감각자료의 규정을 위해선 보편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지각의 단계에서 지식이 될 수 있지만 그 지식은 불완전한 환영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다양한 감각 경험을 하나의 실체에 속한 속성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비감각적 범주에 호소하여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오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오성의 영역에서 의식을 구성하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되며 자기의식의 단계로 넘어간다. 의식과 자기의식의 단계는 이후 상위의 단계인 이성으로 발전하는데 이성은 자연과 정신 모두를 일종의 무한 정신이라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인식론과 형이상학이 교차 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무한 정신이라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이성은 살아있는 정신의 하나로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1. 시대적 배경

아담 스미스와 리드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로 알려진 사상적 흐름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었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진정한 원류에 대해서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프랑스라 여기고 있었다. 계몽주의는 18세기에 일어났으며 이 시기의 유럽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무지와 미신으로 어두워진 세계에 대하여 이성의 빛을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프랑스 계몽주의는 1750년~1760년대에 정점을 이루었으며 <<백과전서, 또는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건>>이 출판되어 계몽주의의 활성화를 도왔다.

2. 계몽주의 사상가들

<<백과전서, 또는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건>>은 디드로와 달랑베르에 의해 편집되었지만 이 책의 출판에는 많은 수의 프랑스 사상가들의 토대를 쌓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러한 프랑스 사상가들에는 벨과 몽테스키외, 볼테르, <<인간기계론>>의 라메트리, 무신론자 바크, 결정론을 지지한 엘베시우스 등이 있다. 물론 이중 1706년에 죽은 벨은 <<백과전서>>에 직접적인 집필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벨은 <<역사와 비판 사전>>이라는 저술을 출판하였으며 이 저술에서 그는 성서와 역사의 탐구로 자연신학과 계시신학에 모순점과 부조화에 대하여 밝혔다. 그의 도덕 사상에 대한 견해도한 드러나는데 오직 관용을 통해서만 종교적 신앙이 드러나며 윤리적 가르침과 종교적 교훈이 무관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벨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반박을 하였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라이프니츠가 있다. 그럼에도 그(벨)의 종교적 권위에 대한 부정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계몽주의 사상가 중 몽테스키외는 계몽주의의 긍정적인 요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법의 정신>>이란 저술을 출판했으며 이 저술에서 역사적 사회학적 지식에 기초하여 국가의 본질에 관한 이론을 구성했다. 그는 영국에 정치 체제에 대하여 칭찬했으며 이러한 영국에 대한 열정은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도 이어졌다.

볼테르는 몽테스키외의 영국에 대한 열정이 이어진 계몽주의 철학자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자신의 최초 철학 저술인 <<철학 서간>>에서 영국의 정치 제도와 교회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칭찬하였고 나아가 영국의 관용적 태도를 진심으로 칭찬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저술에서 영국의 철학자인 로크에 대해서도 근대 초기의 낭만주의적 공상에서 벗어나 영혼을 설명한 최초의 철학자라 평했다. 게다가 <<백과전서>>를 만들려는 생각은 영국의 체임버스라는 인물이 출판한 <<백과사전 또는 예술과 과학에 대한 보편적인 사전>>에 영향을 받았다.

<<백과전서>>의 두 편집자 중 하나인 달랑베르는 수학자로서 유체 역학을 다룬 독창적 저술을 남겼으며 산술학과 기하학의 확실성과 정확성을 모든 학문에 확산하려 노력하였다. 그는 하나의 통일 과학이라는 이상을 제시한 초기 인물로 <<백과전서>> 서문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디드로는 세계 안에 신의 설계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드러낸 <<맹인에 관한 편지>>라는 저술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감옥에서 지내었다.

이 두 사람은 과학적 진보를 피할 수 없다는 믿음, 기독교가 인간의 삶 향상에 큰 방해물이 된다는 생각, 인간 본성에 대한 유물론적 입장을 지지 하였다.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는 <<백과전서>>의 다른 집필진들도 동의하였다.

3.계몽주의 철학자들에 대한 평가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모두 반성직주의자였지만 모두 무신론자는 아니었는데 대표적으로 볼테르가 있다. 볼테르는 자신의 저술인 <<철학 사전>>에서 무신론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내는데 대표적인 대목으로는 “만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을 발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덕 법칙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가 있다. 그러나 그는 세계를 자유롭게 창조한 신의 존재는 믿지 않으며 세계는 신의 현존이 낳은 필연적이고 영원한 결과라 설명한다. 볼테르와 같이 이러한 유형의 신을 믿는 이들을 ‘이신론자’라 하였다.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프랑스 혁명의 선구자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반드시 급진적이거나 민주적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은 영국의 명예혁명(1688)에 등장한 개념과 유사하며 이들이 가장 중요시한 자유는 표현의 자유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국에서 정부의 권력남용에 대하여 저항하였지만 원리상의 귀족정치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았으며 어떤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를 요구하지 않았고 일반인의 권리 획득에 대하여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다.

스미스와 리드

스미스

아담 스미스는 철학사보다 경제학사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는 논리학과 도덕철학의 교수였다. 그는 <<도덕감정론>>이란 책을 출판 했고 이 책에서 흄의 공감에 관한 견해를 발전시켜 공감과 도덕의 관계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제시하였다.

스미스는 공감의 영역을 확장하여 감정을 공유하는 경우에도 공감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는 공감은 도덕 판단을 산출하는 역할을 하기에 동기가 중요하며 효용은 도덕의 궁극적 기준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도덕 판단이 본질상 사회적 구성물로 여겨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과 거리가 있지 않으면 자신의 동기와 정서에 대하여 어떤 판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나아가 그는 관망자로서의 자신과 행위자로서의 자신으로 구분해야함을 주장한다. 관망자로서의 자신은 나 자신을 그의 상황에 놓고 그의 특수한 관점에서 내 행위가 어떻게 보일지 고려하여 나의 행위를 낳은 정서를 밝히려 해야 한다는 것이다. 행위자로서의 자신은 진정으로 자신이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서 그의 행위에 대하여 나는 관망자의 관점 아래서 어떤 의견을 형성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 두 가지 개념을 통하여 스미스는 공평한 관망자라는 관점을 윤리학에 도입하였고 이후 많은 도덕철학자들의 저술에서 등장하였다.

리드

리드는 스미스에 뒤를 이어 도덕철학의 교수를 맡은 사람으로 흄을 비롯한 경험론적 전통 주의 전체에 대한 최초의 비판자이다. 리드는 흄의 논고들에 대항한 <<상식의 원리에 기초한 인간 정신 탐구>>란 저술을 출판한 뒤 인간의 지적 능력과 행위 능력을 다룬 두 편의 논문도 출판하였다.

그는 영국의 경험론자들과 대륙의 데카르트주의자들이 받아들인 관념의 체계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비판을 시작하였다. 그는 데카르트와 로크가 범한 기본적 오류의 원인이 관념이란 단어의 애매함 때문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는 일상어로서 관념은 정신의 작용을 의미 하지만 철학자들은 이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한 점을 지적하였다. 그 다른 의미의 관념은 사고나 개념이라는 정신의 작용이 아니라 어떤 사고 대상을 지시한다는 일종의 상으로 생각된다. 그는 이러한 철학적 의미의 관념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며 우리의 지식을 구성하는 역할은 개념이 아니라 명제라 하였다.

그는 단순한 파악을 자연적이고 원초적인 판단을 분해하고 분석함으로서 얻어진다고 보았다. 여기서 자연적이고 원초적인 판단은 정신이 지니는 최초의 내용으로 리드가 부르는 ‘인류의 상식’에 해당하는 것을 구성한다. 리드 이전의 철학자들과 달리 상식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추론에 의해서 얻어지지 않는 원리들의 집합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리드는 이성이라는 높은 수준의 능력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상식은 신이 부여한 보편적 산물이라 하였다.

리드는 우리가 의식적 사고를 하려면 정신이란 주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존하는 무엇이든지 그것의 원인이 있어야한다는 원리를 재확인한다. 이와 동시에 철학자들이 일반인의 대상의 현존에 대한 믿음을 경멸하는 이유가 철학자들이 믿음의 의미를 바꾸었기 때문이라 지적하며 상식적 단어의 의미를 바꾸려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한다.

리드는 ‘상식과 철학 사이의 불공평한 경쟁에서 철학은 항상 불명예와 손실을 뒤집어 쓴 채 떨어져 나가고 말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을 과학기술에 무지한 일반인의 언급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리드에게서 일반인의 결정 영역은 단어의 의미부분이며 상식은 다른 철학자들이 이성이나 직관으로 여긴 자명한 원리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리드는 과학에 독창적 기여를 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발전을 예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실재론이 경험론자나 합리론자들의 철학과 같은 정도로 과학의 추구와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이려 했다.

말브랑슈

말브랑슈

1. 시대적 배경 및 생애

1-1. 말브랑슈는 17세기 초의 인물로 루이 14세의 통치 시기 하에 태어나고 활동하였다.  그는 20대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에 데카르트의 저술 <<인간론>>을 접하였는데 이후 그는 가장 열정적인 데카르트 추종자가 되어 명석 판명한 관념 추구에 평생을 힘썼다.  그가 데카르트를 열성적으로 추종했다는 것은 그의 전기 작가의 글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너무나 강력한 심장의 고동을 멈추기 위하여 책을 계속 읽지 못하고 자주 쉴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17세기 중반쯤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저술로 평가되는 <<진리의 탐구>>를 저술하였고 이어 자신의 사상적 체계를 요약한 <<형이상학에 관한 대화>>를 출판했다. 이외의 저술들은 대부분의 내용이 신학적 논쟁에 관한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자연 및 은총론>>이 있다. 이 책은 1690년 금서 목록에도 올랐다. 그는 말년에 로크 사후에 출판된 대화체의 저술에서 자신이 공격대상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2. 사상

2-1. 그는 자신의 사상적 내용과 저술에 사용한 단어들의 정의는 데카르트와 동일했는데 예를 들면 상상력, 지성, 의지 등이 있다. 하지만 새로이 추가한 내용은 관념들의 연합을 두뇌 안 섬유 조직의 연결망으로 설명한 것이다.  즉 높은 곳이라는 관념과 죽음에 대한 관념은 서로의 두뇌 섬유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연결망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거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2-2. 말브랑슈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받아들이는데 데카르트의 사상 중 취약한 부분인 정신과 육체사이의 연관성과 관계에 대한 부분(송과선과 같은 개념으로 설명한 부분)에 대하여 개선을 하려 했다. 그는 정신이 순수한 사고이고 육체가 순수한 연장성이면 상호 간 작용이 불가능 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하여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육체에 작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육체의 작동 원리를 인간이 알지 못하기에 의지의 육체에 대한 작용이 허구라 설명한다. 그는 이어서 육체의 작용을 하는 것은 신에 의한 것이라 설명한다. 즉 신이 인간의 모든 행동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육체의 작용은 나의 의지의 작용과 함께 육체가 움직이기를 신이 원한 것이라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이론은 의지의 작용과 육체의 작용이 동시에 일어날 기회를 신이 제공하는 것이라 하여 기회원인론이라 명명할 수 있다. 이러한 신이 원인이 되는 것은 정신과 물체의 작용뿐만 아니라 물체와 물체 사이의 관계에서도 성립한다.

2-3. 정신이 물체에 작용하지 못하면 그 역은 성립하는가? 의 문제에서 말브랑슈는 관념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들을 거부하면서 새로이 답을 한다. 그에 답은 관념이 신들에 의하여 생겨나며 오직 신만이 우리의 지성에 인과적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모든 것을 신안에서 파악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그는 신을 정신이 살아가는 환경과 같은 배경으로 보았다. 이러한 주장들은 로크의 반발을 샀다. 또한 그는 신의 정신 안에 있는 관념의 관조로 지식을 얻는다는 주장과는 달리 우리의 지식이 신의 직접적 조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새로이 주장한다. 즉 신 안의 연장성의 순수한 관념은 지성을 통해서만 파악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연장성의 관조가 물체에 대한 우리의 파악을 어떻게 이루는가에 대해서 그는 연장성의 원형을 파악함과 동시에 데카르트의 자연학의 모든 법칙을 함께 인식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인식 가능한 법칙이 그 역할을 하려면 두 조건을 전제하는데 단순한 법칙과 일반적인 법칙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단순한 운동 법칙 두 가지로 모든 현상을 설명 가능하며 그 운동 법칙 두 가지는 운동 중인 물체는 직선 방향으로 계속 운동한다는 것과 물체 간의 충돌 시에 크기에 비례하여 각각의 물체에 분배된다는 것이다.

2-4. 단순한 법칙과 일반적 법칙의 존재함에 대한 말브랑슈의 믿음은 나 이외의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와 신의 창조물중 악이 존재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문제도 해결한다. 불완전한 세계와 악이나 외부 사물에 대한 것에 대한 해답으로는 신이 단순함의 법칙과 일반 법칙을 통하여 현재의 세계를 만들었고 이러한 법칙들을 가지고 더욱 완전한 세계를 창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은 더 완전한 세계를 만들 능력을 가지지만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시공간적으로 일반적인 법칙으로 단순한 법칙과 일반적 법칙을 수정해야 하는데 이는 신의 권위가 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더 완전한 세계에 대한 생성이 불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의 신학자들의 분노를 불렀으며 기적의 발생에 대한 성서의 설명과 양립 불가능한 주장이라 반박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