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서양철학사

#소피스트

#소피스트

4-1. 데모크리스토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미 그와 고향이 같은, 압데라 출신의 젊은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등장하였는데 프로타고라스는 새로운 철학자 계층인 소피스트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소피스트는 원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말하자면 순회 교사들이었다. 설령 이들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철학을 넘어서 더욱 폭넓고 다양한 영역의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기관이나 시설을 세우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이들은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대가를 받았으므로 이들을 최초의 직업적인 철학자라고 불러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소피스트 중에 가장 다재다능한 인물이엇던 엘리스 출신의 히피아스는 수학, 천문, 음악, 역사, 문학, 신화 등에 모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옷과 신발을 만드는 실용적인 기술까지도 겸비하였다고 전한다. 또 다른 소피스트들은 수학과 역사, 지리 등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다. 또한 이들 모두는 뛰어난 수사학자였다. 소피스트들은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주로 아테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는데 당시 아테네에는 법정에서 변론을 펴거나 정치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이 많았고, 이들은 교육과 지도를 받는 대가로 소피스트에게 상당한 액수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였다.

4-2. 소피스트들은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웅변을 통한 설득의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이들은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을 썼다. 이들은 기본 문법으로부터 출발하엿다. 프로타고라스는 명사의 성 및 동사의 시제와 법을 처음으로 구별하였다. 이들은 계속해서 논증의 기법을 열거하고 자기 옹호를 위한 요령을 개발하였다. 애매한 문헌들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연설을 평가하면서 이들은 최초의 문학비평가로도 활동하엿다. 또한 이들은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와 공연을 하기도 하고 논쟁을 주고받는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교육을 다른 한편으로는 여흥을 위한 것이었다. 종합해 보면 이들은 현대사회의 교사, 상담역, 변호사, 홍보 전문가, 대중매체의 유명인사 등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4-3. 프로타고라스는 압데라의 대사 자격으로 아테네를 처음 방문하였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환영받았다고 전해지며 그 후 몇 차례 더 아테네를 방문하였다. 그는 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큰 소리로 읽었는데 그 첫머리는 오래토록 기억되어 오늘날까지 전한다. ‘신들에 관하여, 나는 그들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또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에 관한 지식에 이른느 길에는 많은 방해물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해물로는 주제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 그리고 인간의 삶이 너무 짧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상대주의적인 인식론을 요약하여 표현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후에 상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4-4. 프로타고라스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어떤 측면에 대해서도 논증을 펼칠 준비를 갖추었던 듯이 보인다. 사실 그는 자신은 항상 나쁜 논증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엿다. 어쩌면 이는 그저 그가 논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잘 가르쳐 소송 등에 대비한 최선의 준비를 갖추어 줄 수 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비판자들은 이와는 전혀 달리 그가 나쁜 논증을 좋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고 해석한다. 프로타고라스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그가 교육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에우알토스를 고소한 이야기를 즐겨 언급한다. 에우알토스는 프로타고라스의 가르침을 받은 후 재판에 나가 자신이 이기면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그는 아직 자신이 단 한번도 재판에서 이기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대가의 지불을 거절하였다. 프로타고라스는 대가를 지불하라고 그를 고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말을 잘 듣게. 만일 이 소송에서 내가 이기면 자네는 재판의 판결에 따라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네. 만일 자네가 이기더라도 여전히 자네는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네. 왜냐하면 자네는 재판에서 이긴 셈이 되기 때문이지’.

4-5. 또 다른 소피스트 포르디코스는 에게 해의 섬 케오스 출신인데 프로타고라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도시국가의 공적인 임무를 맡아 아테네로 왔다. 그는 언어학자였는데 문법보다는 단어의 의미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그를 최초의 사전 편찬자로 여길 수 있을 듯하다. 그가 시도한 몇몇 구별은 후에 큰 철학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4-6. 프로디코스는 덕과 악덕을 두 여성으로 의인화한 후 이 둘 중 누구를 선택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젊은 헤라클레스를 다룬 낭만적이고 도덕적인 우화의 저자로 여겨진다. 또한 그는 종교의 근원에 관한 이론도 제시하였다.

4-7. 시칠레아의 레온타니 출신인 고르기아스는 프로타고라스에 뒤이은 대사 출신의 소피스트이다. 그는 설득력 잇는 웅변가엿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수사학자로서 연설에서 사용되는 서로 다른 수사법, 예를 들면 대조법이나 수사를 위한 질문법 등을 분류하기도 하엿다. 그의 문체와 연설법은 그의 생전에는 크게 칭찬받았지만 후에는 지나치게 미사여구를 즐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저술들 중 철학적 관심을 그는 두 편의 짧은 글이 오늘날까지 전한다.

4-8. 첫 번째 글은 트로이아의 헬레네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그녀를 옹호하는 수사학적 훈련을 다룬 것인데, 여기서 고르기아스는 헬레네가 파리스와 함께 달아남으로써 트로이아 전쟁의 불씨를 제공하였다는 점을 들어 그녀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바를 행했을 뿐이다. 그녀가 그렇게 한 까닭은 변덕스러운 운명에, 즉 신들의 결정이나 필연적인 섭리에 따랐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폭력에 의하여 유괴되었거나, 감언이설에 설득되었거나 또는 사랑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말은 실재하거나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말은 신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만일 헬레네가 사랑에 빠졌다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사랑은 우리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신과 같은 것 또는 우리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정신적 질병이기 때문이다. 이 짧고 재치 있는 언급이 바로 자유와 결정론, 불가항력, 외부의 자극, 억누를 수 없는 충동 등을 둘러싼 다양한 철학적 논의의 출발점을 이룬다.

4-9. 고르기아스의 저술 에는 세 가지 회의적인 결론에 이른느 논증이 등장한다. 이 세가지 결론은 첫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둘째 무언가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으며, 셋째 무언가를 인식하더라도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된 일련의 논증은 두 경로를 통해서 후세에 전해지는데 이 중 하나는 위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저술인 이며 다른 하나는 섹스토스이다.

4-10. 첫 번째 논증은 ‘존재한다’는 그리스어 동사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는 특징을 다소 악용한 듯하다. 여기서 이 논증을 상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후에 6장에서 이 논증에는 결정적인 모호함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이려 한다. 두 번째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만일 사고의 대상들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오직 존재하는 것만이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고의 대상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고의 대상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사고하는 모든 것이 존재해야만 한다. 세 논증 중 가장 그럴듯한 세 번째 논증은 개인들 각각의 감각이 자신만이 갖는 사적인 것인데, 우리가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바는 경험이 아니라 단지 말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4-11. 이 유명한 소피스트가 자신의 궁색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도입한 논증들은 사실 궤변에 가까우며, 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궤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진단하기보다 이를 바로 거부하는 일이 손쉬울지 모르지만, 궤변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을 발견하기란 여전히 무척 어렵다. 첫 번째 궤변은 플라톤이 적절하게도 라고 이름 붙인 대화편에서 본질적으로 해소된다. 두 변째 궤변은 가끔 플라톤에서도 발견되는 논증적 오류를 포함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모든 A가 B는 아니다’가 ‘어떤 B도 A가 아니다’를 함축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후의 학자들에게 명확히 제시하였다. 세 번째 논증에서 등장한느 경험의 개인성 문제는 20세기에 이르러 비트겐슈타인의 저술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결정적으로 해명되었다.

4-12. 프로타고라스와 히피아스, 프로디코스, 고르기아스 외에도 이름과 명성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또 다른 소피스트들이 있다. 힘이 곧 옳음이라는 주장의 강력한 옹호자인 칼리클레스, 정의란 권력을 쥔 자들의 자기이익이라고 폭로하였던 트라시마코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상대방에게 당신의 아버지는 개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려했던 한 쌍의 궤변가 에우티데모스와 디오니시도로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비롯하여 앞에서 살펴보앗던 더욱 유명한 소피스트들 모두가 주로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로 우리에게 알려진다.

4-13. 어쨌든 이제 소피스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소크라테스를 살펴보려 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견해에 따르면 가장 위대한 소피스트이기도 하고, 다른 견해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궤변도 단호히 거부하고 그 반대편에 섬으로써 참된 철학자의 전형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원자론자들

#원자론자들

3-1. 소크라테스 이전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가장 두드러지게 현대 과학을 예견하게 한 인물로 밀레토스 출신의 레우키포스와 압데라 출신의 데모크리토스를 들 수 있다. 이들의 이름은 마치 무척 닮은 두 사람을 지칭하는 듯이 항상 함께 언급되므로 둘이 함께 원자론을 처음 제시하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레우키포스에 대해서는 데모크리토스의 스승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 우리가 원자론에 대하여 아는 지식은 거의 모두 데모크리토스가 남긴 저술에 의존한다.

3-2. 데모크리토스는 초기의 중요 철학자들 중 그리스 본토에서 태어난 최초의 인물이다.

3-3. 데모크리토스의 기본 입장은 물체를 무한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이른 논증 과정을 현재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어떤 종류의 물체라도 한 조각 잘라내어 다시 그것을 현재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으리라고 추측한다. 어떤 종류의 물체라도 한 조각을 잘라 내어 다시 그것을 가능한 한 작게 잘라 나누어 보자. 그것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작은 조각이 되면 이 일을 멈출 수밖에 없다. 물체를 무한히 나눌 수 있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하려면 이렇게 끝까지 나눈 후에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를 한번 생각해 보자. 만일 무한한 수의 부분들 각각이 어떤 크기도 지닌다면 부분들은 다시 나뉠 수 있어야만 하는데, 이는 이미 끝까지 나누었다는 가정과 모순을 일으킨다. 반면에 만일 각각의 부분들이 어떤 크기도 지니지 않는다면 이들을 아무리 더한다 할지라도 어떤 분량에도 도달할 수 없다. 영은 무한히 더하더라도 여전히 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물체를 이렇게 나누는 일에는 어떤 한계가 있으며, 가능한 한 작게 나뉜 부분들도 반드시 크기와 형태를 지님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데모크리토스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이 작은 물체를 바로 ‘원자’라고 불렀다.

3-4.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은 너무 작아서 감각을 통해서는 인식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원자들의 수는 무한하며, 무한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지만 원자들 자체는 영원히 존재한다. 엘레아학파와는 달리 데모크리토스는 진공을 허용하더라도 아무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진공은 존재하며, 이 무한한 텅 빈 공간에서 원자들은 마치 어두운 방에 빛줄기가 비칠 때 보이는 먼지처럼 끊임없이 운동한다. 원자들은 서로 다른 형태를 보인다. 원자들은 형태가 서로 다를 수도 있고, 결합의 순서가 또는 위치가 다를 수도 있다. 원자들은 끊임없이 운동하면서 결합하기도 한다.

3-5. 아낙사고라스와 마찬가지로 데모크리토스도 다수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크기가 다른 무수히 많은 세계들이 존재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오직 원자와 빈 공간, 둘만이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물이나 불, 식물이나 인간으로 인식하는 대상들 모두는 빈 공간에서 서로 결합된 원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파악하는 성질들은 실재하지 않으며, 이들은 단지 관습의 결과일 뿐이다.

3-6. 데모크리토스는 우리가 지각하는 성질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종류의 원자와 그 배열로부터 생겨나는지를 상세히 설명한다. 예를 들면 매운 맛은 작고, 날카롭고, 모나고, 표면에 굴곡이 있는 원자들로부터, 단 맛은 크고, 둥글고, 부드러운 원자들로부터 생긴다.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원자론에 의해서 밝혀지는 지식에 비하면 단지 어둠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의 여러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데모크리토스는 체계적인 인식론을 발전시켰다.

3-7. 데모크리토스는 자연학뿐만 아니라 윤리학에 대해서도 많은 글을 썼다. 많은 내용이 격언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하는데 이 중 몇몇은 일상에서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아래의 8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그가 남긴 언급들을 주의 깊게 검토해 보면 그가 체계적인 도덕 이론을 전개한 최초의 사상가 중 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아낙사고라스

#아낙사고라스

2-1. 엠페도클레스가 다윈의 선구자로서 그 이름을 오늘날까지 전한다면 그와 같은 시대 인물은 아낙사고라스는 자주 최근에 유행하는 우주 대폭발 이론의 지적인 선구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2-2. 우주의 기원에 관한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함께 있었고, 수적으로 무한히 많은 동시에 무한히 작았다. 왜냐하면 작다는 것은 또한 한정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함께 있었으므로 그들 중 어떤 것도 작음으로 인하여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무한한 공기와 에테르의 아래에 놓여 그들의 지배를 받았다. 이런 원시 상태의 무한정한 것들이 그들을 둘러싼 에테르와 공기에서 벗어나 회전하기 시작하는데 이로부터 별들과 해, 달이 형성된다. 이 회전을 통하여 희박한 것으로부터 농후한 것이, 차가운 것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젖은 것으로부터 마른 것이, 어두운 것으로부터 밝은 것이 떨어져 나온다.

2-3. 아낙사고라스는 우주의 팽창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으며 미래에도 계속되리라고 주장한다. 어쩌면 우주는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 어떤 세계를 이미 만들어 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다른 세계에 관하여 아낙사고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혼이 부여된 다른 동물들도 형성되었다. 이런 일이 오직 우리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어디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이들이 모두 분리의 과정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아낙사고라스는 한참 후에 브루노가 내세웠으며, 오늘날 상당히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주장, 즉 우리가 사는 우주는 단지 수많은 우주들 중 하나에 불과하며 우리의 우주와 마찬가지로 다른 우주들에도 얼마든지 지적인 존재들이 살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최초로 제시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2-4. 아낙사고라스에 따르면 우주의 전개를 이끄는 운동은 지성의 작용이다. ‘모든 것이 함께 있었는데, 지성이 등장하여 여기에 질서를 부여하였다’. 지성이 물체를 확고하게 지배한다는 이런 주장은 당시 사람들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아낙사고라스를 지성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2-5. 플라톤의 대화편 에서 소크라테스는 죽기 전 마지막 날 감옥에서 초기 철학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자연과학의 영역에 적용되는 기계론적 설명에 대하여 자신이 점차 환멸감을 느끼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는 아낙사고라스가 모든 것을 지성 또는 정신을 통해서 설명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낙사고라스의 저술에 가치에 관한 언급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을 알고 실망하였음을 밝힌다. 즉 아낙사고라스는 소크라테스의 모든 행위가 오직 행위가 오직 지성에 따라 수행되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목적론적 설명이 기계론적 설명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만일 누군가가 왜 각각의 것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계속 유지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한다면 그가 발견해야만 하는 바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네. 즉 그것이 어떻게 존재해야 최선인지 도는 어떻게 다른 것들에 작용하고 또 작용을 받아야 최선인지를 밝혀야만 하네’.

2-6. 망명지 람프사코스에서 아낙사고라스는 처음으로 학교에 방학을 도입함으로써 마지막까지 인류에게 큰 기여를 하엿다. 도시의 관리들이 그의 명예를 기리기 위하여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가라고 묻자 그는 자신이 죽는 그 달에는 어린이들이 학교에 오지 않고 놀도록 매년 허락하라고 답하였다. 그는 쉬운 설명을 위하여 저술에 도표를 포함시킨 최초의 인물로서 이미 많은 과학도들이 그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소크라테스 자신의 철학(p. 78~96)

기원전 404년, 고대 그리스의 문명국가였던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항복하고 만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너무도 달랐는데 스파르타는 엄격한 군국주의를 바탕으로 금욕과 절제를 강조한 반면 아테네는 다수결의 원리를 따르는 민주주의 정치를 펼치고 있었다. 한때 그리스의 절대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던 아테네였지만 다수결의 폐단으로 인해 갈수록 불안정해져 갔다. 일례로 다수결로 죄의 유무를 가리던 아테네 법정은 법률에 대한 지식 없이 오직 화려한 말솜씨가 죄의 유무를 결정하는 중우정치 그 자체였다. 이 모습을 본 아테네의 일부 엘리트들은 스파르타의 체계적인 교육과 규율 등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 엘리트 중심에는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천민적 민주주의를 비난했고 스파르타 체제에 대한 필요성을 내비쳤다.

전쟁이 끝난 404년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정치체제를 민주주의에서 이른바 ‘30인 참주’에 의한 과두정치(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 체제)로 바꾸었는데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떤 역할도 담당하지 않고 어떤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이에 민주주의 정치가 아니토스는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부인하고 다른 새로운 신들을 도입함으로써 범죄를 저질렀다. 또 그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범죄도 저질렀다. 이에 대한 처벌로 사형을 요구한다.’며 소크라테스를 고발하였고 결국 소크라테스는 사형 당한다.

이 과정에서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크세노폰과 플라톤은 비록 실패했지만 소크라테스를 변호하는 글을 썼다. 우리는 이 변론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를 추측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생애와 사상을 확실히 알려주는 문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크세노폰과 플라톤에서 쓰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묘사가 다르다는 점이다.

 

  1. 크세노폰이 묘사한 소크라테스

크세노폰은 군인 출신의 역사가로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후 변론을 저술로 남겼고 소크라테스 회상록과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대화편<향연>을 추가적으로 저술하였다.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경건한 인물로 종교적인 의식에 충실히 따랐으며 신탁을 존중하였다. 탐욕이나 야심없이 예의 바르고 온화한, 욕망을 절제할 줄 알고 어려움을 잘 참는 사람이었다. 그는 교사가 아니었지만 말뿐만 아니라 실행을 통해서 덕을 가르쳤으며, 꾸지람뿐만이 아니라 짓궂게 놀리고 우회적인 비유를 들면서 악덕을 말렸다. 그가 이렇게 모범을 보였지만 몇몇 제자들은 잘못된 길로 빠지기도 하였는데 이를 근거로 그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비록 아테네 민주주의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그는 사람들의 좋은 친구였으며, 어떤 범죄나 국가에 대한 반역을 전혀 저지르지 않았다.

 

이처럼 크세노폰은 소크라테스를 융통성 없지만 예리한 통찰력을 갖추고 현실적인 윤리적 문제들에 대하여 조언을 하는 인물로 묘사했다.

  1. 플라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

반면 플라톤이 저술한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그 외의 대화편에서 쓰인 소크라테스는 어떤 일관된 역할이나 특성을 보이지 않는다. 몇몇 대화편에서 그는 문답법(산파술)을 활용하여 스스로 모순을 발견하도록 유도하기도 하며, 또 청중들 앞에서 열변을 토하며 다소 독단적인 형태의 윤리적, 형이상학적 체계를 제시한다. 또 다른 대화편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역할을 맡아 철학적 논의의 주도권을 넘기고 떠나기도 한다. 이에 학자들은 대화편이 쓰인 시기를 구별하여 소크라테스에 대한 설명을 구분하고자 했다. 플라톤의 대화편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각각에 드러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분류해 볼 수 있다.

먼저 초기의 대화편은 <크리톤>, <카르미데스>, <라케스> 등으로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견해를 잘 반영한다고 여겨진다. 초기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지는 탐구자로 등장하며 이 때에는 중기, 후기와 달리 이데아론이 제시되지 않는다. 그리고 중기의 대화편은 <파이드로스>, <파이돈>, <국가>, <향연> 등으로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지는 탐구자가 아닌 하나의 철학 체계 전반을 꿰뚫고 있는 교사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중기부터 소크라테스보다는 플라톤 자신의 철학을 반영한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마지막으로 후기의 대화편은 <크라티아스>, <필레보스>, <소피스테스>, <티마이오스>등으로 이 무리에 속하는 대화편 모두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역할이 극히 미미하다. 이는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스승 소크라테스보다는 자신의 사상을 완성한, 성숙한 플라톤의 견해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1. 소크라테스 자신의 철학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서 묘사된 모습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소크라테스는 우주론 등의 과학적 탐구에서 벗어나 철학적 문제들에만 집중하였다. 플라톤의 <변론>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아폴론의 이름으로 전한 여사제로부터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이 없다는 신탁을 받고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다른 계층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정치가와 시인들은 어떤 전문적 지식도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장인들도 단지 특수한 영역에서만 지식을 지녔음에도 보편적 지혜를 지닌 척하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를 통하여 소크라테스는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지혜가 부족함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자신이 현명하며 따라서 신탁은 옳았다고 결론짓는다. (무지의 지)

소크라테스에게 진정한 지식을 추구하고 거짓 지식을 폭로하는 일은 도덕의 영역이다. 왜냐하면 최선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그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그릇된 행위, 즉 비도덕적 행위는 무지의 결과이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바탕으로 그는 정의(定義)와 귀납적 논증을 추구하였다. 소크라테스가 정의를 추구한 까닭은 우리가 정의(正義)나 경건함 등 어떤 덕목에 관하여 완벽한 정의(定義)를 내리지 못한다면 그 덕목의 특수한 속성을 유익성, 보편성 등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보편적인 정의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면 개별적인 경우들의 진리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귀납적 논증을 적용하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

고대철학 스터디

#엠페도클레스

1-1.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초기 철학자들 중 갖아 눈부신 활약을 펼친 인물은 엠페도클레스인데 그는 주로 기원전 5세기 중반에 활동하였다.

1-2. 엠페도클레스는 말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은 종마를 위한 사육장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그는 민족주의자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도시국가에 독재를 실시하려는 음모를 좌절시켰다고 한다. 이에 감사한 시민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그는 이 직위를 거부하고 자연학자와 조언자로서 검소한 삶을 사는 편을 택했다.

1-3. 시인으로서 엠페도클레스는 파르메니데스보다 원숙한 모습을 보이며 더욱 다재다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그는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를 침공한 사건에 대해 서사시도 썼다고 하며,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몇 변의 비극도 썼다고 전한다.

1-4. 엠페도클레스의 자연철학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오니아철학자들의 사상을 종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엠페도클레스는 물, 공기, 흙, 불 이 네 실체 모두를 우주의 근본적인 구성요소 또는,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뿌리’라는 동일한 용어로 부른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뿌리들은 항상 존재해 왔는데 다양한 비율로 서로 혼합됨으로써 우리에게 친숙한 세계의 여러 동식물들을 만들어 낸다.

1-5. (시_)
엠페도클레스가 뿌리라고 불렀던 바를 플라톤을 비롯한 이후 그리스철학자들은 요소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는데 이 용어는 원래 단어의 음절을 의미하였다. 이 용어의 라틴어 번역은 elementum이며 이로부터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요소’라는 용어가 유래하엿다. 17세기 보일(Boyle)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엠페도클레스가 제시한 네 요소를 물리학과 화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여겼다.

사실 이 네 요소는 다소 변형된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엠페도클레스는 자신의 요소들을 서로 다른 네 종류의 물체로 생각하였다. 현재 우리는 고체, 액체, 기체를 물체의 세 가지 상태로 여긴다. 엠페도클레스라면 얼음과 물, 수증기를 각각 흙과 물, 공기의 특별한 경우로 간주하겠지만 우리는 이를 물이라는 동일한 물질의 상태라고 생각한다. 불을, 특히 해가 내뿜는 불을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네 번째의 요소로 생각하는 일은 그리 불합리하지 않다. 어쩌면 20세기에 해와 같이 높은 온도 상태의 물체가 지니는 속성들을 연구하는 플라즈마 물리학이 등장한 사실은 엠페도클레스의 네번째 요소에 다른 세 요소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1-6.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가 우주론이 우주에 존재하는 요소들과 동일시되어서는 안 되는 어떤 원인, 즉 현실 세계의 생물과 무생물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전개되고 혼합되는 데 필요한 원인을 지적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점을 들어 그를 칭찬한다. 엠페도클레스는 사랑과 불화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요소들을 결합하며, 불화는 이들을 분리시킨다. 네 가지 뿌리는 어떤 때는 다수가 결합하여 하나를 이루기도 하고, 다른 대는 불화의 증오가 작용하여 서로 분리되기도 하는, 이런 계속되는 상호관계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고 엠페도클레스는 말한다.

1-7. 사랑과 불화는 그 후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에 관한 이론에서 자주 등장하였던 인력과 척력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내는 독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엠페도클레스는 역사가 때로는 사랑이, 때로는 불화가 지배하는 일종의 순환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의 영향을 받을 때는 여러 요소들이 결합하여 안정되고 조화로운, 빛나는 세계를 이루는데, 이는 파르메니데스의 우주를 떠올리게 한다. 불화의 영향을 받을 때는 요소들이 서로 분리되지만 사랑이 회복되면서 잃었던 영역을 되찾을 때 서로 다른 모든 생물체의 종이 등장한다. 네발짐승과 새, 물고기 등의 모든 복합적 존재는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피조물일 뿐이다. 오직 네 가지 요소만이 영원히 지속되며, 오직 우주적 순환만이 영원히 이어진다.

1-8. 생물 종들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엠페도클레스는 적자생존이라는 주목할 만한 진화론을 제시한다. 맨 처음 살과 뼈는 네 요소의 화학적 혼합에 의해 생겨났는데 살은 불과 공기, 물이 각각 같은 분량으로 섞여 만들어졌고, 뼈는 둘만큼의 물과 둘만큼의 흙 그리고 넷만큼의 불이 섞여 만들어졋다. 이런 복합물로부터 아직 세분되지 않은 팔다리와 기관들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서로 결합할 만한 상대방을 찾을 때까지 여기저기를 방황한다. 이들이 우연히 만난 상대방과 결합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느데 이렇게 미숙한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결합은 지극히 부적절하다. 이렇게 우연히 만들어진 유기체 대부분은 허약하고 제대로 대를 잇지 못한다. 오직 가장 적합한 구조를 갖춘 존재들만이 살아남아 현재 우리가 아는 인간과 동물 종이 된다. 이들이 생식에 적합하여 계속 살아남는지 여부는 의도나 계획이 아니라 우연의 문제이다.

1-9.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가 서로 다른 생명체가 지닌 서로 다른 기관이 동일한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는 중요한 생물학의 원리를 처음 발견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목적론을 우연으로 축소 해석하려는 엠페도클레스의 시도는 비난하는데, 그 후 수세기 동안 생물학자들은 엠페도클레스보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랐다. 하지만 다윈이 '그리 엄밀하지는 않지만 자연 선택의 원리를 예견하였다는 점'을 들어 엠페도클레스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최후에 미소를 지은 사람은 엠페도클레스라 할 수 있다.

1-10. 엠페도클레스는 자신의 네 요소를 활용하여 감각적 지각에 대한 설명도 제시하는데 이는 유사한 것은 유사한 것을 통해서 알려진다는 원리에 기초한다. 이라는 종교시에서 그는 자신의 자연학 이론을 피타고라스의 윤회설과 연결한다.

1-11. 엠페도클레스는 엄격한 기계론적 태도와 신비적인 종교적 태도 사이를 계속 오가는 모습을 보인다. 때로 그는 자신의 네 요소를 각각 신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1-12. 그의 죽음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의사들이 이미 죽었다고 단념한 판테이아라는 여성이 있었는데 엠페도클레스가 그녀의 생명을 기적적으로 소생시켰다.
(시)

현대 양상논리학 (중간탈주)

현대 양상논리학

프레게나 러셀, 화이트헤드 등이 명제논리학이나 술어논리학, 기호논리학 등을 연구할 때 다른 논리학자들은 중세이래로 방치되었던 양상논리학(modal logic)을 연구하였다. 양상논리학은 필연성과 가능성 개념의 논리학인데 현대 양상논리학 연구는 함언(implication)에 대한 이론을 통해 그 개념들에 접근한다. 이러한 연구는 루이스의 저작에서부터 시작된다. 루이스는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고안한 개념인 실질 함언(material implication) 이라는 것과 대비하여 엄밀 함언(strict implication) 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이것만이 진정한 함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주장에 이어 실질 함언 기호가 엄밀 함언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호로 대체된 공리 체계를 새웠는데 이것이 양상논리학의 최초 형식 체계가 되었다. 그러나 엄밀 함언 역시 실질 함언과 마찬가지로 역설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루이스의 양상에 관한 연구는 그자체로서 흥미로웠는데 그는 S1~S5까지의 서로 다른 공리체계를 제시했고 각각이 정합성 있고 독립적임을 증명했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체계는 S4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p이다.

(2).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만일 p라면 q이다]라면 필연 적으로 q이다.)

(3).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필연적으로 p라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러한 S4는 필연성과 가능성의 상호 정의 가능성을 활용한다. 즉 ‘필연적으로는 가능하게 아닌 것이 아닌’ 으로 정의될 수 있고, ‘가능하게는 필연적으로 아닌 것이 아닌’ 으로 정의 될 수 있다.

양상논리학에는 수많은 진술들이 있는데 그 진술들의 진리치에 대하여 논리학자들의 의견일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진술들은 양상 연산자가 반복되는 것들인데 이것들의 예로는 S4나 S5가 있다. 이러한 논란은 논리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종교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신의 실존과 관련한 진술과 S5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양상 기호와 술어논리학의 양화사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은데 ‘필연적인’ 과 ‘가능한’의 상호 정의 가능성은 ‘모든’ 과 ‘약간’의 상호 정의 가능성과 유사하다. 또한 양화 이론의 분배법칙과 유사한 분배법칙이 양상논리학에도 있다. 이러한 유사점에 따라 양화를 양상논리학에 도입하여 양상 기호와 양화사를 함께 사용하면 이중 양화와 유사한 체계가 된다. 양화된 양상논리학에서는 양상 기호와 양화사가 놓인 순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그 순서에 따라 문장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양상 기호가 양화사보다 먼저 나오는 문장은 언어 양상(문장 예시는 책에서) 이라하며 양화사가 양상 기호 앞에 나오는 문장은 존재 양상이라 한다.

양화 이론과 양상논리학이 비슷한 점이 있다하여도 동일성 개념을 통해 보았을 경우 그 차이점 역시 드러나게 된다. 그 차이점은 콰인이 말하길 양상논리학은 양화의 문맥과 달리 지칭 대상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지칭대상의 불투명의 정의는 책 참조) 양상 문맥이 불투명한 경우는 쉽게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행성의 수가 9개 일 때 필연적으로 9는 7보다 크다는 옳지만 필연적으로 행성의 수는 7보다 크다는 옳지 않다. 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불투명 때문에 콰인은 양상논리학을 거부했지만 1970년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양상논리학은 꽤 훌륭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대 양상논리학에서 주요 주제는 필연성을 모든 가능 세계에서 옳은 것으로 정의하고 가능성을 일부 가능 세계에서 옳은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양화와 양상 사이의 유사점을 밝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진리는 모든 가능 세계 중 하나인 현실 세계에서만 진리로 간주되는데 가능 세계의 논의에서는 형이상학적 내용을 전혀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 즉 양상 의미론(양상의미론이 이루어지는 예시는 책을 통해서 봅시다)의 경우 어느 모형이든 적절한 형식적 구조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밀의 경험주의 논리학

밀의 경험주의 논리학

 

1.1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는 주요 부분이 둘로 나뉜다. 처음 두 권은 형식 논리학의 체계를 제시하고 나머지 네 권은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다룬다. 그는 첫 번째 부분을 언어분석, 특히 명명 이론(theory of naming)으로 시작한다.

밀은 형식논리학을 진지하게 여긴 최초의 영국 경험주의자였으며, 그는 홉스 시절 이후 경험주의를 결부시킨 유명론과 자신이 관련이 없음을 분명하게 하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유명론은 명제에 대한 두 이름이 주어와 술어가 동일한 대상의 이름 일 때만 옳다는 이론이다. 밀은 홉스의 설명이 ‘툴리우스의 키케로이다’처럼 술어와 주어가 둘 다 고유 명사인 명제들에게만 적합하기에 다른 모든 명제들에 대해서는 부적합한 이론일 수밖에 없다.

밀은 ‘이름(name)’이라는 낱말을 아주 넓게 사용한다. 그는 고유명사나 대명사뿐만 아니라 ’정복자 윌리엄을 계승한 왕‘과 같은 한정 기술도 이름으로 여긴다. 그리고 ’인간‘이나 ’현명한‘과 같은 한정 기술도 이름으로 여긴다. 그리고 일반명사, 추상명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이건, 추상적이건, 구체적이건 모든 이름은 대상을 지시한다. 고유명사는 지명하는 대상을 지시하고 일반 명사는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을 지시한다.’소크라테스‘라는 고유명사만 소크라테스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명사 ’인간‘ ,’현명한‘ 역시 소크라테스를 지시한다. 일반명사는 이런 방식으로 외연뿐만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는 항목들도 있다. 일반 명사가 내포하는 것은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들, 즉 일반명사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 명시될 수 있다.’인류가 현명하다는 말을 고정시킬 때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생각하지 않았다. ‘와 같이 논리학에서 내포는 외연에 앞선다.

‘이름’이 그처럼 다수의 명사들을 망라하기 때문에, 밀은 모든 명제가 이름들의 결합이라는 유명론자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밀은 홉스의 견해와 관련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홉스와 달리 명제의 진리 조건을 제시할 때 내포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든 사람은 죽는다’와 같이 두 개의 내포적 용어를 연결하는 문장은 어떤 속성들, 동물성과 합리성을 지닌 것들은 언제나 죽음의 속성을 수반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1.2두 번째 책에서 밀은 추리를 실질적 추리와 언어적 추리 두 종류로 구별하여 논한다. 언어적 추리는 세계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가져오지 않는다. 언어에 관한 지식만 있으면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떤 위대한 장군도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로부터 ‘어떤 무모한 사람도 위대한 장군이 아니다/에 이르는 추리를 언어적 추리의 실례로 제시한다. 이 두 문제는 전제와 결론 둘 다 동일한 것을 주장한다고 말한다. 반면 실질적 추리는 전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진리를 결론으로 추리한다.

밀은 새로운 진리들이 어떻게 일반적인 추론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추론이 정언적이라고 믿었으며, 모든 정언 논증에서 결론은 실제로 전제에 포함되어 있고 함의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로부터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와 같은 논증을 예로 들어 보자. 만약 이 논증이 연역적으로 타당하다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명제는 좀 더 일반적인 가정인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전제해야한다. 다른 한편, 만약 소크라테스를 아직 죽지 않은 누군가의 이름으로 대체한다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긴 해도 그 결론은 증거를 요약한 첫 번째 전제에 의해 정당화되지 못한다. 고로 연역 추리는 진정한 추리가 아니다.

 

모든 추리는 특수 사례로부터 특수 사례로 나아간다. 일반 명제는 이미 만들어진 그와 같은 추리의 목록일 따름이고 이상의 추리를 위한 축약된 형식 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연역 추리의 주요 전제는 축약된 형식 문이며, 결론은 형식 문으로부터 도출된 추리가 아니라 형식 문에 따라서 도출된 추리이다. 실질적인 논리적 선행 조건이나 전제는 귀납에 의해 특수 사실들로부터 만들어진 일반 명제이다.

 

2.1.‘귀납’은 논리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특수 사례들로부터 일반적 진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지칭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귀납이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피터는 유대인이다. 제임스는 유대인이다. 존은 유대인이다…….’라고 진술하고 계속 사도를 열거한다고 해보자. 나는 ‘모든 사도는 유대인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만 밀은 그렇게 할 경우 실제로 특수에서 일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결론은 전제에 나타난 특수 사실들에 대한 압축적 표현일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일반화되는 항목들을 빠짐없이 완전히 조사한 것도 아니면서 그것들을 근거로 일반화할 때이다.

밀의 연역 논증에 대한 비판은 논리학과 인식론의 혼동에 연루되어 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추리는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서도 연역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 타당성은 논증이 옳은 정보를 산출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정언 논증만이 추리의 유일한 형식은 아니며 실제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정언적이지 않은 타당한 논증들도 많이 있다. 예컨대, A=B, B=C, A=C와 같은 형식의 논증들. 정언 논증의 경우에도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죽는 것‘이 사람의 집합에 속하는 모든 원소의 이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죽는 것‘이 내포하는 속성들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해석한다면, 연역추리가 실질적 추리가 되도록 설명을 할 수 있다.

2.2밀은 귀납이 아니고서야 그런 연관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자신의 논리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귀납적 발견의 규칙들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원인과 결과의 귀납적 발견에서 탐구자를 안내하는 실험적 조사와 다섯 가지 규칙 혹은 규범을 제시한다. 그 실례로서 처음 두 가지 규범을 검토해보자.

첫 번째는 일치법이다. 만일 현상 F가 상황 A, B, C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또 상황 C, D, E와 관련하여 나타난다면, 우리는 유일한 공통 특징인 C가 F와 인과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두 번째는 불일치법이다. 만일 F가 A, B, C가 있을 때는 나타나지만 A, B, D가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두 경우를 구별하는 유일한 특징인 C가 F와 인과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결론 내릴 것이다.

반드시 의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런 규범들이 일상생활, 법정에서 늘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불일치법을 예증하기 위하여 ‘어떤 남자의 심장이 관통되었을 때, 그를 죽인 것은 발사도니 탄환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불일치법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그는 직전까지 충만한 삶을 살았고, 부상을 제외하면 모든 상황이 동일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밀의 일치법과 불일치법은 베이컨의 존재와 부재의 표를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다.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밀의 방법은 일반 법칙의 불변성을 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밀은 ‘자연의 과정이 한결같다는 명제는 귀남의 기본 원리 혹은 일반 공리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 일반 공리는 밀에 의하면 인과법칙과 멀리 떨어진 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면서 일반 공리 자체를 경험으로부터 일반화되는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 일반 원리가 귀납의 기반이라면, 일반 원리 자체가 어떻게 귀납에 의해 입증될 수 있는지 난감해진다. 그렇지만 밀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뿐만 아니라, 무모순의 원리 자체를 포함하여 산술학과 논리학의 기본 법칙들까지도 아주 완벽하게 확증된 경험적 일반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고자 한다.

퍼스의 귀납과 가설추리

1-1

프레게가 논리학에서 새로 고안해낸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완전히 독자적으로 퍼스(C.S.Peirce)에게서도 나타나지만, 퍼스는 자신의 성과들을 엄밀한 체계로 구체화하지 않았으며 완성된 형태로 출판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논리학의 역사에서 과학적 탐구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역논리는 우리의 지식을 조직화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추론유형은 귀납, 가설, 유비이다. 퍼스에 의하면 이와같은 추리들은 모두 본질상 표본 추출(sampling)에 의존하기 때문에 비연역적 추리에 대한설명은 수학적 확률 이론과 연관 될 수밖에 없다.

1-2

과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기반으로 예측한 다음, 그 가설을 확증하거나 반박하기 위해 관찰을 한다. 퍼스는 이러한 단계를 가설추리(abduction), 연역(deduction), 귀납(induction)이라고 한다. 각 단계에서 차례대로 탐구자는 고려 대상 이론을 선택하고, 그 이론을 시험하는 방법을 명확히 진술한 뒤, 시험의 결과를 평가한다.

과학자는 어떤 가설이 귀납적 시험을 받을 만한 것인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과학자가 조사하고자 하는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을 수없이 많을 수 있다. 과학자가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그는 어떤 이론을 조사해야 할 거인지에 관해 얼마간의 지침을 필요로 하는데, 추측의 논리 규칙들이 이 지침을 제공한다. 이론은 그것이 옳다면 실제로 설명력이 있어야만 한다. 이론은 경험적으로 시험 가능해야만 한다. 이론은 단순해야 하고, 자연현상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 앞서 일어났을 법한 일에 관한 우리의 주관적 의견과 반드시 정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현존의 지식과 정합해야만 한다. (P7.220-1)

하지만 가설추리의 규칙들만으로는 과학자가 가설을 성공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과학자가 자연을 탐구할 때 자연 자체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과학은 우리가 올바르게 ‘추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인간의 정신이 올바르게 추측하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가설들에 앞서 시험하려고 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면, 즉 지적인 추측이 모든 시험을 견뎌 낼 그 하나의 가설로 우리를 이끌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면… 진리를 습득하려는 온갖 시도를 단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P6.530)

이 신뢰는 비록 아무런 증거가 없을지라도 처음부터 전제되어야만 하지만 사실상 과학의 역사는 그와 같은 신뢰에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명석한 천재는 올바른 가설이 발견되기까지 두세 개 이상의 가설을 시험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1-3

일단 이론이 선택되면, 연역이 가설추리의 뒤를 잇는다. 연역의 귀결들은 선택된 가설에서 도출된 것으로서 가설이 정확하다면 옳거나 옳게 될 실험적 예측들이다. 펴스는 연역의 경우 정신이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즉 일반적인 생각이 특수 사례를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는 특수 예화의 예측을 검증하거나 반증함으로써 시험 대상인 가설을 확증하거나 경우에 따라 반박하기도 한다. 검증과 반증은 시험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귀납이며 이는 본질상 표본 추출의 문제이다.

뭐야이인용문은뭔소리야이게

1-4

퍼스에 의하면 우리가 잠정적으로 추리한다는 말은 우리의 경험이 무한히 확장되고 우리의 근사치가 무한히 좁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추리가 결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확률 이론에 좌우되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귀납은 양적귀납, 즉 표본의 비율로부터 모집단의 비율로 나아가는 추리이다.

과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또 다른 종류의 귀납은 질적 귀납인데 이는 어떤 개체의 하나 이상의 관찰된 성질로부터 관찰되지 않은 다른 성질을 추리하는 경우이다. 예를 위해 퍼스는 머그웜프(당파를 초월한 자주적 정치인)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사회적 명예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자기네 유권자를 관리할 때 요란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교제 활도을 대부분 못마땅해 한다…그는 공공 정책의 현안들 가운데 재정적인 고려 사항이 늘 중대 현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명사회의 최대 동력으로서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원리를 존중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런 견해들이야말로 ‘머그웜프’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기차 안에서 어떤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가 계속 이런 식의 견해를 내세운다. 나는 당연히 그가 ‘머그웜프’라고 가정하기에 이른다. 바로 그것이 가설추리이다. 다시 말하면, 손쉽게 검증할 수 있는 머그웜프의 특징들을 골라냈기 때문에, 나는 이남자가 이런 특징들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그런 유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게끔 하는 다른 모든 특징들을 그가 갖는다고 추리한다. (EWP 210)

이 실례는 퍼스가 말한 탐구의 세 단계를 예시한다. 나는 대화를 나눈 승객이 국회의원이 하층민의 비속한 행동을 한다고 개탄하는 것을 듣고 그가 머그웜프라는 가설을 세운 뒤 그가 정부의 기업 규제에 반대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에게 자유 경쟁 제한 조치에 관해 묻자 그는 맹렬하게 비난하고 이로서 나의 가설이 확증된다.

프레게의 논리학 재건

 

논리학

프레게의 논리학 재건

1-1. 이 문제에 관해 프레게는 밀과 정반대 입장에 섰다. 밀의 경우 모든 명제가 후천적으로 아는 반면, 프레게의 경우 산술학은 논리학처럼 선천적일 뿐만 아니라 분석적이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프레게는 밀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정립하지 못한 논리학을 연구하고 체계화해야 했다. 그는 논리학을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구성했고,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맨 처음 수립된 학문의 두 번째 창시자가 되었다.

1-2. 논리학을 정의하는 한 가지 방법은 좋은 추리를 나쁜 추리로부터 가려내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프레게 직전가지 논리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언 논증의 타당성과 부당성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1) “모든 독일인은 유럽인이다”, “약간의 독일인은 금발이다”, 그러므로 “약간의 유럽인은 금발이다.”

(2) “모든 암소는 포유동물이다“, ”약간의 포유동물은 네발짐승이다“, 그러므로 ”모든 암소는 네발짐승이다.“

이 추리 둘 다 옳은 결론을 가졌음에도 첫 번째 추리만 타당하다. 즉 첫 번째 추리만이 옳은 전제에서 그른 결론으로 나아가지 않는 형식을 가진 추리이다.

1-3. 정언적 추리는 사실상 타당한 추론 형식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에 해당한다. 트롤럽은 『총리』에서 옴니엄 공작 부인은 전통적으로 그 가문의 영지였던 실버브리지 자치구의 하원 의원이 되길 열망한다. 옴니엄 공작은 그녀가 ‘공작이 그 자치구를 다스리고, 공작의 아내가 공작을 다스리므로, 공작의 아내가 그 자치구를 다스린다는 유치한 정언 논증을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공작부인의 추론은 완벽히 타당하긴 하지만 정언 논증이 아니라서 하나의 정언 논증으로 형식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언논리는 오직 주어-술어 문장들만 다루도록 고안된 체계여서 관계 지술에 대처할 만큼 포괄적인 체계가 아닌데 반하여 그 추론은 ‘다스린다’가 이행적 관계라는 사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1-4. 정언적 추리의 또 다른 약점은 ‘모든’(all)이나 ‘약간의’(some)와 같은 낱말들이 문법적 술어의 어딘가에 나타나는 추리들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언 논증의 규칙들은 ‘모든 정치인들은 약간의(혹은 모든) 거짓말을 한다’와 같은 전제를 포함하는 추리의 타당성을 확인할 수 없는데, 이 경우 추리는 ‘약간의’ 혹은 ‘모든’이라는 낱말에 좌우된다.

1-5. 프레게는 자신의 『개념표기법』에서 처음에 이런 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를 고안한다. 첫 단계는 주어와 술어라는 문법 개념을 ‘독립 변수’와 ‘함수’라는 새로운 논리적 개념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웰링턴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라는 문장에서 ‘웰링턴’이 주어ㅣ고 ‘나폴레옹을 물리친 것’이 술어라고 말할 것이다. 프레게의 독립 변수와 함수 개념의 도입은 그 문장을 더 유연하게 분석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1-6. 그 방법은 이렇다. ‘웰링턴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라는 문장에서 ‘나폴레옹’ 대신 ‘넬슨’을 넣는다 해보자. 그 문장의 내용은 바뀌고 옳은 문장이 그른 문장으로 변한다. 우리는 그 문장이 ‘웰링턴이 ..을 물리쳤다’라는 변하지 않는 성분과 ‘나폴레옹’이라는 대체가능한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프레게는 첫 번째 고정된 성분을 함수, 두 번째 성분을 그 함수의 독립변수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 문장은 ‘나폴레옹’이라는 독립변수에 대한 ‘웰링턴이 물리쳤다’라는 함수 값이고, ‘웰링턴이 넬슨을 물리쳤다’는 ‘넬슨’이라는 독립변수에 대한 동일한 함수값이다.

1-7. 우리는 그 문장을 또 다르게 분석할 수 있다. ‘웰링턴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는 ‘웰링턴’이라는 독립 변수에 대한 ‘..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는 함수의 값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문장이 ‘웰링턴’과 ‘나폴레옹’이라는 독립변수에 대한 ‘..이 ..을 물리쳤다’는 함수의 값이라 말할 수도 있다. 프레게의 용어로 말하면 ‘웰링턴이 ..를 물리쳤다’와 ‘..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는 단 하나의 독립 변수의 함수이고, ‘..이 ..을 물리쳤다’는 두 개의 독립 변수의 함수이다.

1-8. 주어-술어 구분과 비교해볼 때 함수-독립 변수 이분법은 문장들 사이의 논리적으로 관련 있는 유사성을 나타낼 수 있는 훨씬 더 유연한 방법이다. 주어-술어 부석은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했다’와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물리쳤다’ 사이의 유사성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지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했다’와 ‘폼페이우스는 갈리아를 회피했다’ 사이의 유사성은 나타낼 수 없다. 이것은 ‘카이사르’나 ‘갈리아’같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모든 로마인’, ‘약간의 지역’과 같은 양화 표현을 포함한 정언 논증들에 나타나는 문장들을 취급할 때 논리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

1-9. 함수와 독립 변수 개념을 도입한 프레게의 다음 단계는 ‘모든’ 같은 낱말이 문장 속 어디에 나타나든 그에 의해 나타나는 일반성의 유형을 표시하는 새로운 기호 표현을 도입하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가 옳은 문장이라면 ‘..은 죽는다’라는 함수는 ‘소크라테스’라는 독립변수에 대해 옳게 된다. 일반성을 표시하기 위해서 일정한 함수의 독립 변수가 무엇이든 그 함수가 옳게 된다는 것을 표시하는 기호가 필요하게 된다. 프레게가 도입한 기호 표현을 채택하면, 논리학자는 ‘..은 죽는다’라는 함수에 대한 독립 변수로 무엇이 들어가든 그 함수는 옳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나타낸다.

(x)(x는 죽는다)

이것은 ‘모든 x에 대하여, x는 죽는다’라고 읽을 수 있으며, 어느 것이든 모두 죽는다는 진술과 동일하다. 일반성을 표시하는 이 기호는 함수와 독립 변수로 분석될 수 있는 문장들에서 완전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x)(신은 x보다 더 위대하다) = ‘신은 모든 것보다 더 위대하다’

이는 부정기호(‘~’)와 결합되서 ‘어떤 ..도 아니다’(no)나 ‘어떤 ..은 아니다’(none)을 포함하는 문장과 동등한 기호 표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x)~(x는 영생한다) = ‘모든 x에 대하여, x가 영생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어떤 것도 영생하지 않는다.’

프레게는 ‘약간의’와 같은 표현들을 포함하는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동치, ‘약간의 로마인은 겁쟁이다’와 ‘모든 로마인이 겁쟁이인 것은 아니다’ 사이의 동치를 활용했다. 프레게의 후계자들은 ‘약간의’를 표현하기 위해 편의상 ‘~(x)~’과 동등한 것으로 ‘Ex’라는 기호를 사용했다. 프레게의 기호 표현과 축약된 표현은 다른 정류의 사물들의 존재에 관한 진술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Ex)(x는 말이다) = ‘말들이 있다’

1-10. 프레게는 모든 종류의 대상들이 명명될 수 있으며 논리적 기호 표현의 독립 변수 자리는 어느 것이든 모두 그것의 이름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x)(x는 죽는다)’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만 아니라, 어느 것이든 모두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11. 사실상 그처럼 무제한의 일반적 진술의 경우는 드물고, 어떤 종류의 모든 것이 어떤 속성을 갖는다거나 일정한 어떤 속성이 다른 어떤 속성을 갖는다고 말하려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거나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온다’는 일상 언어로 이루어진 보편적 문장들은 프레게의 체계 안에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의 술어 계산을 명제 계산과 접목시켜야 한다.

1-12. 프레게의 명제 논리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상 언어의 ‘만일’과 조건부를 표시하는 기호이다. 고대 논리학자 필론은 ‘만일 p라면 q이다’라는 명제는, p가 옳고 q가 그른 경우에 그르고, 있을 수 있는 나머지 세 경우에 옳은 명제라고 말하며 명제를 정의했다. 프레게 역시 조건부를 나타내는 자신의 기호를, 그 기호가 일상 언어의 ‘만일 .. 라면’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의시켰다. ‘p→q’를 ’만일 p라면 q이다‘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면, ’만일 태양이 비치면, 3×7=21’와 같은 명제들은 옳은 것이 된다. ‘만일’은 일상 언어에서 달리 작용한다. 프레게의 기호는 ‘만일’이라는 낱말의 가장 기본적인 것만 남긴 형태, 즉 ‘만일’을 포함하는 엄격한 증명의 형식화에 필요한 바로 그 의미 양상만을 정확히 포착하기 위해 고안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13. 프레게의 용어로 말하면, ‘..→..’은 문장을 독립변수로 하는 함수고, 그 값은 문장이다. 함수의 값인 문장이 옳은가 그른가는 오직 그 함수의 독립 변수인 문장이 옳은지 그른지에 달려 있는데, 이런 종류의 함수는 ‘진리 함수’라고 한다. 조건문뿐만 아니라 부정문도 진리 함수인데, 부정문은 부정되는 문장이 그를 경우에 옳고, 부정되는 문장이 옳은 경우에만 그르다.

1-14. 프레게는 이 두 기호의 도움으로 완전한 명제 논리 체계, 즉 (q→p)→(~p→~q)나 ‘~~p→q’와 같은 일정한 원초적 진리/공리 집단으로부터 바로 그 논리학의 모든 진리를 이끌어 내는 체계를 세웠다. ’그리고‘나 ’또는‘처럼 ’만일‘과 다른 연결사들은 조건부와 부정에 의해 정의된다. 프레게가 알아차렸던 것처럼, 연언을 원초적인 것으로 하는 다른 체계가 있을 수 있으며, 조건부는 연언과 부정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논리학에서는 연역이 연언보다 더 중요한데, 그 때문에 ’그리고‘가 아니라 ’만일‘을 더 원초적인 것으로 여긴다.

1-15. 논리학자들은 일찍부터 다수의 추리 규칙들, 한 명제에서 다른 명제로 넘어가기 위한 규칙들을 세웠다. 대표적인 것은 ‘“p”와 “만일p라면 q이다”로부터 “p”를 추리하는’ 전겅 긍ㅈ어 논법이다. 프레게는 자신의 체계에서 단 하나의 추리 규칙으로서 전건 긍정 논법을 이용해 논리학의 모든 법칙들을 증명한다고 주장햇다. 나머지 다른 규칙들은 체계의 공리이거나 공리로부터 증명된 정리이다. (대우)

1-16. 프레게의 명제 계산과 술어 계산을 함께 제시할 때, 우리는 일반성 기호와 조건부 기호 둘 다 이용하여 일상 언어의 보편적 문장들을 기호화할 수 있다.

‘(x)(Fx→Gx)’ = ‘모든 x에 대하여, 만일 Fx라면 Gx다’ = x가 무엇이든 ‘Fx’가 옳다면 ‘Gx’가 옳다.

1-17. ‘F’에 ‘사람이다’를 대입하고, G에 ‘죽는다’를 대입하면, 프레게가 ‘모든 사람은 죽는다’에 번역으로 제시하는 ‘모든 x에 대하여 x가 사람이라면 x는 죽는다’가 된다. 이것과 모순되는 ‘약간의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x)(x가 사람이다 →x는 죽는다)’가 된다. 이같은 번역을 통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언 논리의 모든 정리들이 자신의 체계의 일부분임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

1-18. 프레게의 논리 계산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언 논리보다 더 체계적이고 또한 포괄적이다. 예를 들어, ‘모든 소년이 어떤 소년을 사랑한다 = (x)(x가 소년이다 → Ey(y는 소녀이다 & x가 y를 사랑한다))라는 문장과, ’어떤 소녀가 모든 소년의 사랑을 받는다 = (Ey(y가 소녀이다 & (x)(x가 소년이다 →x가 y를 사랑한다))라는 문장과의 차이를 표시할 수 있다.

1-19.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논리학자들은 일찍 일상 언어의 애매한 문장들에서 나타나는 의미의 차이를 드러내는 단순하고 명확한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이제 프레게 기호 체계의 마지막 통찰을 언급해보자.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소크라테스’를 독립변수로, ‘..는 죽는다’를 함수로 갖는데, 그런데 ‘..는 죽는다’ 자체는 더 높은 수준에서 작용되는 함수의 독립변수로 간주될 수 있다. 이는 이 함수가 한정된 독립 변수가 아니라 ‘(x)(x는 죽는다)’같이 양화사로 끝날 때 나타난다. 따라서 ‘(x)(x는..)’은 ‘..는 죽는다’라는 일차 함수에 대한 이차 함수로 간주될 수 있다. 프레게는 첫 번째 함수가 불완전하다는 점을 늘 강조했는데, 이는 두 방식으로 완전해질 수 있다. 하나는 독립 변수의 자리에 독립 변수를 끼워 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립 변수 자체가 2차 함수의 독립 변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는 죽는다’에서 생략 부호 자리가 ‘모든 것’과 같은 양화사로 채워질 때 나타난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Ⅰ.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1-1. 최대 행복의 원리를 도입할 때 벤담은 통치자와 입법자에게 공동체의 경영에 관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만큼 개인의 도덕적 선택의 기준을 제공하는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서 행복의 총량과 행복의 분배까지 고려해야 하는 경우에, 최대 행복의 원리만으로는 신뢰할만한 결정 절차를 제공하지 못한다.

1-2. 행복을 측정하는 척도, 즉 0이 최대 불행이고 10이 최대 행복을 나타내는 0에서 10까지의 척도를 정립했다고 해보자. 어떤 사회에서 정치 제도와 법적 제도를 고안하는 데, 유효한 두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모델 A를 선택하면 시민 60%가 6을, 40%가 4를 득점하게 되고, 모델 B를 채택하면 시민 80%가 10을, 20%가 0을 득점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선택에 직면할 경우, 평등이나 박애를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델 B보단 A를 선택하려할 것이다. 하지만 벤담의 행복 계산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모델 B는 총 800점인데 모델 A는 520점에 불과하다.

1-3.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리는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 혹은 행복한 사람의 수를 극대화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에 도달한다. 따라서 분배적 정의에 크게 위배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려면, 그 원리를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빈곤층의 최저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보완될 필요가 있다.

1-4. 벤담의 야심 찬 원리가 지닌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그는 정치철학에 매우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그는 ‘사회 경영 가운데 순전히 사업 부분을 조직하고 조정할 때’ 최상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는 국가의 형사 처분을 다루는 대목에서 그의 재능을 십분 발휘한다.

1-5. 그는 처벌 제도의 목적에 대해 묻는다.

“처벌의 직접적인 주목적은 행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처벌은 범법자의 행위를 통제하거나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한다. … 전자의 경우 처벌은 교정(reformation)의 방식으로 작용하고 후자의 경우 처벌은 무력화(無力化, disablement)의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범법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통제는 그들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외에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없는데, 이와 같은 경우의 처벌은 본보기(example)의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일컬어진다.” (P 13.1)

처벌은 고통을 가하는 것인 일종의 악이기에, 그것은 어느 정도 더 큰 악을 배제할 가망이 있을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벤담은 해를 준 사람은 해를 당해야 정의롭다는 응보적(retributive) 처벌 이론을 거부한다. 처벌하는 일이 억제 효과나 치료 효과를 주지 않는 한, 응보는 악을 악으로 되갚는 것일 뿐, 정의의 균형을 되찾기는커녕 세상에 악의 총량을 증가시키기만 한다.

1-6. 비록 범법자에 대한 처벌이 전혀 억제 효과나 교정 효과를 주지 못하더라도 처벌하는 일은 피해자나 법을 준수하는 일반 대중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벤담은 처벌에 의해 산출된 쾌락은 결코 처벌에 의한 고통과 동등할 수 없기기에 어떤 처벌도 징벌적인 목적으로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7.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14장에서 벤담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 원리가 아니라, 처벌로써 잠재적 범법자에게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효과에 입각해 죄와 벌의 균형을 맞추는 규칙을 세웠다. 그는 장래의 범법자가 위법 행위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경우를 생각해봤고, 손해가 이익을 능가하도록 하는 것을 형사법의 기능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법은 위법 행위를 억제할 만큼 처벌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필요 이상의 처벌을 해서도 안 된다. 즉 처벌은 절약(frugal)을 필요로 한다.

1-8. 억제가 처벌의 주목적이라지만, 그는 범법자에 대한 교화나 무력화와 같은 부차적인 목적을 인정한다. 교도소의 현실적 상황을 감안하면 교화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벤담은 몇 가지 특수한 교화 제도를 제안한 적 있다. 감금은 범법자에 대한 일시적 무력화의 효과를 지니지만, 가장 효과적인 무력화는 사형이다. 벤담은 ‘그와 동시에 이런 처벌은 너무 과도한 처벌인데, 이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많은 반론들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P15.19)고 진술한다.

1-9.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철학은 도덕철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벤담에게 많은 신세를 지긴 했으나, 그는 자기 스승의 엄격한 공리주의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자연권을 부인하는 벤담의 체계는 경우에 따라 지극히 독재적인 정부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인 침해를 원리상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그의 체계는 밀이 젊은 시절에 지껄인 적이 있고,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체계를 탄생시켰던 초기 형태의 사회주의 또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원숙한 나이에 이른 밀은 사회 제도가 원리상 아무리 호의적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제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여겼다. 그는 콩트의 실증정치학 체계를 ‘정신적인 스승과 통치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체에 의해 일반 여론을 지배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행위를 통제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생각을 통제하려는’ 책략이라 했다. 그는 콩트가 ‘지금까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해 본 적 없는 가장 완벽한체제의 정신적이고 세속적인 독재’를 제의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비난했다. 『자유론』(On Liberty)에서 밀은 그 동기가 공리주의나 사회주의나 실증주의에 있건 부당한 권위주의적 침해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유주의 원리를 세우려고 했다.

1-10. 민주 사회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폭압할 수도 있기에, 밀은 전제 군주 정치를 신뢰할 만한 민주 정치로 대체한다고 해서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회가 더 교묘한 다른 억압 수단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권력을 제한한다고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감정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말하자면 사회의 관념과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민사처벌 이외의 수단을 동원하여 관념과 관습을 행위 규칙으로 강요하는 사회적 성향으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풍습을 거스르는 개성의 발달을 가로막음과 동시에 되도록 그와 같은 개성이 아예 형성되지 못하게 하려는 사회적 성향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L 130)

물리력이나 여론에 의한 강압을 정당하게 제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제약에 따라야 하는 유일한 행위는 타인과 관련된 행위뿐이라는 것을 근본 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자기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행위에서는 행위자의 독립적인 지위가 절대적이어야 한다.

1-11. 이 원리는 사상의 자유, 이를테면 말하기와 글쓰기의 자유에 중요하게 적용된다. 밀에 따르면 독재적 권력이든 민주적 권력이든 어느 권력도 의견의 표현을 억압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비록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인류가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한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은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잡았을 때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L 130) 이것이 부당한 것은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 인류 전체를 유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완전히 그른 의견조차도 반대 의견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진리라는 것이 단순히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견해이나 공식적인 선언이 아님을 확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밀은 의견을 가질 자유와 의견을 표현하는 자유야말로 인류의 정신적 행복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결론짓는다.

1-12. 하지만 의견의 자유가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웃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유가 타인을 해칠 권리까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해악을 선동하는 것인 상황에는 언론의 자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이나 타인의 관심사가 오로지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동의와 참여’일 경우에는 다양한 인물과 삶이 폭넓게 허용되어야 한다. 개인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은 개인 자신의 인격이어야지 다른 사람의 전통이나 관습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 원칙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인간 행복의 주요 요소들 중 하나를 상실하는 것이며, 개인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의 중요한 요소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 된다.’ (L 185)

1-13. 개성이 없으면 인간은 외부에서 부과한 모형을 따르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도처에서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육시키는 한 그루 나무이다.’(L 188) 만일 특이한 행동이 배척당한다면, 강압을 받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한때 진리였던 것이 이제 더 이상 진리가 아님을 알려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행을 시작함으로서 인간의 삶에서 더 계몽된 행위의 모범을 보이고 더 나은 취미와 감각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이 항상 필요한 법이다.’(L 193) 여론이 세상을 지배하고 개인이 군중 속으로 사라져 갈 때야말로 어느 시대 보다 정열적이고 비정통적인 인물이 필요하게 된다.

1-14. 밀이 ‘실험적인 삶’을 권장할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그는 그 행동의 실례를 제시하기보다 일련의 풍부한 은유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해설한다. 밀이 자신의 원칙들을 실제에 적용할 때, 천재성의 계발을 억제하는 법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람들의 평범한 행동을 방해하는 법률을 비난하는 선에 그친다.

1-15. 밀이 일상적인 관례를 따르지 않도록 장려할 때 깊이 간직한 본보기는 자신이 결혼하기 전 오랫동안 해리엇 테일러과 맺었던 인습에서 벗어난 관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모르몬교의 일부다처제 승인을 실험적인 삶의 본보기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탐탁찮게 생각했다. 그가 인정한 이런 실험적인 삶은 ‘공동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쇠사슬로 옭아매 놓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호혜적 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기’(L 224) 때문에, 자유주의의 원리와 정면으로 상충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여성들은 결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여러 아내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밀은 일부다처제를 권유하지 않으면서도, 모르몬교들이 일부다처제를 포기하도록 강압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1-16. 1851년 결혼에 즈음하여 밀은 계약 당사자의 인격과 재산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한쪽 당사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부여한 법에 반대하는 항의서를 제출했다. 그는 『여성의 종속에 관하여』라는 소책자에서 영국의 혼인법에 대한 반론을 구체적으로 제기했다. 한 성이 다른 성에 법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원칙상 잘못이고, 인간의 진보에 대한 주요 장애물이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고용된 사람이고 평생 그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고 아내가 취득한 재산은 곧바로 남편의 손에 넘어가는, 어떻게 보면 아내는 노예만도 못했다.

1-17.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은 남성의 더 강한 근력에서 비롯되었고, 순전히 남성의 이기심으로 인해 문명의 시대에 계속 이어졌다. 현재의 남성 우월체제가 어떤 대안보다 더 낫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어떤 대안도 시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긴 세월 훈련을 통해 남성 우월 체제를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양육되었다.

“첫째, 이성은 서로 자연스럽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 둘째, 아내는 전적으로 남편에 달려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추구와 고려 대상 및 사회적인 야망의 대상은 오직 남편을 통해서만 추구되거나 획득될 수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볼 때,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대상을 여성 교육과 인격 형성의 길잡이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을 것이다.”(L 487)

여성들이 굴레를 벗어나려 하지만 주인에게 반항하는 것은 폭군에게 반항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남성들의 포학함이 다른 온갖 형태의 권위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