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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 ˂˂법률˃˃과 ˂˂티마이오스˃˃

1.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1-1. 플라톤의 이론으로 전환

플라톤의 초기 후반의 대화편에서 언급된 덕에 대한 주장이 소크라테스의 진짜 주장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 플라톤의 대화편 ˂˂메논˃˃ 과 ˂˂파이돈˃˃에서는 덕에 대한 완전히 다른 주장이 제시된다. 그 주장은 ‘덕이나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은 현세에서는 가르칠 수 없고 오직 더 나은 세상을 상기함으로써 그 지식을 회복할 수 있다.’ 라는 것으로 이 주장을 상기설이라 부를 수 있다. 또한 ˂˂파이돈˃˃에서는 이데아론이 도입되는데 그것은 크기에 대한 절대적 동일성을 경험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을 통해 크기뿐만 아니라 다른 절대적인 관념들도 마찬가지로 경험이 아닌 전생을 통해 얻었던 것으로 주장된다.

즉 ˂˂메논˃˃과 ˂˂파이돈˃˃에서 도입된 이론들(상기설과 이데아론)은 플라톤이 제시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보편적 정의와 우리가 일상적 세계에서 대하는 경험적 실재들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며칠을 묘사하는데 이 부분을 통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하여 언급한다.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이데아론이 동시에 소개되지만 실제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플라톤 자신의 이론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개인의 철학이 사라져가고 플라톤주의로 변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1-2. 소크라테스 죽음 이후 플라톤의 생애

소크라테스의 죽음 당시 플라톤은 20대 후반이었으며 자신의 형제들과 달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삼촌들과 달리 정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40세 때 시칠리아로 가서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아테네로 돌아온 후 아카데메이아(Academy)를 세웠고 그 기관에서는 천문학, 수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을 가르치며 여러 사상가들이 의견을 나누었다. 60세 때 시칠리아를 재방문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이후의 방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80세 때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의 생애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에 생애에 대한 분명한 사실들을 알고 싶다면 그의 저술에 포함되는 편지들을 읽는 것이 최선이다. 이 편지에서는 플라톤이 마지막 20년간 행했던 정치적 이상의 구현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된다.

플라톤의 저술들을 오늘날 50만 단어에 이르는데 그 저술들은 고대 후기 학자들에게 많이 인용되며 수많은 대화편 형식의 저술들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양측의 주장들을 고루 살펴 볼 수 있다는 중요성이 있다. 물론 대화편 형식으로 인하여 어느 주장이 플라톤 본인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인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 살펴봐야한다.

2.이데아론

2-1. 이데아론의 배경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견해는 이데아론인데 많은 대화편들에서 암시적이나 당연시되게 주장된다. 하지만 이데아론에 대한 가장 명확한 언급은 일곱 번째 편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편지에 언급된 이데아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지식을 얻으려면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로 이름, 둘째로 정의, 셋째로 형태가 필요하다. 지식자체는 네 번째 요소이며 또한 우리가 요청해야하는 다섯 번째 요소도 있는데 이는 인식 가능한 동시에 진정으로 실재하는 무엇인가이다. 」

플라톤의 언급한 진정으로 실재하는 무엇이 바로 이데아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4가지 요소 즉 이름, 정의, 형태, 지식 등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다른 저술들에서도 이데아를 지칭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형상’(eide)이라는 표현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플라톤은 이 편지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물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른 저술들에서 명백히 제시된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접하는 원들은 결코 완벽한 원이 아니며 우리가 가진 원의 개념은 불완전(경험을 통한 원의 이해)하여 원 자체 즉 원의 이데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데아는 어떤 개인이 지니는 정신적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정신이 지닌 원의 개념은 완벽한 원에 대한 개념이다.

2-2. 이데아론의 원리

플라톤은 주어의 위치와 술어의 위치에 놓인 단어와 문장을 고찰하여 이데아를 도입한다. 하나의 공통적 술어가 많은 개체들에 대하여 참인 경우에 플라톤은 많은 개체들이 이데아를 모방하거나 혹은 분유한다고 표현하여 공통된 이데아가 있다는 원리를 적용한다. 이데아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플라톤의 주장은 6가지 원리로 표현되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공통성의 원리: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F라면 그 까닭은 이들이 F라는 이데아를 한 가지 요소로 분유하거나 모방하기 때문이다.
  2. 분리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인 모든 것들과 구별된다.
  3. 자기서술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 자체이다.
  4. 순수성의 원리: F의 이데아는 다름 아닌 F일 뿐이다.
  5. 유일성의 원리: 오직 F의 이데아만이 진정으로 참으로 전적으로 F이다.

6, 절대성의 원리: 이데아는 영원히 지속되며 어떤 부분으로 나뉘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 또한 감각을 통해 지각되지 않는다.

공통성의 원리는 플라톤만의 이론은 아니지만 플라톤의 특유한 점으로는 ‘공통적으로 지닌’ 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진지하게 추적하여 이데아의 유일성에 대해 논하였다. 분리의 원리는 이데아와 이데아를 드러내는 개체들 사이에 계층 개념과 연결되며 각각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함을 뜻한다. 자기서술의 원리는 이데아가 개체들에 속성으로 드러나게 되는지 설명해준다. 즉 F의 이데아가 F자체이기에 F가 그러한 속성을 가지게 된다.

순수성의 원리는 F의 이데아가 F의 완벽한 표본으로써 혼합되거나 희석될 수 없음을 뜻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만약 순수성의 원리가 없다면 이데아 간의 계층문제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일성의 원리는 이데아만이 오직 진정으로 존재하고 개체들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있음을 뜻하는데 이는 F의 이데아만이 오직 진정으로 F임을 의미한다. 정통적으로 이데아론에서 중요한 특성은 절대성의 원리인데 여기서는 개체들은 변화하는 낮은 세계에 속하는 반면 이데아는 영원불변에 세계에 속함을 나타낸다. 나아가 모든 이데아 중 선의 이데아가 최고이며 인식 가능한 모든 것에 존재함을 뜻한다.

이데아론의 문제는 각 원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분리의 원리와 공통성의 원리, 자기서술의 원리들을 각각 적용하였을 때 무한 역행이 발생함을 플라톤 자신이 ˂˂파르메니데스˃˃에서 지적하였다.

2-3. 이데아론의 적용과 문제들에 대한 현대적 논의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하여 많은 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적용해 답하는데 대표적인 문제가 보편의 문제로 이는 보편명사의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보편 문제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점에서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보편의 문제에 대한 현대의 논의에는 술어, 집합, 전형, 구체적 보편, 등의 용어들이 나오는 데 이들은 모두 이데아와 유사점을 보인다. 이 개념들 모두 플라톤의 이데아가 지닌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지는 못하며 플라톤의 여섯 가지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평범한 개념들(나침반의 동서남북 같은 것)을 통해 검토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물론 플라톤의 원리 자체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기에 어떠한 완벽한 해석도 존재할 수 없다.

3.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는 이데아론의 세분화된 분야로의 확장이 있지만 그러한 응용보다도 정치 제도에 대한 묘사 때문에 더 유명하다. 이 책의 겉으로 드러난 주제는 정의(正義)이다. ˂˂국가˃˃에서는 정의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려하고 그에 반대하는 도전들이 이어진다. 이러한 도전들에 이어 답한 후 플라톤은 개인의 정의에서 도시국가에서의 정의라는 큰 주제로 나아간다. 이 주제에서 플라톤은 정치적 질서가 필요함을 역설한 후 세 가지 계층으로 구성된 도시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 3가지 계층은 1.수호자 2.군인 3.시민으로 구성되며 수호자가 가장 높은 계층이다. 각 계층은 자신들의 일이 있으며 제한 또한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서 드러내는 이러한 정치체제의 틀은 영혼이 지닌 정의의 본성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플라톤은 ˂˂국가˃˃의 후반부에서 다시 정치 이론으로 돌아오는데 그는 자신의 이상국가가 모든 중요한 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말하고 각 계층이 대표하는 덕이 있음을 말하고 각 계층의 노동 분화는 정의로운 국가를 위해서라 말한다. 이상 국가에 대하여 말하고 나서 플라톤은 덜 이상적인 국가들은 이상에서 멀어지며 5가지의 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된다고 말한다. 1.귀족정치로 지혜로운 자가 통치하는 최선의 정치 체제이다. 이후로 2.명예 지상 정치, 3.과두정치, 4.민주정치, 5.전제 정치이며 각 체제로 갈수록 타락한 형태라 설명한다. 왜냐하면 최선의 정치체제에서 덕목을 하나 씩 상실하며 체제가 변하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지혜, 용기, 절제, 불의가 드러난 모습으로 통치자가 덕목을 읽을 때마다 1->2->3->4->5 로 변한다.

4. ˂˂법률˃˃과 ˂˂티마이오스˃˃

4-1. ˂˂법률˃˃

플라톤은 말년에 이르러 철인통치론을 포기하고 이데아론이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다는 생각을 철회한다. 그는 도시국가의 복지와 관련해서 법률의 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법률˃˃에서 묘사한 마그네시아란 도시국가에서 이러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마그네시아는 ˂˂국가˃˃에서의 이상국가적 특징도 지니고 있는데 지혜롭고 탁월한 능력의 공무원들이 최고 권력을 지닌다는 점이나 여러 가지 법률에서 ˂˂국가˃˃에서의 이상국가적 면모를 찾아 볼 수 있다.

˂˂법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은 중반부에 등장하는 입법제도에 관한 설명이다. 대표적으로는 공무원들의 의무나 법률의 목적을 일반시민이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전문을 반드시 포함하게 하는 제도 등이 있다. ˂˂법률˃˃에서는 성행위에 관한 법률로 플라톤의 성도덕을 이론적인 측면에서 논의한다. 플라톤은 고대에는 드물었던 생각인 임신과 출산이 성행위의 본래 목적이라는 개념에 기초해 성윤리를 펼쳐나간다. ˂˂법률˃˃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10권의 신들의 숭배와 이교에 대한 문제의 언급으로 여기서는 플라톤이 제시하는 종교철학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4-2. ˂˂티마이오스˃˃

˂˂티마이오스˃˃의 저술 시기는 ˂˂법률˃˃과 상당히 겹치는 듯 보이는데 여기서는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 세계란 어떤 신성한 존재가 만들어낸 세계로 논의되며 플라톤의 우주론은 아낙사고라스가 불만족스럽게 남겨두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주요 논점으로 삼는다. ˂˂티마이오스˃˃에서는 우주의 시원과 역사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우주가 어느 한 신성한 존재인 창조자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설명된다. 이러한 설명은 마친 창세기와 유사하지만 플라톤이 생각하는 창조자는 유대-기독교의 전통적 창조주와 다르다. 대표적인 차이점은 플라톤이 생각한 창조자는 세계를 무에서 창조하지 않으며 창조과정에서 그의 자유가 최초의 물질들이 지닌 필연적 속성에 의해 제한된다. 또한 플라톤은 세계의 생명들과 세계규정의 근거를 살아있는 원형들 즉 이데아의 세계에서 찾는다.

플라톤의 우주론은 우주가 오직 하나뿐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고 엠페도클레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영향을 받아 세계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고 각 요소들의 구성하는 원자들의 다른 형태에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또한 창조자가 4 요소를 변환하는 방식에서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 등장하는 제일질료를 예견하는 듯 보인다. 나아가 ˂˂티마이오스˃˃에서는 신들의 구별 및 인간 영혼의 삼분법의 발전, 인간의 육체의 형성과 지각 과정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이런 내용의 ≪티마이오스≫는 다른 대화편들이 고대말기에 사라졌다 르네상스에 다시 등장한 것과는 달리 훗날 수세기동안 꾸준한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다.

1-1. 레닌은 제국주의자가 잉여 자본의 배출구이자 값싼 노동과 원자재의 공급원으로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써 자본주의 통치자들의 경제가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틀렸음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레닌의 후계자인 스탈린은 사회주의를 하나의 국가에 보존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받아들였으며, 공산주의 엘리트 권력은 나치 독일에 대한 민족투쟁의 애국적인 열정 덕분에 1941년에서 1945년까지 지속되고 보존되었다.
1-2. ‘파시즘’이라는 제목 아래 두 이데올로기를 나란히 놓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상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둘 다 전체주의 국가를 믿었던 국가주의 독재자였지만, 나치주의의 지도적인 개념이 민족우월주의였음에 반해 이탈리아 파시즘의 핵심 신조였던 국가조합주의는 민족과 무관했다. 국가조합주의는 개인이 그들의 사회적 직능에 따라 대표자를 내세우기 위해 집단을 이룬 직업상의 사회 체제로 의도되었다. 조합국가는 자본가, 노동자, 전문직 사이의 관계를 통제하고, 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급들 사이의 충돌을 피하는 그런 방식으로 교회 조직을 규제하고자 했다. 이것은 하나의 민족이 그 밖의 모든 민족보다 우월하므로 그 민족들을 지배하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다른 종류의 정치적 신조였다.(?)
1-3.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하나의 고전적 정치철학을 탄생시켰는데, 그것은 오스트리아 망명자 칼 포퍼가 내놓은 이었다. 이 책에서 포퍼는 정치 조직이 번성하려면 조직의 제도들이 최대한 자체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지배자가 제시한 정책들을 논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를 피지배자가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자가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지 못할 경우 폭력이나 유혈 사태 없이 지배자를 바꾸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열린 사회의 주요 특징이며, 단순히 다수가 정부를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중요한 민주주의의 요소들이다.
1-4. 하지만 포퍼가 모든 형태의 정부 간섭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무한한 관용은 편협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제약 없는 자본주의는 용납할 수 없는 빈곤의 수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편협성을 선동하는 것은 범죄로 간주되어야 하고, 국가는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은 물론 제약 없는 경제 체제에 대한 불간섭의 원리가 단념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제약 없는 자본주의가 경제적 간섭주의로 바뀌도록 요구해야 한다.
1-5. 그의 책 2권에서 포퍼는 열린사회의 적으로 보았던 두 철학자,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공격했다. 포퍼의 주요 표적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학 법칙, 즉 피할 수 없는 결과를 향해 확고한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하는 경향이 마르크스 특유의 과학적 예언이라고 내세우는 대부분의 것들을 실제로 어떻게 반증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1-6. ‘내가 말하는 역사주의는 역사적 예언을 주목적으로 삼고, 역사 발전의 기초가 되는 흐름이나 형태나 법칙이나 경향을 발견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사회과학 접근법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무엇보다도 과학적 진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사회의 미래를 예언하려면, 우리는 과학의 미래를 예언해야만 한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의 본성을 예언하는 것은 반드시 과학적 발견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주의는 불가능하며, 우리가 과거나 미래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는 역사가 자유롭고,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뿐이다.
1-7. 존 롤스는 에서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이 열망한 자유민주주의의 형태에 대해 조직적인 이론 체계를 제시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롤스는 공리주의가 정의보다 복지를 앞세우기 때문에, 말하자면 ‘권리가 이익에 우선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주의 국가의 토대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롤스는 양도할 수 없는 자유를 확정하기 위한 기초로서 공리주의 대신 새로운 종류의 사회 계약, 즉 사고 실험과 같은 사고 계약을 제안했다.
1-8. 아직 아무런 사회 제도도 없지만 우리 모두가 처음에 평등하다고 상상해 보자. 이와 같은 ‘원초적 위치’에서는 우리가 의도하는 사회에서 어떤 사실들이 우리의 위치를 결정해 주는지 알지 못한다. 이처럼 ‘무지의 장막’에 갇힌 상태에서 우리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하는 요소들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해 공평한 관심을 갖게 된다.
1-9. 롤스는 이와 같은 단체 설립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을 따르기를 바랄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 번째 원칙은 각자는 모든 사람에게 비슷하게 주어진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공정한 경쟁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는 직책과 지위에 부여되어야 하며, 이런 불평등은 그것이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조정되었을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만일 두 원칙이 상충하게 된다면,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 평등한 기회의 원칙에 우선한다.
1-10. (…) 그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도덕에 대한 완벽한 만장일치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롤스는 우리의 도덕 판단에 대해 논의하고, 반성을 가하고, 수정을 가함으로써 도덕적 문제에 관한 ‘중첩적 합의’라는 것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1-11. 롤스가 끝까지 겨냥하는 목표는 ‘반성적 평형’의 상태이다. 다양한 여러 시민들의 최초의 직감들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며, 한 개인의 직감들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직감들에 대해 반성적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옹호할 수 있는 원칙으로 명확히 표현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일관성과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우리가 공식화한 규칙들에 거슬리는 직감들을 처리하고자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에 훨씬 더 조화로운 도덕적 원칙들의 확립을 기대할 수 있다.

공리주의의 수정~단념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견해

공리주의의 수정

1-1. 존 스튜어트 밀은 벤담과 마찬가지로 결과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공격적으로 여겨졌던 벤담의 학설을 다른 방식으로 완화시켰다. 우리는 쾌락을 양적으로 구별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구별하게 된다.

1-2. 그렇다면 쾌락의 서로 다른 종류를 어떻게 등급으로 나눌 것인가? 밀에 따르면, ‘두 가지 쾌락이 있는데, 둘 다 경험해 본 사람 모두 또는 거의 모두가 어떤 도덕적 의무감과도 관계없이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호한다면, 바로 그것이 더 바람직한 쾌락이다.’

또한 지성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온갖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무식한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족스러워 하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1-3. 밀에 따르면, 행복은 만족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필요로 한다. 저급한 쾌락이 제아무리 많다고 한들 자존감이 없으면 행복이 아니다. 따라서 최대 행복의 원리는 다시 진술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자의식과 자기 관찰의 습관을 갖게 된 사람들은 질의 시금석 및 질을 양과 대비해서 측정하는 척도를 선호함으로써 최선의 비교 수단을 갖추게 된다. “

1-4. 어느 비판자가 공리주의는 돼지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는 밀의 말을 시인한다고 해보자. 그럼에도 그 비판자는 공리주의가 최상의 인간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덕은 행복보다 중요하고, 절제와 자기희생의 행위는 가장 훌륭한 인간 행위이다. 밀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단념하는 것이 숭고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홀로 고행을 감수하는 금욕주의자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는 것과 그런 식의 감탄은 받을 만하다.’

1-5. 공리주의에 대한 반대는 두 가지 다른 형식으로 나타난다. 도덕률로서의 공리주의는 너무 엄격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너무 느슨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공리주의가 너무 엄격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거의 성인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이타주의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공리주의가 너무 느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떤 종류의 행위에 대한 절대적 금지를 융통성 있게 폐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용문 무슨 연관,,?)

1-6. 에서 밀은 두 전선을 모두 방어하려고 한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주장에 대적하여 그는 도덕적 표준과 행위 동기를 구별하라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공리주의가 모든 사람의 행복을 궁극적인 도덕적 표준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행복이 모든 행동의 목적일 필요는 없다.

1-7. 밀 자신이 가장 진지하게 취급하는 공리주의의 난점은 공리주의가 정의보다 편의를 더 선호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밀은 정의의 명령이 사실은 일반적인 편의 영역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그럼에도 편리한 것, 도덕적인 것, 공정한 것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고 응수한다. 어떤 것이 편리하다면, 공리주의적 근거에 따라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전혀 의무의 문제를 관련시킬 필요가 없다. 어떤 것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기도 하다면 의무가 발생하며, 의무를 완수하도록 정당하게 강제될 수 있다는 것은 의무 관념의 중요 요소이다. 즉 밀의 경우, 정의와 도덕적 권리 사이의 관계를 특징짓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불공정한 법적 권리가 있을 수 있고, 법과 상충되는 공정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1-8. 밀은 정의와 관련 있는 여러 관념들이 공리주의적 편의의 원리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최대 행복의 원리에 내재하는 문제, 즉 공동체에서 행복의 전체 총합을 늘리다 보니 도외시된 개인의 불행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는다.

1-9. 그뿐 아니라, 에서 밀은 분배적 정의의 형식이 체제마다 서로 다르게 제공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 말고는 분배적 정의에 관해 거의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2- 단념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견해

2-1. 쇼펜하우어의 윤리적 가르침은 그의 형이상학, 특히 경험 세계는 환상에 불과하고 진정한 실재인 물자체는 보편적 의지라는 주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개체들이 무에서 생겨나 선물로 생명을 얻은 다음 죽을 때 이 선물을 놓고 다시 무로 되돌아가는 것을 본다. 그러나 생명을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모든 현상 속의 물자체인 의지는 결코 생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2. 죽음은 개체성이 망각된 수면일 뿐이다. 하나의 개체가 또 하나의 개체와 구분되는 것은 현상에 불과하다. ‘물자체로서의 개체는 모든 것에 나타나는 의지이며, 죽음은 한 개체의 의식이 나머지 개체의 의식과 다르다는 착각을 없애 버린다. 이것이 내세 혹은 불멸이다.’

2-3. 도덕은 인격 수양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말인지는 우리가 칸트의 자유와 필연성의 조화를 받아들일 경우 쇼펜하우어에 따라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물자체인 의지는 영원토록 자유롭지만, 인간의 본성을 포함하여 자연의 모든 것은 필연성에 의해 결정된다. 물자체인 의지는 영원토록 자유롭지만, 인간의 본성을 포함하여 자연의 모든 것은 필연성에 의해 결정된다.

2-4. 우리의 모든 윤리적 행위가 인격에 의해 결정된다면,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쓸데없는 고생이므로, 행위로 나타나는 온갖 성향을 그 자체로서 만족스러운 것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거부하면서 인격을 여러 종류로 구별한다. 예지적 인격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근원적인 실재이고, 시간 바깥에 있으며,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상황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경험적 인격이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경험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예지적 인격의 본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획득된 인격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인격의 본성과 한계를 깨달은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인격이다. 이런 사람들은 가장 좋은 의미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있고, 그에 맞게 자신의 계획가 야망을 마름질하는 사람들이다.

2-5. 우리의 의지는 결코 변할 수 없지만, 우리의 의지를 인식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추상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충하는 동기들을 방치하지 않고 그 상충을 알아차리는데, 이것이 바로 선택을 가능하게 해 준다. ‘우리 자신의 정신과 온갖 종류의 정신 능력에 대한 인식, 그리고 변경할 수 없는 정신 능력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우리 자신에 대해 최고로 만족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2-6. 쇼펜하우어는 최상의 인간에 대해서조차도 만족스러워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의지의 피조물이고, 그 본성을 향한 의지는 만족을 모른다. 모든 의지의 기초는 결핍과 고통인데, 우리는 결핍이 충족될 때까지 줄곧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일단 충족되어 의지가 욕구할 대상이 없어지면, 인생은 권태라는 무거운 짐이 된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진자처럼 흔들린다’.

2-7. 의지의 포학을 피하는 아주 확실한 방법은 완전한 단념에 있다. 의지는 언제나 삶을 의욕한다. 그러므로 의지와 관계를 끊으려면, 삶에 대한 의지를 끊어야만 한다.

2-8. 단념은 자기 자신을 단념하는 것이며, 도덕적 진보는 이기주의, 다시 말해서 개인이 그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서 그 자신의 삶과 행복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키려는 경향성을 감소시키는 데 있다.

2-9. 일상적인 평범한 나쁜 사람은 자신의 의지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단 하나의 삶에 대한 의지의 현상적인 겉모습일 뿐임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를 할 때 고통이 나타나게 된다. 나쁜 사람의 후회는 좋은 사람의 징표인 단념의 반대 개념이다.

2-10.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사이에 중간 인격, 즉 공정한 사람이 있다. 나쁜 사람과 달리 공정한 사람은 개체성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는 절대적인 장벽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과 똑 같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만큼 타인의 삶에 대한 의지가 자기 자신의 의지와 동일한 수준에 있는 것으로 기꺼이 인정한다.

2-11. 정말 좋은 사람의 경우에는 개체성의 관문에 들어가기가 훨씬 더 용이하며, 개별화의 원리는 더 이상 절대적인 장벽이 아니다. 나쁜 사람은 자신과 타인이 현격하게 다르다고 보는 반면, 좋은 사람은 그 구별이 무상하고 공허한 현상에 속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2-12. 그러나 선행과 자비가 최고의 윤리적 상태는 아니므로 좋은 사람은 곧바로 그것을 뛰어넘고자 한다. “모든 존재 속에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자아를 깨닫는 그런 사람은 또한 고통을 겪는 모든 존재의 무한한 고통을 자기 자신의 고통으로 간주하고, 온 세상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명확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덕행을 뛰어넘어 금욕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현상적인 삶에 나타나는 온갖 것에 혐오감을 갖게 될 것이며, 비참한 이 세계의 씨앗인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려고 할 것이다.

2-13. 쇼펜하우어는 종교적 진리를 적나라한 형태로 제시할 경우 교육받지 못한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에 그 진리에 신화적인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종교 체계들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는 ‘철학자가 성인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성인도 철학자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2-14. 쇼펜하우어의 산문의 효력과 은유의 매력은 그의 윤리 체계가 숭고하다는 인생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의 윤리 체계는 그릇된 형이상학에 기초해 있고, 자기 자신을 무능력하게 한다. 세계가 환상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믿거나 만족할 줄 모르는 의지가 궁극적 실재라고 인정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2-15. 쇼펜하우어는 왜 최종적으로 금욕주의 프로그램을 채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염세주의에 치우친 생각 말고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자비로운 사람일수록 확실히 자신의 살을 타인의 살과 더 많이 동일시하려고 한다지만, 왜 자신의 삶을 기쁨과는 관련짓지 않고 고통하고만 관련짓는 것일까?

2-16.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완전한 단념은 용어상의 모순인 것 같다. 왜냐하면 단념이 자발적인 것이라면 그 자체가 의지의 작용이며, 단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진정한 단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분석철학

4.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분석철학

 

 

1) 옥스퍼드의 형이상학 교수 라일은 1949년 <정신 개념>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라일은 능력지(knowing how)와 명제지(knowing that)의 구별을 강조했다. 2)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가 1953년에 유작으로 세상에 나오자, 생생하기는 했으나 투박하게 전개되었던 라일의 생각이 이제야 훨씬 더 치밀하고 심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5) 비트겐슈타인이 죽은 뒤 많은 사람들은 콰인을 영어권 철학의 일인자로 간주했다. 6) 철학에서 콰인의 목적은 고학 특히 물리 과학의 용어를 이용한 자연주의적 세계 설명의 기본 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경험주의자이면서 행동주의자인 그는 언어 분석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세계를 설명하는 모든 이론은 우리 감각에 입력된 것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7)콰인은 철저하게 경험주의적인 프로그램을 추구했으면서도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독단’으로 철학에 첫 번째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공격의 두 표적을 다음과 같은 말로 진술했다. ‘하나는 분석적 진리와 종합적 진리, 즉 사실의 문제와 무관하게 의미에 근거하는 진리와 사실에 근거하는 진리 사이에 근본적인 어떤 틈이 있다는 신념이다. 또 하나의 독단은 환원주의이다. 즉 개개의 의미 있는 진술은 직접 경험을 지칭하는 용어들로 이루어진 어떤 논리적 구성체와 동치라는 신념이다.’ 8) 콰인에 따르면, 검증되거나 반증되는 것은 단일 문장들이 아니라 체계 전체라는 것이다. ‘외부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진술들은 개인이 아니라 오로지 법인의 신분으로만 감각 경험의 심판을 받는다.’ 9) 콰인은 신념이나 이해와 같은 내포적 개념의 도움을 받아 해석되어야 하는 그런 의미란 없다고 단언했다. 의미는 언어 행동에 영향을 주는 감각적 자극들을 사상(mapping)함으로써 순전히 외연적인 용어들로 설명되어야 한다.

 

10) 콰인의 사고 실험 결과는 세 수준의 불확정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첫째, 개별적인 지칭 대상의 불확정성이 있다. 둘째, 언어 전체의 수준에 불확정성이 있다. 11) 우리는 세계에 대한 어떤 고정된 지식이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콰인의 초기 논문 ‘있는 것에 관하여’에서 ‘있는 것은 경계 변수’의 값이 있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12) 비트겐슈타인과 콰인은 유럽 대륙에서 유난히 분석철학의 지도적인 대표자 두 사람으로 간주되곤 했다. 사실 그들의 철학은 매우 다르다. 특히 두 사람은 철학의 본성에 관해 의견이 달랐다. 콰인은 분석-종합 구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철학과 경험 과학 사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가르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은은 과학주의, 즉 철학을 하나의 과학으로 보려는 시도를 몹시 싫어했다. 13) 그러나 미국에서는 콰인에 의해 도입된 과학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대표자 한 사람이 콰인의 하버드 제자인 데이비슨이었다. 14) 데이비슨의 의미 이론은 진리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진리 이론은 유한한 용어 목록과 유한한 구문론적 규칙들을 포함할 텐데, 그로부터 도출된 주장들로서 ‘ “S”는 p인 경우 오직 그 경우에서만 L에서 옳다’는 형식을 지닌 잠재적으로 무한한 수의 진리 문장들을 수반할 것이다.

 

15) 콰인과 마찬가지로, 데이비슨은 완전히 낯선 언어를 가진 공동체와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를 고려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예증한다. 그 언어를 해석하려면 우리는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장에 동의하는가를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언어에 대한 진리 이론을 세워야 한다. 16) 사람들의 실제적인 행동은 그들의 이유, 말하자면 데이비슨이 정신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욕구와 신념에 의해 결정된다. 이와 같은 정신적 사건과 정신적 사건에 의해 ‘합리화되는’ 행위의 관계는 인과적 관계이다. 그러나 데이비슨의 경우에는 그 인과 관계가 느슨하다.

 

16) 데이비슨은 물리적 사건이 아닌 사건은 결코 없다는 점에서 물질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인 것의 변칙성’이라는 것을 역설함으로써 이런 식의 자극적인 물질주의를 완화시키려고 한다. 어느 정신적 사건이든 물리적 사건과 동일하지만, 정신적인 것으로서의 사건과 물리적인 것으로서의 사건은 서로 다르게 기술된다.

 

17) 영국에는 줄곧 과학과 철학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믿는 철학자들과 그 경계가 정말 모호하다고 믿는 철학자들이 있었다. 라일이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들은 철학의 목표가 정보가 아니라 이해라고 주장했다. 스트로슨은 자신의 개인 교수인 그라이스와 함께 ‘독단에 대한 옹호’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분석-종합 구문에 관한 콰인의 공격을 논박했다.

 

18) 기술형이상학은 세계에 관한 우리 사고의 구조를 개선하려는 야심을 갖지 않고 그 사고의 실제 구조를 기술하고자 한다. 19) 스트로슨은 물질적 신체와 개인이 우리의 개념 지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 즉 이 두 종류의 개별자가 기본적인 개별자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20) 스트로슨의 경우, 물질적 신체 못지않게 개인 역시 기본적인 논리적 범주이다. 그러므로 원초적인 것은 정신 개념이 아니라 개인 개념이다. 그런데도 스트로슨은 신체가 죽은 뒤 자기 개체의 생존을 생각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었다. 21) 스트로슨은 2006년 초 자신의 죽음으로 영국철학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프로이트와 심리분석

 19세기 유럽 대륙과 영어권 나라들은 철학사상을 서로 지속적으로 교환했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저작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윌리엄 제임스는 미국에 근거지를 둔 상태로 독일에서 공부했고 영국에서 자주 강의했다. 젊은 시절의 러셀은 수학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독일의 프레게나 이탈리아의 페아노와 정기적으로 교신했다. 이처럼 당시 철학은 범세계적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자 대륙의 철학자들과 영어권 철학자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제 갈 길을 갔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러셀의 도움으로 세워진 분석적 전통의 철학이 학계를 지배했으며 유럽대륙에서는 장 폴 사르트르가 프랑스에서, 마르틴 하이데거가 주도한실존주의가 유행했다.

1. 프로이트와 심리분석

1-1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새로운 과학의 창안자로 인정받은 사람으로, 철학자는 아니었지만 20세기 영미철학적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자신이 프로이트주의자라고 말하는 철학자는 거의 없지만 그의 이론은 심리철학, 윤리학, 종교철학 분야의 사람들에게 참신하고 자극적이었다.

1-2

프로이트는 1856년 오스트리아 모라비아 지방의 비율법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860년 가족이 비엔나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의사교육을 받았으며 종합병원에서 두뇌해부전문의로 종사했다. 그는 신경학자 브로이어와 함께 히스테리 환자를 최면상태에서 치료하는 연구를 했고 3년 뒤 샤르코 밑에서 공부한 뒤 다시 돌아와 개업의사로 활동했다. 그해에 베르나이스와 결혼했고 여섯 아이가 태어났다.

1-3

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을 색다르게 분석한 히스테리 관련 저작을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출판했다. 이는 치료법으로 최면술이 아닌 정신분석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환자와 의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치료법의 기초가 되는 전제는 환자의 심리적 외상(trauma)에 대한 기억의 결과가 히스테리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기억나는 모든 것을 맘놓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장기간 환자들을 지켜본 결과 정신적외상의 원인은 유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성적인 내용을 갖는다고 확신했고, 유아기의 성적취향의 대한 이론은 브로이어와의 불화를 불러왔다.

의학동료들에게 따돌림 당한 프로이트는 비엔나에서 시술을 계속했다. 1900년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꿈의해석>>을 출판했고 이 책에서 그는 꿈 또한 억눌린 성적 욕구의 간접적 표현이라고 주장했으며 제시된 이론이 정상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1년뒤 그의 정신분석 이론을 수정하고 개선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첫 번째 연속출판물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을 내놓았다.

1902년 비엔나 대학의 신경병리학 특별교수로 임명되어 제자와 동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아들러와 융이 뛰어났지만 결국 그와 결별하고 자신들의 학파를 만들었다.

1923년 프로이트는 <<에고와 이드>>를 출간하여 새롭고 정교한 잠재의식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논쟁에 전혀 개의치 않고 <<환상의 미래>>에서 종교의 기원을 평가 절하하는 설명을 했다. 프로이트는 무신론자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문화에 동화하지 못하거나 반유대주의의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나치스가 정신분석을 금지시키고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그는 영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저작들은 블룸즈버리 그룹의 구성원들에 의해 번역되고 출판되었다. 그후 16년동안 턱암으로 고생하다가 본인의 뜻으로 치사량의 모르핀주사를 맞고 193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정신분석 연구는 막내딸 안나가 이어받았다.

1-4

프로이트는 초보자를 위한 강의에서 정신분석 이론을 두가지 기본적인 주장으로 요약했다.  첫째, 감정, 사고, 의지 중 어느 것이든 우리 정신생활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둘째, 넓은 의미의 성적 충동은 정신질환의 잠재적 원인으로 뿐만 아니라 예술적, 문화적 창조의 원동력으로도 지극히 중요하다. 만일 예술작품과 문화에서 성적요소가 무의식적인 것이 된다면 이것은 사회화 과정중에 기본적인 본능이 희생되어 그것이 승화된것, 다시 말해 본능의 목적을 바꾸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안정한 상태이며 억누를 수 없는 충족되지 못한 본능은 정신질환과 장애로 돌아올 수 있다.

그는 무의식이 일상생활의 사소한 실수, 꿈의 보고, 신경증 증상을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무의식의 구성요소로 간주한 신념, 욕구 감정은 신경증 증상이나 환자의 자의적 해석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자유연상을 활용해 분석가의 해석처럼 잠재의식의 근원적 형태가 드러난다고 믿었다.

이 근원적 형태의 핵심은 성의 발달이다. 유아기의 성적 관심은 쾌락이 입에 집중된 구강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 살에서 세 살 사이의 항문기, 어린이가 자신의 음경이나 음핵에 초점을 맞추는 음경기이다. 이때 남자아이는 감정발달의 결정적 단계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맞이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가 성적으로 어머니에게 이끌려 아버지가 어머니를 차지한다는 분노에 적개심이 생기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거세해 보복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따라서 그 아이는 성적의도를 단념하고 아버지에게 동화된다.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초기단계에 고착된 사람들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 소망의 회복과 억압의 역사는 모든 분석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또한 이 콤플렉스에 해당하는 여성이 있다고 확신했지만 설득력 있게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1-5

말년으로 가면서 프로이트는 초기의 의식과 무의식의 이분법을 정신의 삼중구조로 재정의 했다. 그의 저서인 <<에고와 이드>>에서 ‘정신 기관은 본능적 충동의 저장소인 이드(id), 이드의 가장 표면부위에 있어서 외부세계의 영향에 의해 수정되는 자아(ego), 그리고 이드에서 발생하여 에고를 지배하고 인간 특유의 본능 억제를 나타내는 초자아(superego)로 이루어져 있다’ 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자아는 영혼의 세부분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아가 이드나 초자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에 실패하면 정신이상이 나타난다. 자아와 이드의 충돌은 신경증으로, 이드와 초자아의 충돌은 우울증으로, 자아와 외부세계와의 충돌은 정신병으로 이어진다.

1-6

프로이트는 자신을 결정론을 발견하는 데에 헌신한 과학자로 여겼지만, 사실 그의 정밀한 이론들 대부분은 실험적 입장에서 엄밀히 검토되었을 때 기초가 약한 것으로 입증된 바 있다. 그의 정신분석 기법에 대한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은 효과와 효능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정신분석이 성공할 경우 그것은 결정론적 작용 과정을 밝힘으로써가 아니라 개인의 자기 인식과 선택의 자유를 확장함으로써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에 대한 사회적 관습,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의 이해,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인식과 관련한 그의 연구들과 관련한 온갖 이론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들은 사회와 인간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1-7

성적 충동이 인간의 정신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주장한 사상가는 프로이트 이전에도 존재했다. 이전의 신학자들은 그 기원과 전달 과정 및 결과가 성과 관련 있는 아담의 죄에서 인간의 현 상태가 비롯된 것으로 간주했다. 19세기에는 숙녀인 척하며 성욕을 감추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지곤 했다. 남자의 주요 관심사인 성관계가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일생의 우스갯소리였다는 쇼펜하우어의 격언을 프로이트는 즐겨 인용했다. 쇼펜하우어는 성욕은 그것을 묶어 놓으려는 온갖 각오를 비웃는 이 세상의 진정한 세습 군주라고 말했다.

프로이트가 유아기의 성적관심을 강조한 것은 당시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어린이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는 빅토리아 시대에 생겨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순진한 것은 유아의 마음이 아니라 손발의 연약함이다. 나는 시샘하는 갓난아이를 지켜보며 연구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나눠 먹는 자기 형을 노려보면서 아직 말을 하지는 못하고 질투와 괴로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누가 이 경험적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현대사회가 성에 관대해진 것은 피임약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로이트가 불러 일으킨 전체적인 사고 풍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성적 방종을 권장한 것이 아니라, 성적 욕구를 이런저런 수로로 통하는 배수구를 찾아야만 하는 심적 유동체로 보는것과 같은 은유를 통용시켰다. 그 은유에 따르면 금욕은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결국 그를 억제하는 장애물을 뚫고 나갈 수 밖에 없는 힘을 위태롭게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8

현대의 정신적 건강 개념은 프로이트, 브로이어, 샤르코가 히스테리 환자를 꾀병이 아닌 진짜 환자로 취급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의학적발견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결정이라고 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이 그것을 올바른 도덕적 결정으로 여길 것이다. 프로이트가 도덕과 의학의 경계선을 다시 그은 것이다. 임상적 판단과 도적적 평가를 구분하는 태도변화의 대표적인 예로 동성애를 들 수 있다. 오랫동안 범죄로 간주되어오다가 한세기 가까이 정신병리적 장애의 증상으로 여겨졌으며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합리적으로 선택된 대안적 생활 양식의 핵심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1-9

프로이트는 예술적 창조를 신경증과 유사한 것으로 여기는 등 호의적이지 않은 견해를 보였지만 그는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설가는 정신분석가의 시술 침상에서 이루어지는것과 비슷한 연상 기법을 이용하고, 비평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인 용어들로 문학 작품을 해석하기를 좋아한다. 역사가는 정신분석적 전기를 쓰고, 어린 시절의 실제 또는 상상의 에피소드를 기초로 하여 성숙한 유명 인사들의 행위를 분석하기를 즐겨한다. 화가와 조각가는 꿈의 세계에서 프로이트의 상징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했다.

1-10

우리는 정신분석 이론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흡수했다.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전혀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그들 자신의 프로이트 실책과 타인의 실책을 동일시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어느 철학자도 심리학과 도덕의 일상적 어휘에 이보다 더 큰 공헌을 하지는 못했다. 오든은 스물여덟에 난해한 사행시로 프로이트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끔 그가 틀렸더라면, 때로 불합리했더라면,

우리에게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데

이제 완전히 여론을 지배하네

Frege’s

The most important step in Frege’s logicist programme was to define arithmetical notions, such as that of number, in terms of purely logical notions, such as that of class. Frege achieves this by treating the cardinal numbers as classes of equivalent classes, that is to say, of classes with the same number of members. Thus the number two is the class of pairs, and the number three the class of trios. Such a definition at first sight appears circular, but in fact it is not since the notion of equivalence between classes can be defined without making use of the notion of number. Two classes are equivalent to each other if they can be mapped onto each other without residue. Thus, to take an example of Frege’s, a waiter may know that there are as many knives as there are plates on a table without knowing how many of each there are. All he needs to do is to observe that there is a knife to the right of every plate and a plate to the left of every knife.

Thus, we could define four as the class of all classes equivalent to the class of gospel-makers. But such a definition would be useless for the logicist’s purpose since the fact that there were four gospel-makers is no part of logic. Frege has to find, for each number, not only a class of the right size, but one whose size is guaranteed by logic. He does this by beginning with zero as the first of the number series. This can be defined in purely logical terms as the class of all classes equivalent to the class of objects that are not identical with themselves: a class that obviously has no members (‘the null class’). We can then go on to define the number one as the class of all classes equivalent to the class whose only member is zero. In order to pass from these definitions to definitions of the other natural numbers Frege needs to define the notion of ‘succeeding’ in the sense in which three succeeds two, and four succeeds three, in the number series. He defines ‘n immediately succeeds m’ as ‘There exists a concept F, and an object falling under it x, such that the number of Fs is n and the number of Fs not identical with x is m’. With the aid of this definition the other numbers can be defined without using any notions other than logical ones such as identity, class, and class-equivalence.

지식의 단계에 관한 스피노자의 견해

  • 스피노자의 체계에서 인식론은 로크의 체계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미묘한 특성을 드러낸다. 초기 저술인 <<지성개선론>>에서 스피노자는 지식 또는 지각을 네 단계로 분류한다. 그 단계는 소문에 의한 지식, 엄밀하지 않은 경험으로부터의 지식, 다른 사물의 본질로부터 추론된, 어떤 사물의 본질에 대한 지식이지만 그리 적절하지 않은 종류의 지식,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물의 본질에 의해서 인식되는 지식으로 이루어진다. 네 번째 종류의 지식이 사물을 적절하고 오류가 없이 파악하도록 이끄는 유일한 지식이다. 비록 스피노자가 이런 형태의 지식을 모두 지각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순수한 감각적 지각 자체는 지식의 종류 중 하나로 포함되지 않는다.
  • 후기 저술인 <<에티카>>에서 스피노자는 소문에 의한 지식을 제외한 세 종류로 지식을 분류한다. 이 세 종류의 지식은 이른바 상상적 지식, 이성적 지식 그리고 직관적 지식이다.
  • 데카르트나 로크와 마찬가지로 스피노자는 지식을 우리 정신 안의 관념과 관련해서 설명하며,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로 ‘관념’이라는 용어 안에 개념과 명제를 모두 포함시킨다. 그는 이런 종류의 개념과 명제를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스피노자가 ‘X의 관념’이라고 말할 때 자주 일종의 모호함이 발견된다. X의 관념은 X가 지니는 관념인가 아니면 그 내용이 X인 관념인가? 스피노자가 신의 관념이 신의 본질과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말할 때 그는 분명히 신이 소유한 관념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이처럼 명확하지는 않다.
  • 스피노자의 주장에 따르면 만일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그것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우리가 그것을 인식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는 사실도 인식한다. 그는 철학자들이 지식을 단순한 믿음과 구별해 주는 확실성을 갖는 기준을 찾으려 하는 것이 잘못된 철학적 목표라고 말한다. 우리가 인식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식해야만 한다. 참된 관념을 지닌 사람은 이 자체만으로 자신이 참된 관념을 지녔다는 사실 또한 인식하며, 관념이 참임을 의심할 수 없다. ‘우리의 인식은 오직 실제로 대상에 대응하는 관념을 지닌다는 사실로부터 생긴다. 바꾸어 말하면 진리에는 그 자체의 기준이 있다’라고 철학자들의 확신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 지식의 서로 다른 단계는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니는 관념들에 대응한다. 어떤 관념이 적합하지 않으면서도 참일 수 있고, 또한 명석, 판명하지 않으면서도 적합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일반 관념의 근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한다. “인용”
  • 모든 사람들은 사물의 속성을 적합하게 반영하는, 연장성과 운동의 관념과 같은 관념들을 공통적으로 지닌다. 스피노자는 적합한 관념을 ‘대상과의 관련이 없이 오직 그 자체만으로 고려하는 한에서 참된 관념의 모든 속성 또는 본질적 특징을 지니는 관념’이라고 정의한다. 이 적합한 관념들은 서로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필연적 진리의 체계를 형성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성적 지식이며 두 번째 종류의 지식을 형성한다. 이로써 두 번째와 세 번째 종류의 지식은 모두 참되고 적합한 관념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 세 번째 종류인 직관적 지식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지식이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이것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성이 단계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반면 직관은 사물의 보편적 특징과 그것이 세계 전체의 인과적 질서에서 차지하는 위치까지 단번에 파악한다. ‘이런 종류의 지식은 신의 어떤 속성이 지닌 형식적 본질에 대한 적합한 관념으로부터 사물의 본질에 관한 적합한 지식으로 나아간다’.
  • 스피노자의 인식론이 답해야 할 마지막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그는 그 어떤 관념의 내용에도 그것이 참이라는 점 이외에 다른 어떤 적극적인 요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관념이 거짓이 될 수 있는 어떤 적극적인 요소도 그 관념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류는 도대체 어떻게 발생하는가? 이에 대하여 스피노자는 의지와 지성을 서로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데카르트와 같은 방식의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는 오류란 전혀 적극적인 것이 아니며, 반드시 존재해야 할 어떤 관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대답한다. 판단의 유보와 관련하여 스피노자는 그것이 가능하기는 하나 의지의 어떤 자유로운 작용에 의해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이 꿈꾸고 있다는 꿈을 꿀 경우 심지어 꿈에서조차도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

시민 정부에 관한 로크의 견해

1. 시대적 배경

스피노자가 자신의 저술을 쓴 시기는 영국의 찰스 2세의 재위 기간이었는데 이 시기에 영국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왕권신수설이 화두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정주의자인 필머의 저술인 <<가부장제 또는 왕의 자연적 권력>>가 출판 되었다. 물론 저자인 필머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저술은 로크의 손쉬운 비판 대상이 되었다.

2. 로크의 정치사상

2-1. 자연 상태와 재산권에 대한 견해

로크의 정치적 사상이 담긴 저술은 <<시민 정부에 관한 두 논고>>가 있는데 그는 여기서 홉스와 같이 자연 상태에 대한 고찰을 논의의 시작으로 삼는다. 로크는 필머가 인간 본성에 대하여 잘못 파악하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비판한다. 그러면서 로크는 자연 상태에 사람들은 우열이 없고 모두 정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합의를 이루어 평온하게 살아간다고 주장한다. 로크는 홉스와 같이 자연 상태에 대한 고찰로 정치적 사상을 시작하지만 자연 상태에 대한 견해는 차이가 존재한다. 로크는 자연 상태가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자연법을 알고 있고 이 자연법이 자연권을 부여하여서 상호 간의 전쟁 상태가 아니라 주장한다.

로크의 독창적인 부분은 자연 상태의 재산권에 대한 것으로 그는 자연 상태에서 재산이라는 것을 성립시키지 위한 조건으로 노동을 제시한다. 즉 자신의 노동은 명백히 자신의 것이라는 점에서 착안한 발상으로 노동과 자연적 재화를 결합하며 노동의 대가와 결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권리는 무제한적이지는 않는데 자신의 소비 한도 내에서만 자신의 권리를 지니게 된다. 즉 자연적 재화에 대한 무자비한 손실을 막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권리로서 얻은 재화는 자신의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데 이는 상속권으로 자연적이며 어떤 성문법보다 앞선다.

이러한 재산권에 대한 로크의 견해는 국가의 형성이유로 이어진다. 로크는 재산권이 어떠한 계약보다 앞서며 존재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소유가 불안정함(자연법을 알지만 중앙 권력의 부재로 재산 침해에 대한 방책이 없음)을 파악한다. 이에 따라 재산의 소유 안정화와 재산권 침해에 대한 공적인 처벌권을 위하여 국가를 형성하게 된다. 즉 국가는 사람들이 자연적 자유를 일부 국가에 양도하기로 합의하며 상호 간의 안정을 도모하여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한다.

2-2. 국가의 역할과 명시적 동의와 암묵적 동의의 구분

국가의 역할에는 개인의 재산권 침해에 대한 방지와 자연법 준수에 대한 강제성을 부여하는 것 외에도 두 가지가 더 있다. 그 두 가지는 토지의 경계를 결정하는 것과 화폐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역할을 국가가 함으로써 개인의 재산은 필요이상으로 축적될 수 있으며 이는 곧 사회 전체의 이익 증가로 이루어질 수 있다.

로크는 법의 제정 권리와 법의 집행 권리를 시민들의 공공선을 위한 입법부와 행정부로 양도한다고 보았다. 물론 양도함에 따라 각각의 형태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며 서로 분리되어야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행정부가 사형권이 있다면 문제가 발생하는데 어느 누구도 자살할 권리가 없는데 타인을 죽일 권리 또한 없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필머는 타인에 대한 처형권이 신에게서 온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로크는 그러한 사회 계약이 이루어진 전례가 없다는 것으로 반박을 한다.

로크의 주요한 점은 명시적 동의와 암묵적 동의를 구별했다는 점이다. 그는 어떤 정부라도 각 세대의 시민들의 지속적 동의하에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고 이런 동의는 명시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우며 사회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 모두가 암묵적 동의를 한다고 구분한다. 물론 야인의 경우 사회적 이익을 얻을 필요가 없기에 이러한 암묵적 동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2-3. 로크와 홉스의 견해차이 및 로크의 정치론 평가

로크의 정치론과 홉스의 사회계약설과의 차이점은 통치자의 계약 참여 여부이다. 로크의 경우 통치자 또한 사회계약에 참여함으로서 공동체의 신뢰를 받는 관리자 역할을 한다. 이러한 신뢰를 저버리게 될 경우 국민들은 정부에 대한 변경이나 제거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제정한 법률은 3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법률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한다. 둘째 법률은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제정되어야 한다. 셋째 법률은 국민들의 동의가 없이는 어떤 세금도 부과해서는 안 된다.

로크의 정체 체계는 독창적이지도 않고 일관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로크는 자연법 이론과 국가들 사이의 자발적 연합 이론을 원활하진 않지만 연결하였고 이후 큰 영향을 주었다.

스피노자의 정치적 결정론

스피노자의 정치적 견해를 드러낸 저술은 <<신학정치론>>이 있는데 이는 홉스의 <<리바이어던>>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을 지닌다. 유사한 내용을 지니게 된 이유는 두 철학자 모두 결정론자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같은 견해를 가지고 정치적 논의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자연법 혹은 자연권에 대해 “각 개인이 다른 어떤 것과도 무관하게 오직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자연의 지배적인 법칙이며 권리” 라 설명하면서 이러한 자연법 혹은 자연권은 모든 것에 대하여 해당한다고 말하였다.

스피노자는 개인의 자연권이 이성이 아닌 욕구와 능력에 의하여 규정되지만 인간은 이성을 따라서 사는 것이 낫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증오나 원한 같은 감정은 자연 상태이지만 이것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쉽게 병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성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하고 타인과 합의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사람 간의 합의는 그 합의의 유용성에 한정되어서만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유용성에 따라 언제든 합의가 깨질 가능성이 있기에 각 개인이 자연권을 양도한 정치 체제에서 계약위반 했을 때 더 큰 불이익이 있을 것을 뒷받침 해주어야한다.

시민사회에서 통치자의 권리는 개인의 권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권력이 미치는 한도 내에서만 효력이 있다. 이로 인하여 개인의 권리가 국가로의 완전한 양도가 불가능 해지는데 이점에서 홉스와 차이를 보인다. 즉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에 의하여 내적 정서를 강요받을 수 없고 자유로운 추론이나 판달 할 자연권을 자진하여 양도하지 않으며 강요당할 수 없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민주정부 아래에서는 모두가(통치자조차도) 개인의 자연권을 사회에 양도하기에 평등하다. 또한 스피노자는 국가에 복종해야하는 이유를 홉스의 견해에서 나아가 국가가 자신의 완전한 자기실현의 삶을 도와준다는 측면에서도 설명하였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국가 이론을 히브리인들의 역사와 연관하여 고찰하였다. 그 결과 그는 몇 가지 구체적 결론을 도출한다. 첫째 성직자가 정치적 권력을 쥐면 항상 문제가 발생한다. 둘째 훌륭한 정부는 종교적 신앙과 철학 사상의 자유를 허용한다. 셋째 모든 사람은 자신의 종교나 신념의 자유가 있다. 넷째 군주정이 확립되고 난 이후 그것에서 벗어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실재론과 관념론, 관념론의 인식론

실재론 대 관념론

칸트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아프리오리(apriori)한 요소들에 대한 설명은 획기적이지만 인식론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지각한 것이 만약 대부분이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실재하는 외부세계에 관한 어떤 지식이라도 얻을 수 있는가? 란 내용이다. 이 문제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시간과 공간이 경험상 실재적이지만 선험적으로 관념이라 말하면서부터 대두되었는데 시공간에 대하여 칸트는 주관이 없다면 시공간은 없어지며 현상으로서 시공간은 그자체로 현존하지 못하여 오직 우리 안에서만 현존한다고 말 하였다.

시공간을 주관적으로 파악한다면 단순한 현상 너머의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해 칸트는 경험에서 모든 인간에서 속할 수 있는 바와 한 가지 관점에만 속하는 바를 구분해야 한다고 답한다. 또한 칸트는 실재와 현상 사이의 구별은 단순한 경험적인 것일 뿐이라 말하며 첨언한다. 이런 점들로 인하여 칸트를 관념론자로 여기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칸트 이전의 관념론자들과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전의 관념론자인 데카르트나 버클리와 견해를 같이하기 보다는 외부 경험을 전제함으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칸트는 우리의 내부 경험은 오직 외부 경험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변화의 지각은 영속적인 것에 대한 지각을 포함하는 일이라 하며 이 영속적인 것이 자신이 아니기에 경험을 통합하는 주관이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내부 주관을 경험으로 판단하기위하여 외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철학자들이 현상계와 본체계를 구별한다고 주장하지만 단지 현상만이 있는 세계 혹은 감각적 자료의 세계만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며 본체계 역시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에 관한 언급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에 관한 현상이라 말할 수밖에 없기에 어떤 것을 상정해야만 한다. 칸트에 따르자면 이 어떤 것이 선험적 대상이며 이것은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만을 어떤 것의 속성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선험적 대상에 대하여는 어떠한 범주 구분에도 포함되지 않기에 본체계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이해해야한다고 말한다. 칸트의 이런 주장들은 그가 스스로를 선험적 관념론자로 여기면서 동시에 경험적 수준에서 실재론자로 여기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버클리나 데카르트의 견해는 칸트의 견해와 유사성이 덜한데 그의 견해와 좀 더 유사한 입장은 아퀴나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감각과 지성 사이의 협력을 통해서만 지식이 성립한다는 점이다. 즉 경험과 개념을 동시에 파악해야만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퀴나스와 칸트 모두 이러한 주장에 따라 관념론자라 볼 수 도 있지만 아퀴나스의 경우 관념은 정신의 보편으로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사고의 대상이 관념에 대한 것은 아니기에 자연적 대상의 실재를 인정하는 면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칸트의 경우 물자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 버클리와 다른 견해를 지니지만 물자체에 대한 그 어떠한 접근도 불가능하며 언급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저술에서 드러난 물자체는 실제로 현상의 본체로서 어떤 것이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인 듯 보인다.

관념론의 인식론

칸트의 체계는 그의 사후 바로 비판을 받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피히테는 <<순수이성비판>>에 근본적 모순이 내재한다고 비판했다. 그 비판이란 경험이 물자체에서 야기된다는 주장과 원인의 개념이 오직 현상의 영역에서만 적용된다는 주장이 서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런 모순이 있기에 피히테는 이것을 피하기 위해 경험을 정신의 창조물이라 여기는 관념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방법의 일종이라 하였다. 그러나 피히테는 개별적 자아의 주관성에서 세계를 끌어낼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였기에 독일의 관념론은 헤겔에 의해 더 발전되었다. 헤겔은 피히테와 달리 정신의 창조 활동을 세계를 포괄하는 영역까지 끌어올렸으며 이외에도 지식이나 지각의 본성에 대한 여러 가지 통찰을 제시한다.

헤겔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의식 -> 자기의식 -> 이성 이라는 위계질서로 파악하며 그 종류를 구분한다. 이 중 의식은 감각적 의식 지각 오성으로 또 한 번 나누어진다. 감각적 의식은 감각적 자료의 수용 단계로 헤겔 전후의 철학자들에게 가장 확고한 형태의 지식이라 여겨졌지만 헤겔에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헤겔은 감각적 자료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성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하여 완전한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감각자료의 규정을 위해선 보편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지각의 단계에서 지식이 될 수 있지만 그 지식은 불완전한 환영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다양한 감각 경험을 하나의 실체에 속한 속성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비감각적 범주에 호소하여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오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오성의 영역에서 의식을 구성하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되며 자기의식의 단계로 넘어간다. 의식과 자기의식의 단계는 이후 상위의 단계인 이성으로 발전하는데 이성은 자연과 정신 모두를 일종의 무한 정신이라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인식론과 형이상학이 교차 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무한 정신이라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이성은 살아있는 정신의 하나로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