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 ˂˂법률˃˃과 ˂˂티마이오스˃˃

1.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1-1. 플라톤의 이론으로 전환

플라톤의 초기 후반의 대화편에서 언급된 덕에 대한 주장이 소크라테스의 진짜 주장인지에 대한 진위 여부를 떠나 플라톤의 대화편 ˂˂메논˃˃ 과 ˂˂파이돈˃˃에서는 덕에 대한 완전히 다른 주장이 제시된다. 그 주장은 ‘덕이나 선과 악에 관한 지식은 현세에서는 가르칠 수 없고 오직 더 나은 세상을 상기함으로써 그 지식을 회복할 수 있다.’ 라는 것으로 이 주장을 상기설이라 부를 수 있다. 또한 ˂˂파이돈˃˃에서는 이데아론이 도입되는데 그것은 크기에 대한 절대적 동일성을 경험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을 통해 크기뿐만 아니라 다른 절대적인 관념들도 마찬가지로 경험이 아닌 전생을 통해 얻었던 것으로 주장된다.

즉 ˂˂메논˃˃과 ˂˂파이돈˃˃에서 도입된 이론들(상기설과 이데아론)은 플라톤이 제시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보편적 정의와 우리가 일상적 세계에서 대하는 경험적 실재들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며칠을 묘사하는데 이 부분을 통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하여 언급한다.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이데아론이 동시에 소개되지만 실제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플라톤 자신의 이론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소크라테스 개인의 철학이 사라져가고 플라톤주의로 변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1-2. 소크라테스 죽음 이후 플라톤의 생애

소크라테스의 죽음 당시 플라톤은 20대 후반이었으며 자신의 형제들과 달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삼촌들과 달리 정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40세 때 시칠리아로 가서 피타고라스학파의 학자들과 교류하고 아테네로 돌아온 후 아카데메이아(Academy)를 세웠고 그 기관에서는 천문학, 수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을 가르치며 여러 사상가들이 의견을 나누었다. 60세 때 시칠리아를 재방문하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이후의 방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80세 때 세상을 떠났다.

플라톤의 생애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에 생애에 대한 분명한 사실들을 알고 싶다면 그의 저술에 포함되는 편지들을 읽는 것이 최선이다. 이 편지에서는 플라톤이 마지막 20년간 행했던 정치적 이상의 구현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된다.

플라톤의 저술들을 오늘날 50만 단어에 이르는데 그 저술들은 고대 후기 학자들에게 많이 인용되며 수많은 대화편 형식의 저술들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양측의 주장들을 고루 살펴 볼 수 있다는 중요성이 있다. 물론 대화편 형식으로 인하여 어느 주장이 플라톤 본인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인지 항상 주의를 기울여 살펴봐야한다.

2.이데아론

2-1. 이데아론의 배경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가장 자주 발견되는 견해는 이데아론인데 많은 대화편들에서 암시적이나 당연시되게 주장된다. 하지만 이데아론에 대한 가장 명확한 언급은 일곱 번째 편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편지에 언급된 이데아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우리가 지식을 얻으려면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로 이름, 둘째로 정의, 셋째로 형태가 필요하다. 지식자체는 네 번째 요소이며 또한 우리가 요청해야하는 다섯 번째 요소도 있는데 이는 인식 가능한 동시에 진정으로 실재하는 무엇인가이다. 」

플라톤의 언급한 진정으로 실재하는 무엇이 바로 이데아라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4가지 요소 즉 이름, 정의, 형태, 지식 등과는 분명히 구별된다. 다른 저술들에서도 이데아를 지칭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형상’(eide)이라는 표현이 가장 널리 사용된다.

플라톤은 이 편지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물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른 저술들에서 명백히 제시된다. 우리가 경험을 통해 접하는 원들은 결코 완벽한 원이 아니며 우리가 가진 원의 개념은 불완전(경험을 통한 원의 이해)하여 원 자체 즉 원의 이데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데아는 어떤 개인이 지니는 정신적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정신이 지닌 원의 개념은 완벽한 원에 대한 개념이다.

2-2. 이데아론의 원리

플라톤은 주어의 위치와 술어의 위치에 놓인 단어와 문장을 고찰하여 이데아를 도입한다. 하나의 공통적 술어가 많은 개체들에 대하여 참인 경우에 플라톤은 많은 개체들이 이데아를 모방하거나 혹은 분유한다고 표현하여 공통된 이데아가 있다는 원리를 적용한다. 이데아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플라톤의 주장은 6가지 원리로 표현되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공통성의 원리: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F라면 그 까닭은 이들이 F라는 이데아를 한 가지 요소로 분유하거나 모방하기 때문이다.
  2. 분리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인 모든 것들과 구별된다.
  3. 자기서술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 자체이다.
  4. 순수성의 원리: F의 이데아는 다름 아닌 F일 뿐이다.
  5. 유일성의 원리: 오직 F의 이데아만이 진정으로 참으로 전적으로 F이다.

6, 절대성의 원리: 이데아는 영원히 지속되며 어떤 부분으로 나뉘지도 변화하지도 않는다. 또한 감각을 통해 지각되지 않는다.

공통성의 원리는 플라톤만의 이론은 아니지만 플라톤의 특유한 점으로는 ‘공통적으로 지닌’ 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진지하게 추적하여 이데아의 유일성에 대해 논하였다. 분리의 원리는 이데아와 이데아를 드러내는 개체들 사이에 계층 개념과 연결되며 각각은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함을 뜻한다. 자기서술의 원리는 이데아가 개체들에 속성으로 드러나게 되는지 설명해준다. 즉 F의 이데아가 F자체이기에 F가 그러한 속성을 가지게 된다.

순수성의 원리는 F의 이데아가 F의 완벽한 표본으로써 혼합되거나 희석될 수 없음을 뜻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만약 순수성의 원리가 없다면 이데아 간의 계층문제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일성의 원리는 이데아만이 오직 진정으로 존재하고 개체들은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있음을 뜻하는데 이는 F의 이데아만이 오직 진정으로 F임을 의미한다. 정통적으로 이데아론에서 중요한 특성은 절대성의 원리인데 여기서는 개체들은 변화하는 낮은 세계에 속하는 반면 이데아는 영원불변에 세계에 속함을 나타낸다. 나아가 모든 이데아 중 선의 이데아가 최고이며 인식 가능한 모든 것에 존재함을 뜻한다.

이데아론의 문제는 각 원리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분리의 원리와 공통성의 원리, 자기서술의 원리들을 각각 적용하였을 때 무한 역행이 발생함을 플라톤 자신이 ˂˂파르메니데스˃˃에서 지적하였다.

2-3. 이데아론의 적용과 문제들에 대한 현대적 논의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통하여 많은 철학적 문제들에 대하여 적용해 답하는데 대표적인 문제가 보편의 문제로 이는 보편명사의 의미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 보편 문제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은 점에서 여전히 난제로 남아있다. 보편의 문제에 대한 현대의 논의에는 술어, 집합, 전형, 구체적 보편, 등의 용어들이 나오는 데 이들은 모두 이데아와 유사점을 보인다. 이 개념들 모두 플라톤의 이데아가 지닌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지는 못하며 플라톤의 여섯 가지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피기 위해서는 평범한 개념들(나침반의 동서남북 같은 것)을 통해 검토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물론 플라톤의 원리 자체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없기에 어떠한 완벽한 해석도 존재할 수 없다.

3.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는 이데아론의 세분화된 분야로의 확장이 있지만 그러한 응용보다도 정치 제도에 대한 묘사 때문에 더 유명하다. 이 책의 겉으로 드러난 주제는 정의(正義)이다. ˂˂국가˃˃에서는 정의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려하고 그에 반대하는 도전들이 이어진다. 이러한 도전들에 이어 답한 후 플라톤은 개인의 정의에서 도시국가에서의 정의라는 큰 주제로 나아간다. 이 주제에서 플라톤은 정치적 질서가 필요함을 역설한 후 세 가지 계층으로 구성된 도시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그 3가지 계층은 1.수호자 2.군인 3.시민으로 구성되며 수호자가 가장 높은 계층이다. 각 계층은 자신들의 일이 있으며 제한 또한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국가˃˃를 통해서 드러내는 이러한 정치체제의 틀은 영혼이 지닌 정의의 본성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플라톤은 ˂˂국가˃˃의 후반부에서 다시 정치 이론으로 돌아오는데 그는 자신의 이상국가가 모든 중요한 덕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말하고 각 계층이 대표하는 덕이 있음을 말하고 각 계층의 노동 분화는 정의로운 국가를 위해서라 말한다. 이상 국가에 대하여 말하고 나서 플라톤은 덜 이상적인 국가들은 이상에서 멀어지며 5가지의 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된다고 말한다. 1.귀족정치로 지혜로운 자가 통치하는 최선의 정치 체제이다. 이후로 2.명예 지상 정치, 3.과두정치, 4.민주정치, 5.전제 정치이며 각 체제로 갈수록 타락한 형태라 설명한다. 왜냐하면 최선의 정치체제에서 덕목을 하나 씩 상실하며 체제가 변하기 때문이다. 순서대로 지혜, 용기, 절제, 불의가 드러난 모습으로 통치자가 덕목을 읽을 때마다 1->2->3->4->5 로 변한다.

4. ˂˂법률˃˃과 ˂˂티마이오스˃˃

4-1. ˂˂법률˃˃

플라톤은 말년에 이르러 철인통치론을 포기하고 이데아론이 정치적 중요성을 지닌다는 생각을 철회한다. 그는 도시국가의 복지와 관련해서 법률의 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법률˃˃에서 묘사한 마그네시아란 도시국가에서 이러한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마그네시아는 ˂˂국가˃˃에서의 이상국가적 특징도 지니고 있는데 지혜롭고 탁월한 능력의 공무원들이 최고 권력을 지닌다는 점이나 여러 가지 법률에서 ˂˂국가˃˃에서의 이상국가적 면모를 찾아 볼 수 있다.

˂˂법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은 중반부에 등장하는 입법제도에 관한 설명이다. 대표적으로는 공무원들의 의무나 법률의 목적을 일반시민이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전문을 반드시 포함하게 하는 제도 등이 있다. ˂˂법률˃˃에서는 성행위에 관한 법률로 플라톤의 성도덕을 이론적인 측면에서 논의한다. 플라톤은 고대에는 드물었던 생각인 임신과 출산이 성행위의 본래 목적이라는 개념에 기초해 성윤리를 펼쳐나간다. ˂˂법률˃˃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10권의 신들의 숭배와 이교에 대한 문제의 언급으로 여기서는 플라톤이 제시하는 종교철학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4-2. ˂˂티마이오스˃˃

˂˂티마이오스˃˃의 저술 시기는 ˂˂법률˃˃과 상당히 겹치는 듯 보이는데 여기서는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 여기서 세계란 어떤 신성한 존재가 만들어낸 세계로 논의되며 플라톤의 우주론은 아낙사고라스가 불만족스럽게 남겨두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주요 논점으로 삼는다. ˂˂티마이오스˃˃에서는 우주의 시원과 역사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는데 우주가 어느 한 신성한 존재인 창조자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설명된다. 이러한 설명은 마친 창세기와 유사하지만 플라톤이 생각하는 창조자는 유대-기독교의 전통적 창조주와 다르다. 대표적인 차이점은 플라톤이 생각한 창조자는 세계를 무에서 창조하지 않으며 창조과정에서 그의 자유가 최초의 물질들이 지닌 필연적 속성에 의해 제한된다. 또한 플라톤은 세계의 생명들과 세계규정의 근거를 살아있는 원형들 즉 이데아의 세계에서 찾는다.

플라톤의 우주론은 우주가 오직 하나뿐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드러내고 엠페도클레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영향을 받아 세계가 네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고 각 요소들의 구성하는 원자들의 다른 형태에 영향을 받는다고 믿는다. 또한 창조자가 4 요소를 변환하는 방식에서 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에 등장하는 제일질료를 예견하는 듯 보인다. 나아가 ˂˂티마이오스˃˃에서는 신들의 구별 및 인간 영혼의 삼분법의 발전, 인간의 육체의 형성과 지각 과정 등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이런 내용의 ≪티마이오스≫는 다른 대화편들이 고대말기에 사라졌다 르네상스에 다시 등장한 것과는 달리 훗날 수세기동안 꾸준한 영향력을 끼친 작품이다.

와인 구매 데이터를 R로 분석하여 Gephi로 군집화, 시각화 하기

#와인 구매 데이터를 R로 분석하여 Gephi로 군집화, 시각화 하기

안녕하세요. 외대 철학과 스터디 그룹, LOPES의 배서연 입니다. 저희는 겨울방학에 『DATA SMART』를 교재로 세미나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세미나였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1장부터 9장까지는 엑셀을 가지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으며, 나머지 10장에서는 앞에서 엑셀를 가지고 분석한 것을 다시 R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은 이 책에 있는 분석들을 모두 R로 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 10장에서는 2장과 5장에 나와있는 와인 구매자 목록을 이용한 군집화 중 K-평균(정확하게 말하자면, 구형 k-평균(spherical K-means)을 이용한 군집화를 R로 구현하는 방법은 소개했지만, 5장 말미에 나오는 모듈성 극대화(maximize graph modularity)를 통한 군집화를 R로 구현하는 방법은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모듈성 극대화를 통한 와인 구매자 군집화를 R과 Gephi를 가지고 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사실 『DATA SMART』 2장에서는 엑셀을 이용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지만, 절대 참조를 고려하면서 수식을 짜고 구매자 수만큼 가로로 드래그를 해야 하는 등 약간의 번거로운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R를 이용하고 최종적으로 이 작업 결과는 가지고 Gephi를 이용하는 편이 더 간편합니다. 참고로 아래 R코드는 처리 방법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자료 확인하는 경우에는 그 결과가 길어서 일부러 삭제했습니다.

준비작업

예제 파일이 없으신 분은 Wiley: Data Smart: Using Data Science to Transform Information into Insight – John W. Foreman에서 chapter2를 다운받고, WineKMC 파일 안의 Matrix시트를 R에서 지정한 디렉토리 폴더에 csv형식으로 내보내 사용하거나 혹은 chapter10안의 WineKMC파일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R로 작업하기 ( 코사인 유사도 구하기, Cut-off 시키기)

코사인 유사도 구하기

나와 비슷한 친구들을 ‘가깝다’고 표현하듯이, 수 많은 데이터의 정보를 유사한 것끼리 군집화 시키기 위해서는 그들 간의 가까운 ‘거리’를 구해야 합니다. 여기서 거리는 코사인 유사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데이터를 행렬로 정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코사인 유사도란 유클리드, 맨하튼 거리법과 같이 대표적인 거리 측정 방법입니다. 이를 통해 각 구매자간의 유사함의 정도를 거리의 개념으로 변환시킬 수 있습니다. 코사인 유사도를 통한 두 구매자간의 거리의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cos (45°) =(1 matched purchase)/(√1purchase√2purchase)
= (공통으로 구매한 개수)/(√첫번째 사람의 구매 개수 √두번째 사 람의 구매 개수)

코사인 유사도 값은 0과 1사이의 값을 가집니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1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자기와 자기 자신과의 거리는 모두 1이 나타나게 됩니다. 구해진 코사인 유사도 행렬의 대각선 값을 보면 모두 1인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자신과의 거리는 무의미 하기 때문에 대각선의 1을 모두 0으로 바꿔줍니다. 아래 cos.sim 함수는 다음 링크를 참고했습니다.
clustering – Is there an R function that will compute the cosine dissimilarity matrix? – Cross Validated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관계는 지우고 강한 관계 들만 남기기 (Cut-off)
데이터가 커질수록 데이터들간의 관계는 복잡해지기 때문에 무의미한 관계들은 정리하는 것이 데이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앞에서 계산한 코사인 유사도는 에지 가중치가 0에서 1 사이의 값을 갖는 유사도 행렬(Affinity matrix)이기 때문에 특정 강도의 에지 이하를 모두 버리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여기서는 상위 20%만을 남길 Cut-off값을 구하고 그 값 이상은 1, 이하는 0인 행렬을 만들어줍니다. 이제 R로 직접 실행해봅시다.

Gephi를 이용해 군집화 시키기

군집화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인위적으로 군집화할 개수를 정하는 ‘분리형 군집화’ 방법이 있습니다. 예컨대, R의 clusters() 함수에서 군집을 5개로 옵션으로 정해주는 것이 이 군집화 방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결합 형 군집화(aggolomerative)’입니다. ‘결합형 군집화’는 원래 객체가 속해진 그룹에서 시작해 가장 가까운 그룹을 서로 합쳐 나가는 일을 반복하여 modularity의 변화를 계산한 뒤 최적의 군집화를 찾는 방법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Gephi’라는 프로그램은 바로 이 군집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Gephi가 받아들이는 실행 형식은 csv에서 쉼표(,)보다는 세미콜론(;)을 이용하기 때문에 텍스트 에디터를 사용하여 쉼표를 모두 세미콜론으로 바꿔주는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저는 Atom이라는 에디터를 사용했습니다.

Atom으로 형식 바꿔주기

Atom 에서 Atom을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장했던 winedataneighborhood.csv파일을 Atom으로 열어줍니다. 위 Find 탭에서 Replace in Buffer를 눌러 이름에 붙어있는 쌍따옴표(“)를 없애고 쉼표(,)를 세미콜론(;)으로 모두 바꿔줍니다.

Gephi로 군집화한 것을 시각화하기

Gephi – The Open Graph Viz Platform에서 Gephi를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Atom으로 바꿔준 winedataneighborhood.csv파일을 Gephi로 열어줍니다.이 파일은 방향성이 없기 때문에 undirected로 graph type을 설정합니다. Node 와 Edge 가 각각 100, 858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오른쪽 창의 Statistics창에서 Modularity를 눌러줍니다.이미 우리가 가중치(Weight)를 인접도 행렬에서 1인 값으로 바꾸어 주었기 때문에 체크되어 있는 use weight를 해제하고 눌러줍니다.Number of Communities: 6에서 군집이 6개로 나누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 appearance창에서 nodes – attribute를 눌러 modularity별로 색깔을 입혀줍니다. Lay out창을 통해 보기 좋은 형식을 선택해줍니다.밑에 검은 색 T버튼을 누르면 노드의 각 이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같은 색상 끼리 묶어져 있는 군집들이 보이시나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Gephi로 군집화한 것을 시각화하기

현대 양상논리학 (중간탈주)

현대 양상논리학

프레게나 러셀, 화이트헤드 등이 명제논리학이나 술어논리학, 기호논리학 등을 연구할 때 다른 논리학자들은 중세이래로 방치되었던 양상논리학(modal logic)을 연구하였다. 양상논리학은 필연성과 가능성 개념의 논리학인데 현대 양상논리학 연구는 함언(implication)에 대한 이론을 통해 그 개념들에 접근한다. 이러한 연구는 루이스의 저작에서부터 시작된다. 루이스는 러셀과 화이트헤드가 고안한 개념인 실질 함언(material implication) 이라는 것과 대비하여 엄밀 함언(strict implication) 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여 이것만이 진정한 함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주장에 이어 실질 함언 기호가 엄밀 함언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호로 대체된 공리 체계를 새웠는데 이것이 양상논리학의 최초 형식 체계가 되었다. 그러나 엄밀 함언 역시 실질 함언과 마찬가지로 역설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루이스의 양상에 관한 연구는 그자체로서 흥미로웠는데 그는 S1~S5까지의 서로 다른 공리체계를 제시했고 각각이 정합성 있고 독립적임을 증명했다. 이 중 가장 흥미로운 체계는 S4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p이다.

(2).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만일 p라면 q이다]라면 필연 적으로 q이다.)

(3). 만일 필연적으로 p라면, 필연적으로 p라는 것이 필연적이다.

이러한 S4는 필연성과 가능성의 상호 정의 가능성을 활용한다. 즉 ‘필연적으로는 가능하게 아닌 것이 아닌’ 으로 정의될 수 있고, ‘가능하게는 필연적으로 아닌 것이 아닌’ 으로 정의 될 수 있다.

양상논리학에는 수많은 진술들이 있는데 그 진술들의 진리치에 대하여 논리학자들의 의견일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진술들은 양상 연산자가 반복되는 것들인데 이것들의 예로는 S4나 S5가 있다. 이러한 논란은 논리학자들뿐만이 아니라 종교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신의 실존과 관련한 진술과 S5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양상 기호와 술어논리학의 양화사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은데 ‘필연적인’ 과 ‘가능한’의 상호 정의 가능성은 ‘모든’ 과 ‘약간’의 상호 정의 가능성과 유사하다. 또한 양화 이론의 분배법칙과 유사한 분배법칙이 양상논리학에도 있다. 이러한 유사점에 따라 양화를 양상논리학에 도입하여 양상 기호와 양화사를 함께 사용하면 이중 양화와 유사한 체계가 된다. 양화된 양상논리학에서는 양상 기호와 양화사가 놓인 순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그 순서에 따라 문장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양상 기호가 양화사보다 먼저 나오는 문장은 언어 양상(문장 예시는 책에서) 이라하며 양화사가 양상 기호 앞에 나오는 문장은 존재 양상이라 한다.

양화 이론과 양상논리학이 비슷한 점이 있다하여도 동일성 개념을 통해 보았을 경우 그 차이점 역시 드러나게 된다. 그 차이점은 콰인이 말하길 양상논리학은 양화의 문맥과 달리 지칭 대상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지칭대상의 불투명의 정의는 책 참조) 양상 문맥이 불투명한 경우는 쉽게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행성의 수가 9개 일 때 필연적으로 9는 7보다 크다는 옳지만 필연적으로 행성의 수는 7보다 크다는 옳지 않다. 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불투명 때문에 콰인은 양상논리학을 거부했지만 1970년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양상논리학은 꽤 훌륭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대 양상논리학에서 주요 주제는 필연성을 모든 가능 세계에서 옳은 것으로 정의하고 가능성을 일부 가능 세계에서 옳은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양화와 양상 사이의 유사점을 밝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진리는 모든 가능 세계 중 하나인 현실 세계에서만 진리로 간주되는데 가능 세계의 논의에서는 형이상학적 내용을 전혀 포함하지 않아도 된다. 즉 양상 의미론(양상의미론이 이루어지는 예시는 책을 통해서 봅시다)의 경우 어느 모형이든 적절한 형식적 구조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밀의 경험주의 논리학

밀의 경험주의 논리학

 

1.1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는 주요 부분이 둘로 나뉜다. 처음 두 권은 형식 논리학의 체계를 제시하고 나머지 네 권은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방법론을 다룬다. 그는 첫 번째 부분을 언어분석, 특히 명명 이론(theory of naming)으로 시작한다.

밀은 형식논리학을 진지하게 여긴 최초의 영국 경험주의자였으며, 그는 홉스 시절 이후 경험주의를 결부시킨 유명론과 자신이 관련이 없음을 분명하게 하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유명론은 명제에 대한 두 이름이 주어와 술어가 동일한 대상의 이름 일 때만 옳다는 이론이다. 밀은 홉스의 설명이 ‘툴리우스의 키케로이다’처럼 술어와 주어가 둘 다 고유 명사인 명제들에게만 적합하기에 다른 모든 명제들에 대해서는 부적합한 이론일 수밖에 없다.

밀은 ‘이름(name)’이라는 낱말을 아주 넓게 사용한다. 그는 고유명사나 대명사뿐만 아니라 ’정복자 윌리엄을 계승한 왕‘과 같은 한정 기술도 이름으로 여긴다. 그리고 ’인간‘이나 ’현명한‘과 같은 한정 기술도 이름으로 여긴다. 그리고 일반명사, 추상명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반적이건, 추상적이건, 구체적이건 모든 이름은 대상을 지시한다. 고유명사는 지명하는 대상을 지시하고 일반 명사는 그것이 적용되는 대상을 지시한다.’소크라테스‘라는 고유명사만 소크라테스를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명사 ’인간‘ ,’현명한‘ 역시 소크라테스를 지시한다. 일반명사는 이런 방식으로 외연뿐만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는 항목들도 있다. 일반 명사가 내포하는 것은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들, 즉 일반명사에 대한 사전적 정의에 명시될 수 있다.’인류가 현명하다는 말을 고정시킬 때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생각하지 않았다. ‘와 같이 논리학에서 내포는 외연에 앞선다.

‘이름’이 그처럼 다수의 명사들을 망라하기 때문에, 밀은 모든 명제가 이름들의 결합이라는 유명론자의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도 밀은 홉스의 견해와 관련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홉스와 달리 명제의 진리 조건을 제시할 때 내포에 의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모든 사람은 죽는다’와 같이 두 개의 내포적 용어를 연결하는 문장은 어떤 속성들, 동물성과 합리성을 지닌 것들은 언제나 죽음의 속성을 수반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1.2두 번째 책에서 밀은 추리를 실질적 추리와 언어적 추리 두 종류로 구별하여 논한다. 언어적 추리는 세계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가져오지 않는다. 언어에 관한 지식만 있으면 전제에서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어떤 위대한 장군도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로부터 ‘어떤 무모한 사람도 위대한 장군이 아니다/에 이르는 추리를 언어적 추리의 실례로 제시한다. 이 두 문제는 전제와 결론 둘 다 동일한 것을 주장한다고 말한다. 반면 실질적 추리는 전제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어떤 진리를 결론으로 추리한다.

밀은 새로운 진리들이 어떻게 일반적인 추론에 의해 발견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가 매우 까다롭다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추론이 정언적이라고 믿었으며, 모든 정언 논증에서 결론은 실제로 전제에 포함되어 있고 함의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로부터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와 같은 논증을 예로 들어 보자. 만약 이 논증이 연역적으로 타당하다면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명제는 좀 더 일반적인 가정인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전제해야한다. 다른 한편, 만약 소크라테스를 아직 죽지 않은 누군가의 이름으로 대체한다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긴 해도 그 결론은 증거를 요약한 첫 번째 전제에 의해 정당화되지 못한다. 고로 연역 추리는 진정한 추리가 아니다.

 

모든 추리는 특수 사례로부터 특수 사례로 나아간다. 일반 명제는 이미 만들어진 그와 같은 추리의 목록일 따름이고 이상의 추리를 위한 축약된 형식 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연역 추리의 주요 전제는 축약된 형식 문이며, 결론은 형식 문으로부터 도출된 추리가 아니라 형식 문에 따라서 도출된 추리이다. 실질적인 논리적 선행 조건이나 전제는 귀납에 의해 특수 사실들로부터 만들어진 일반 명제이다.

 

2.1.‘귀납’은 논리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특수 사례들로부터 일반적 진리를 이끌어내는 과정을 지칭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귀납이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피터는 유대인이다. 제임스는 유대인이다. 존은 유대인이다…….’라고 진술하고 계속 사도를 열거한다고 해보자. 나는 ‘모든 사도는 유대인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지만 밀은 그렇게 할 경우 실제로 특수에서 일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결론은 전제에 나타난 특수 사실들에 대한 압축적 표현일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일반화되는 항목들을 빠짐없이 완전히 조사한 것도 아니면서 그것들을 근거로 일반화할 때이다.

밀의 연역 논증에 대한 비판은 논리학과 인식론의 혼동에 연루되어 있다. 그가 말한 것처럼 추리는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서도 연역적으로 타당할 수 있다. 타당성은 논증이 옳은 정보를 산출하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정언 논증만이 추리의 유일한 형식은 아니며 실제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정언적이지 않은 타당한 논증들도 많이 있다. 예컨대, A=B, B=C, A=C와 같은 형식의 논증들. 정언 논증의 경우에도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죽는 것‘이 사람의 집합에 속하는 모든 원소의 이름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죽는 것‘이 내포하는 속성들 사이에 연관이 있다고 해석한다면, 연역추리가 실질적 추리가 되도록 설명을 할 수 있다.

2.2밀은 귀납이 아니고서야 그런 연관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자신의 논리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귀납적 발견의 규칙들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원인과 결과의 귀납적 발견에서 탐구자를 안내하는 실험적 조사와 다섯 가지 규칙 혹은 규범을 제시한다. 그 실례로서 처음 두 가지 규범을 검토해보자.

첫 번째는 일치법이다. 만일 현상 F가 상황 A, B, C와 관련하여 나타나고, 또 상황 C, D, E와 관련하여 나타난다면, 우리는 유일한 공통 특징인 C가 F와 인과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두 번째는 불일치법이다. 만일 F가 A, B, C가 있을 때는 나타나지만 A, B, D가 있을 때는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두 경우를 구별하는 유일한 특징인 C가 F와 인과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결론 내릴 것이다.

반드시 의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이런 규범들이 일상생활, 법정에서 늘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불일치법을 예증하기 위하여 ‘어떤 남자의 심장이 관통되었을 때, 그를 죽인 것은 발사도니 탄환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불일치법에 의해서이다. 왜냐하면 그는 직전까지 충만한 삶을 살았고, 부상을 제외하면 모든 상황이 동일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밀의 일치법과 불일치법은 베이컨의 존재와 부재의 표를 세련되게 만드는 것이다. 베이컨과 마찬가지로 밀의 방법은 일반 법칙의 불변성을 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밀은 ‘자연의 과정이 한결같다는 명제는 귀남의 기본 원리 혹은 일반 공리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하지만 이 일반 공리는 밀에 의하면 인과법칙과 멀리 떨어진 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면서 일반 공리 자체를 경험으로부터 일반화되는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 일반 원리가 귀납의 기반이라면, 일반 원리 자체가 어떻게 귀납에 의해 입증될 수 있는지 난감해진다. 그렇지만 밀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들뿐만 아니라, 무모순의 원리 자체를 포함하여 산술학과 논리학의 기본 법칙들까지도 아주 완벽하게 확증된 경험적 일반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고자 한다.

퍼스의 귀납과 가설추리

1-1

프레게가 논리학에서 새로 고안해낸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완전히 독자적으로 퍼스(C.S.Peirce)에게서도 나타나지만, 퍼스는 자신의 성과들을 엄밀한 체계로 구체화하지 않았으며 완성된 형태로 출판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논리학의 역사에서 과학적 탐구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역논리는 우리의 지식을 조직화 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추론유형은 귀납, 가설, 유비이다. 퍼스에 의하면 이와같은 추리들은 모두 본질상 표본 추출(sampling)에 의존하기 때문에 비연역적 추리에 대한설명은 수학적 확률 이론과 연관 될 수밖에 없다.

1-2

과학자들은 가설을 세우고, 가설을 기반으로 예측한 다음, 그 가설을 확증하거나 반박하기 위해 관찰을 한다. 퍼스는 이러한 단계를 가설추리(abduction), 연역(deduction), 귀납(induction)이라고 한다. 각 단계에서 차례대로 탐구자는 고려 대상 이론을 선택하고, 그 이론을 시험하는 방법을 명확히 진술한 뒤, 시험의 결과를 평가한다.

과학자는 어떤 가설이 귀납적 시험을 받을 만한 것인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과학자가 조사하고자 하는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들을 수없이 많을 수 있다. 과학자가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그는 어떤 이론을 조사해야 할 거인지에 관해 얼마간의 지침을 필요로 하는데, 추측의 논리 규칙들이 이 지침을 제공한다. 이론은 그것이 옳다면 실제로 설명력이 있어야만 한다. 이론은 경험적으로 시험 가능해야만 한다. 이론은 단순해야 하고, 자연현상에 관한 것이어야 하며, 앞서 일어났을 법한 일에 관한 우리의 주관적 의견과 반드시 정합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현존의 지식과 정합해야만 한다. (P7.220-1)

하지만 가설추리의 규칙들만으로는 과학자가 가설을 성공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과학자가 자연을 탐구할 때 자연 자체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과학은 우리가 올바르게 ‘추측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인간의 정신이 올바르게 추측하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가설들에 앞서 시험하려고 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없다면, 즉 지적인 추측이 모든 시험을 견뎌 낼 그 하나의 가설로 우리를 이끌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면… 진리를 습득하려는 온갖 시도를 단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P6.530)

이 신뢰는 비록 아무런 증거가 없을지라도 처음부터 전제되어야만 하지만 사실상 과학의 역사는 그와 같은 신뢰에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명석한 천재는 올바른 가설이 발견되기까지 두세 개 이상의 가설을 시험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1-3

일단 이론이 선택되면, 연역이 가설추리의 뒤를 잇는다. 연역의 귀결들은 선택된 가설에서 도출된 것으로서 가설이 정확하다면 옳거나 옳게 될 실험적 예측들이다. 펴스는 연역의 경우 정신이 습관의 지배를 받는다, 즉 일반적인 생각이 특수 사례를 제시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는 특수 예화의 예측을 검증하거나 반증함으로써 시험 대상인 가설을 확증하거나 경우에 따라 반박하기도 한다. 검증과 반증은 시험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귀납이며 이는 본질상 표본 추출의 문제이다.

뭐야이인용문은뭔소리야이게

1-4

퍼스에 의하면 우리가 잠정적으로 추리한다는 말은 우리의 경험이 무한히 확장되고 우리의 근사치가 무한히 좁혀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종류의 추리가 결코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확률 이론에 좌우되는 문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귀납은 양적귀납, 즉 표본의 비율로부터 모집단의 비율로 나아가는 추리이다.

과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중요한 또 다른 종류의 귀납은 질적 귀납인데 이는 어떤 개체의 하나 이상의 관찰된 성질로부터 관찰되지 않은 다른 성질을 추리하는 경우이다. 예를 위해 퍼스는 머그웜프(당파를 초월한 자주적 정치인) 개념을 도입한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사회적 명예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의 정치인들이 자기네 유권자를 관리할 때 요란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교제 활도을 대부분 못마땅해 한다…그는 공공 정책의 현안들 가운데 재정적인 고려 사항이 늘 중대 현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명사회의 최대 동력으로서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주의의 원리를 존중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이런 견해들이야말로 ‘머그웜프’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기차 안에서 어떤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가 계속 이런 식의 견해를 내세운다. 나는 당연히 그가 ‘머그웜프’라고 가정하기에 이른다. 바로 그것이 가설추리이다. 다시 말하면, 손쉽게 검증할 수 있는 머그웜프의 특징들을 골라냈기 때문에, 나는 이남자가 이런 특징들을 갖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그런 유형으로 생각하는 사람이게끔 하는 다른 모든 특징들을 그가 갖는다고 추리한다. (EWP 210)

이 실례는 퍼스가 말한 탐구의 세 단계를 예시한다. 나는 대화를 나눈 승객이 국회의원이 하층민의 비속한 행동을 한다고 개탄하는 것을 듣고 그가 머그웜프라는 가설을 세운 뒤 그가 정부의 기업 규제에 반대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에게 자유 경쟁 제한 조치에 관해 묻자 그는 맹렬하게 비난하고 이로서 나의 가설이 확증된다.

프레게의 논리학 재건

 

논리학

프레게의 논리학 재건

1-1. 이 문제에 관해 프레게는 밀과 정반대 입장에 섰다. 밀의 경우 모든 명제가 후천적으로 아는 반면, 프레게의 경우 산술학은 논리학처럼 선천적일 뿐만 아니라 분석적이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프레게는 밀을 비롯한 어느 누구도 정립하지 못한 논리학을 연구하고 체계화해야 했다. 그는 논리학을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구성했고,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맨 처음 수립된 학문의 두 번째 창시자가 되었다.

1-2. 논리학을 정의하는 한 가지 방법은 좋은 추리를 나쁜 추리로부터 가려내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프레게 직전가지 논리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언 논증의 타당성과 부당성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1) “모든 독일인은 유럽인이다”, “약간의 독일인은 금발이다”, 그러므로 “약간의 유럽인은 금발이다.”

(2) “모든 암소는 포유동물이다“, ”약간의 포유동물은 네발짐승이다“, 그러므로 ”모든 암소는 네발짐승이다.“

이 추리 둘 다 옳은 결론을 가졌음에도 첫 번째 추리만 타당하다. 즉 첫 번째 추리만이 옳은 전제에서 그른 결론으로 나아가지 않는 형식을 가진 추리이다.

1-3. 정언적 추리는 사실상 타당한 추론 형식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에 해당한다. 트롤럽은 『총리』에서 옴니엄 공작 부인은 전통적으로 그 가문의 영지였던 실버브리지 자치구의 하원 의원이 되길 열망한다. 옴니엄 공작은 그녀가 ‘공작이 그 자치구를 다스리고, 공작의 아내가 공작을 다스리므로, 공작의 아내가 그 자치구를 다스린다는 유치한 정언 논증을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공작부인의 추론은 완벽히 타당하긴 하지만 정언 논증이 아니라서 하나의 정언 논증으로 형식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언논리는 오직 주어-술어 문장들만 다루도록 고안된 체계여서 관계 지술에 대처할 만큼 포괄적인 체계가 아닌데 반하여 그 추론은 ‘다스린다’가 이행적 관계라는 사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1-4. 정언적 추리의 또 다른 약점은 ‘모든’(all)이나 ‘약간의’(some)와 같은 낱말들이 문법적 술어의 어딘가에 나타나는 추리들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언 논증의 규칙들은 ‘모든 정치인들은 약간의(혹은 모든) 거짓말을 한다’와 같은 전제를 포함하는 추리의 타당성을 확인할 수 없는데, 이 경우 추리는 ‘약간의’ 혹은 ‘모든’이라는 낱말에 좌우된다.

1-5. 프레게는 자신의 『개념표기법』에서 처음에 이런 난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를 고안한다. 첫 단계는 주어와 술어라는 문법 개념을 ‘독립 변수’와 ‘함수’라는 새로운 논리적 개념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웰링턴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라는 문장에서 ‘웰링턴’이 주어ㅣ고 ‘나폴레옹을 물리친 것’이 술어라고 말할 것이다. 프레게의 독립 변수와 함수 개념의 도입은 그 문장을 더 유연하게 분석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1-6. 그 방법은 이렇다. ‘웰링턴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라는 문장에서 ‘나폴레옹’ 대신 ‘넬슨’을 넣는다 해보자. 그 문장의 내용은 바뀌고 옳은 문장이 그른 문장으로 변한다. 우리는 그 문장이 ‘웰링턴이 ..을 물리쳤다’라는 변하지 않는 성분과 ‘나폴레옹’이라는 대체가능한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프레게는 첫 번째 고정된 성분을 함수, 두 번째 성분을 그 함수의 독립변수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 문장은 ‘나폴레옹’이라는 독립변수에 대한 ‘웰링턴이 물리쳤다’라는 함수 값이고, ‘웰링턴이 넬슨을 물리쳤다’는 ‘넬슨’이라는 독립변수에 대한 동일한 함수값이다.

1-7. 우리는 그 문장을 또 다르게 분석할 수 있다. ‘웰링턴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는 ‘웰링턴’이라는 독립 변수에 대한 ‘..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는 함수의 값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문장이 ‘웰링턴’과 ‘나폴레옹’이라는 독립변수에 대한 ‘..이 ..을 물리쳤다’는 함수의 값이라 말할 수도 있다. 프레게의 용어로 말하면 ‘웰링턴이 ..를 물리쳤다’와 ‘..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다’는 단 하나의 독립 변수의 함수이고, ‘..이 ..을 물리쳤다’는 두 개의 독립 변수의 함수이다.

1-8. 주어-술어 구분과 비교해볼 때 함수-독립 변수 이분법은 문장들 사이의 논리적으로 관련 있는 유사성을 나타낼 수 있는 훨씬 더 유연한 방법이다. 주어-술어 부석은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했다’와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를 물리쳤다’ 사이의 유사성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지만,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했다’와 ‘폼페이우스는 갈리아를 회피했다’ 사이의 유사성은 나타낼 수 없다. 이것은 ‘카이사르’나 ‘갈리아’같은 고유 명사가 아니라 ‘모든 로마인’, ‘약간의 지역’과 같은 양화 표현을 포함한 정언 논증들에 나타나는 문장들을 취급할 때 논리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된다.

1-9. 함수와 독립 변수 개념을 도입한 프레게의 다음 단계는 ‘모든’ 같은 낱말이 문장 속 어디에 나타나든 그에 의해 나타나는 일반성의 유형을 표시하는 새로운 기호 표현을 도입하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죽는다’가 옳은 문장이라면 ‘..은 죽는다’라는 함수는 ‘소크라테스’라는 독립변수에 대해 옳게 된다. 일반성을 표시하기 위해서 일정한 함수의 독립 변수가 무엇이든 그 함수가 옳게 된다는 것을 표시하는 기호가 필요하게 된다. 프레게가 도입한 기호 표현을 채택하면, 논리학자는 ‘..은 죽는다’라는 함수에 대한 독립 변수로 무엇이 들어가든 그 함수는 옳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나타낸다.

(x)(x는 죽는다)

이것은 ‘모든 x에 대하여, x는 죽는다’라고 읽을 수 있으며, 어느 것이든 모두 죽는다는 진술과 동일하다. 일반성을 표시하는 이 기호는 함수와 독립 변수로 분석될 수 있는 문장들에서 완전 다른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x)(신은 x보다 더 위대하다) = ‘신은 모든 것보다 더 위대하다’

이는 부정기호(‘~’)와 결합되서 ‘어떤 ..도 아니다’(no)나 ‘어떤 ..은 아니다’(none)을 포함하는 문장과 동등한 기호 표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x)~(x는 영생한다) = ‘모든 x에 대하여, x가 영생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어떤 것도 영생하지 않는다.’

프레게는 ‘약간의’와 같은 표현들을 포함하는 문장을 표현하기 위해 동치, ‘약간의 로마인은 겁쟁이다’와 ‘모든 로마인이 겁쟁이인 것은 아니다’ 사이의 동치를 활용했다. 프레게의 후계자들은 ‘약간의’를 표현하기 위해 편의상 ‘~(x)~’과 동등한 것으로 ‘Ex’라는 기호를 사용했다. 프레게의 기호 표현과 축약된 표현은 다른 정류의 사물들의 존재에 관한 진술을 만드는 데 사용될 수 있다.

(Ex)(x는 말이다) = ‘말들이 있다’

1-10. 프레게는 모든 종류의 대상들이 명명될 수 있으며 논리적 기호 표현의 독립 변수 자리는 어느 것이든 모두 그것의 이름으로 채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x)(x는 죽는다)’는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만 아니라, 어느 것이든 모두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1-11. 사실상 그처럼 무제한의 일반적 진술의 경우는 드물고, 어떤 종류의 모든 것이 어떤 속성을 갖는다거나 일정한 어떤 속성이 다른 어떤 속성을 갖는다고 말하려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거나 ‘올라가면 반드시 내려온다’는 일상 언어로 이루어진 보편적 문장들은 프레게의 체계 안에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의 술어 계산을 명제 계산과 접목시켜야 한다.

1-12. 프레게의 명제 논리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일상 언어의 ‘만일’과 조건부를 표시하는 기호이다. 고대 논리학자 필론은 ‘만일 p라면 q이다’라는 명제는, p가 옳고 q가 그른 경우에 그르고, 있을 수 있는 나머지 세 경우에 옳은 명제라고 말하며 명제를 정의했다. 프레게 역시 조건부를 나타내는 자신의 기호를, 그 기호가 일상 언어의 ‘만일 .. 라면’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의시켰다. ‘p→q’를 ’만일 p라면 q이다‘와 같은 것으로 간주하면, ’만일 태양이 비치면, 3×7=21’와 같은 명제들은 옳은 것이 된다. ‘만일’은 일상 언어에서 달리 작용한다. 프레게의 기호는 ‘만일’이라는 낱말의 가장 기본적인 것만 남긴 형태, 즉 ‘만일’을 포함하는 엄격한 증명의 형식화에 필요한 바로 그 의미 양상만을 정확히 포착하기 위해 고안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13. 프레게의 용어로 말하면, ‘..→..’은 문장을 독립변수로 하는 함수고, 그 값은 문장이다. 함수의 값인 문장이 옳은가 그른가는 오직 그 함수의 독립 변수인 문장이 옳은지 그른지에 달려 있는데, 이런 종류의 함수는 ‘진리 함수’라고 한다. 조건문뿐만 아니라 부정문도 진리 함수인데, 부정문은 부정되는 문장이 그를 경우에 옳고, 부정되는 문장이 옳은 경우에만 그르다.

1-14. 프레게는 이 두 기호의 도움으로 완전한 명제 논리 체계, 즉 (q→p)→(~p→~q)나 ‘~~p→q’와 같은 일정한 원초적 진리/공리 집단으로부터 바로 그 논리학의 모든 진리를 이끌어 내는 체계를 세웠다. ’그리고‘나 ’또는‘처럼 ’만일‘과 다른 연결사들은 조건부와 부정에 의해 정의된다. 프레게가 알아차렸던 것처럼, 연언을 원초적인 것으로 하는 다른 체계가 있을 수 있으며, 조건부는 연언과 부정에 의해 정의된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논리학에서는 연역이 연언보다 더 중요한데, 그 때문에 ’그리고‘가 아니라 ’만일‘을 더 원초적인 것으로 여긴다.

1-15. 논리학자들은 일찍부터 다수의 추리 규칙들, 한 명제에서 다른 명제로 넘어가기 위한 규칙들을 세웠다. 대표적인 것은 ‘“p”와 “만일p라면 q이다”로부터 “p”를 추리하는’ 전겅 긍ㅈ어 논법이다. 프레게는 자신의 체계에서 단 하나의 추리 규칙으로서 전건 긍정 논법을 이용해 논리학의 모든 법칙들을 증명한다고 주장햇다. 나머지 다른 규칙들은 체계의 공리이거나 공리로부터 증명된 정리이다. (대우)

1-16. 프레게의 명제 계산과 술어 계산을 함께 제시할 때, 우리는 일반성 기호와 조건부 기호 둘 다 이용하여 일상 언어의 보편적 문장들을 기호화할 수 있다.

‘(x)(Fx→Gx)’ = ‘모든 x에 대하여, 만일 Fx라면 Gx다’ = x가 무엇이든 ‘Fx’가 옳다면 ‘Gx’가 옳다.

1-17. ‘F’에 ‘사람이다’를 대입하고, G에 ‘죽는다’를 대입하면, 프레게가 ‘모든 사람은 죽는다’에 번역으로 제시하는 ‘모든 x에 대하여 x가 사람이라면 x는 죽는다’가 된다. 이것과 모순되는 ‘약간의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x)(x가 사람이다 →x는 죽는다)’가 된다. 이같은 번역을 통해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언 논리의 모든 정리들이 자신의 체계의 일부분임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

1-18. 프레게의 논리 계산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언 논리보다 더 체계적이고 또한 포괄적이다. 예를 들어, ‘모든 소년이 어떤 소년을 사랑한다 = (x)(x가 소년이다 → Ey(y는 소녀이다 & x가 y를 사랑한다))라는 문장과, ’어떤 소녀가 모든 소년의 사랑을 받는다 = (Ey(y가 소녀이다 & (x)(x가 소년이다 →x가 y를 사랑한다))라는 문장과의 차이를 표시할 수 있다.

1-19.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의 논리학자들은 일찍 일상 언어의 애매한 문장들에서 나타나는 의미의 차이를 드러내는 단순하고 명확한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이제 프레게 기호 체계의 마지막 통찰을 언급해보자. ‘소크라테스는 죽는다’는 ‘소크라테스’를 독립변수로, ‘..는 죽는다’를 함수로 갖는데, 그런데 ‘..는 죽는다’ 자체는 더 높은 수준에서 작용되는 함수의 독립변수로 간주될 수 있다. 이는 이 함수가 한정된 독립 변수가 아니라 ‘(x)(x는 죽는다)’같이 양화사로 끝날 때 나타난다. 따라서 ‘(x)(x는..)’은 ‘..는 죽는다’라는 일차 함수에 대한 이차 함수로 간주될 수 있다. 프레게는 첫 번째 함수가 불완전하다는 점을 늘 강조했는데, 이는 두 방식으로 완전해질 수 있다. 하나는 독립 변수의 자리에 독립 변수를 끼워 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독립 변수 자체가 2차 함수의 독립 변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는 죽는다’에서 생략 부호 자리가 ‘모든 것’과 같은 양화사로 채워질 때 나타난다.

 

1-1. 레닌은 제국주의자가 잉여 자본의 배출구이자 값싼 노동과 원자재의 공급원으로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써 자본주의 통치자들의 경제가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틀렸음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레닌의 후계자인 스탈린은 사회주의를 하나의 국가에 보존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받아들였으며, 공산주의 엘리트 권력은 나치 독일에 대한 민족투쟁의 애국적인 열정 덕분에 1941년에서 1945년까지 지속되고 보존되었다.
1-2. ‘파시즘’이라는 제목 아래 두 이데올로기를 나란히 놓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상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둘 다 전체주의 국가를 믿었던 국가주의 독재자였지만, 나치주의의 지도적인 개념이 민족우월주의였음에 반해 이탈리아 파시즘의 핵심 신조였던 국가조합주의는 민족과 무관했다. 국가조합주의는 개인이 그들의 사회적 직능에 따라 대표자를 내세우기 위해 집단을 이룬 직업상의 사회 체제로 의도되었다. 조합국가는 자본가, 노동자, 전문직 사이의 관계를 통제하고, 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급들 사이의 충돌을 피하는 그런 방식으로 교회 조직을 규제하고자 했다. 이것은 하나의 민족이 그 밖의 모든 민족보다 우월하므로 그 민족들을 지배하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다른 종류의 정치적 신조였다.(?)
1-3.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하나의 고전적 정치철학을 탄생시켰는데, 그것은 오스트리아 망명자 칼 포퍼가 내놓은 이었다. 이 책에서 포퍼는 정치 조직이 번성하려면 조직의 제도들이 최대한 자체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지배자가 제시한 정책들을 논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를 피지배자가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자가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지 못할 경우 폭력이나 유혈 사태 없이 지배자를 바꾸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열린 사회의 주요 특징이며, 단순히 다수가 정부를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중요한 민주주의의 요소들이다.
1-4. 하지만 포퍼가 모든 형태의 정부 간섭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무한한 관용은 편협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제약 없는 자본주의는 용납할 수 없는 빈곤의 수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편협성을 선동하는 것은 범죄로 간주되어야 하고, 국가는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은 물론 제약 없는 경제 체제에 대한 불간섭의 원리가 단념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제약 없는 자본주의가 경제적 간섭주의로 바뀌도록 요구해야 한다.
1-5. 그의 책 2권에서 포퍼는 열린사회의 적으로 보았던 두 철학자,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공격했다. 포퍼의 주요 표적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학 법칙, 즉 피할 수 없는 결과를 향해 확고한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하는 경향이 마르크스 특유의 과학적 예언이라고 내세우는 대부분의 것들을 실제로 어떻게 반증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1-6. ‘내가 말하는 역사주의는 역사적 예언을 주목적으로 삼고, 역사 발전의 기초가 되는 흐름이나 형태나 법칙이나 경향을 발견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사회과학 접근법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무엇보다도 과학적 진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사회의 미래를 예언하려면, 우리는 과학의 미래를 예언해야만 한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의 본성을 예언하는 것은 반드시 과학적 발견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주의는 불가능하며, 우리가 과거나 미래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는 역사가 자유롭고,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뿐이다.
1-7. 존 롤스는 에서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이 열망한 자유민주주의의 형태에 대해 조직적인 이론 체계를 제시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롤스는 공리주의가 정의보다 복지를 앞세우기 때문에, 말하자면 ‘권리가 이익에 우선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주의 국가의 토대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롤스는 양도할 수 없는 자유를 확정하기 위한 기초로서 공리주의 대신 새로운 종류의 사회 계약, 즉 사고 실험과 같은 사고 계약을 제안했다.
1-8. 아직 아무런 사회 제도도 없지만 우리 모두가 처음에 평등하다고 상상해 보자. 이와 같은 ‘원초적 위치’에서는 우리가 의도하는 사회에서 어떤 사실들이 우리의 위치를 결정해 주는지 알지 못한다. 이처럼 ‘무지의 장막’에 갇힌 상태에서 우리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하는 요소들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해 공평한 관심을 갖게 된다.
1-9. 롤스는 이와 같은 단체 설립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을 따르기를 바랄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 번째 원칙은 각자는 모든 사람에게 비슷하게 주어진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공정한 경쟁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는 직책과 지위에 부여되어야 하며, 이런 불평등은 그것이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조정되었을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만일 두 원칙이 상충하게 된다면,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 평등한 기회의 원칙에 우선한다.
1-10. (…) 그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도덕에 대한 완벽한 만장일치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롤스는 우리의 도덕 판단에 대해 논의하고, 반성을 가하고, 수정을 가함으로써 도덕적 문제에 관한 ‘중첩적 합의’라는 것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1-11. 롤스가 끝까지 겨냥하는 목표는 ‘반성적 평형’의 상태이다. 다양한 여러 시민들의 최초의 직감들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며, 한 개인의 직감들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직감들에 대해 반성적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옹호할 수 있는 원칙으로 명확히 표현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일관성과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우리가 공식화한 규칙들에 거슬리는 직감들을 처리하고자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에 훨씬 더 조화로운 도덕적 원칙들의 확립을 기대할 수 있다.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Ⅰ.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1-1. 최대 행복의 원리를 도입할 때 벤담은 통치자와 입법자에게 공동체의 경영에 관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만큼 개인의 도덕적 선택의 기준을 제공하는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서 행복의 총량과 행복의 분배까지 고려해야 하는 경우에, 최대 행복의 원리만으로는 신뢰할만한 결정 절차를 제공하지 못한다.

1-2. 행복을 측정하는 척도, 즉 0이 최대 불행이고 10이 최대 행복을 나타내는 0에서 10까지의 척도를 정립했다고 해보자. 어떤 사회에서 정치 제도와 법적 제도를 고안하는 데, 유효한 두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모델 A를 선택하면 시민 60%가 6을, 40%가 4를 득점하게 되고, 모델 B를 채택하면 시민 80%가 10을, 20%가 0을 득점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선택에 직면할 경우, 평등이나 박애를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델 B보단 A를 선택하려할 것이다. 하지만 벤담의 행복 계산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모델 B는 총 800점인데 모델 A는 520점에 불과하다.

1-3.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리는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 혹은 행복한 사람의 수를 극대화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에 도달한다. 따라서 분배적 정의에 크게 위배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려면, 그 원리를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빈곤층의 최저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보완될 필요가 있다.

1-4. 벤담의 야심 찬 원리가 지닌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그는 정치철학에 매우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그는 ‘사회 경영 가운데 순전히 사업 부분을 조직하고 조정할 때’ 최상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는 국가의 형사 처분을 다루는 대목에서 그의 재능을 십분 발휘한다.

1-5. 그는 처벌 제도의 목적에 대해 묻는다.

“처벌의 직접적인 주목적은 행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처벌은 범법자의 행위를 통제하거나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한다. … 전자의 경우 처벌은 교정(reformation)의 방식으로 작용하고 후자의 경우 처벌은 무력화(無力化, disablement)의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범법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통제는 그들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외에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없는데, 이와 같은 경우의 처벌은 본보기(example)의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일컬어진다.” (P 13.1)

처벌은 고통을 가하는 것인 일종의 악이기에, 그것은 어느 정도 더 큰 악을 배제할 가망이 있을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벤담은 해를 준 사람은 해를 당해야 정의롭다는 응보적(retributive) 처벌 이론을 거부한다. 처벌하는 일이 억제 효과나 치료 효과를 주지 않는 한, 응보는 악을 악으로 되갚는 것일 뿐, 정의의 균형을 되찾기는커녕 세상에 악의 총량을 증가시키기만 한다.

1-6. 비록 범법자에 대한 처벌이 전혀 억제 효과나 교정 효과를 주지 못하더라도 처벌하는 일은 피해자나 법을 준수하는 일반 대중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벤담은 처벌에 의해 산출된 쾌락은 결코 처벌에 의한 고통과 동등할 수 없기기에 어떤 처벌도 징벌적인 목적으로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7.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14장에서 벤담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 원리가 아니라, 처벌로써 잠재적 범법자에게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효과에 입각해 죄와 벌의 균형을 맞추는 규칙을 세웠다. 그는 장래의 범법자가 위법 행위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경우를 생각해봤고, 손해가 이익을 능가하도록 하는 것을 형사법의 기능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법은 위법 행위를 억제할 만큼 처벌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필요 이상의 처벌을 해서도 안 된다. 즉 처벌은 절약(frugal)을 필요로 한다.

1-8. 억제가 처벌의 주목적이라지만, 그는 범법자에 대한 교화나 무력화와 같은 부차적인 목적을 인정한다. 교도소의 현실적 상황을 감안하면 교화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벤담은 몇 가지 특수한 교화 제도를 제안한 적 있다. 감금은 범법자에 대한 일시적 무력화의 효과를 지니지만, 가장 효과적인 무력화는 사형이다. 벤담은 ‘그와 동시에 이런 처벌은 너무 과도한 처벌인데, 이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많은 반론들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P15.19)고 진술한다.

1-9.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철학은 도덕철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벤담에게 많은 신세를 지긴 했으나, 그는 자기 스승의 엄격한 공리주의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자연권을 부인하는 벤담의 체계는 경우에 따라 지극히 독재적인 정부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인 침해를 원리상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그의 체계는 밀이 젊은 시절에 지껄인 적이 있고,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체계를 탄생시켰던 초기 형태의 사회주의 또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원숙한 나이에 이른 밀은 사회 제도가 원리상 아무리 호의적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제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여겼다. 그는 콩트의 실증정치학 체계를 ‘정신적인 스승과 통치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체에 의해 일반 여론을 지배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행위를 통제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생각을 통제하려는’ 책략이라 했다. 그는 콩트가 ‘지금까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해 본 적 없는 가장 완벽한체제의 정신적이고 세속적인 독재’를 제의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비난했다. 『자유론』(On Liberty)에서 밀은 그 동기가 공리주의나 사회주의나 실증주의에 있건 부당한 권위주의적 침해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유주의 원리를 세우려고 했다.

1-10. 민주 사회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폭압할 수도 있기에, 밀은 전제 군주 정치를 신뢰할 만한 민주 정치로 대체한다고 해서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회가 더 교묘한 다른 억압 수단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권력을 제한한다고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감정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말하자면 사회의 관념과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민사처벌 이외의 수단을 동원하여 관념과 관습을 행위 규칙으로 강요하는 사회적 성향으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풍습을 거스르는 개성의 발달을 가로막음과 동시에 되도록 그와 같은 개성이 아예 형성되지 못하게 하려는 사회적 성향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L 130)

물리력이나 여론에 의한 강압을 정당하게 제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제약에 따라야 하는 유일한 행위는 타인과 관련된 행위뿐이라는 것을 근본 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자기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행위에서는 행위자의 독립적인 지위가 절대적이어야 한다.

1-11. 이 원리는 사상의 자유, 이를테면 말하기와 글쓰기의 자유에 중요하게 적용된다. 밀에 따르면 독재적 권력이든 민주적 권력이든 어느 권력도 의견의 표현을 억압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비록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인류가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한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은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잡았을 때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L 130) 이것이 부당한 것은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 인류 전체를 유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완전히 그른 의견조차도 반대 의견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진리라는 것이 단순히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견해이나 공식적인 선언이 아님을 확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밀은 의견을 가질 자유와 의견을 표현하는 자유야말로 인류의 정신적 행복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결론짓는다.

1-12. 하지만 의견의 자유가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웃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유가 타인을 해칠 권리까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해악을 선동하는 것인 상황에는 언론의 자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이나 타인의 관심사가 오로지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동의와 참여’일 경우에는 다양한 인물과 삶이 폭넓게 허용되어야 한다. 개인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은 개인 자신의 인격이어야지 다른 사람의 전통이나 관습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 원칙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인간 행복의 주요 요소들 중 하나를 상실하는 것이며, 개인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의 중요한 요소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 된다.’ (L 185)

1-13. 개성이 없으면 인간은 외부에서 부과한 모형을 따르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도처에서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육시키는 한 그루 나무이다.’(L 188) 만일 특이한 행동이 배척당한다면, 강압을 받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한때 진리였던 것이 이제 더 이상 진리가 아님을 알려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행을 시작함으로서 인간의 삶에서 더 계몽된 행위의 모범을 보이고 더 나은 취미와 감각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이 항상 필요한 법이다.’(L 193) 여론이 세상을 지배하고 개인이 군중 속으로 사라져 갈 때야말로 어느 시대 보다 정열적이고 비정통적인 인물이 필요하게 된다.

1-14. 밀이 ‘실험적인 삶’을 권장할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그는 그 행동의 실례를 제시하기보다 일련의 풍부한 은유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해설한다. 밀이 자신의 원칙들을 실제에 적용할 때, 천재성의 계발을 억제하는 법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람들의 평범한 행동을 방해하는 법률을 비난하는 선에 그친다.

1-15. 밀이 일상적인 관례를 따르지 않도록 장려할 때 깊이 간직한 본보기는 자신이 결혼하기 전 오랫동안 해리엇 테일러과 맺었던 인습에서 벗어난 관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모르몬교의 일부다처제 승인을 실험적인 삶의 본보기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탐탁찮게 생각했다. 그가 인정한 이런 실험적인 삶은 ‘공동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쇠사슬로 옭아매 놓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호혜적 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기’(L 224) 때문에, 자유주의의 원리와 정면으로 상충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여성들은 결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여러 아내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밀은 일부다처제를 권유하지 않으면서도, 모르몬교들이 일부다처제를 포기하도록 강압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1-16. 1851년 결혼에 즈음하여 밀은 계약 당사자의 인격과 재산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한쪽 당사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부여한 법에 반대하는 항의서를 제출했다. 그는 『여성의 종속에 관하여』라는 소책자에서 영국의 혼인법에 대한 반론을 구체적으로 제기했다. 한 성이 다른 성에 법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원칙상 잘못이고, 인간의 진보에 대한 주요 장애물이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고용된 사람이고 평생 그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고 아내가 취득한 재산은 곧바로 남편의 손에 넘어가는, 어떻게 보면 아내는 노예만도 못했다.

1-17.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은 남성의 더 강한 근력에서 비롯되었고, 순전히 남성의 이기심으로 인해 문명의 시대에 계속 이어졌다. 현재의 남성 우월체제가 어떤 대안보다 더 낫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어떤 대안도 시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긴 세월 훈련을 통해 남성 우월 체제를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양육되었다.

“첫째, 이성은 서로 자연스럽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 둘째, 아내는 전적으로 남편에 달려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추구와 고려 대상 및 사회적인 야망의 대상은 오직 남편을 통해서만 추구되거나 획득될 수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볼 때,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대상을 여성 교육과 인격 형성의 길잡이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을 것이다.”(L 487)

여성들이 굴레를 벗어나려 하지만 주인에게 반항하는 것은 폭군에게 반항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남성들의 포학함이 다른 온갖 형태의 권위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공리주의의 수정~단념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견해

공리주의의 수정

1-1. 존 스튜어트 밀은 벤담과 마찬가지로 결과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공격적으로 여겨졌던 벤담의 학설을 다른 방식으로 완화시켰다. 우리는 쾌락을 양적으로 구별할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구별하게 된다.

1-2. 그렇다면 쾌락의 서로 다른 종류를 어떻게 등급으로 나눌 것인가? 밀에 따르면, ‘두 가지 쾌락이 있는데, 둘 다 경험해 본 사람 모두 또는 거의 모두가 어떤 도덕적 의무감과도 관계없이 그 중 어느 하나를 선호한다면, 바로 그것이 더 바람직한 쾌락이다.’

또한 지성적이고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온갖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무식한 바보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족스러워 하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

1-3. 밀에 따르면, 행복은 만족뿐만 아니라 자존감을 필요로 한다. 저급한 쾌락이 제아무리 많다고 한들 자존감이 없으면 행복이 아니다. 따라서 최대 행복의 원리는 다시 진술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자의식과 자기 관찰의 습관을 갖게 된 사람들은 질의 시금석 및 질을 양과 대비해서 측정하는 척도를 선호함으로써 최선의 비교 수단을 갖추게 된다. “

1-4. 어느 비판자가 공리주의는 돼지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는 밀의 말을 시인한다고 해보자. 그럼에도 그 비판자는 공리주의가 최상의 인간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덕은 행복보다 중요하고, 절제와 자기희생의 행위는 가장 훌륭한 인간 행위이다. 밀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단념하는 것이 숭고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홀로 고행을 감수하는 금욕주의자를 감탄스럽게 바라보는 것과 그런 식의 감탄은 받을 만하다.’

1-5. 공리주의에 대한 반대는 두 가지 다른 형식으로 나타난다. 도덕률로서의 공리주의는 너무 엄격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너무 느슨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공리주의가 너무 엄격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거의 성인의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이타주의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공리주의가 너무 느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어떤 종류의 행위에 대한 절대적 금지를 융통성 있게 폐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용문 무슨 연관,,?)

1-6. 에서 밀은 두 전선을 모두 방어하려고 한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주장에 대적하여 그는 도덕적 표준과 행위 동기를 구별하라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공리주의가 모든 사람의 행복을 궁극적인 도덕적 표준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행복이 모든 행동의 목적일 필요는 없다.

1-7. 밀 자신이 가장 진지하게 취급하는 공리주의의 난점은 공리주의가 정의보다 편의를 더 선호하는 수단이라는 주장이다. 밀은 정의의 명령이 사실은 일반적인 편의 영역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그럼에도 편리한 것, 도덕적인 것, 공정한 것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고 응수한다. 어떤 것이 편리하다면, 공리주의적 근거에 따라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전혀 의무의 문제를 관련시킬 필요가 없다. 어떤 것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기도 하다면 의무가 발생하며, 의무를 완수하도록 정당하게 강제될 수 있다는 것은 의무 관념의 중요 요소이다. 즉 밀의 경우, 정의와 도덕적 권리 사이의 관계를 특징짓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는 불공정한 법적 권리가 있을 수 있고, 법과 상충되는 공정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1-8. 밀은 정의와 관련 있는 여러 관념들이 공리주의적 편의의 원리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최대 행복의 원리에 내재하는 문제, 즉 공동체에서 행복의 전체 총합을 늘리다 보니 도외시된 개인의 불행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는다.

1-9. 그뿐 아니라, 에서 밀은 분배적 정의의 형식이 체제마다 서로 다르게 제공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 말고는 분배적 정의에 관해 거의 언급하려 하지 않았다.

2- 단념에 관한 쇼펜하우어의 견해

2-1. 쇼펜하우어의 윤리적 가르침은 그의 형이상학, 특히 경험 세계는 환상에 불과하고 진정한 실재인 물자체는 보편적 의지라는 주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개체들이 무에서 생겨나 선물로 생명을 얻은 다음 죽을 때 이 선물을 놓고 다시 무로 되돌아가는 것을 본다. 그러나 생명을 철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모든 현상 속의 물자체인 의지는 결코 생사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2. 죽음은 개체성이 망각된 수면일 뿐이다. 하나의 개체가 또 하나의 개체와 구분되는 것은 현상에 불과하다. ‘물자체로서의 개체는 모든 것에 나타나는 의지이며, 죽음은 한 개체의 의식이 나머지 개체의 의식과 다르다는 착각을 없애 버린다. 이것이 내세 혹은 불멸이다.’

2-3. 도덕은 인격 수양의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말인지는 우리가 칸트의 자유와 필연성의 조화를 받아들일 경우 쇼펜하우어에 따라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물자체인 의지는 영원토록 자유롭지만, 인간의 본성을 포함하여 자연의 모든 것은 필연성에 의해 결정된다. 물자체인 의지는 영원토록 자유롭지만, 인간의 본성을 포함하여 자연의 모든 것은 필연성에 의해 결정된다.

2-4. 우리의 모든 윤리적 행위가 인격에 의해 결정된다면, 자기 자신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쓸데없는 고생이므로, 행위로 나타나는 온갖 성향을 그 자체로서 만족스러운 것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낫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거부하면서 인격을 여러 종류로 구별한다. 예지적 인격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근원적인 실재이고, 시간 바깥에 있으며,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상황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경험적 인격이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경험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예지적 인격의 본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획득된 인격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 인격의 본성과 한계를 깨달은 사람들이 갖게 되는 인격이다. 이런 사람들은 가장 좋은 의미의 인격을 가진 사람들,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있고, 그에 맞게 자신의 계획가 야망을 마름질하는 사람들이다.

2-5. 우리의 의지는 결코 변할 수 없지만, 우리의 의지를 인식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추상적이고 이성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충하는 동기들을 방치하지 않고 그 상충을 알아차리는데, 이것이 바로 선택을 가능하게 해 준다. ‘우리 자신의 정신과 온갖 종류의 정신 능력에 대한 인식, 그리고 변경할 수 없는 정신 능력의 한계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우리 자신에 대해 최고로 만족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2-6. 쇼펜하우어는 최상의 인간에 대해서조차도 만족스러워할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의지의 피조물이고, 그 본성을 향한 의지는 만족을 모른다. 모든 의지의 기초는 결핍과 고통인데, 우리는 결핍이 충족될 때까지 줄곧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일단 충족되어 의지가 욕구할 대상이 없어지면, 인생은 권태라는 무거운 짐이 된다. ‘그래서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진자처럼 흔들린다’.

2-7. 의지의 포학을 피하는 아주 확실한 방법은 완전한 단념에 있다. 의지는 언제나 삶을 의욕한다. 그러므로 의지와 관계를 끊으려면, 삶에 대한 의지를 끊어야만 한다.

2-8. 단념은 자기 자신을 단념하는 것이며, 도덕적 진보는 이기주의, 다시 말해서 개인이 그 자신을 세계의 중심에 놓고서 그 자신의 삶과 행복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키려는 경향성을 감소시키는 데 있다.

2-9. 일상적인 평범한 나쁜 사람은 자신의 의지는 모든 것에 작용하는 단 하나의 삶에 대한 의지의 현상적인 겉모습일 뿐임을 어렴풋이 자각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후회를 할 때 고통이 나타나게 된다. 나쁜 사람의 후회는 좋은 사람의 징표인 단념의 반대 개념이다.

2-10.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 사이에 중간 인격, 즉 공정한 사람이 있다. 나쁜 사람과 달리 공정한 사람은 개체성을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있는 절대적인 장벽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자신과 똑 같은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만큼 타인의 삶에 대한 의지가 자기 자신의 의지와 동일한 수준에 있는 것으로 기꺼이 인정한다.

2-11. 정말 좋은 사람의 경우에는 개체성의 관문에 들어가기가 훨씬 더 용이하며, 개별화의 원리는 더 이상 절대적인 장벽이 아니다. 나쁜 사람은 자신과 타인이 현격하게 다르다고 보는 반면, 좋은 사람은 그 구별이 무상하고 공허한 현상에 속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2-12. 그러나 선행과 자비가 최고의 윤리적 상태는 아니므로 좋은 사람은 곧바로 그것을 뛰어넘고자 한다. “모든 존재 속에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진실한 자아를 깨닫는 그런 사람은 또한 고통을 겪는 모든 존재의 무한한 고통을 자기 자신의 고통으로 간주하고, 온 세상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명확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덕행을 뛰어넘어 금욕주의로 나아가게 된다.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현상적인 삶에 나타나는 온갖 것에 혐오감을 갖게 될 것이며, 비참한 이 세계의 씨앗인 삶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려고 할 것이다.

2-13. 쇼펜하우어는 종교적 진리를 적나라한 형태로 제시할 경우 교육받지 못한 일반 대중에게 다가가기 어렵기 때문에 그 진리에 신화적인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종교 체계들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는 ‘철학자가 성인일 필요가 없는 것처럼 성인도 철학자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2-14. 쇼펜하우어의 산문의 효력과 은유의 매력은 그의 윤리 체계가 숭고하다는 인생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그의 윤리 체계는 그릇된 형이상학에 기초해 있고, 자기 자신을 무능력하게 한다. 세계가 환상적 개념에 불과하다고 믿거나 만족할 줄 모르는 의지가 궁극적 실재라고 인정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2-15. 쇼펜하우어는 왜 최종적으로 금욕주의 프로그램을 채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염세주의에 치우친 생각 말고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자비로운 사람일수록 확실히 자신의 살을 타인의 살과 더 많이 동일시하려고 한다지만, 왜 자신의 삶을 기쁨과는 관련짓지 않고 고통하고만 관련짓는 것일까?

2-16.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의 완전한 단념은 용어상의 모순인 것 같다. 왜냐하면 단념이 자발적인 것이라면 그 자체가 의지의 작용이며, 단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진정한 단념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