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서양철학사

아카데메이아의 회의주의 ~ 유대교와 기독교

1.아카데메이아의 회의주의

1-1 아카데메이아의 노선 : 기원전 3세기 경, 아카데메이아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아 회의주의를 채택한다. 철학에서의 회의주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피론은 아무것도 인식될 수 없다고 가르친 바 있으며, 그의 자제인 아르케실라오스는 한 때 아카데메이아의 수장이 되었다. 또한 티몬은 과학의 기초로 활용할 수 있는 자명한 원리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1-2 스토아철학에 대한 비판 : 스토아철학은 아카데메이아의 주 공격대상이었다. 아르케실라오스는 그들이 존재할 수 없는 정신적 인상을 근거로 진리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판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수장이 된 카르네아데스 또한 진리가 아닌 개연성이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판은 키케로에게 이어져 더욱 세련된 형태로 발전한다.

2. 루크레티우스

2-1 주도권 : 기원전 1세기 이후, 철학의 주도권은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간다. 로마의 라틴철학 역시 운문형태의 저술에서 산문형태의 것으로 변화되었으며, 당시 전체가 완벽히 라틴어로 서술된 최초의 철학적 저술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철학시 이다.

2-2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이 시는 종교가 주는 두려움을 떨쳐낸 에피쿠로스를 칭찬하면서 시작된다. 1권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설명하고, 2권에서는 소박한 쾌락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칭송한다. 3권은 영혼과 감각의 기능에 대한 에피쿠로스적 이론을 설명한다. 우리 영혼의 본성이 물질적이라는 사실을 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4권은 원자론에 기초한 생리학적 설명 및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다.

3. 키케로

3-1 생애 : 키케로의 저술의 특징은 당시의 철학적 흐름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젊었을 때의 그는 스토아철학, 아카데메이아 등등 다양한 철학학파들을 접했으며, 그 후에는 정치가로서 오랫동안 몸을 담았다. 그 영향으로 주로 정치철학을 연구하였으며, 특히 카이사르의 독재기간 및 딸이 죽었던 시기에 철학과 관련된 저술 대부분을 남겼다. 《위안에 관하여》와 《호르텐시우스》가 이 시기의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3-2 키케로의 철학 : 키케로는 로마인들이 ‘모국어’로 철학을 할 수 있도록 라틴어로 구성된 철학 용어들을 만들어 내었다. 인식론에서의 그는 아카데메이아의 수장인 필론의 영향을 받아 온건한 회의주의를 선호하였고, 윤리학에서는 에피쿠로스가 아닌 스토아학파를 따랐다. 그는 위안과 마음의 평안을 위한 도덕철학을 추구하였으며, 감정과 덕, 행복 사이의 관계 및 철학적 신론과 결정론에 관한 논의들을 다루었다.

3-3 말년 : 카이사르가 죽은 뒤, 다시 복직하여 정치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죽고 만다. 그는 그리 깊이있는 철학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논증은 날카로웠고 문체 또한 우아하여 항상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4.유대교와 기독교

4-1 예수의 등장 : 나자렛 출신인 예수의 등장은 철학의 발전과정 중에서도 중요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도덕철학은 이전의 철학에서도 볼 수 있었던 만큼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도덕철학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4-2 가르침 : 예수의 가르침은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유일신 야훼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삼는다. 또한 신의 심판이 임박하여 자신이 곧 구세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4-3 필론 : 예수가 죽은 이후로도 그의 유대사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필론은 기원후 1세기의 유대 문화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대인을 박해하고 황제숭배를 강요한 일에 대해 항의하였으며, 모세의 삶에 대한 저술의 주석서를 쓰기도 하였다.

4-4 바울로 : 기독교는 주로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유대인 학자들을 통해 로마 제국에 전파되었다. 그 과정에서 바울로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와 논쟁을 벌인 바 있다. 그는 기독교가 알 수 없는 신을 위한 제단을 차렸다는 비난에 대항하여 철학자들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신을 숭배한다고 되받아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 부터 우주론까지

1.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

1-1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과 관련해 두 권의 저술을 썼다. 하나는 수사학, 다른 하나는 시학이다. 이 둘은 각각 법정에서 변호를 맡은 사람과 희곡작가들의 임무를 돕기 위해서 쓰였다고 한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수사학이, 어떤 상황에도 가능한 설득의 방법을 제시하려는 학문 분과라고 말한다. 이는 결코 어떤 특수한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논의 주제와 무관하다. 또한 그는 말을 통해 설득하는 데에는  세가지가 기초로 작용한다.  이 셋은 말하는 사람의 특성,  청중들의 태도 그리고 말 자체의 논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와 특성에 관해서는 다른 저서들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감정에 대해서는 《수사학》2권에서 가장 완전한 견해를 드러낸다.

1-1-1  수사학과 달리 《시학》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폭 넓게 읽혔다.       현재 《시학》의 1권만이 전해지는데 여기선 서사시와 비극이 논한다.  희극은 다룬 2권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시학》제대로 이해하려면 플라톤의 시에 대한 견해를 알아야 한다.  플라톤 물질적인 대상들을 실재하는 이데아의 모방으로 간주한다. 즉 대상에 대한 예술적인 묘사는 실재로부터 이중으로 멀어진 것,  다시 말해 저급한 것으로 정의한 것이다.

1-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시와 철학의 대립을 해소하려 했다. 그는 모방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한다. 모방은 인간을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드는 특성중 하나로 본다. 인간의 학습 범위를  넓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묘사는 그 자체만으로 큰 기쁨을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묘사한 그림들을 보며 충분 히 즐기고 감탄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1-2-1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엔 여섯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말했다.  줄거리, 성격, 문체, 사상, 시각적 효과 그리고 노래다.  그는 특히 처음 두 가지인 줄거리와 성격에 관심을 보인다. 그는 비극의 위대성은 희곡을 읽는  것만으로 제대로 평가 할 수 있다 보았다.  또한 사상과 문체에 관해선 더욱 중요하게 보았다. 이는 설득력 있는  표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비극의 정수가 되는 것은 결국 성격과 줄거리라 주장했다.

1-2-2  그는 비극을 구성하는 등장인물이 선한 면과 악한 면 모두를 갖추고 작품 전체에 어울리는 성격을 소유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등장인물은 줄거리를 위해 창조되어야 하며, 줄거리는 도입,전개,종결이 명확히 통일성을 지닌 하나의 귀결된 사건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3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비극론을 통해 이러한 예술 행위들이 단순한 이데아 세계에 대한 모방만이 아니라 주장했다. 시와 연극 등은 또  다른 창조행위고, 일상적 삶에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을 순전한 우연한 산물로 보았다. 오직 허구의 세계에서만 자연스런 결과로 이어지는 방향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저술들

1.  그의 전집  중 도덕철학에 관환 저술을 세 종류가 전해진다.  10권으로 구성된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으로 구성된 《에우데모스 윤리학》과 2권으로 구성된 《대윤리학》이 바로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얼마 되지 않은 때 , 여러 학자들은 그의 윤리적 저술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를 거치고 근대 초 고전 연구가 부흥한 이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정수로 여겨지며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되었다.

2.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달리 《에우데모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사이에서 지극히 소수만 관심을 보였다. 후에 이 작품은 아리스토텔레스 사후에 쓰인 작품이라는 주장과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쓰였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논의 되기도 한다.  후에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그 내용 면에서 겹치고,  문체면에서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플라톤의 주장에 더 잘 어울리고 가깝다는  점에서 《에우데모스 윤리학》을 리케이온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3. 세 윤리학 저서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이데아론을 배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철학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아닌 행복을 최고선으로 보았다. 윤리학은 인간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바를 다루는 실천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유사한 점은 덕을 갖춘 삶과 행복한 삶 사이의 밀접한 연결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즉 행복한 삶은 덕이 있는 행위를 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차이점으로는 덕에 대한 유형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이론

 1.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마지막 보충 부분에서 최선의 국가는 어떤 헌법을 채택해야 하며 또 반대는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치학》의 머릿말처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가 최고선을 삼는 최고 수준의 공동체라는 말과 함께 논의를 시작한다. 또한 국가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최초의 공동체로서 가족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공동체라고 말한다. 국가가 인간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용하고 비판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플라톤이다.  그가 플라톤과 다른 주장을 펼친 주된 요지는 도시국가에서의 삶이 병영에서 의 삶과 같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정치 체계를 설명 하는 데에 플라톤의 제언을 풍부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이론적 논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때로는 둘의 개념적 구조가 매우 유사하기도 하다.

4.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정치 체제들을 상세히 평가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의 본질을 논한다. 그는 일종의 입헌민주정을 선호했는데 그가 생각한 ‘이상적 민주정’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며 최고 수준의 자질을 갖춘 시민이 나머지 모든 시민의 만족을 목표 삼아 통치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체제를 심의부, 관리부, 사법부  세 부분으로 나눈 최초의 형태를 제시하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노예제도의 정당화와 고리대금의 금지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따른 것으로 현대에서의 두 개념으로 논의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명 다른 견해를 펼쳤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

  우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선구자들과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다고 한다.

  또한 천체의 정신은 초자연적, 살아 있는 지성으로서 우주에서 천체의 운행을 인도한다고 보았다. 이런 주장은 불변하는, 영원한 운동의 원인이 , 즉 다른 존재들을 운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저술 중 가장 나은 것도 오늘날에는 단지 역사적 관심의 대상 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저술들이 계속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시대를 넘어서 다른 시대의 자연학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기본 개념들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유산부터 스토아학파까지

1.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유산

    1.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하자 민주적이었던 아테네인들은 알렉산드로스 제국에 반대했던 인물들까지 달갑지 않게 여겼다. 이러한 위험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칼키스(Charcis)로 피신하였다가 그곳에서 바로 그 다음 해 사망하였다.
    2.  콜리지(S.T.Coleridge)가  ‘모든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아니면 플라톤주의자로 태어난다’라고  말할 정도로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아케데메이아와 리케이온을 상반되는 철학의 두축으로 여기는 태도가 일종의 전통이 되었다.
    3. 플라톤은 이상주의자이며,  유토피아를 꿈꾸고,  내세를 중시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적이며, 공리주의자이고, 상식을 중시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특히 플라톤은 그가 제시한 대답이 얼마나 옳은가보다 던진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본다면 비교할 대상이 없는 최고의 탁월한 인물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세계의 지적인 유산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엥서 위대한 철학자이다. 기여한 바를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 자연 현상을 세부적으로 관찰한 최초의 인물임
      •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관찰과 이론사이의 관계를 건전하게 파악한 최초의 철학자
      • 학문의 여러 분과를 확인, 분류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함
      • 강의를 연속도니 강좌 형태로 구성한 최초의 교육자
      • 그가 설립한 리케이온은 수많은 학자들과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탐구한 최초의 연구기관임
      • 연구를 위해 도서관을 설립한 역사상 최초의 인물

2.아리스토텔레스 학파

    1.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리케이온을 물려받은 테오프라스토스(기원전 372~287)는 재능을 발휘하여 스승의 연구를 이어받았다. 그는 많은 저술 활동을 했는데 대표작으로는  «성격»으로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상세하고 생생하게 개인의 성격을 묘사했다.
    2. 테오프라스토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팔레론(Pharleron) 출신의 디미트리오스(Demetrius)는 알렉산드로스 휘하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의 조언자였다.
    3. 그가 죽은 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서들은 스켑시스 출신의 넬레우스(Neleus of Skepsis)에게 넘겨진 듯하다. 장서들은 그 뒤에 행방이 모호하다가 기원전 1세기 중반쯤 로마에게 로도스 출신의 안드로니쿠스(Andronicus of Rhodes)에 의해서 편집,출판되었다.
    4. 하지만 당시 아테네를 지배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학파의 창시자들이었다. 한 사람은 정원(The Garden)이라고 알려진 학파를 세운 에피쿠로스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스토아 학파로 불린 키티움 출신의 제논(Zeno of Citium)이었다.

3.에피쿠로스

  1. 에피쿠로스는 사모스 섬으로 추방된 아테네 출신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원전 306년 아테네에 자신의 집을 지었으며 271년 사망할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정원으로 불린 이 집에서 그는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2. 에피쿠로스 철학의 목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인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거함으로써 가능한 한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꾸며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서 얻은 설명이다.
  3.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과 끝이다. 하지만 그가 향락주의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쾌락은 개인적인 우정이 주는 것과 같은 조용한 쾌락이다. 음식,술,성행위에 대한 쾌락은 열등한 수준의 쾌락일 뿐이다.

4.스토아학파

  1.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스토아학파도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였지만 그 방법은 달랐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은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 회상기를 읽고 철학을 공부하려는 열정을 지니게 되었다.제논의 유명한 저술은  «국가»(Republic)이었다. 이는 플라톤의 유토피아주의와 견유학파의 몇가지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다.
  2. 제논이 세상을 떠난후 클레안테스(Cleanthes,331~232)이 제논이 세운 학파의 수장자리에 올랐다. 그는 종교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제우스에게 바치는 송가’를 쓰기도 했다.
  3. 클레안테스 뒤를 이은 인물은 크리시포스(Chrysippus of Soli)였는데 스승을 그리 존경한 것 같진 않지만 스토아사상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4.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신을 능동적인 원리이며 신이 설계한 체계를 자연이라 보았다. 그러므로 스토아학파의 삶의 목표는 바로 이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자유롭고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이다. 만일 의지가 이성에 복종한다면 우리는 자연에 따라 살게 된다.  이렇게 자연의 법칙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일이 덕이며 이 덕은 행복에 이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5. 그들은 모두 사회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조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표와 자연사이에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선한 사람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하며 사회적 덕목을 함양해야한다.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이데아론, 국가 그리고 법률과 티마이오스까지

 

1.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1-1

앞선 내용은 덕을 가르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메논>, <파이돈> 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전혀 다른 대답을 살펴볼 수 있다. 덕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해 현세에서는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인데,  오직 현세가 아닌 더 나은 세상을 상기할 때만 이것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는 덕 뿐만 아니라 지식 전반에 관한 그의 일반적 주장이다. < 메논> 에서는 한 번도 기하학을 배운 적 없는 노예소년도 적절한 질문을 통해 중요한 기하학의 진리를 생각해 낼 수 있고 ,  < 파이돈> 에서는 서로  절대적으로 동일한 한 쌍은 결코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동일성에 관한 관념은 경험이 아니라 전생의 관념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다른 절대적 선,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1-2

<메논>과 <파이돈> 은 이데아론 및 상기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아닌 플라톤 자신이 제시한 입장이다. 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보편적 정의”와 일상적 세계에서 대하는 경험적 실재들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1-3

플라톤은  <파이돈> 에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대화편을 통해 자신의 이데아론을 분명히 소개한다. 이 두가지가 실제로 일어 났다 보긴 힘들다. 이에 대해선 소크라테스의 육체적 죽음과 개인 철학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다. 즉 이러한 과정은, 그의 철학이 더욱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적인 형태로서 플라톤주의로 환생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2. 이데아론

2-1  이데아론의 출발점

이데아론은 <에우티프론> 에서 시작해 중요한 대화편에서 계속 등장한다.  명백히 제시되거나 형식적으로 확립되기 보다는,  자주 암시 되고 당연시 되며 일반적으로 주장된다.  플라톤이 썼다고 여겨져 온  일곱 번째 편지의 내용엔 그의 이데아론에 대한 정의가 담겨 있다. 이것은 이데아론을 가장 명확하고 권위 있게 설명하는 문헌으로 본다.

2-2  이데아론에 대한 기본적 이론

일곱 번째 편지 내용엔 이데아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선 1) 이름 , 2)정의 , 3) 형태 ,  4) 지식체계 그리고 5) 인식 가능한 동시에 진정으로 실재하는 무엇인 이 다섯 가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경우든 앞선 네 가지 요소를 파악하지 않고선 다섯 번째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다섯 번째 지식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에 관한 것이다.  또한 이데아에 대한 표현은 저술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형상'(eide) 라는 표현이 가장 일반적이고  X의 이데아 또는 형상은  ‘X 그 자체’ , ‘ X인 바로 그것, ‘X임’ ,  ‘X인 바’로 불리기도 한다.

2-3 이데아론에 대 한 적용과 설명

철수는 인간이다라고 하면 철수라는 ‘이름’이 철수라는 한 개인을 대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 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고 대표하는 것인지는 모호하다. 이에 대해 플라톤은 ‘인간의 이데아’ 란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의 이데아’는 철수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무언가이며 ‘인간’ 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지니는 일차적 존재라 한다.이는 각 객체들은 모두가 어떤 이데아나 형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를 정리 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공통성의 원리.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F라면 그 까닭은 이들의 F의 이데아라는 한 가지 요소를 분유하거나 모방하기 때문이다.

(2) 분리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인 모든 것들과 구별된다.

(3) 자기서술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 자체이다.

(4) 순수성의 원리. F의 이데아는 다름 아닌 F일 뿐이다.

(5) 유일성의 원리.  오직 F의 이데아만이 진정으로, 참으로, 전적으로 F 이다.

(6) 절대성의 원리. 이데아는 영원히 지속되며, 어떤 부분으로 나뉘지도 않고, 어떤 변화도 겪지 않는다. 또한 감각을  통해서는 지각되지 않는다.

 2-4 이데아의 구분

앞서 제시된 원리중 가장 주목할 특성은 절대성 원리다.  이것은 이데아를 분유하는 개체들을 수준 낮은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개체들이 분유하는 이데아를  수준 높은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모든 이데아들 중에선 선의 이데아를 가장 우월한 것으로 본다.

2-5 이데아에 대한 논의점

그러나 이데아론의 문제점은, 이데아론이 규정하는 이 원리들이 상호 간에 조화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는 후에 형이상학에서 더 자세한 내용으로 다루도록 한다. 또한 플라톤은 자신의 이데아론을 많은 철학적 문제들에 적용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론  ‘지구 보편의 문제’가 있다. 이는 ‘인간’ , ‘ 신’ , ‘덕’ 등 보편명사에 관한 내용이다. 이 또한 철학적 난제이며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다. 뒤 이은 장들에서 아리스토 텔레스가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3.  플라톤의  ≪국가≫

3-1 국가에 대한 논의

국가는 이데아론을 다양하게 응용한 내용보다는  자세히 묘사된 정치 제도 때문에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정의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언가임을 증명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1권의 내용이 시작된다. 이런 논의의 틀에서 플라톤은  ‘도시국가에서의 정의’ 라는 큰 주제로 넘어간다.

3-2 정치 체제에 대한 정의

플라톤은  정치체계 (정치이론) 을 다섯 가지로 정의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귀족정치 (군주정치) – 명예지상정치 – 과두정치 – 민주정치- 전체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정의에 대해서 플라톤은 ‘귀족정치’ 에서 멀어질수록  ‘정의’로 부터 멀어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세 계층으로 구성된 도시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이는 군인들 중 통치에 가장 적합한 이들을 선발하여 수호자로 부르고,  나머지 군인을 보호자로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시민들은 농부와 장인 계층에 속하도록 한다.  수호자들은 지혜의 덕, 보호자들은 용기, 노동계층은 절제를 덕으로 삼아 계층들간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3-3 플라톤의 견해

현실에선 이와 같은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하지만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귀족정치이고 그에 가까워 질 수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법률≫과  ≪티마이오스≫

 

≪법률≫

1-1 플라톤은 말년에 이르러 철인통치론을 포기한다.  도시국가의 복지와 관련해,  이데아론의 정치적 중요성보단 법률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말년에 쓴  ≪법률≫은 이와 관련한 국가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당시 존재한 아테가 채택한 정치체제와 플라톤의 이상국가 둘의 중간 모습이다.

1-2 입법제도에 관한 이야기는 ≪법률≫의 중반부 몇 권에 등장한다. 일반 시민들이 법률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각각의 법률을 그 목적을 잘 드러내도록 전문을 포함해야 한다는 게 그 골자다. 또한 당시엔 생소했던 성윤리에 관한 논의를 펼치기도 한다. 이는 훗날 중세 기독교 시대에 이르러 통용된 개념이기도 하다. 성행위의 목적, 동성애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이 담겨있는데 이전의 소크라테스 대화편에 등장하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특징이다.

1-3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10권인데 신에 대한 숭배와 이교를 몰아내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선 차후 종교철학에서 다루도록 한다.

≪티마이오스≫

1-1 ≪티마이오스≫와 ≪법률≫의 저술시기는 겹치는 듯 보이는데, 여기선 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전통적 철학 주제인 우주론에 관한 논의다. 주로 아낙사고라스가 이전에 남긴 이론중 불만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논점으로 삼는다.

1-2 ≪티마이오스≫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세계의 아버지,조물주,창조자 등으로 불리는 신성한 존재들이 만들어낸 세계다. 이 논의의 출발점은 세계가 항상 존재했는지 아니면 출발점이 있는 지에 대한 물음이다. 플라톤은 세계의 출발점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창조주와는 몇몇 측면에선 다른 개념이다. 또한 다양한 세계에 대해 언급한 이전 철학자들과는 다르게, 플라톤은 우리의 우주가 오직 하나라는 확고한 믿음을 지닌다. 여기에 이전 ≪국가≫에서 도입한 인간 영혼의 삼분법을 더욱 발전시키기도 한다.

1-3 플라톤의≪티마이오스≫는 다른 대화펴들이 고대말기에 사라졌다 르네상스에 다시 등장한 것과는 달리,  훗날 수세기동안 꾸준한 영항력을 끼친 작품이기도 하다.

 

피타고라스에서 엘레아학파까지

1. 피타고라스학파

1-1. 생애, 기원

1-1-1. 사모스 섬에서 기원전 570년경 출생함

1-1-2. 크립톤 지역에 피타고라스가 종교단체와 유사한 공동체를 설립 약 50년가까이 유지되다가 해체됨

1-2. 이론이나 업적

1-2-1. 철학자라는 단어 처음 사용(지혜를 사랑하는 자)

1-2-2. 음악의 음계와 수 적 비례가 서로 관련됨을 발견

1-2-3. 영혼 윤회설(영혼은 죽지 않고 다른 종류의 동물로 재탄생 함)

1-3. 영향

1-3-1. 수학과 신비주의의 영역에 큰 영향을 줌 고대 철학전반에 강하게 드러남

1-3-2. 피타고라스가 설립한 공동체가 이후의 다른 철학적 공동체의 근원적 모델 역할

1-3-3. 사후 추종자들에 의하여 신격화됨

2. 크세노파네스

2-1. 생년과 일생

2-1-1. 콜로폰 지역 출신으로 방랑 음유시인으로 그리스 전역을 여행

2-1-2. 오랜 기간 살면서 철학적 시 외에도 여러 시를 낭송함

2-2. 이론

2-2-1. 우주론: 흙과 물이 만물의 원질-> 화석에 대한 과학적 관찰과 기록을 근거함

2-2-2. 천체론: 지구가 무한히 존재한다 생각함-> 매일 뜨는 해가 항상 새로운 해라 주장

2-3. 영향

2-3-1.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의 이론에 존재하던 종교적 영향과 물활론 적 요소에서 벗어남(자연주의를 택함)

2-3-2. 신학과 자연학을 연관 지어 생각하고 유일신론을 옹호함

3. 헤라클레이토스

3-1. 생년

3-1-1. 이오니아 지방 출신으로 여러 단편들을 남겼지만 모호한 문체로 인하여 다양한 해석이 나옴

3-2. 이론

3-2-1. 우주의 전체가 항상 변화하는 것임(크세노파네스의 새로운 해에 대한 것을 확장)

3-2-2. 불=Logos=영혼-> 불은 변화의 전형을 보여줌 로고스는 이성적 추론 능력 혹은 질서와 아름다움의 우주적 원리의 의미 영혼은 그 자체로 불로 생각되는 것으로 건조한 영혼을 중요시 함

3-2-3. 모순적 요소의 공존을 주장-> 상대적임을 드러냄, 지속적 영원한 순환의 과정으로 이해 가능

3-3. 영향

3-3-1. 헤겔을 비롯한 후대의 여러 철학자에 영향을 줌

3-3-2. 인간의 법위의 존재하는 규범적인 법을 언급함-> 정치철학에 영향

4. 파르메니데스와 엘레아학파

4-1. 파르메니데스

4-1-1. 있다와 있지 않다 두 가지의 탐구의 길-> 후대에 존재론과 형이상학에 영향을 줌

4-1-2. 존재는 존재 그자체이며 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진리의 길)

4-1-3. 일상 세계의 일어나는 변화는 있으며 감각의 길에서 다룸(거짓 개념)

4-2. 멜리소스

4-2-1.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풀어서 설명함

4-2-2. 우주는 무한, 불변, 부동의 나누어지지 않는 동일한 것이라 주장

4-2-3. 우주에 대한 주장을 통해 고통과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 도출

4-3. 제논

4-3-1. 파르메니데스의 제자로 운동의 가능성에 대하여 부정함

4-3-2. 운동 시 목표점 도달의 목적을 반복되는 중간점 도달문제로 인해 불가능함을 주장

4-3-3. 그의 주장은 궤변이라는 평가와 수학르네상스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음

제2장 근세란?

근세의 개념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세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양사의 한 시기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편의상 본 글에서는 ‘근 세’ 를 헤겔의 죽음까지로 한정하고, 이후 19세기와 20세기는 ‘현대 철학’ 이라고 따로 분리하여 다루기로 하겠다.

근세의 정신

중세의 사상과 근세 철학을 구분할 만한 특징을 살펴볼 경우, 근세(Neuzeit)라는 독일어의 의미가 ‘새 시대’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 쉽다.

특별히 우리는 근세의 철학에는 중세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제를 다룰 것이고 이것이 근세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 대의 많은 문제들은 이미 후기스콜라학파, 옥캄과 유명론자들, 엑크하르트와 쿠 사누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둔스 스코투스 같은 사람과 아벨라르두스 등 여러 사람들이 이미 중세에서 논의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중세철학의 여러 중요한 문제들은 근세의 사고 안에 그냥 남아 있다. H. 하임쉬트의 연구에서처럼 서양의 커다란 주제들은 서양의 정신사 전체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위대한 모든 시대를 넘어서서 한결같이 꿰뚫고 있는 철학적인 연속성을 이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근세의 철학은 단지 상대적으로 새로울 뿐이다.

또한 ‘근세철학은 그 목표와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고 자율적 이라는 점에서 중세와 구별된다’ 는 견해 또한 적절한 주장이 아니다. 이 주장은

단지 근세인들이 의식적으로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고 중세기 사람들보다 이런 것에 관해 더 많은 말들을 했다는 점을 주장할 뿐이다. 사실 중세인들도 자유 로웠으며, 이를 반대하기 위해서 중세에 실제로 있었던 여러 가지 구속들을 지 적한다면, 또한 근세에 있어서도 그랬다는 것을 지적해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데까르트에 대한 네델란드 정부의 조치, 스피노자의 암스테르담시의회의 태도, 정치적인 풍조에 대한 철학자들의 지나친 묵인 등등. 결론적으로 근세를 그 어 떤 개념들을 가지고 한 마디로 특징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가치개념들은, 이미 그것들이 시대적인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주관화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세를 구별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근세의 사고의 분열을 지적하 는 태도일 것이다. 이런 분열은 근세철학의 정신에게만 고유한 특징처럼 보인다. 어느 시대에도 이런 분열은 없었다. 근세에 이르러 문화의식의 분열이 생기고 더 나아가 각각의 민족국가들이 형성되었으며 민족들이 분열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럽의 정신과 통일되어 있던 세계관도 분열을 하게 되었다. 이론적인 이성과 실천적인 이성, 앎과 믿음, 종교와 형이상학, 정치와 도덕들만 서로 떨어져 나가 독립했던 것이 아니라 문제, 방법, 이론 등도 너무나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래서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내다볼 수도 없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까 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회의들은 언어의 혼란을 겪었고, 마침내 정신은 자포자기를 하고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보다 높게 평가하면서 자 살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모순된 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줘 철학에서 등을 돌리고 일종의 절망적인 회의주의의 상황에 처하게 할 위험이 있다. 물론 이런 관찰은 피상적인 관찰이고 속단에 지나지 않는다. 의견이 너무 많아 생기는 이런 혼란은 철학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이고 극복되어야만 한다. 지나치게 빨리 단념하지 않고, 한층 더 깊게 철학을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이야 말로 서로 다르고 일방적인 이론들과 입장들이 어떻게 서로를 다시 고쳐주며, 부분적인 것들을 보충해주고 앞으로 이끌고 나가는 학설들의 총제적인 구조를 갖는 전체로서의 철학이 진리로 나아가는 왕도라는 것을 당장 깨닫게 될 것이다.

처음엔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잘못되었던 것도, 나중에 와서는 절대적인 진리 에로 나아가려는 의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모든 철학자들이나 학파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철학 정신은 항상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고 있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철학은 비록 인간에게 가능한 한의 확실성이긴 하지만, 몇 가지의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이런 진리들을 모두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실존철학에 이르기까지의 근세철학의 최근의 발전상은 이런 입장과 앞뒤가 들어맞으며, 이런 입장이 근세철학의 내적인 본질을 알맞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발전은 제일 마지막 종착역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진리에로 나 아가려는 의지도 물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진리 그 자체가 아니기 때 문이다. 우리는 단순한 의지만으로, 진리를 추구해나가는 도중에 있는 것만으로, 그리고 단순한 문제제기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근세철학을 앞으로 이끌어나 가는 일은, 깊은 지혜를 가지고서 몇 가지의 변치 않는 진리들이 참된 철학적인 사고의 진짜 열매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성공할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 근세의 사고를 해결할 수 없는 분열이라고 너무나도 가볍게 단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 리낌 없이 맞부딪혀서 보다 좋은 것을 보여주고, 보다 깊이 파고들고, 보다 더 멀리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근세의 사고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소피스트~소크라테스 자신의 철학

소피스트

  1. 소피스트들은 원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순회교사를 말한다. 이들은 또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대가를 받았기에 최초의 직업적인 철학자로 불러도 무방하다.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주로 아테네에서 활동하였으며, 당시 아테네에서는 법정에서 변론을 펴거나 정치에 진출하는 젊은이들 많았기에 소피스트는 이들의 교육과 지도를 대가로 상당한 액수의 비용을 받았다.

프로타고라스

  1. 소피스트의 선두주자.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상대주의적인 인식론적 입장을 내세웠다. 이 밖에 그는 명사의 성 및 동사와 시제와 법을 처음으로 구별했을 뿐 아니라 애매한 문헌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연설을 평가하면서 최초의 문학 비평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논증을 펼칠 수 있는 준비를 항상 갖췄다. 유명한 예로는 그에게 교육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자자 에우알토스를 고소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논증에 대해서 단지 나쁜 논증을 좋게 보이게 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2. 히피아스 : 수학, 천문, 음악, 역사, 문학, 신화 등에 모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옷과 신발을 만드는 실용적인 기술까지도 겸비한 엘리스 출신의 소피스트
  3. 프로디코스 : 문법보다는 단어의 의미에 더 큰 관심을 지닌 최초의 사전 편찬가 이자 언어학자. 그가 무엇을 ‘원한다’라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두 그리스어 단어 boulesthai와 epithumein을 구별하는 것은 후에 큰 철학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고르기아스

  1. 그는 엠페도클레스의 제자로 설득력 있는 웅변가였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수사학자로서 연설에서 사용되는 서로 다른 수사법을 분류했다. 그의 저술 중에는 지금까지 철학적 관심을 끄는 두 편의 짧은 글이 있다.
  2. 첫 번째 글에서 그는 트로이(troy)의 헬레네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어떠한 인간도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녀가 설득에 굴복 당했더라도 ‘말은 실재하거나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존재’이자 ‘신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인간이 저항할 수 없’으며 ‘우리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정신적 질병’인 사랑에 빠졌다면 또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고르기아스의 언급은 자유, 결정론, 불가항력, 외부의 자극, 충동 등을 둘러싼 다양한 철학적 논의의 출발점을 이룬다.
  3. 그의 저술 《존재하지 않는 바에 관하여》에는 세 가지 회의적인 결론에 이르는 논증이 등장한다. 이 세 가지 결론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무엇인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으며, 무엇인가를 인식하더라도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이다.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논증들은 사실상 궤변에 가깝다
  4. 이외에 ‘힘이 곧 옮음‘이라 주장한 칼리클레스,’정의란 권력을 쥔 자들의 자기이익‘이라고 폭로한 트라시마코스, 상대방에게 당신의 아버지는 개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려 했던 한 쌍의 궤변가 에우티데모스와 디오니시도로스가 있다.
  1. 소크라테스
    1. 그는 어떤 의미에서 철학 자체의 막을 연 인물로 제시된다. 철학 교과서에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와 이 후의 철학자로 나누어 분류한다. 수많은 철학 학파들이 그를 학파의 창시자라고 주장하였으며 현대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독재 치하의 비이성적인 이데올로기에 반발하면서 그의 삶을 철학적 삶의 전형으로 여겨왔다. 그는 기원전 469년 아테네에서 태어나 민주주의가 가장 꽃 필 때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생애 중 후반기에서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함에 따라 민주주의가 과두정치로 변모하였다. 이 과정 중 그는 불법적인 명령은 거부했지만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일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주주의자와 귀족주의자들 모두의 미움을 받고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명목으로 고소당해 독당근즙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2. 크세노폰이 묘사한 소크라테스: 크세노폰은 네 권으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 회상록과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향연》을 썼다. 그는 플라톤과 달리 소크라테스를 평범한 노동자와 같은 태도로 질문을 던지고 주장을 펴면서 상대방을 타이르는 인물로 그렸다. 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인물로 종교적인 의식에 충실히 따랐으며 신탁을 존중하였다. 또한 소크라테스를 예의바르고 온화하며 절제심이 높은 사람으로 표현했다. 크세노폰은 그가 대화 중 애매한 점을 해소하고 위선적 표현을 제거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논증이나 사변을 펼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이 유용하다면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어떤 계획의 결과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비록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어떤 측면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사람들의 친구였으며 범죄나 국가 반역은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크세노폰의 주된 관심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정에서 그의 무고함을 밝히고 존경할 만하다는 것에 집중되었다.
    3. 플라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
      1.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크세노폰과 달리 수준 높은 문학적 장치를 동원하여 깊이 있는 형이상학적 강의를 해나가는 인물로 표현한다. 그러나 논의를 하기에 앞서 어떤 대화가 소크라테스의 실제 모습인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화가 일관성이 없으며 이 중에서는 플라톤의 주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대화편의 극적인 구성, 철학적 내용, 문체의 특성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분류되며 후기로 갈수록 플라톤 자신의 주장을 대변하는 내용이 많다.
      2.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며 낯선 신들을 도입하였다’는 비판이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생각이 아낙사고라스의 세속적인 물리적 우주관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한 때 우주론에 관심이 있었으나 델포이 신전에서 여사제가 전한 신탁으로 인해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여사제는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라고 신탁했으며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결국 그는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지혜가 무의미함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현명하며 따라서 신탁을 옳았다고 결론 내린다. 그가 진정한 지식을 추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분야는 바로 도덕의 영역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덕과 도덕적 지식은 동일한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선이 무엇인지 전정으로 아는 사람은 다른 행위를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그릇된 행위는 무지의 결과라는 주장을 내리게 된다. 이에 비추어 그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다.
      3.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은 자신의 철학적 임무를 끝없이 수행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는 정의를 추구했는데 왜냐하면 정의가 정의로운 사람에게 유익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어떤 덕목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 덕목이 어떤 특수한 속성을 보편적으로 지니는지 결정할 수 없으며 미묘한 경우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정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논증 중 주로 귀납법을 이용했다.

History of Philosophy?

1.1 왜 철학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우리가 위대한 정복자나 파괴자들은 알면서도 위대한 창조자들, 유럽 문화에 진 정으로 기여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위대한 미술가들과 조각가들 뿐만 아니라, 플라톤과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 역시 유럽 문화를 비옥하게 만든 사람이다. 그러므로 최소한 유럽 철학의 흐름에 대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교양 교육에 속한다. 물론 과거의 철학 체계들은 단지 낡은 유물에 불과하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류는 항상 교훈적이라는” 것은 여전히 진리로 남는다. 기초부터 철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철학사 공부는 필수불가결하다. 왜냐하면 철학사를 공부하지 않을 경우 그의 선배 철학 자들이 저질렀던 오류들을 반복하는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지만, 그가 과거의 사상을 진지하게 연구했다면, 아마도 그 위험에서 빠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1.2 철학사 연구 방법

  1. 첫번째로 강조할 점은 어떤 철학 체계도 그것의 역사적 배경과 관련 속에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주어진 어느 한 철학자의 마음 상태와 그의 철학의 존재 이유는, 먼저 그 철학의 역사적 출발점을 이해했다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철학자의 입장 속으로 우리 자신을 밀어 넣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즉 그의 사상들 내부로부터 보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 철학자의 심리 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그의 사상 그 자체로서의 진위나 또는 그의 체계와 이전의 사상과의 논리적 관계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3. 한사람의전생애를한명의위대한사상가의연구에바쳐도여전히많은 연구 꺼리를 당연하게 남겨 놓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어떤 사상 가를 잠깐 동안의 연구로 알기는 어렵다. 여러 과학들의 영역들에서 그러한 것처럼, 철학사 영역에도 전문화가 일반적인 규칙임은 당연하다.

1.3 일반적인 철학사의 본질과 가치

철학사란 일반적으로 철학자들의 생애, 저작 및 학설 등을 전하여 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를 잘 알려면 우선 그 철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의 사실적 흐름, 시대 현실 뿐만 아니라 그 학설이 생겨나게된 가장 기본적인 전제와 궁극적인 가정을 파악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그들을 주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지 말고 실 제로 있었고 말했고 생각했었던 것을 보려고 애써야 한다.

다시 말해 플라톤 속에서 신칸트 철학을 읽거나 아리스토텔레스 속에서 스콜 라 철학을 읽어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철학사란 진실을 위한 성실한 투쟁이 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옳기만 한 것도 아니고 오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의 왕국에 있어서는 위대한 사람들의 사상들은 자기들보다 몇 세기 전에 살았던 철학자들의 사상들과 내용상으로 직접 잇닿아져 있다”는 W.크라머의 말처럼 철학 문제는 낡아버리지 않는 시간을 벗어난 그 어떤 것이 있다. 물론 철학을 지식처럼 쌓아두기만 하면 이는 지식일 뿐 지혜가 아니다. 따라서 철학사 를 정보로만 이용하지 말고 정신의 자기 성찰이라고 규정한다면 진정한 철학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