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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 부터 우주론까지

1.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과 시학

1-1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과 관련해 두 권의 저술을 썼다. 하나는 수사학, 다른 하나는 시학이다. 이 둘은 각각 법정에서 변호를 맡은 사람과 희곡작가들의 임무를 돕기 위해서 쓰였다고 한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수사학이, 어떤 상황에도 가능한 설득의 방법을 제시하려는 학문 분과라고 말한다. 이는 결코 어떤 특수한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으며 논의 주제와 무관하다. 또한 그는 말을 통해 설득하는 데에는  세가지가 기초로 작용한다.  이 셋은 말하는 사람의 특성,  청중들의 태도 그리고 말 자체의 논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와 특성에 관해서는 다른 저서들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감정에 대해서는 《수사학》2권에서 가장 완전한 견해를 드러낸다.

1-1-1  수사학과 달리 《시학》은 모든 시대를 통틀어 폭 넓게 읽혔다.       현재 《시학》의 1권만이 전해지는데 여기선 서사시와 비극이 논한다.  희극은 다룬 2권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시학》제대로 이해하려면 플라톤의 시에 대한 견해를 알아야 한다.  플라톤 물질적인 대상들을 실재하는 이데아의 모방으로 간주한다. 즉 대상에 대한 예술적인 묘사는 실재로부터 이중으로 멀어진 것,  다시 말해 저급한 것으로 정의한 것이다.

1-2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시와 철학의 대립을 해소하려 했다. 그는 모방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한다. 모방은 인간을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드는 특성중 하나로 본다. 인간의 학습 범위를  넓혀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묘사는 그 자체만으로 큰 기쁨을 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묘사한 그림들을 보며 충분 히 즐기고 감탄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1-2-1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엔 여섯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말했다.  줄거리, 성격, 문체, 사상, 시각적 효과 그리고 노래다.  그는 특히 처음 두 가지인 줄거리와 성격에 관심을 보인다. 그는 비극의 위대성은 희곡을 읽는  것만으로 제대로 평가 할 수 있다 보았다.  또한 사상과 문체에 관해선 더욱 중요하게 보았다. 이는 설득력 있는  표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비극의 정수가 되는 것은 결국 성격과 줄거리라 주장했다.

1-2-2  그는 비극을 구성하는 등장인물이 선한 면과 악한 면 모두를 갖추고 작품 전체에 어울리는 성격을 소유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등장인물은 줄거리를 위해 창조되어야 하며, 줄거리는 도입,전개,종결이 명확히 통일성을 지닌 하나의 귀결된 사건으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3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비극론을 통해 이러한 예술 행위들이 단순한 이데아 세계에 대한 모방만이 아니라 주장했다. 시와 연극 등은 또  다른 창조행위고, 일상적 삶에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을 순전한 우연한 산물로 보았다. 오직 허구의 세계에서만 자연스런 결과로 이어지는 방향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저술들

1.  그의 전집  중 도덕철학에 관환 저술을 세 종류가 전해진다.  10권으로 구성된 《니코마코스 윤리학》,  7권으로 구성된 《에우데모스 윤리학》과 2권으로 구성된 《대윤리학》이 바로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얼마 되지 않은 때 , 여러 학자들은 그의 윤리적 저술을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를 거치고 근대 초 고전 연구가 부흥한 이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의 정수로 여겨지며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되었다.

2.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달리 《에우데모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사이에서 지극히 소수만 관심을 보였다. 후에 이 작품은 아리스토텔레스 사후에 쓰인 작품이라는 주장과 세 작품 중 가장 먼저 쓰였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논의 되기도 한다.  후에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그 내용 면에서 겹치고,  문체면에서 《에우데모스 윤리학》이 플라톤의 주장에 더 잘 어울리고 가깝다는  점에서 《에우데모스 윤리학》을 리케이온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보고 있다.

3. 세 윤리학 저서는 전반적으로 상당히 유사하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이데아론을 배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철학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가 아닌 행복을 최고선으로 보았다. 윤리학은 인간 능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바를 다루는 실천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유사한 점은 덕을 갖춘 삶과 행복한 삶 사이의 밀접한 연결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즉 행복한 삶은 덕이 있는 행위를 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차이점으로는 덕에 대한 유형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3.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이론

 1.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마지막 보충 부분에서 최선의 국가는 어떤 헌법을 채택해야 하며 또 반대는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이는 《정치학》의 머릿말처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2.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가 최고선을 삼는 최고 수준의 공동체라는 말과 함께 논의를 시작한다. 또한 국가는 자급자족이 가능한 최초의 공동체로서 가족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공동체라고 말한다. 국가가 인간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3.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용하고 비판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플라톤이다.  그가 플라톤과 다른 주장을 펼친 주된 요지는 도시국가에서의 삶이 병영에서 의 삶과 같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정치 체계를 설명 하는 데에 플라톤의 제언을 풍부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이론적 논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며 때로는 둘의 개념적 구조가 매우 유사하기도 하다.

4.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양한 정치 체제들을 상세히 평가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의 본질을 논한다. 그는 일종의 입헌민주정을 선호했는데 그가 생각한 ‘이상적 민주정’은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며 최고 수준의 자질을 갖춘 시민이 나머지 모든 시민의 만족을 목표 삼아 통치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체제를 심의부, 관리부, 사법부  세 부분으로 나눈 최초의 형태를 제시하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노예제도의 정당화와 고리대금의 금지에 관한 것이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맥락을 따른 것으로 현대에서의 두 개념으로 논의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명 다른 견해를 펼쳤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

  우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선구자들과 플라톤의 《티마이오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위치한다고 한다.

  또한 천체의 정신은 초자연적, 살아 있는 지성으로서 우주에서 천체의 운행을 인도한다고 보았다. 이런 주장은 불변하는, 영원한 운동의 원인이 , 즉 다른 존재들을 운동하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적 저술 중 가장 나은 것도 오늘날에는 단지 역사적 관심의 대상 밖에 되지 않는다. 

 그의 저술들이 계속 가치를 지니는 까닭은 시대를 넘어서 다른 시대의 자연학에까지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기본 개념들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이데아론, 국가 그리고 법률과 티마이오스까지

 

1.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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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내용은 덕을 가르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메논>, <파이돈> 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전혀 다른 대답을 살펴볼 수 있다. 덕 그리고 선과 악에 대해 현세에서는 가르칠 수 없다는 내용인데,  오직 현세가 아닌 더 나은 세상을 상기할 때만 이것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이는 덕 뿐만 아니라 지식 전반에 관한 그의 일반적 주장이다. < 메논> 에서는 한 번도 기하학을 배운 적 없는 노예소년도 적절한 질문을 통해 중요한 기하학의 진리를 생각해 낼 수 있고 ,  < 파이돈> 에서는 서로  절대적으로 동일한 한 쌍은 결코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동일성에 관한 관념은 경험이 아니라 전생의 관념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같은 맥락으로 다른 절대적 선,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도 그렇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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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논>과 <파이돈> 은 이데아론 및 상기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아닌 플라톤 자신이 제시한 입장이다. 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에 따르면,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보편적 정의”와 일상적 세계에서 대하는 경험적 실재들을  “분리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1-3

플라톤은  <파이돈> 에서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대화편을 통해 자신의 이데아론을 분명히 소개한다. 이 두가지가 실제로 일어 났다 보긴 힘들다. 이에 대해선 소크라테스의 육체적 죽음과 개인 철학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다. 즉 이러한 과정은, 그의 철학이 더욱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적인 형태로서 플라톤주의로 환생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2. 이데아론

2-1  이데아론의 출발점

이데아론은 <에우티프론> 에서 시작해 중요한 대화편에서 계속 등장한다.  명백히 제시되거나 형식적으로 확립되기 보다는,  자주 암시 되고 당연시 되며 일반적으로 주장된다.  플라톤이 썼다고 여겨져 온  일곱 번째 편지의 내용엔 그의 이데아론에 대한 정의가 담겨 있다. 이것은 이데아론을 가장 명확하고 권위 있게 설명하는 문헌으로 본다.

2-2  이데아론에 대한 기본적 이론

일곱 번째 편지 내용엔 이데아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선 1) 이름 , 2)정의 , 3) 형태 ,  4) 지식체계 그리고 5) 인식 가능한 동시에 진정으로 실재하는 무엇인 이 다섯 가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경우든 앞선 네 가지 요소를 파악하지 않고선 다섯 번째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다섯 번째 지식은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에 관한 것이다.  또한 이데아에 대한 표현은 저술마다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형상'(eide) 라는 표현이 가장 일반적이고  X의 이데아 또는 형상은  ‘X 그 자체’ , ‘ X인 바로 그것, ‘X임’ ,  ‘X인 바’로 불리기도 한다.

2-3 이데아론에 대 한 적용과 설명

철수는 인간이다라고 하면 철수라는 ‘이름’이 철수라는 한 개인을 대표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인간’ 이란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고 대표하는 것인지는 모호하다. 이에 대해 플라톤은 ‘인간의 이데아’ 란 개념을 도입한다. ‘인간의 이데아’는 철수를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무언가이며 ‘인간’ 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지니는 일차적 존재라 한다.이는 각 객체들은 모두가 어떤 이데아나 형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를 정리 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공통성의 원리.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F라면 그 까닭은 이들의 F의 이데아라는 한 가지 요소를 분유하거나 모방하기 때문이다.

(2) 분리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인 모든 것들과 구별된다.

(3) 자기서술의 원리. F의 이데아는 F 자체이다.

(4) 순수성의 원리. F의 이데아는 다름 아닌 F일 뿐이다.

(5) 유일성의 원리.  오직 F의 이데아만이 진정으로, 참으로, 전적으로 F 이다.

(6) 절대성의 원리. 이데아는 영원히 지속되며, 어떤 부분으로 나뉘지도 않고, 어떤 변화도 겪지 않는다. 또한 감각을  통해서는 지각되지 않는다.

 2-4 이데아의 구분

앞서 제시된 원리중 가장 주목할 특성은 절대성 원리다.  이것은 이데아를 분유하는 개체들을 수준 낮은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  개체들이 분유하는 이데아를  수준 높은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모든 이데아들 중에선 선의 이데아를 가장 우월한 것으로 본다.

2-5 이데아에 대한 논의점

그러나 이데아론의 문제점은, 이데아론이 규정하는 이 원리들이 상호 간에 조화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는 후에 형이상학에서 더 자세한 내용으로 다루도록 한다. 또한 플라톤은 자신의 이데아론을 많은 철학적 문제들에 적용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론  ‘지구 보편의 문제’가 있다. 이는 ‘인간’ , ‘ 신’ , ‘덕’ 등 보편명사에 관한 내용이다. 이 또한 철학적 난제이며 해결되지 않는 것으로 남아 있다. 뒤 이은 장들에서 아리스토 텔레스가 어떻게 이 문제를 다루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3.  플라톤의  ≪국가≫

3-1 국가에 대한 논의

국가는 이데아론을 다양하게 응용한 내용보다는  자세히 묘사된 정치 제도 때문에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정의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언가임을 증명하려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1권의 내용이 시작된다. 이런 논의의 틀에서 플라톤은  ‘도시국가에서의 정의’ 라는 큰 주제로 넘어간다.

3-2 정치 체제에 대한 정의

플라톤은  정치체계 (정치이론) 을 다섯 가지로 정의 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귀족정치 (군주정치) – 명예지상정치 – 과두정치 – 민주정치- 전체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정의에 대해서 플라톤은 ‘귀족정치’ 에서 멀어질수록  ‘정의’로 부터 멀어진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세 계층으로 구성된 도시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하는데,  이는 군인들 중 통치에 가장 적합한 이들을 선발하여 수호자로 부르고,  나머지 군인을 보호자로 규정한다. 마지막으로 나머지 시민들은 농부와 장인 계층에 속하도록 한다.  수호자들은 지혜의 덕, 보호자들은 용기, 노동계층은 절제를 덕으로 삼아 계층들간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3-3 플라톤의 견해

현실에선 이와 같은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인정하지만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귀족정치이고 그에 가까워 질 수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법률≫과  ≪티마이오스≫

 

≪법률≫

1-1 플라톤은 말년에 이르러 철인통치론을 포기한다.  도시국가의 복지와 관련해,  이데아론의 정치적 중요성보단 법률의 중요성이 더 크다고 본 것이다.  말년에 쓴  ≪법률≫은 이와 관련한 국가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는 당시 존재한 아테가 채택한 정치체제와 플라톤의 이상국가 둘의 중간 모습이다.

1-2 입법제도에 관한 이야기는 ≪법률≫의 중반부 몇 권에 등장한다. 일반 시민들이 법률의 취지를 잘 이해하고, 각각의 법률을 그 목적을 잘 드러내도록 전문을 포함해야 한다는 게 그 골자다. 또한 당시엔 생소했던 성윤리에 관한 논의를 펼치기도 한다. 이는 훗날 중세 기독교 시대에 이르러 통용된 개념이기도 하다. 성행위의 목적, 동성애에 대한 플라톤의 생각이 담겨있는데 이전의 소크라테스 대화편에 등장하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특징이다.

1-3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10권인데 신에 대한 숭배와 이교를 몰아내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선 차후 종교철학에서 다루도록 한다.

≪티마이오스≫

1-1 ≪티마이오스≫와 ≪법률≫의 저술시기는 겹치는 듯 보이는데, 여기선 신과 우리가 살아가는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전통적 철학 주제인 우주론에 관한 논의다. 주로 아낙사고라스가 이전에 남긴 이론중 불만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논점으로 삼는다.

1-2 ≪티마이오스≫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세계의 아버지,조물주,창조자 등으로 불리는 신성한 존재들이 만들어낸 세계다. 이 논의의 출발점은 세계가 항상 존재했는지 아니면 출발점이 있는 지에 대한 물음이다. 플라톤은 세계의 출발점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창조주와는 몇몇 측면에선 다른 개념이다. 또한 다양한 세계에 대해 언급한 이전 철학자들과는 다르게, 플라톤은 우리의 우주가 오직 하나라는 확고한 믿음을 지닌다. 여기에 이전 ≪국가≫에서 도입한 인간 영혼의 삼분법을 더욱 발전시키기도 한다.

1-3 플라톤의≪티마이오스≫는 다른 대화펴들이 고대말기에 사라졌다 르네상스에 다시 등장한 것과는 달리,  훗날 수세기동안 꾸준한 영항력을 끼친 작품이기도 하다.

 

제2장 근세란?

근세의 개념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세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양사의 한 시기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편의상 본 글에서는 ‘근 세’ 를 헤겔의 죽음까지로 한정하고, 이후 19세기와 20세기는 ‘현대 철학’ 이라고 따로 분리하여 다루기로 하겠다.

근세의 정신

중세의 사상과 근세 철학을 구분할 만한 특징을 살펴볼 경우, 근세(Neuzeit)라는 독일어의 의미가 ‘새 시대’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 쉽다.

특별히 우리는 근세의 철학에는 중세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제를 다룰 것이고 이것이 근세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 대의 많은 문제들은 이미 후기스콜라학파, 옥캄과 유명론자들, 엑크하르트와 쿠 사누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둔스 스코투스 같은 사람과 아벨라르두스 등 여러 사람들이 이미 중세에서 논의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중세철학의 여러 중요한 문제들은 근세의 사고 안에 그냥 남아 있다. H. 하임쉬트의 연구에서처럼 서양의 커다란 주제들은 서양의 정신사 전체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위대한 모든 시대를 넘어서서 한결같이 꿰뚫고 있는 철학적인 연속성을 이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근세의 철학은 단지 상대적으로 새로울 뿐이다.

또한 ‘근세철학은 그 목표와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고 자율적 이라는 점에서 중세와 구별된다’ 는 견해 또한 적절한 주장이 아니다. 이 주장은

단지 근세인들이 의식적으로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고 중세기 사람들보다 이런 것에 관해 더 많은 말들을 했다는 점을 주장할 뿐이다. 사실 중세인들도 자유 로웠으며, 이를 반대하기 위해서 중세에 실제로 있었던 여러 가지 구속들을 지 적한다면, 또한 근세에 있어서도 그랬다는 것을 지적해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데까르트에 대한 네델란드 정부의 조치, 스피노자의 암스테르담시의회의 태도, 정치적인 풍조에 대한 철학자들의 지나친 묵인 등등. 결론적으로 근세를 그 어 떤 개념들을 가지고 한 마디로 특징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가치개념들은, 이미 그것들이 시대적인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주관화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세를 구별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근세의 사고의 분열을 지적하 는 태도일 것이다. 이런 분열은 근세철학의 정신에게만 고유한 특징처럼 보인다. 어느 시대에도 이런 분열은 없었다. 근세에 이르러 문화의식의 분열이 생기고 더 나아가 각각의 민족국가들이 형성되었으며 민족들이 분열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럽의 정신과 통일되어 있던 세계관도 분열을 하게 되었다. 이론적인 이성과 실천적인 이성, 앎과 믿음, 종교와 형이상학, 정치와 도덕들만 서로 떨어져 나가 독립했던 것이 아니라 문제, 방법, 이론 등도 너무나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래서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내다볼 수도 없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까 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회의들은 언어의 혼란을 겪었고, 마침내 정신은 자포자기를 하고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보다 높게 평가하면서 자 살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모순된 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줘 철학에서 등을 돌리고 일종의 절망적인 회의주의의 상황에 처하게 할 위험이 있다. 물론 이런 관찰은 피상적인 관찰이고 속단에 지나지 않는다. 의견이 너무 많아 생기는 이런 혼란은 철학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이고 극복되어야만 한다. 지나치게 빨리 단념하지 않고, 한층 더 깊게 철학을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이야 말로 서로 다르고 일방적인 이론들과 입장들이 어떻게 서로를 다시 고쳐주며, 부분적인 것들을 보충해주고 앞으로 이끌고 나가는 학설들의 총제적인 구조를 갖는 전체로서의 철학이 진리로 나아가는 왕도라는 것을 당장 깨닫게 될 것이다.

처음엔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잘못되었던 것도, 나중에 와서는 절대적인 진리 에로 나아가려는 의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모든 철학자들이나 학파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철학 정신은 항상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고 있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철학은 비록 인간에게 가능한 한의 확실성이긴 하지만, 몇 가지의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이런 진리들을 모두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실존철학에 이르기까지의 근세철학의 최근의 발전상은 이런 입장과 앞뒤가 들어맞으며, 이런 입장이 근세철학의 내적인 본질을 알맞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발전은 제일 마지막 종착역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진리에로 나 아가려는 의지도 물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진리 그 자체가 아니기 때 문이다. 우리는 단순한 의지만으로, 진리를 추구해나가는 도중에 있는 것만으로, 그리고 단순한 문제제기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근세철학을 앞으로 이끌어나 가는 일은, 깊은 지혜를 가지고서 몇 가지의 변치 않는 진리들이 참된 철학적인 사고의 진짜 열매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성공할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 근세의 사고를 해결할 수 없는 분열이라고 너무나도 가볍게 단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 리낌 없이 맞부딪혀서 보다 좋은 것을 보여주고, 보다 깊이 파고들고, 보다 더 멀리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근세의 사고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