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

#소피스트

4-1. 데모크리스토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미 그와 고향이 같은, 압데라 출신의 젊은 철학자 프로타고라스가 등장하였는데 프로타고라스는 새로운 철학자 계층인 소피스트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소피스트는 원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말하자면 순회 교사들이었다. 설령 이들이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철학을 넘어서 더욱 폭넓고 다양한 영역의 교육을 제공하는 학교기관이나 시설을 세우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이들은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대가를 받았으므로 이들을 최초의 직업적인 철학자라고 불러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소피스트 중에 가장 다재다능한 인물이엇던 엘리스 출신의 히피아스는 수학, 천문, 음악, 역사, 문학, 신화 등에 모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옷과 신발을 만드는 실용적인 기술까지도 겸비하였다고 전한다. 또 다른 소피스트들은 수학과 역사, 지리 등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다. 또한 이들 모두는 뛰어난 수사학자였다. 소피스트들은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주로 아테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는데 당시 아테네에는 법정에서 변론을 펴거나 정치에 진출하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이 많았고, 이들은 교육과 지도를 받는 대가로 소피스트에게 상당한 액수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였다.

4-2. 소피스트들은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토론과 웅변을 통한 설득의 방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이들은 다양한 주제에 관한 글을 썼다. 이들은 기본 문법으로부터 출발하엿다. 프로타고라스는 명사의 성 및 동사의 시제와 법을 처음으로 구별하였다. 이들은 계속해서 논증의 기법을 열거하고 자기 옹호를 위한 요령을 개발하였다. 애매한 문헌들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연설을 평가하면서 이들은 최초의 문학비평가로도 활동하엿다. 또한 이들은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와 공연을 하기도 하고 논쟁을 주고받는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한편으로는 교육을 다른 한편으로는 여흥을 위한 것이었다. 종합해 보면 이들은 현대사회의 교사, 상담역, 변호사, 홍보 전문가, 대중매체의 유명인사 등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4-3. 프로타고라스는 압데라의 대사 자격으로 아테네를 처음 방문하였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로부터 환영받았다고 전해지며 그 후 몇 차례 더 아테네를 방문하였다. 그는 라는 제목의 소논문을 큰 소리로 읽었는데 그 첫머리는 오래토록 기억되어 오늘날까지 전한다. ‘신들에 관하여, 나는 그들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또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에 관한 지식에 이른느 길에는 많은 방해물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방해물로는 주제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 그리고 인간의 삶이 너무 짧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상대주의적인 인식론을 요약하여 표현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후에 상세히 살펴볼 예정이다.

4-4. 프로타고라스는 어떤 질문에 대해서도 어떤 측면에 대해서도 논증을 펼칠 준비를 갖추었던 듯이 보인다. 사실 그는 자신은 항상 나쁜 논증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엿다. 어쩌면 이는 그저 그가 논증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잘 가르쳐 소송 등에 대비한 최선의 준비를 갖추어 줄 수 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리스토파네스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비판자들은 이와는 전혀 달리 그가 나쁜 논증을 좋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하였다고 해석한다. 프로타고라스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은 그가 교육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에우알토스를 고소한 이야기를 즐겨 언급한다. 에우알토스는 프로타고라스의 가르침을 받은 후 재판에 나가 자신이 이기면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데 그는 아직 자신이 단 한번도 재판에서 이기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대가의 지불을 거절하였다. 프로타고라스는 대가를 지불하라고 그를 고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말을 잘 듣게. 만일 이 소송에서 내가 이기면 자네는 재판의 판결에 따라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네. 만일 자네가 이기더라도 여전히 자네는 나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네. 왜냐하면 자네는 재판에서 이긴 셈이 되기 때문이지’.

4-5. 또 다른 소피스트 포르디코스는 에게 해의 섬 케오스 출신인데 프로타고라스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도시국가의 공적인 임무를 맡아 아테네로 왔다. 그는 언어학자였는데 문법보다는 단어의 의미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그를 최초의 사전 편찬자로 여길 수 있을 듯하다. 그가 시도한 몇몇 구별은 후에 큰 철학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4-6. 프로디코스는 덕과 악덕을 두 여성으로 의인화한 후 이 둘 중 누구를 선택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젊은 헤라클레스를 다룬 낭만적이고 도덕적인 우화의 저자로 여겨진다. 또한 그는 종교의 근원에 관한 이론도 제시하였다.

4-7. 시칠레아의 레온타니 출신인 고르기아스는 프로타고라스에 뒤이은 대사 출신의 소피스트이다. 그는 설득력 잇는 웅변가엿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수사학자로서 연설에서 사용되는 서로 다른 수사법, 예를 들면 대조법이나 수사를 위한 질문법 등을 분류하기도 하엿다. 그의 문체와 연설법은 그의 생전에는 크게 칭찬받았지만 후에는 지나치게 미사여구를 즐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저술들 중 철학적 관심을 그는 두 편의 짧은 글이 오늘날까지 전한다.

4-8. 첫 번째 글은 트로이아의 헬레네를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그녀를 옹호하는 수사학적 훈련을 다룬 것인데, 여기서 고르기아스는 헬레네가 파리스와 함께 달아남으로써 트로이아 전쟁의 불씨를 제공하였다는 점을 들어 그녀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행하지 않을 수 없는 바를 행했을 뿐이다. 그녀가 그렇게 한 까닭은 변덕스러운 운명에, 즉 신들의 결정이나 필연적인 섭리에 따랐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폭력에 의하여 유괴되었거나, 감언이설에 설득되었거나 또는 사랑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말은 실재하거나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말은 신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만일 헬레네가 사랑에 빠졌다면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사랑은 우리 인간이 저항할 수 없는 신과 같은 것 또는 우리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정신적 질병이기 때문이다. 이 짧고 재치 있는 언급이 바로 자유와 결정론, 불가항력, 외부의 자극, 억누를 수 없는 충동 등을 둘러싼 다양한 철학적 논의의 출발점을 이룬다.

4-9. 고르기아스의 저술 에는 세 가지 회의적인 결론에 이른느 논증이 등장한다. 이 세가지 결론은 첫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둘째 무언가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으며, 셋째 무언가를 인식하더라도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포함된 일련의 논증은 두 경로를 통해서 후세에 전해지는데 이 중 하나는 위 아리스토텔레스 계열의 저술인 이며 다른 하나는 섹스토스이다.

4-10. 첫 번째 논증은 ‘존재한다’는 그리스어 동사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는 특징을 다소 악용한 듯하다. 여기서 이 논증을 상세히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후에 6장에서 이 논증에는 결정적인 모호함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이려 한다. 두 번째의 논증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만일 사고의 대상들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오직 존재하는 것만이 사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사고의 대상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고의 대상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사고하는 모든 것이 존재해야만 한다. 세 논증 중 가장 그럴듯한 세 번째 논증은 개인들 각각의 감각이 자신만이 갖는 사적인 것인데, 우리가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바는 경험이 아니라 단지 말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4-11. 이 유명한 소피스트가 자신의 궁색한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도입한 논증들은 사실 궤변에 가까우며, 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궤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진단하기보다 이를 바로 거부하는 일이 손쉬울지 모르지만, 궤변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을 발견하기란 여전히 무척 어렵다. 첫 번째 궤변은 플라톤이 적절하게도 라고 이름 붙인 대화편에서 본질적으로 해소된다. 두 변째 궤변은 가끔 플라톤에서도 발견되는 논증적 오류를 포함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모든 A가 B는 아니다’가 ‘어떤 B도 A가 아니다’를 함축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후의 학자들에게 명확히 제시하였다. 세 번째 논증에서 등장한느 경험의 개인성 문제는 20세기에 이르러 비트겐슈타인의 저술이 등장한 후에야 비로소 결정적으로 해명되었다.

4-12. 프로타고라스와 히피아스, 프로디코스, 고르기아스 외에도 이름과 명성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또 다른 소피스트들이 있다. 힘이 곧 옳음이라는 주장의 강력한 옹호자인 칼리클레스, 정의란 권력을 쥔 자들의 자기이익이라고 폭로하였던 트라시마코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상대방에게 당신의 아버지는 개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려했던 한 쌍의 궤변가 에우티데모스와 디오니시도로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비롯하여 앞에서 살펴보앗던 더욱 유명한 소피스트들 모두가 주로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대화를 나누는 등장인물로 우리에게 알려진다.

4-13. 어쨌든 이제 소피스트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소크라테스를 살펴보려 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견해에 따르면 가장 위대한 소피스트이기도 하고, 다른 견해에 따르면 어떤 종류의 궤변도 단호히 거부하고 그 반대편에 섬으로써 참된 철학자의 전형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2 thoughts on “#소피스트

  1. 한닭

    안녕하세요, 전 철학 공부하는 한 학생인데요. 이 스터디는 책을 바탕으로 진행됩니까? 그렇다면 참고하신 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실례지만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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