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레닌은 제국주의자가 잉여 자본의 배출구이자 값싼 노동과 원자재의 공급원으로 식민지를 착취함으로써 자본주의 통치자들의 경제가 붕괴하게 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이 틀렸음을 설명해주었다. 그는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레닌의 후계자인 스탈린은 사회주의를 하나의 국가에 보존하는 것을 자기 임무로 받아들였으며, 공산주의 엘리트 권력은 나치 독일에 대한 민족투쟁의 애국적인 열정 덕분에 1941년에서 1945년까지 지속되고 보존되었다.
1-2. ‘파시즘’이라는 제목 아래 두 이데올로기를 나란히 놓는 것은 잘못이다. 사실상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둘 다 전체주의 국가를 믿었던 국가주의 독재자였지만, 나치주의의 지도적인 개념이 민족우월주의였음에 반해 이탈리아 파시즘의 핵심 신조였던 국가조합주의는 민족과 무관했다. 국가조합주의는 개인이 그들의 사회적 직능에 따라 대표자를 내세우기 위해 집단을 이룬 직업상의 사회 체제로 의도되었다. 조합국가는 자본가, 노동자, 전문직 사이의 관계를 통제하고, 혁명으로 이어지는 계급들 사이의 충돌을 피하는 그런 방식으로 교회 조직을 규제하고자 했다. 이것은 하나의 민족이 그 밖의 모든 민족보다 우월하므로 그 민족들을 지배하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다른 종류의 정치적 신조였다.(?)
1-3.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하나의 고전적 정치철학을 탄생시켰는데, 그것은 오스트리아 망명자 칼 포퍼가 내놓은 이었다. 이 책에서 포퍼는 정치 조직이 번성하려면 조직의 제도들이 최대한 자체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지배자가 제시한 정책들을 논의하고 비판할 수 있는 충분한 자유를 피지배자가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배자가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지 못할 경우 폭력이나 유혈 사태 없이 지배자를 바꾸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열린 사회의 주요 특징이며, 단순히 다수가 정부를 선택하는 것 이상으로 아주 중요한 민주주의의 요소들이다.
1-4. 하지만 포퍼가 모든 형태의 정부 간섭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무한한 관용은 편협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제약 없는 자본주의는 용납할 수 없는 빈곤의 수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편협성을 선동하는 것은 범죄로 간주되어야 하고, 국가는 경제적 강자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은 물론 제약 없는 경제 체제에 대한 불간섭의 원리가 단념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제약 없는 자본주의가 경제적 간섭주의로 바뀌도록 요구해야 한다.
1-5. 그의 책 2권에서 포퍼는 열린사회의 적으로 보았던 두 철학자, 플라톤과 마르크스를 공격했다. 포퍼의 주요 표적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학 법칙, 즉 피할 수 없는 결과를 향해 확고한 필연성을 가지고 작용하는 경향이 마르크스 특유의 과학적 예언이라고 내세우는 대부분의 것들을 실제로 어떻게 반증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1-6. ‘내가 말하는 역사주의는 역사적 예언을 주목적으로 삼고, 역사 발전의 기초가 되는 흐름이나 형태나 법칙이나 경향을 발견함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사회과학 접근법이다.’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무엇보다도 과학적 진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사회의 미래를 예언하려면, 우리는 과학의 미래를 예언해야만 한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의 본성을 예언하는 것은 반드시 과학적 발견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주의는 불가능하며, 우리가 과거나 미래의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의미는 역사가 자유롭고,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뿐이다.
1-7. 존 롤스는 에서 대부분의 서양 국가들이 열망한 자유민주주의의 형태에 대해 조직적인 이론 체계를 제시하고자 최선을 다했다. 롤스는 공리주의가 정의보다 복지를 앞세우기 때문에, 말하자면 ‘권리가 이익에 우선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주의 국가의 토대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롤스는 양도할 수 없는 자유를 확정하기 위한 기초로서 공리주의 대신 새로운 종류의 사회 계약, 즉 사고 실험과 같은 사고 계약을 제안했다.
1-8. 아직 아무런 사회 제도도 없지만 우리 모두가 처음에 평등하다고 상상해 보자. 이와 같은 ‘원초적 위치’에서는 우리가 의도하는 사회에서 어떤 사실들이 우리의 위치를 결정해 주는지 알지 못한다. 이처럼 ‘무지의 장막’에 갇힌 상태에서 우리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게 하는 요소들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운명에 대해 공평한 관심을 갖게 된다.
1-9. 롤스는 이와 같은 단체 설립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두 가지 정의의 원칙을 따르기를 바랄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 번째 원칙은 각자는 모든 사람에게 비슷하게 주어진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하고 기본적인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공정한 경쟁에서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는 직책과 지위에 부여되어야 하며, 이런 불평등은 그것이 최소 수혜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조정되었을 경우에만 정당화된다. 만일 두 원칙이 상충하게 된다면, 평등한 자유의 원칙이 평등한 기회의 원칙에 우선한다.
1-10. (…) 그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도덕에 대한 완벽한 만장일치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롤스는 우리의 도덕 판단에 대해 논의하고, 반성을 가하고, 수정을 가함으로써 도덕적 문제에 관한 ‘중첩적 합의’라는 것이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1-11. 롤스가 끝까지 겨냥하는 목표는 ‘반성적 평형’의 상태이다. 다양한 여러 시민들의 최초의 직감들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며, 한 개인의 직감들은 서로 맞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직감들에 대해 반성적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옹호할 수 있는 원칙으로 명확히 표현하고자 노력한다면, 우리는 일관성과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우리가 공식화한 규칙들에 거슬리는 직감들을 처리하고자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에 훨씬 더 조화로운 도덕적 원칙들의 확립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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