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와 자유주의

Ⅰ.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1-1. 최대 행복의 원리를 도입할 때 벤담은 통치자와 입법자에게 공동체의 경영에 관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만큼 개인의 도덕적 선택의 기준을 제공하는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서 행복의 총량과 행복의 분배까지 고려해야 하는 경우에, 최대 행복의 원리만으로는 신뢰할만한 결정 절차를 제공하지 못한다.

1-2. 행복을 측정하는 척도, 즉 0이 최대 불행이고 10이 최대 행복을 나타내는 0에서 10까지의 척도를 정립했다고 해보자. 어떤 사회에서 정치 제도와 법적 제도를 고안하는 데, 유효한 두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모델 A를 선택하면 시민 60%가 6을, 40%가 4를 득점하게 되고, 모델 B를 채택하면 시민 80%가 10을, 20%가 0을 득점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선택에 직면할 경우, 평등이나 박애를 고려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델 B보단 A를 선택하려할 것이다. 하지만 벤담의 행복 계산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모델 B는 총 800점인데 모델 A는 520점에 불과하다.

1-3.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원리는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 혹은 행복한 사람의 수를 극대화하는 것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에 도달한다. 따라서 분배적 정의에 크게 위배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으려면, 그 원리를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빈곤층의 최저 생활을 보장함으로써 보완될 필요가 있다.

1-4. 벤담의 야심 찬 원리가 지닌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그는 정치철학에 매우 실질적인 기여를 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그는 ‘사회 경영 가운데 순전히 사업 부분을 조직하고 조정할 때’ 최상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는 국가의 형사 처분을 다루는 대목에서 그의 재능을 십분 발휘한다.

1-5. 그는 처벌 제도의 목적에 대해 묻는다.

“처벌의 직접적인 주목적은 행위를 통제하는 것이다. 처벌은 범법자의 행위를 통제하거나 그 밖에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통제한다. … 전자의 경우 처벌은 교정(reformation)의 방식으로 작용하고 후자의 경우 처벌은 무력화(無力化, disablement)의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범법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행위에 대한 통제는 그들의 의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 이외에 다른 방식이 있을 수 없는데, 이와 같은 경우의 처벌은 본보기(example)의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일컬어진다.” (P 13.1)

처벌은 고통을 가하는 것인 일종의 악이기에, 그것은 어느 정도 더 큰 악을 배제할 가망이 있을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벤담은 해를 준 사람은 해를 당해야 정의롭다는 응보적(retributive) 처벌 이론을 거부한다. 처벌하는 일이 억제 효과나 치료 효과를 주지 않는 한, 응보는 악을 악으로 되갚는 것일 뿐, 정의의 균형을 되찾기는커녕 세상에 악의 총량을 증가시키기만 한다.

1-6. 비록 범법자에 대한 처벌이 전혀 억제 효과나 교정 효과를 주지 못하더라도 처벌하는 일은 피해자나 법을 준수하는 일반 대중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벤담은 처벌에 의해 산출된 쾌락은 결코 처벌에 의한 고통과 동등할 수 없기기에 어떤 처벌도 징벌적인 목적으로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7.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 14장에서 벤담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 원리가 아니라, 처벌로써 잠재적 범법자에게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효과에 입각해 죄와 벌의 균형을 맞추는 규칙을 세웠다. 그는 장래의 범법자가 위법 행위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경우를 생각해봤고, 손해가 이익을 능가하도록 하는 것을 형사법의 기능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법은 위법 행위를 억제할 만큼 처벌을 해야 하지만, 동시에 필요 이상의 처벌을 해서도 안 된다. 즉 처벌은 절약(frugal)을 필요로 한다.

1-8. 억제가 처벌의 주목적이라지만, 그는 범법자에 대한 교화나 무력화와 같은 부차적인 목적을 인정한다. 교도소의 현실적 상황을 감안하면 교화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벤담은 몇 가지 특수한 교화 제도를 제안한 적 있다. 감금은 범법자에 대한 일시적 무력화의 효과를 지니지만, 가장 효과적인 무력화는 사형이다. 벤담은 ‘그와 동시에 이런 처벌은 너무 과도한 처벌인데, 이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경우에도 사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많은 반론들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P15.19)고 진술한다.

1-9.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철학은 도덕철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벤담에게 많은 신세를 지긴 했으나, 그는 자기 스승의 엄격한 공리주의를 완화시켜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자연권을 부인하는 벤담의 체계는 경우에 따라 지극히 독재적인 정부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인 침해를 원리상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다. 그리고 그의 체계는 밀이 젊은 시절에 지껄인 적이 있고, 오귀스트 콩트의 실증주의 체계를 탄생시켰던 초기 형태의 사회주의 또한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원숙한 나이에 이른 밀은 사회 제도가 원리상 아무리 호의적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독립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제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 여겼다. 그는 콩트의 실증정치학 체계를 ‘정신적인 스승과 통치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체에 의해 일반 여론을 지배함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행위를 통제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생각을 통제하려는’ 책략이라 했다. 그는 콩트가 ‘지금까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해 본 적 없는 가장 완벽한체제의 정신적이고 세속적인 독재’를 제의하는 것에 대해 공공연히 비난했다. 『자유론』(On Liberty)에서 밀은 그 동기가 공리주의나 사회주의나 실증주의에 있건 부당한 권위주의적 침해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일반적인 자유주의 원리를 세우려고 했다.

1-10. 민주 사회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폭압할 수도 있기에, 밀은 전제 군주 정치를 신뢰할 만한 민주 정치로 대체한다고 해서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회가 더 교묘한 다른 억압 수단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권력을 제한한다고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사회의 지배적인 의견과 감정의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말하자면 사회의 관념과 관습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민사처벌 이외의 수단을 동원하여 관념과 관습을 행위 규칙으로 강요하는 사회적 성향으로부터, 그리고 사회의 풍습을 거스르는 개성의 발달을 가로막음과 동시에 되도록 그와 같은 개성이 아예 형성되지 못하게 하려는 사회적 성향으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 (L 130)

물리력이나 여론에 의한 강압을 정당하게 제한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제약에 따라야 하는 유일한 행위는 타인과 관련된 행위뿐이라는 것을 근본 원리로 받아들여야 한다. 단순히 자기 자신과 관련되어 있는 행위에서는 행위자의 독립적인 지위가 절대적이어야 한다.

1-11. 이 원리는 사상의 자유, 이를테면 말하기와 글쓰기의 자유에 중요하게 적용된다. 밀에 따르면 독재적 권력이든 민주적 권력이든 어느 권력도 의견의 표현을 억압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비록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인류가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한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은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잡았을 때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다.’(L 130) 이것이 부당한 것은 의견을 억압하는 것이 인류 전체를 유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완전히 그른 의견조차도 반대 의견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진리라는 것이 단순히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견해이나 공식적인 선언이 아님을 확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밀은 의견을 가질 자유와 의견을 표현하는 자유야말로 인류의 정신적 행복을 위한 필수 요소라고 결론짓는다.

1-12. 하지만 의견의 자유가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의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하며,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이웃에게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유가 타인을 해칠 권리까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해악을 선동하는 것인 상황에는 언론의 자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인이나 타인의 관심사가 오로지 ‘자유롭고 자발적이며 진정한 의미의 동의와 참여’일 경우에는 다양한 인물과 삶이 폭넓게 허용되어야 한다. 개인의 행위를 지배하는 것은 개인 자신의 인격이어야지 다른 사람의 전통이나 관습이어서는 안 된다. 만일 이 원칙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인간 행복의 주요 요소들 중 하나를 상실하는 것이며, 개인적 진보와 사회적 진보의 중요한 요소를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 된다.’ (L 185)

1-13. 개성이 없으면 인간은 외부에서 부과한 모형을 따르는 기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도처에서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고 발육시키는 한 그루 나무이다.’(L 188) 만일 특이한 행동이 배척당한다면, 강압을 받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된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한때 진리였던 것이 이제 더 이상 진리가 아님을 알려주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로운 관행을 시작함으로서 인간의 삶에서 더 계몽된 행위의 모범을 보이고 더 나은 취미와 감각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들이 항상 필요한 법이다.’(L 193) 여론이 세상을 지배하고 개인이 군중 속으로 사라져 갈 때야말로 어느 시대 보다 정열적이고 비정통적인 인물이 필요하게 된다.

1-14. 밀이 ‘실험적인 삶’을 권장할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그는 그 행동의 실례를 제시하기보다 일련의 풍부한 은유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해설한다. 밀이 자신의 원칙들을 실제에 적용할 때, 천재성의 계발을 억제하는 법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사람들의 평범한 행동을 방해하는 법률을 비난하는 선에 그친다.

1-15. 밀이 일상적인 관례를 따르지 않도록 장려할 때 깊이 간직한 본보기는 자신이 결혼하기 전 오랫동안 해리엇 테일러과 맺었던 인습에서 벗어난 관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상하게도 모르몬교의 일부다처제 승인을 실험적인 삶의 본보기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탐탁찮게 생각했다. 그가 인정한 이런 실험적인 삶은 ‘공동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쇠사슬로 옭아매 놓고, 나머지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호혜적 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기’(L 224) 때문에, 자유주의의 원리와 정면으로 상충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여성들은 결혼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세상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것보다 차라리 여러 아내들 중 하나가 되는 것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밀은 일부다처제를 권유하지 않으면서도, 모르몬교들이 일부다처제를 포기하도록 강압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1-16. 1851년 결혼에 즈음하여 밀은 계약 당사자의 인격과 재산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한쪽 당사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부여한 법에 반대하는 항의서를 제출했다. 그는 『여성의 종속에 관하여』라는 소책자에서 영국의 혼인법에 대한 반론을 구체적으로 제기했다. 한 성이 다른 성에 법적으로 종속되는 것은 원칙상 잘못이고, 인간의 진보에 대한 주요 장애물이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고용된 사람이고 평생 그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고 아내가 취득한 재산은 곧바로 남편의 손에 넘어가는, 어떻게 보면 아내는 노예만도 못했다.

1-17.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은 남성의 더 강한 근력에서 비롯되었고, 순전히 남성의 이기심으로 인해 문명의 시대에 계속 이어졌다. 현재의 남성 우월체제가 어떤 대안보다 더 낫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증명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어떤 대안도 시도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긴 세월 훈련을 통해 남성 우월 체제를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양육되었다.

“첫째, 이성은 서로 자연스럽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 둘째, 아내는 전적으로 남편에 달려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인간적인 추구와 고려 대상 및 사회적인 야망의 대상은 오직 남편을 통해서만 추구되거나 획득될 수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볼 때,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대상을 여성 교육과 인격 형성의 길잡이로 삼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었을 것이다.”(L 487)

여성들이 굴레를 벗어나려 하지만 주인에게 반항하는 것은 폭군에게 반항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남성들의 포학함이 다른 온갖 형태의 권위보다 더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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