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이후의 분석철학

4.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분석철학

 

 

1) 옥스퍼드의 형이상학 교수 라일은 1949년 <정신 개념>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라일은 능력지(knowing how)와 명제지(knowing that)의 구별을 강조했다. 2)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가 1953년에 유작으로 세상에 나오자, 생생하기는 했으나 투박하게 전개되었던 라일의 생각이 이제야 훨씬 더 치밀하고 심도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5) 비트겐슈타인이 죽은 뒤 많은 사람들은 콰인을 영어권 철학의 일인자로 간주했다. 6) 철학에서 콰인의 목적은 고학 특히 물리 과학의 용어를 이용한 자연주의적 세계 설명의 기본 틀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경험주의자이면서 행동주의자인 그는 언어 분석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다. 세계를 설명하는 모든 이론은 우리 감각에 입력된 것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7)콰인은 철저하게 경험주의적인 프로그램을 추구했으면서도 ‘경험주의의 두 가지 독단’으로 철학에 첫 번째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공격의 두 표적을 다음과 같은 말로 진술했다. ‘하나는 분석적 진리와 종합적 진리, 즉 사실의 문제와 무관하게 의미에 근거하는 진리와 사실에 근거하는 진리 사이에 근본적인 어떤 틈이 있다는 신념이다. 또 하나의 독단은 환원주의이다. 즉 개개의 의미 있는 진술은 직접 경험을 지칭하는 용어들로 이루어진 어떤 논리적 구성체와 동치라는 신념이다.’ 8) 콰인에 따르면, 검증되거나 반증되는 것은 단일 문장들이 아니라 체계 전체라는 것이다. ‘외부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진술들은 개인이 아니라 오로지 법인의 신분으로만 감각 경험의 심판을 받는다.’ 9) 콰인은 신념이나 이해와 같은 내포적 개념의 도움을 받아 해석되어야 하는 그런 의미란 없다고 단언했다. 의미는 언어 행동에 영향을 주는 감각적 자극들을 사상(mapping)함으로써 순전히 외연적인 용어들로 설명되어야 한다.

 

10) 콰인의 사고 실험 결과는 세 수준의 불확정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첫째, 개별적인 지칭 대상의 불확정성이 있다. 둘째, 언어 전체의 수준에 불확정성이 있다. 11) 우리는 세계에 대한 어떤 고정된 지식이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콰인의 초기 논문 ‘있는 것에 관하여’에서 ‘있는 것은 경계 변수’의 값이 있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12) 비트겐슈타인과 콰인은 유럽 대륙에서 유난히 분석철학의 지도적인 대표자 두 사람으로 간주되곤 했다. 사실 그들의 철학은 매우 다르다. 특히 두 사람은 철학의 본성에 관해 의견이 달랐다. 콰인은 분석-종합 구분에 대한 불신 때문에 철학과 경험 과학 사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가르지 않았다. 비트겐슈타인은은 과학주의, 즉 철학을 하나의 과학으로 보려는 시도를 몹시 싫어했다. 13) 그러나 미국에서는 콰인에 의해 도입된 과학주의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가장 설득력 있는 대표자 한 사람이 콰인의 하버드 제자인 데이비슨이었다. 14) 데이비슨의 의미 이론은 진리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진리 이론은 유한한 용어 목록과 유한한 구문론적 규칙들을 포함할 텐데, 그로부터 도출된 주장들로서 ‘ “S”는 p인 경우 오직 그 경우에서만 L에서 옳다’는 형식을 지닌 잠재적으로 무한한 수의 진리 문장들을 수반할 것이다.

 

15) 콰인과 마찬가지로, 데이비슨은 완전히 낯선 언어를 가진 공동체와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를 고려함으로써 자신의 이론을 예증한다. 그 언어를 해석하려면 우리는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장에 동의하는가를 관찰함으로써 그들의 언어에 대한 진리 이론을 세워야 한다. 16) 사람들의 실제적인 행동은 그들의 이유, 말하자면 데이비슨이 정신적 사건이라고 말하는 욕구와 신념에 의해 결정된다. 이와 같은 정신적 사건과 정신적 사건에 의해 ‘합리화되는’ 행위의 관계는 인과적 관계이다. 그러나 데이비슨의 경우에는 그 인과 관계가 느슨하다.

 

16) 데이비슨은 물리적 사건이 아닌 사건은 결코 없다는 점에서 물질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는 ‘정신적인 것의 변칙성’이라는 것을 역설함으로써 이런 식의 자극적인 물질주의를 완화시키려고 한다. 어느 정신적 사건이든 물리적 사건과 동일하지만, 정신적인 것으로서의 사건과 물리적인 것으로서의 사건은 서로 다르게 기술된다.

 

17) 영국에는 줄곧 과학과 철학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믿는 철학자들과 그 경계가 정말 모호하다고 믿는 철학자들이 있었다. 라일이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들은 철학의 목표가 정보가 아니라 이해라고 주장했다. 스트로슨은 자신의 개인 교수인 그라이스와 함께 ‘독단에 대한 옹호’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분석-종합 구문에 관한 콰인의 공격을 논박했다.

 

18) 기술형이상학은 세계에 관한 우리 사고의 구조를 개선하려는 야심을 갖지 않고 그 사고의 실제 구조를 기술하고자 한다. 19) 스트로슨은 물질적 신체와 개인이 우리의 개념 지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 즉 이 두 종류의 개별자가 기본적인 개별자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20) 스트로슨의 경우, 물질적 신체 못지않게 개인 역시 기본적인 논리적 범주이다. 그러므로 원초적인 것은 정신 개념이 아니라 개인 개념이다. 그런데도 스트로슨은 신체가 죽은 뒤 자기 개체의 생존을 생각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었다. 21) 스트로슨은 2006년 초 자신의 죽음으로 영국철학 시대의 종말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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