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자크 데리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자크 데리다

 

Ⅰ.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1-1. 하이데거에게 잠시 배운 적이 있는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1905~1980)는 우파 실존주의인 하이데거와 다르게 정치적 좌파로의 실존주의 형태를 전개했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1924~1928년에 고등사범학교에 수학했고, 몇 년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그는 1933~1935년에 베를리 대학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자신의 철학을 전개했는데, 그의 철학은 1936년에 「자아의 초월성」과 「상상력 : 심리학적 비판」이라는 두 논문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 논문들은 소설 『구토』(1939)와 『감정 이론 개요』(1939)로 이어졌다.

1-2. 사르트르의 전쟁 이전 에세이들은 현상학적 틀 안에서 심리철학을 연구한 것들이다.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로 그는 후설이 현상학적 환원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다고 불만스러워했다. 후설은 데카르트의 자아인 사고 주체를 의식의 자료로 인정했으나, 사실 데카르트의 자아는 의식의 자료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던 것에 몰두할 때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아를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오직 반성적 사고를 할 때뿐이므로, 철저한 현상학자가 되려면 전-반성적(pre-reflective) 의식에서 시작해야 한다. 자아, 즉 사고 주체는 의식의 외부에 있고, 따라서 타인의 정신처럼 의식을 초월한 세계에 속한다.

 

1-3. 사르트르는 「상상력」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특히 흄이 말한 관념, 즉 내적인 정신세계의 내용을 상상 속에서 관찰한다는 관념을 공격했다. 사르트르는 지각과 상상 모두 심상이나 환영의 정신적 현전(現前, presence)에 있다고 생각하고, 지각된 이미지가 상상의 이미지보다 더 강렬하고 생생하다는 것이 그 둘의 유일한 차이점이라 생각하는 것은 잘못임을 보였다. 그에 의하면 상상은 내적 이미지가 아니라 지각과 마찬가지로 정신 외적 대상과 관련을 맺지만, 관련을 맺는 양상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현존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하는 일은 어떤 대상을 세계에 창조하는 것이다.

1-4. 그에 의하면, 감정을 수동적 내적 감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감정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우리 환경에 대한 불편부당한 인식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마주치는 상황에 대한 ‘마술적 변형’을 감정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울할 때 우리는 세상을 향해 마술을 건 나머지, 온갖 노력이 허망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1-5. 1939년에 전쟁이 일어나자 사르트르는 징집되어서 1년 후 독일군의 포로가 될 때 까지 싸웠다. 휴전 후 풀려난 그는 파리에 철학 선생으로 돌아왔으나, 나치 점령군에 맞서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도 했다. 1943년에 후설과 하이데거에게 영향을 받은 그의 대표작 『존재와 무(Being and Nothingness)』가 출간되었다. 『존재와 무』의 일부분은 『존재와 시간』에 못지않게 난해하다. 그러나 소설가와 극작가이기도 한 그는 철학의 핵심들을 상세하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예시하는 재능이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그는 『실존주의와 휴머니즘』에서 저작의 주요 주제들을 더 간략하고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다뤘다.

1-6. 사르트르의 경우, 존재는 우리가 의식 속에서 마주치는 서로 다른 모든 종류의 사물들과 모든 양상의 사물들에 선행하고 기초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과 목적에 따라 우리는 사물을 종류와 집합으로 구별한다. 의식이 만들어 낸 모든 구별의 옷이 사라지면, 우리는 불투명하고, 단일하고, 우연적인 순수 존재, 존재 자체, 즉자존재(卽自存在)로 남는다. 그것은 ‘이유도 없고, 원인도 없고, 필연성도 없다(BN 619).’ 원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그 자체의 원인, 즉 자체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그렇게 거기에 있을 뿐이다. 사르트르는 그것을 ‘무상(無償, gratuitous)’, 때로는 ‘잉여(剩餘)’라고 말했다.

1-7. 즉자존재는 『존재와 무』의 두 가지 핵심 개념 중 하나인데, 다른 하나는 대자존재(對自存在), 자존적 존재, 즉 인간의 의식이다. 이것이 제목의 무와 어떻게 관련되는가? 사르트르는 무를 통해 세계 안으로 들어오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말한다. 존재에 대한 부정은 대자와 즉자를 구별해주는 요소이다.

1-8. 사르트르는 여기서 하이데거의 기본 주장을 부연하여 설명한다. 영어권 철학자들은 ‘무가 무화한다(nothing noths)’를 하이데거의 언명을 불합리한 극치로 간주하지만, 사르트르는 무의 객관화이고 무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인다. 의식이 세계를 명확히 표현할 때 의식은 부정을 수단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내가 빨강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면, 나는 세계를 빨강과 빨강-아닌-것으로 나눈다. 내가 의식과 존재를 구별하고자 한다면, 나는 의식이 존재-아닌-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세계에 무를 나타나게 하는 존재는 그 존재 자신의 무가 아니면 안된다.’ (BN 23)

1-9. 역사가가 보면, 그것은 마치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해 냈고 오래전에 플라톤이 해결했던 수수께끼를 사르트르가 재도입한 것처럼 보인다. 1945년에 에이어(A. J. Ayer)가 사르트르가 무를 다루는 방식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길을 보니 아무도 없다(she sees nobody on the road)라고 말할 때 나타낸 왕의 반응과 비교했다. ‘정말이지 내가 저런 눈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니! 그것도 저 정도 거리에서 말이야!’ 『존재와 무』에는 제목이 사르트르의 ‘무화(無化)’에 대한 설명과 무관하게 중요한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대부분의 대상들은 본질이 실존에 앞서지만, ‘실존이 본질에 앞서게 되는 어떤 한 존재, 그 어떤 개념으로도 정의되기 이전에 실존하는 어떤 한 존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바로 그 존재가 인간이다.’ (EH 66)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본질에 앞서며,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한다. 인간은 어떤 종류에 속해있지 않고 각자 어떤 종류의 것이 될 것인지 결정한다. 인간의 자유는 대상들의 세계를 갈라놓는다.

1-10.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 개개인의 삶은 창조자나, 필연적인 원인이나, 절대적 도덕 법칙에 의해 미리 결정되지 않는다. 내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필연성은 선택의 필연성이다. 인간의 자유는 절대적이지만 그 또한 불안한 것이기에 외면하려 하고, 도덕이나 사회가 미리 정해 준 역할을 따르려 한다. 그러나 자유를 은폐하려는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자기 자신을 단순한 대상으로 격하시키면서도 암암리에 자유를 느끼는 이중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데, 이것을 그는 ‘자기 기만(bad faith)’이라 일컬었다.

1-11. 바람직한 태도는 자신의 자유를 인정하고 긍정하며 자신의 행위와 삶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전통적 도덕적 명령이나 우연적 환경에 구속받아서는 안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는 물리적 한계가 있긴 하지만, 자신의 욕구와 계획을 조정하며 내가 직면한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나다. ‘나를 나이게끔 하는 유일무이한 최초의 기투(企投, project)에 직면하여 홀로 두려워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자유를 의식함으로써 모든 장벽과 철책은 무너지고 무효화된다. 존재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나라는 사실에 반하는 어떤 가치에도 나는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의지할 수도 없다.’ (EH 66).

1-12.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동안 그는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 함께 파리 좌안(left bank)의 문화적이고 지성적인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그는 아방가르드의 월간지 『현대』를 창간하고 편집했고, 성공적인 희곡들을 썼다.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는 즉자와 대자 이외에도 타자를-위한-존재(being-for-others)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것은 본래 내가 타자에게 나타나는 방식이고 타자에 의해 관찰되는 방식으로, 나는 타자에게 하나의 대상에 지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질투와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는 타자를-위한-존재의 고유 의미를 대립이라 했다. 그는 후기 저작에서 이 주제를 개진하고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1-13. 실존주의의 기본 방침이었던 절대적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자의 결정론이 쉽게 양립할 수 없었음에도 그는 공산당에 가까운 사회 정치적 입장을 취했다. 이와 같은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1960년에 『변증적 이성 비판』을 썼다. 그는 1964년에 노벨 평화상을 정중히 거절했고, 1980년에 죽었다.

 

Ⅱ. 자크 데리다

2-1. 1960년대에 접어들자 대륙철학과 영어권 철학 사이의 관계가 잠시 회복되는 듯 했다. 알제리의 유대인 집안 출신인 서른 두 살의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1962년에 후설과 기하학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출간했다. 같은 해 옥스퍼드의 철학자 오스틴(J. L. Austin,1911-1960)의 강의록 『말과 행위』이 유작으로 출판되었는데 그 책은 서로 다른 종류의 발화 행위들(speech acts)에 관한 이론을 주장하였다. 1967년에 데리다는 오스틴의 영향을 받은 독창적인 저작 『글쓰기와 차이』,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언어와 현상』을 내놓았다.

2-2. 그런데 두 철학자는 동일한 논제를 매우 다른 방식으로 다루었다. 오스틴은 1946년에 두 종류의 언어, 즉 사실 확인(constative) 언어와 수행적(performative) 언어를 구별했다. 사실 확인 문장은 ‘비가 내린다’처럼 사실의 문제로 상황이 어떠한가를 진술하는 데 사용된다. 수행적 발언은 사실을 보고하는 진술이 아니라 상황을 변화시키는 발화 행위를 일컬었다. 예컨대 ‘나는 이 배를 퀸 엘리자베스라고 명명한다’, ‘내 시계를 동생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2-3. 오스틴은 다른 많은 종류의 수행적 발언들, 즉 내기, 임명, 저주와 같은 발언을 분류하면서 외관상 간단한 진술 속에 숨어 있는 수행적 요소들을 확인해 나갔다.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하자 그의 이론은 발화 행위의 세 요소인 발화(locutionary), 발화 수단(illocutionary), 발화 효과(perlocutionary)의 작용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갔다. 누군가 ‘그녀를 쏴!’라고 말한다면, 발화 행위는 ‘쏴’의 의미와 ‘그녀’가 지칭하는 것을 구체화함으로써 명확해진다. 발화 수반 행위는 명령하거나 재촉하는 등의 행위이다. (발화 수반 행위가 목적을 달성한 경우에만) 발화 효과 행위는 ‘그는 나로 하여금 그녀를 쏘게 했다’라는 형태로 쓰여질 수 있다.

2-4. 오스틴은 서로 다른 종류의 발화 행위들과 발화 행위의 요소들을 구별하기 위해 여러 새로운 전문 용어들을 도입했는데, 그 용어들은 알기 쉬운 용어로 정의되고 실례를 통해 선명히 밝혀졌다. 전반적인 효과는 방대하고 중요한 언어철학 분야를 미시적인 수준에서 명료화하는 것이다.

2-5. 데리다의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그도 역시 전문 용어를 아주 많이 도입한다. 예를 들어 ‘gram’, ‘reserve’, ‘spacing’, ‘pharmakon’ 등의 용어들을 도입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전문 용어를 스스로 정의할 용의는 없었고, 만약 용어를 정의해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어떻게 정의해도 마땅치 않다고 거절했다. 그가 제시하는 예증 실례들이 용어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지 잘 알아차리기 어려운 나머지, 평범한 형태의 용어는 오묘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2-6. 오스틴은 발화행위에 대해 언급하면서 말로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을 구별하는 데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철학적 논의 사항을 두 종류의 언어 사용에 적용했다. 다른 한편 데리다는 그가 말한 ‘음성중심주의(phonocentrism)’, 즉 서양문화에서 지나치게 말하기를 강조하는 태도를 공격하면서 그 구별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현대 사회에 시민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을 감안하면, 데리다의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비난은 플라톤읜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다수의 기이한 텍스트들에 입각해 있음이 분명했다.

2-7. 수행적 발화 행위들 가운데 약속하는 행위는 오스틴과 데리다 둘 다 관심을 가졌다. 오스틴은 약속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적절치 못한 상황을 교훈적인 방식으로 목록을 만들었다. 데리다는 모든 수행적 발화 행위에는 늘 죽음이 따라다닌다(‘누구든 약속을 완수하기 전에 죽을 수 있다’)는 말로 표현되는 상황을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는 모두 어김없이 죽기 때문에 죽음의 가능성은 수행적 발화 행위와 아무 관련도 없다. 약속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자전거를 타는 일도 죽으면 그만이다.

2-8. 데리다의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적개심은 그가 말하는 ‘현전 형이상학’, 즉 의미와 진리에 대한 주장의 기반은, 의식 안에 주어진 익숙한 어떤 것이라는 생각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는 일차적으로 후설을 공격하려 했지만, 경험주의자의 감각 자료 개념 역시 유사한 비판에 열려 있었다. 그에 의하면 궁극적이고 초월적인 의미대상인 사고가 가장 이상적인데, 말하기가 글쓰기보다 사고와 더 가깝기 때문에 서양 전통에서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말하기와 글쓰기 사이의 대립을 ‘해체하고’(deconstruct), 저자의 통제에서 벗어나 가지각색의 또 다른 해석을 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으로 글로 쓴 텍스트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했다. 어떤 사람들은 현전 형이상학에 대한 그의 공격이 비트겐슈타인의 사적 언어 개념의 해체와 기조는 다르나 기획 자체는 유사하다고 보았다.

2-9. 데리다는 초기 저작에서 대단한 철학적 통찰력을 보여주었으나, 1967년 이후 그의 사상과 저작은 오스틴이나 비트겐슈타인, 현대 분석철학,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후설에 이르는 철학자들에 의해 이해된 철학과 현저하게 달라졌다. 데리다는 서로 혼동될 수 있는 개념들을 구별하고, 필요하다면 이 구별을 뚜렷히 나타내는 용어들을 창작하거나 개작하는 것이 철학자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새로운 용어를 도입하여서 완전히 다른 관념들을 오히려 혼동하게 만들었다.

2-10. 데리다가 대단히 자랑하는 ‘차연’(deferrence) 개념을 살펴보면, 차연은 연기(deferring)의 개념과 차이(difference)의 개념을 결합한 것으로, 그는 ‘차연은 지연으로서의 연기와 차이의 실제 작용으로서 다름(differing)이 서로 분리되기 전에 생각해 낸 것이다’고 말한다. 이처럼 완전히 다른 두 개념을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지는 그의 해설과 부연을 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가를 이해해보면, ‘그것은 대상의 이름이 아니며, 나타날 수 있는 어떤 “존재”의 이름이 아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은 어떤 개념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데리다의 텍스트에서 ‘차연’을 여러 가지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바로 그 자체가 차연의 한 실례일 수도 있다. 즉 차용증서들(IOUs)이라는 말은 정의(正義)와 완전 다르게 사용되고 실제적인 의미 부여를 미래로 연기한다.

2-11. 데리다는 저자들을 상대하는 방법, 즉 꽃다발 방법(nosegay method)이라 약칭하는 기술을 고안한다. 우리는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동일한 낱말이 포함된 다수의 텍스트를 수집해서 문맥과 날짜, 텍스트의 발언자의 목소리를 알 수 없게 잘라내서 자연적 의미를 변형시킨다. 우리는 인상적이거나 자극적인 일부 주장을 한데 모아 묶어서 꽃다발로 선물한다. 이 기술은 전통적인 문학 비평에서 조금만 노력해도 되기 때문에 일부에서 유행하게 된다.

2-12. 후기의 데리다는 기발한 수사적 기교로 독자의 지속적 관심을 받는데, 특히 성공적인 수사 기술은 ‘논박할 수 없는 역설’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한다. 『그리마톨로지에서』에서 자주 인용된 문장은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이다. 아주 매력적이고 충격적이고 주목할만하다. 흑사병과 유대인 대학살은 존슨의 비평집 『시인들의 삶』을 말하는 텍스트 사건과는 다르다. 그러나 후기 데리다는 텍스트가 글쓰기의 집합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한계, 실재의 한계, 역사의 한계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글쎄, 우리의 이야기는 우주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뿐이라면, 그것을 반박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사건을 맥락 속에서 보려고 노력하라는 권고는 분명히 건전한 충고이다.

2-13. 데리다는 자기가 실제로 노련한 수사학자인 듯 성과 죽음을 끌어들여 독자들을 일깨운다. 혼잣말은 자위가 성교와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독자를 완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간질이지는 못했다. 요한 계시록에 ‘그리고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신다, 오라! 그리고 듣는 자에게 말씀하신다, 오라!’라는 구절을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의 ‘오라’(come) 낱말에 붙어 있는 텍스트에 관해 장광설을 늘어 놓는다.

2-14. 방금 예시한 그런 방식으로 데리다를 비판하는 것이 꼴사나워 보일 수 도 있으나, 그렇게 비판한 이유는 올바른 비평에 대한 그와 같은 흉내 내기가 바로 데리다가 후기 저작에서 채택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적 무기가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 외설, 키득거림이다. 후기의 데리다에는 어떤 신조도 찾아볼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데리다에게 냉담한 독자가 그의 신조를 이해 못 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자신의 저작이 명제들로 요약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실제로 그는 철학자가 되려는 야망을 때로 포기하기도 했다.

2-15. 그렇다면 비난이던 칭찬이던 철학의 역사 속에 데리다를 포함시키는 것이 부당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말하든 그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진지한 철학자로 인정받았으니 그만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진짜 철학과 사이비 철학을 식별하는 일에 소홀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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