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와 심리분석

 19세기 유럽 대륙과 영어권 나라들은 철학사상을 서로 지속적으로 교환했다. 프랑스 철학자들의 저작을 읽고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윌리엄 제임스는 미국에 근거지를 둔 상태로 독일에서 공부했고 영국에서 자주 강의했다. 젊은 시절의 러셀은 수학철학을 공부하는 동안 독일의 프레게나 이탈리아의 페아노와 정기적으로 교신했다. 이처럼 당시 철학은 범세계적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자 대륙의 철학자들과 영어권 철학자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제 갈 길을 갔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러셀의 도움으로 세워진 분석적 전통의 철학이 학계를 지배했으며 유럽대륙에서는 장 폴 사르트르가 프랑스에서, 마르틴 하이데거가 주도한실존주의가 유행했다.

1. 프로이트와 심리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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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새로운 과학의 창안자로 인정받은 사람으로, 철학자는 아니었지만 20세기 영미철학적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자신이 프로이트주의자라고 말하는 철학자는 거의 없지만 그의 이론은 심리철학, 윤리학, 종교철학 분야의 사람들에게 참신하고 자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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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1856년 오스트리아 모라비아 지방의 비율법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860년 가족이 비엔나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의사교육을 받았으며 종합병원에서 두뇌해부전문의로 종사했다. 그는 신경학자 브로이어와 함께 히스테리 환자를 최면상태에서 치료하는 연구를 했고 3년 뒤 샤르코 밑에서 공부한 뒤 다시 돌아와 개업의사로 활동했다. 그해에 베르나이스와 결혼했고 여섯 아이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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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정신질환을 색다르게 분석한 히스테리 관련 저작을 브로이어와 공동으로 출판했다. 이는 치료법으로 최면술이 아닌 정신분석을 이용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환자와 의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치료법의 기초가 되는 전제는 환자의 심리적 외상(trauma)에 대한 기억의 결과가 히스테리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침상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기억나는 모든 것을 맘놓고 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장기간 환자들을 지켜본 결과 정신적외상의 원인은 유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성적인 내용을 갖는다고 확신했고, 유아기의 성적취향의 대한 이론은 브로이어와의 불화를 불러왔다.

의학동료들에게 따돌림 당한 프로이트는 비엔나에서 시술을 계속했다. 1900년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꿈의해석>>을 출판했고 이 책에서 그는 꿈 또한 억눌린 성적 욕구의 간접적 표현이라고 주장했으며 제시된 이론이 정상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1년뒤 그의 정신분석 이론을 수정하고 개선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첫 번째 연속출판물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을 내놓았다.

1902년 비엔나 대학의 신경병리학 특별교수로 임명되어 제자와 동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 아들러와 융이 뛰어났지만 결국 그와 결별하고 자신들의 학파를 만들었다.

1923년 프로이트는 <<에고와 이드>>를 출간하여 새롭고 정교한 잠재의식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논쟁에 전혀 개의치 않고 <<환상의 미래>>에서 종교의 기원을 평가 절하하는 설명을 했다. 프로이트는 무신론자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문화에 동화하지 못하거나 반유대주의의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나치스가 정신분석을 금지시키고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그는 영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저작들은 블룸즈버리 그룹의 구성원들에 의해 번역되고 출판되었다. 그후 16년동안 턱암으로 고생하다가 본인의 뜻으로 치사량의 모르핀주사를 맞고 193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정신분석 연구는 막내딸 안나가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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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초보자를 위한 강의에서 정신분석 이론을 두가지 기본적인 주장으로 요약했다.  첫째, 감정, 사고, 의지 중 어느 것이든 우리 정신생활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의식이다. 둘째, 넓은 의미의 성적 충동은 정신질환의 잠재적 원인으로 뿐만 아니라 예술적, 문화적 창조의 원동력으로도 지극히 중요하다. 만일 예술작품과 문화에서 성적요소가 무의식적인 것이 된다면 이것은 사회화 과정중에 기본적인 본능이 희생되어 그것이 승화된것, 다시 말해 본능의 목적을 바꾸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안정한 상태이며 억누를 수 없는 충족되지 못한 본능은 정신질환과 장애로 돌아올 수 있다.

그는 무의식이 일상생활의 사소한 실수, 꿈의 보고, 신경증 증상을 통해 존재를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무의식의 구성요소로 간주한 신념, 욕구 감정은 신경증 증상이나 환자의 자의적 해석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자유연상을 활용해 분석가의 해석처럼 잠재의식의 근원적 형태가 드러난다고 믿었다.

이 근원적 형태의 핵심은 성의 발달이다. 유아기의 성적 관심은 쾌락이 입에 집중된 구강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한 살에서 세 살 사이의 항문기, 어린이가 자신의 음경이나 음핵에 초점을 맞추는 음경기이다. 이때 남자아이는 감정발달의 결정적 단계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맞이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가 성적으로 어머니에게 이끌려 아버지가 어머니를 차지한다는 분노에 적개심이 생기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거세해 보복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따라서 그 아이는 성적의도를 단념하고 아버지에게 동화된다. 신경증적인 사람들은 초기단계에 고착된 사람들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 소망의 회복과 억압의 역사는 모든 분석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또한 이 콤플렉스에 해당하는 여성이 있다고 확신했지만 설득력 있게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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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으로 가면서 프로이트는 초기의 의식과 무의식의 이분법을 정신의 삼중구조로 재정의 했다. 그의 저서인 <<에고와 이드>>에서 ‘정신 기관은 본능적 충동의 저장소인 이드(id), 이드의 가장 표면부위에 있어서 외부세계의 영향에 의해 수정되는 자아(ego), 그리고 이드에서 발생하여 에고를 지배하고 인간 특유의 본능 억제를 나타내는 초자아(superego)로 이루어져 있다’ 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자아는 영혼의 세부분을 조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아가 이드나 초자아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이에 실패하면 정신이상이 나타난다. 자아와 이드의 충돌은 신경증으로, 이드와 초자아의 충돌은 우울증으로, 자아와 외부세계와의 충돌은 정신병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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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자신을 결정론을 발견하는 데에 헌신한 과학자로 여겼지만, 사실 그의 정밀한 이론들 대부분은 실험적 입장에서 엄밀히 검토되었을 때 기초가 약한 것으로 입증된 바 있다. 그의 정신분석 기법에 대한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은 효과와 효능에 따라 저마다 다르다. 정신분석이 성공할 경우 그것은 결정론적 작용 과정을 밝힘으로써가 아니라 개인의 자기 인식과 선택의 자유를 확장함으로써 성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에 대한 사회적 관습,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의 이해, 예술과 문학에 대한 인식과 관련한 그의 연구들과 관련한 온갖 이론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들은 사회와 인간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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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충동이 인간의 정신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고 주장한 사상가는 프로이트 이전에도 존재했다. 이전의 신학자들은 그 기원과 전달 과정 및 결과가 성과 관련 있는 아담의 죄에서 인간의 현 상태가 비롯된 것으로 간주했다. 19세기에는 숙녀인 척하며 성욕을 감추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밝혀지곤 했다. 남자의 주요 관심사인 성관계가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일생의 우스갯소리였다는 쇼펜하우어의 격언을 프로이트는 즐겨 인용했다. 쇼펜하우어는 성욕은 그것을 묶어 놓으려는 온갖 각오를 비웃는 이 세상의 진정한 세습 군주라고 말했다.

프로이트가 유아기의 성적관심을 강조한 것은 당시 충격적인 일이었지만 어린이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는 빅토리아 시대에 생겨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순진한 것은 유아의 마음이 아니라 손발의 연약함이다. 나는 시샘하는 갓난아이를 지켜보며 연구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젖을 나눠 먹는 자기 형을 노려보면서 아직 말을 하지는 못하고 질투와 괴로움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누가 이 경험적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겠는가?’ 라고 말했다.

현대사회가 성에 관대해진 것은 피임약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로이트가 불러 일으킨 전체적인 사고 풍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성적 방종을 권장한 것이 아니라, 성적 욕구를 이런저런 수로로 통하는 배수구를 찾아야만 하는 심적 유동체로 보는것과 같은 은유를 통용시켰다. 그 은유에 따르면 금욕은 정신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결국 그를 억제하는 장애물을 뚫고 나갈 수 밖에 없는 힘을 위태롭게 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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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정신적 건강 개념은 프로이트, 브로이어, 샤르코가 히스테리 환자를 꾀병이 아닌 진짜 환자로 취급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는 의학적발견이라기 보다는 도덕적 결정이라고 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대부분이 그것을 올바른 도덕적 결정으로 여길 것이다. 프로이트가 도덕과 의학의 경계선을 다시 그은 것이다. 임상적 판단과 도적적 평가를 구분하는 태도변화의 대표적인 예로 동성애를 들 수 있다. 오랫동안 범죄로 간주되어오다가 한세기 가까이 정신병리적 장애의 증상으로 여겨졌으며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합리적으로 선택된 대안적 생활 양식의 핵심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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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예술적 창조를 신경증과 유사한 것으로 여기는 등 호의적이지 않은 견해를 보였지만 그는 문학과 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설가는 정신분석가의 시술 침상에서 이루어지는것과 비슷한 연상 기법을 이용하고, 비평가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적인 용어들로 문학 작품을 해석하기를 좋아한다. 역사가는 정신분석적 전기를 쓰고, 어린 시절의 실제 또는 상상의 에피소드를 기초로 하여 성숙한 유명 인사들의 행위를 분석하기를 즐겨한다. 화가와 조각가는 꿈의 세계에서 프로이트의 상징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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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신분석 이론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흡수했다.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전혀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그들 자신의 프로이트 실책과 타인의 실책을 동일시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어느 철학자도 심리학과 도덕의 일상적 어휘에 이보다 더 큰 공헌을 하지는 못했다. 오든은 스물여덟에 난해한 사행시로 프로이트의 죽음을 애도했다.

가끔 그가 틀렸더라면, 때로 불합리했더라면,

우리에게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데

이제 완전히 여론을 지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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