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실존주의

 1.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1-1.후설이 퇴직하기 2년 전 제자 중 한 사람이 특히 철학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미친 한 권을 냈다.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의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은 현상학이 현 상태로는 주도면밀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현상학은 의식의 자료들을 음미하려 했으나 이전의 철학에서 물려받은 항목들은 ‘주관’ ‘대상’, ‘행위’, ‘내용’과 같은 개념들을 사용했다. 후설이 상관 관계가 있는 의식과 실재의 두 영역이 있다는 데카르트의 기본 틀을 받아들인 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었다. 후설이 현상학에서 채택한 소재는 의식과 실재 중 의식이었으나 하이데거는 현상학의 첫 번째 과제가 의식과 실제의 구분에 선행하는 존재(Sein)개념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식과 실재를 정반대로 대비하게끔 하는 그 경험이 곧 우리가 음미해야할 원초적 현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철학의 본성을 분명히 하고 의식이 아니라 존재를 우리의 출발점으로 하기 위해 데카르트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위적 범주로 돌아가는 것은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의 이전의 철학이야말로 철두철미한 현상학자가 본받아야 할 최상의 실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온갖 전제 가정들이 달라붙은 전문적인 철학적 어휘가 형성되기 이전에 생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하이데거는 우리가 순수한 자연 상태에서 철학을 할 수 있도록 청결한 어휘를 고안하는 과업을 수행하고자 했다.

1-2. 하이데거의 가장 중요한 신조어는 현존재(Dasein)이다. 현존재는 철학적인 물음을 물을 수 있는 존재 유형인데, 하이데거의 현존재에 대한 설명을 보면 처음에는 데카르트의 자아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만 데카르트의 자아는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것인 반면 하이데거에서 생각은 본질적이 아니다. 그에게 생각은 현존재가 존재하게 되는 여러 방식들 중 하나일 뿐이다. 현존재의 원초적 요소는 ‘세계-내-존재’이며, 현존재는 생각과 의지의 구별이나 이론과 실천의 구별에 선행한다. 현존재는 관심을 갖는 존재로서 걱정하는 존재다. 내가 세계에 관해 무언가 걱정하거나 관심을 보이는 경우에 한해서, 나는 세계에 관해 물음을 던지게 되고 그와 같은 물음에 대해 지식 주장의 형태로 답을 하게 된다,

개념과 판단은 세계에 대처하기 위한 도구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한층 더 원초적인 그와 같은 도구들, 즉 문자 그대로 도구인 것들이 있다. 목수는 망치를 사용함으로써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능숙하게 그것을 잘 다룰 경우에는 망치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망치에 대한 의식은 목수가 실재와 충실하게 마주치려는 자신의 계획에 집중하지 못하게 방해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이렇게 뻔 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실재들을 ‘손 안에 있음’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손안에 있는 것과 손안에 있지 않은 것의 구별은 우리가 세계의 공간성을 구성하는 기본 바탕이 된다.

1-3.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기본적 본성을 강조한다. 우리는 현존재를 하나의 실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인생을 펼쳐가는 존재라고 생각해야한다. 우리의 인생은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개발하는 것이다. 애당초 우리는 물리적이고 문화적인 역사적 상황에 내던져져있다. 하이데거는 이 ‘던져져있음’이 현존재의 ‘사실성’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아직 겪어본 적 없는 그 사람일 수 있고 나의 잠재력은 나의 성취와 마찬가지로 나의 존재에 본질적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실제로 내가 누구인지 규정지을 때 미래는 과거와 현재에 우선한다. 현존재는 ‘될 능력’이며, 내 인생에서 내가 무엇을 목표로 삼고 있는가에 따라 나의 현재 상황과 능력의 중요성이 결정된다. 하지만 그 성취와 잠재력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 끝은 죽음이다. 내 인생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내가 무엇이 될 것인지와 내가 무엇이 될 수 있었는지의 차이를 고려해야하는데 여기서 죄의식과 분노가 나온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의 활동은 세 가지 근본적인 양상을 갖는다. 첫째, 그가 ‘조율’이라고 일컫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내던져진 상황 자체를 매력적이라거나 불안하다거나 따분하다는 식으로 나타내고, 그 상황에 다양한 종류의 기분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둘째, 현존재는 담론 적이다. 현존재는 담화의 세계 안에서 즉 우리가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언어와 문화에 의해 명확히 표현되고 해석된 것들 사이에서 작용한다. 셋째. 현존재는 특별한 의미의 ‘이해’다. 현존재의 활동은 어떤 목표, 현존재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인생 전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어떤 ‘위하여’를 지향한다. 현존재의 이 세 가지 양상은 각각 시간 과거, 현재, 미래에 해당한다.

비록 현존재가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 안에서 작용한다고 할지라도 개인의 활동을 일으키는 인간의 본성과 같은 그런 것은 없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의 본질은 그것의 실존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실존주의’, 즉 개인의 종의 구성원에 불과한 것이 아니면 보편 법칙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철학 학파의 아버지가 되었다. 내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는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여 나 자신을 무엇이 되게 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냥 순응ㅇ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것은 현존재의 진정한 결정이 아니며 나의 현존재에 대한 배신이다. 진정한 결정을 위해서는 나는 선택의 이유가 인간의 본성에 있는 것도 아니고 신의 명령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과 어떤 선택도 나의 삶에 선험적 의미를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자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아야한다.

1-4. 《존재와 시간》은 읽기 어려운 책이라서 하이데거 특유의 어휘와 난해한 구문이 그의 프로젝트에 필수적이었는지 자의적이었는지 논의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신랄한 반대자인 길버트 라일도 그의 책 논평에서 ‘인간 영혼의 근원적인 작용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에 감탄할 따름이라고 인정했다.

현상학의 저작으로서 《존재와 시간》은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의 어느 저작들보다 더 큰 갈채를 받았으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불행했다, 하이데거는 1929년 프라이부르크에서 후설의 철학 교수직을 이어받았다. 1933년 그 대학의 총장이 되어 5월 취임연설에서 나치주의야말로 독일 국민이 마침내 역사사의 정신적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매개체라고 환영했다. 그는 총장으로서 명예 교수인 후설을 비롯하여 정년이 아직 5년이나 남은 다섯 명의 유대인 교수들을 모두 대학 도서관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전쟁이 끝난 뒤 하이데거는 히틀러에 대한 지지를 속죄해야 했고, 1945년에서 1950년까지 스스로 대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중단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1976년 죽을 때까지 그리고 죽은 뒤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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