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과 실용주의부터 영국관념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까지

1.윌리엄 제임스의 심리학과 실용주의

 

1-1.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1842-1910)는 프레게보다 여섯 살 더 많았지만, 철학은 훨씬 늦게 시작했다. 그는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를 신봉한 신학자의 아들이자 유명한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형으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국 교육을 받기도 했고, 프랑스와 독일의 학교에서 유럽교육을 받기도 했다. 화가와 의사의 갈림길에서 망설였지만 1864년 하버드 의과대학에 등록했다. 학위를 취득한 후 건강이 나빴고 조울증을 앓았으나 프랑스 철학자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의 저작을 읽고 회복했다. 그의 관심은 점점 경험적 심리학으로 옮겨가 1876년 처음으로 심리학 실험실을 만들었다. 심리학의 과제는 두뇌 상태를 의식의 흐름 현상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그 책이 표준적인 교과서가 되기는 했으나, 그것이 출판될 무렵 제임스는 심리학을 떠나 철학 교수가 되었다. 제임스는 과학적 세계관을 신, 자유, 영혼불멸에 대한 믿음과 조화시키기를 열망했다. 그는 이론적 증거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논의하면서 진리를 믿어야 할 의무가 과오를 피해야 할 의무와 비중이 같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사람들마다 각자 무엇을 신이라고 생각하든 자신을 그것과 관련 있는 존재로 이해할 때 그 사람들이 갖는 감정, 행위, 경험을 음미하려고 애썼다. 그는 신비주의 현상이나 다른 형태의 종교적 감정의 진정성과 효력이 입증되기를 기대하면서 그것들을 경험적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제임스가 미국철학의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1907년 《실용주의》 출판 덕분이었다, 그는 저작의 제목과 논지가 퍼스한테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어떤 대상에 대해 더할 나위없이 명료하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인지 가능한 실제적인 유형의 효과를 가졌는지를 고려하면 된다. 이와 같은 효과가 즉시 나타나건 나중에 나타나건 그 효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어쨌든 긍정적인 의의를 갖는 한, 그 당시 우리로서 그 대상에 가질 수 있는 모든 생각이다”

1-2. 그러나 퍼스의 실용주의는 의미 이론이자 인간과계에 관련된 객관적 것인 반면 제임스의 실용주의는 진리 이론이자 개인주의적이며 주관주의적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퍼스는 자신의 이론이 제임스의 이론과 무관하다고 말하고 자신의 이론을 ‘프래그머티시즘(pragmaticism)’이라고 고쳐 불렀다. 제임스의 실용주의에 따르면, 관념은 그것이 우리 삶에 유익하다고 믿는 한 옳다. ‘옳음은 신념에 유리하게 좋은 것으로 판명된 모든 것을 일컫는다.’ 즉 ‘옳은 것은 일을 해내는 것이다’ 비평가들은 거짓을 믿는 것이 진리를 믿는 것보다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진리가 장기적인 만족과 동일시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반대했다. ‘신의 wswo에 대한 가정이 가장 넓은 의미로 만족스럽게 이릉 해낸다면, 그것은 옳다’

제임스는 자신의 이론이 객관적 실재를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실재와 진리는 서로 다르다. 사물은 실재하는 것이다. 옳은 것은 과념과 신념이다. ‘실재가 옳은 것이 아니라 신념이 옳다. 그리고 신념은 실재에 대해 옳다’. 어떤 신념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되는 것은 그 신념의 결과가 좋은지 어떤지 발견함으로써가 아니라 신념이 습관적으로 옳다 그르다고 말하는 것들의 차이점에 알기 쉬운 실용적 의미를 부여한 결과다. 관념과 실재의 대응 관계에 대한 확인이나 검증 과정을 통해서 관념을 옳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의 실용주의 체계는 어떤 실재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그 실재가 만족스럽다는 신념의 필요조건인지 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대상이 없어도 그 대상에 대한 신념이 만족스러울 수 있는지는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있다.

제임스는 《다원적 우주》에서 실용주의를 이용해 종교적 세계관을 옹호하였다. 그는 세상의 수많은 고통으로 인해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성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하자면 초인의 인식이 능력이나 지식에 혹은 둘 모두에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신 역시 미래를 결정하거나 예언할 수 없으며, 세상이 더 좋아질지 나빠질지는 신의 도움 아래 인간이 행하는 선택에 의해 좌우된다.

제임스는 자신의 형이상학 체계를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지만 그의 실용주의 프로그램은 그가 죽은 뒤 다른 사람들, 특히 듀이(John Dewey)가 이어받았다. 듀이는 교수 생활을 하면서 실용주의를 아주 특별하게 미국의 교육 분야에 적용했으며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주제에 관한 저작들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의 변함없는 목적은 자연과학과 공학에서 그토록 성공적이었던 탐구 방법들이 인간 노력의 다른 분야들 어디까지 연장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2.영국 관념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

 

2-1.그토록 굳건하게 유지되던 영국 경험주의 전통은 존 스튜어트 밀이 죽자 반발에 부딪치기 시자했다. 밀이 죽고 1년이 지난 1874년, 밸리올 칼리지의 교수인 그린(T.H.Green,1836-82)은 경험주의의 전제 가정들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상당 분량의 서문을 붙여 흄의 《인간본성론》을 출간했다. 또 머튼 칼리지의 브래들리(F.H.Bradley)는 영국 헤겔주의의 기초 고전인 《윤리학 연구》를 출간했고. 1893년에는 영국 관념주의의 완전 결정판인 《현상과 실재》를 완성했다. 그 후 얼마 안되어 케임브리지에서는 헤겔 논리학의 방법들과 몇몇 신조들이 트리니티 칼리지의 철학자 맥타가트(J.M.E.McTaggart)가 쓴 일련의 논문을 통해 자세히 소개되었다.

제임스의 실용주의와 마찬가지로 그린의 관념주의는 어느 정도 종교적인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자연적이고 자의식적인 유일한 존재가 있으며, 실재하는 모든 것은 그 존재의 활동이자 표현이다. 우리 모두는 이 초자연적인 존재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 존재의 표현인 세계의 부분들로서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존재가 그것을 통해 즉시 자신을 만들어 내고 자신을 세계와 구별하는 그 자의식에 대한 약간 불완전한 상태의 분담자로서도 관련되어 있다.’

 

그는 이와 같은 관계가 도덕과 종교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브래들리와 맥타가트는 다소 간련성이 적은 기독교적인 내용의 관념주의를 배제하고, 결국 유한한 자아들의 공동체 이외의 다른 어떤 절대자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실재가 본질상 완전히 초자연적이라는 것은 영국 관념주의자들의 공통점이었다. 그들은 정신과 물질이 존재의 동등하고 독자적인 두 영역이라는 이원론적 관념을 거부했다. 그러나 브래들리의 ‘일원론’은 또 다른 근본적인 양상을 가졌다. 그는 실재가 전체상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진리성은 개별적인 원자 명제들의 속성이 아니라, 오로지 전체로서의 존재에 관한 판단들의 속성이다. 그는 《현상과 실재》엥서 우즈를 서로 아무 관련 없는 독립적 실제들의 복합체라고 생각하면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우주의 개개의 모든 것은 개개의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있다. 바로 그 본질로 인해 내적으로 관련되어있다.

2-2. 관념주의의 우월함은 20세기 초 케임브리지의 젊은 두 철학자 무어(G. E.Moore,1873-1958)와 러셀(Bertrand Russel)에 의해 결정적으로 의문시되었다. 무어는   ‘판단의 본성(The Nature  of   Judgement      ,1899)’에서 실재가 정신의 창조물이라는 근본적인 주장을 거부하는 대신 플라톤의 실재론, 즉 개념은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실재이며, 세계는 서로 결합하여 옳은 명제가 되는 그런 개념들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관념주의 논박’(The Refutation of Idealism)에서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라는 주장을 거부했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과 온전히 다른 어떤 것이며, 우리의 지식 대상은 대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별개이다. 또한 물질적 대상들은 우리가 직접 지각하는 어떤 것이다.

이러한 관념주의에 대한 무어의 저항은 러셀에게 충격을 주었고 러셀은 잔디가 실제로 푸르다는 생각에 벅찬 해방감을 느꼈다. 무어와 마찬가지로 러셀은 관념주의를 단념하는 대신 보편자에 대한 플라톤의 신조, 즉 개개의 모든 낱말은 특수한 것이건 일반적인 것이건 객관적 실재를 나타낸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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