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의 관념

홉스의 경험론보다 일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로크의 경험론을 보자. 경험론을 대표하는 로크와 합리론을 대표하는 데카르트는 공통적인 전제들을 공유하는데, 이 둘 모두 직접적인 의식에 호소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한다.

로크의 ‘관념’이라는 용어가 대상을 의미하는지 활동을 의미하는지 구별하기가 어렵다. 로크는 관념이 ‘사고 과정에서 정신에 등장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정신에 등장하는 것’이라는 문구는 정신이 사고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정신이 참여하는 바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애매하다.

로크는 자주 데카르트에 반대하는 견해를 드러내지만 많은 철학적 주제들을 데카르트에서 빌려와 질문을 던진다. 동물은 일종의 기계인가? 영혼은 항상 사고하는가? 물질이 없는 공간이 존재할 수 있는가? 본유 관념이 존재하는가? 이들 중 마지막 질문은 결정적인 질문으로 어떤 대답을 하는지에 따라 합리론자 또는 경험론자로 분류된다. 또한 여기서 관념이라는 용어가 지니는 서로 다른 의미 사이의 차이를 극복한다면 로크와 데카르트의 관점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위 질문은 사고 활동이 아니라 단지 사고 능력에 관한 것으로 데카르트와 로크에 따르면 인간만이 고유하게 타고나는 지성이라는 일반적인 능력이 존재한다. 로크의 《인간지성론》은 인간을 감각 능력을 지닌 나머지 존재들보다 우위에 서게 만드는 것이 바로 지성이라는 언급과 더불어 시작된다. (E, 43)

데카르트는 진리란 인간이 본유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고 본유 관념 중 일부는 심사숙고 후에 동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로크 또한 진리가 경험에 의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개념을 얻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본다.

로크는 본유 관념에 관한 논의가 대부분 이론적이든 실천적이든 간에 우리가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원리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데 할애한다. 로크에 따르면 설령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진리가 있다 할지라도 보편성만으로는 그것이 본유적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한 설명이 공통적으로 학습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도 보편적 동의가 본유적임을 함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만 본유적인 것도 보편적 동의를 함축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본유 관념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데카르트는 본유적 요소가 없이는 경험이 과학적 지식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로크는 경험이 없이는 본유 관념이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두 주장은 모두 얼마든지 옳을 수 있다.

로크는 합리론자들의 논변이 ‘색, 소리, 맛, 형태 등에 대한 우리의 모든 관념을 본유적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이성 및 경험과 반대되는 것은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고 주장(E, 58)하지만 데카르트는 어떤 특정한 사과의 색, 맛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본유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붉음이나 달콤함이라는 일반적 관념이 본유적이라는 생각은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고 본다. 여기서 합리론과 경험론 사이의 논쟁이 근본적으로는 일치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색, 맛과 같은 성질들이 주관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로크의 논변은 ‘오직 하나의 감각을 통해서 우리의 정신에 형성되는’ 관념과 ‘하나 이상의 감각을 통해서 정신에 전달되는’ 관념을 구별함으로써 시작된다. 그리고 이런 구별에 대응하여 물체에서 발견되는 성질들 사이의 구별도 이루어진다. 우리는 정신의 지각으로서의 관념을 구별하는 동시에 이런 지각을 일으키는 물체가 변형된 것으로서의 관념도 구별해야 한다. 또한 관념이 관념을 일으키는 물체 안의 무언가에 대한 정확한 상이라고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로크는 우리 안에 관념을 낳는 능력을 ‘성질들’이라고 말하며 하나 이상의 감각을 통해서 지각되는 성질을 ‘제일성질’, 오직 하나의 감각을 통해서 지각되는 성질을 ‘제이성질’이라고 말한다. 이런 구별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공통적 감각’ (=제일성질)과 ‘적절한 감각’ (=제이성질) 사시의 구별은 이미 하나의 관행이었다(E, 134~5). 로크는 적절한 감각의 객관성을 부정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와 결별한다. 이는 데카르트가 예견했던 바이기도 한데 이를 지지하기 위하여 로크와 데카르트는 더욱 설득력 높은 형태의 논변을 제시한다.

 로크는 오직 제일성질만이 그런 성질을 지닌 대상과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냄새, 맛이 전혀 없는 물체는 존재할 수 있지만 형태, 크기가 없는 물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연장성, 형태, 운동 가능성 등은 그대로 유지된다. 데카르트는 오직 연장성만이 물체의 본질을 구성한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이와 유사한 논변을 펼쳤다.

 어떤 돌의 관념에 집중하여 돌의 진정한 본성에 속하지 않는 돌의 단단함을 제거한다. 돌이 액체가 되거나 가루로 변하면 단단함이라는 성질은 사라지지지만 돌은 여전히 물체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논변을 통하여 물체는 반드시 형태를 지녀야 하지만 어떤 특정한 형태를 얼마든지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일성질의 영구성에 관한 논변은 이런 성질들에 대한 포괄적인 관점에 의존하는 듯이 보인다. 반면 제이성질의 비영구성에 관한 논변은 이런 성질들에 대한 개별적인 관점에 의존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성질들이 물체의 본질에 속하는 성질이 아니라고 해서 이들이 물체의 진정한 성질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

 로크는 제이성질이 우리 안에 감각을 산출하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데카르트나 홉스에서도 그랬듯이 여기서 다시 한 번 상대성과 주관성을 혼동하는 일이 일어난다. 어떤 속성은 상대적이면서도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로크의 언급에 따르면 ‘불 또는 눈의 일부에 해당하는 특정한 크기, 수, 형태, 운동은 누군가가 이들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든 그렇지 않든 실제로 이런 대상에 속한다.’ 반면에 밝음, 뜨거움, 흰 색깔, 차가움 등은 진정으로 이런 물체에 속하는 것이 아닌데 이는 질병, 고통이 복통을 일으키는 음식물 자체에 속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런 논변은 로크가 언급한 제이성질은 우리 안에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 지닌 능력이라는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능력은 당연히 감각 기관이 있을 경우에만 발휘되지만 능력 자체는 설령 발휘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계속 존재해야 한다. 로크는 우리 안에 제이성질의 관념을 낳는 것이 오직 그런 능력을 지닌 대상의 제일성질일 뿐이라고 말한다. 

로크가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논변은 지각과 느낌 사이의 유비이다. (논변) 하지만 이 유비는 잘못 적용된 것인데 로크의 이런 논변은 그 자신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되고 만다.

로크는 친근한 예들을 통해서 동일한 대상에 의해서 생겨난 감각들이 주변 환경에 따라 서로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예로부터 제이성질이 객과적이 아니라는 점이 아니다라는 것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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