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론과 관념론, 관념론의 인식론

실재론 대 관념론

칸트의 경험에서 드러나는 아프리오리(apriori)한 요소들에 대한 설명은 획기적이지만 인식론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 문제는 우리가 지각한 것이 만약 대부분이 우리의 정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과연 우리는 실재하는 외부세계에 관한 어떤 지식이라도 얻을 수 있는가? 란 내용이다. 이 문제는 <<순수이성비판>>에서 시간과 공간이 경험상 실재적이지만 선험적으로 관념이라 말하면서부터 대두되었는데 시공간에 대하여 칸트는 주관이 없다면 시공간은 없어지며 현상으로서 시공간은 그자체로 현존하지 못하여 오직 우리 안에서만 현존한다고 말 하였다.

시공간을 주관적으로 파악한다면 단순한 현상 너머의 무엇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해 칸트는 경험에서 모든 인간에서 속할 수 있는 바와 한 가지 관점에만 속하는 바를 구분해야 한다고 답한다. 또한 칸트는 실재와 현상 사이의 구별은 단순한 경험적인 것일 뿐이라 말하며 첨언한다. 이런 점들로 인하여 칸트를 관념론자로 여기는 것이 타당해 보이지만 칸트 이전의 관념론자들과는 차이를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전의 관념론자인 데카르트나 버클리와 견해를 같이하기 보다는 외부 경험을 전제함으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칸트는 우리의 내부 경험은 오직 외부 경험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변화의 지각은 영속적인 것에 대한 지각을 포함하는 일이라 하며 이 영속적인 것이 자신이 아니기에 경험을 통합하는 주관이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을 말한다. 따라서 자신의 내부 주관을 경험으로 판단하기위하여 외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철학자들이 현상계와 본체계를 구별한다고 주장하지만 단지 현상만이 있는 세계 혹은 감각적 자료의 세계만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며 본체계 역시 따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반박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상에 관한 언급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것에 관한 현상이라 말할 수밖에 없기에 어떤 것을 상정해야만 한다. 칸트에 따르자면 이 어떤 것이 선험적 대상이며 이것은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만을 어떤 것의 속성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이 선험적 대상에 대하여는 어떠한 범주 구분에도 포함되지 않기에 본체계의 개념을 제한적으로 이해해야한다고 말한다. 칸트의 이런 주장들은 그가 스스로를 선험적 관념론자로 여기면서 동시에 경험적 수준에서 실재론자로 여기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버클리나 데카르트의 견해는 칸트의 견해와 유사성이 덜한데 그의 견해와 좀 더 유사한 입장은 아퀴나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감각과 지성 사이의 협력을 통해서만 지식이 성립한다는 점이다. 즉 경험과 개념을 동시에 파악해야만 함을 주장하는 것이다. 아퀴나스와 칸트 모두 이러한 주장에 따라 관념론자라 볼 수 도 있지만 아퀴나스의 경우 관념은 정신의 보편으로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모든 사고의 대상이 관념에 대한 것은 아니기에 자연적 대상의 실재를 인정하는 면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칸트의 경우 물자체가 존재한다고 주장함으로 버클리와 다른 견해를 지니지만 물자체에 대한 그 어떠한 접근도 불가능하며 언급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저술에서 드러난 물자체는 실제로 현상의 본체로서 어떤 것이 아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인 듯 보인다.

관념론의 인식론

칸트의 체계는 그의 사후 바로 비판을 받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피히테는 <<순수이성비판>>에 근본적 모순이 내재한다고 비판했다. 그 비판이란 경험이 물자체에서 야기된다는 주장과 원인의 개념이 오직 현상의 영역에서만 적용된다는 주장이 서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이런 모순이 있기에 피히테는 이것을 피하기 위해 경험을 정신의 창조물이라 여기는 관념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방법의 일종이라 하였다. 그러나 피히테는 개별적 자아의 주관성에서 세계를 끌어낼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였기에 독일의 관념론은 헤겔에 의해 더 발전되었다. 헤겔은 피히테와 달리 정신의 창조 활동을 세계를 포괄하는 영역까지 끌어올렸으며 이외에도 지식이나 지각의 본성에 대한 여러 가지 통찰을 제시한다.

헤겔은 인간의 인식 능력을 의식 -> 자기의식 -> 이성 이라는 위계질서로 파악하며 그 종류를 구분한다. 이 중 의식은 감각적 의식 지각 오성으로 또 한 번 나누어진다. 감각적 의식은 감각적 자료의 수용 단계로 헤겔 전후의 철학자들에게 가장 확고한 형태의 지식이라 여겨졌지만 헤겔에게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헤겔은 감각적 자료에 대한 경험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성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이에 대하여 완전한 침묵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감각자료의 규정을 위해선 보편 표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지각의 단계에서 지식이 될 수 있지만 그 지식은 불완전한 환영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헤겔은 다양한 감각 경험을 하나의 실체에 속한 속성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비감각적 범주에 호소하여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오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오성의 영역에서 의식을 구성하면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게 되며 자기의식의 단계로 넘어간다. 의식과 자기의식의 단계는 이후 상위의 단계인 이성으로 발전하는데 이성은 자연과 정신 모두를 일종의 무한 정신이라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인식론과 형이상학이 교차 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무한 정신이라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이성은 살아있는 정신의 하나로 그 자체로서 모든 것을 포괄하기 때문이다.

2 thoughts on “실재론과 관념론, 관념론의 인식론

  1. 조형경

    안녕하세요, 서핑하다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유익한 글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문단의 무한정신을 헤겔의 절대정신으로 봐도 무방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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