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히테와 셸링, 그리고 헤겔

피히테와 셸링, 그리고 헤겔

Ⅰ. 피히테

1-1. 생애와 시대적 배경

1-1-1. 칸트는 만년에 이르러서까지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는 시도를 했는데, 그 내용은 그가 죽은 후 ⟪유고(Opus Postumum)⟫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에 칸트 자신이 ⟪순수이성비판⟫에서 제시한 몇몇 요소에 대해 불만을 여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불만은 칸트의 열렬한 지지자들과 제자들에게 그를 비판할 계기를 제공했다. 이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은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로, 그는 칸트가 사망했을 때 철학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는 중에 있었다.

1-1-2. 피히테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거위 돌보는 일을 했었는데, 그의 뛰어난 지적 재능을 알아본 자선 사업가인 남작에게 후원을 받아 예나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는 대학에서 레싱과 스피노자, 칸트를 숭배하게 된다. 그는 괴테의 추천으로 1794년 예나 대학 교수로 임명되고, 이곳에서 시인이자 극작가인 실러와 동료로 지낸다. 피히테는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1799년 예나 대학을 떠나게 되고, 한동안 직장을 찾지 못하다가 1810년에 새로 생긴 베를린 대학의 철학부 학장이 된다. 그는 1812년 프랑스에 맞서 저항군에 지원 입대 하였으나, 1814년 발진 티푸스에 전염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1-2. 사상

1-2-1. 피히테의 철학적 명성은 1804년에 발표한 ⟪지식학⟫으로 얻게 되는데, 이 책에서 그는 철학의 임무를 경험의 기능성에 대한 선험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라 보며 칸트의 용어를 사용한다. 그는 순수한 객관(물자체)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면 독단론의 길을, 자유로운 주관(자아)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면 관념론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는 의식 전체를 사고하는 주체의 자유로운 경험으로부터 이끌어 내고, 그 자신을 독일 관념론의 창시자로 만들었다.

1-2-2. 모든 것을 자신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자아’란 무엇인가? 피히테는 행위를 하면서 자신의 자기의식에 대한 지적인 직관이 없다면, 인간은 행위할 수 없게 될 것이라 말한다. 그의 이론은 개인적 자아가 물질세계 전체를 창조할 수 있다는 유아론(solipsism)에 빠지는 듯 보이지만, 그 자신은 이러한 해석은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현상적인 자아를 포함한 모든 현상을 창조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직접적이고 정신적인 생명’이라고 주장했다.

1-2-3. 이는 마치 신에 관해 언급하는 것처럼 보인다. 피히테는 모든 철학의 기초를 제공하는 것은 현존하는 유한한 자아가 아니라 신적인 이념이라고 말했다. 존재가 아닌 생명이 없으며, 신이 아닌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신적인 존재를 믿는 것은 미신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그가 유신론자라기보다 범신론자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다.

Ⅱ. 셸링

2-1. 피히테 이론을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셸링(F. W. J. Schelling)은, 피히테의 종교철학은 스피노자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1798년 23세의 나이로 예나 대학 교수로 임명된 피히테의 동료였다. 그는 피히테의 철학이 스피노자가 독단적인 형태로 제시했던 이론을 비판적인 형태로 바꾼것이라 보았다. 셸링은 비교적 덜 강경한 형태의 관념론인 자신의 철학 체계인 ‘자연 철학’을 제시했다. 그는 최초의 절대적인 것이 서로 나란히 존재하고 서로 동등한 두 세계, 즉 정신적인 의식이고 물리적인 자연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그는 최초의 절대적인 것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자연이고, 물질적 자연의 체계는 이렇게 만들어진 결과로서의 자연이라고 여겼다.

2-2. 셸링의 체계는 풍부하지만 동시에 난해하다. 현재 영어권에 속하는 나라들에서 그의 저술은 거의 읽히지 않는다. 대부분의 철학사에서 셸링은 피히테와 헤겔의 관념론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셸링과 헤겔은 1802~3년에 예나에서 함께 철학 저널 편집자로 일했다.

Ⅲ. 헤겔

생애와 시대배경

3-1. 헤겔이 쓴 최초의 저술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을 비교한 것이었다. 1770년에 태어난 헤겔은 신학을 공부하고 1801년에 예나 대학에서 두 철학자와 함께 지냈다. 그는 1806년 프로이센 군대가 나폴레옹에게 대패하여 예나 대학이 폐쇄될 때 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대학이 문을 닫고 곤궁한 상태에서 그는 유명한 《정신현상학》을 출판한다. 헤겔은 1816년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가 된다. 그는 《논리학》을 출판하고 그 다음 해 철학 백과사전에 해당하는 《철학강요》를 출판했다. 그는 1818년 베를린 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1831년 콜레라로 사망하기 전까지 교수직을 유지했다. 그가 베를린 대학 교수로 있는 동안 그가 했던 강의록이 사후에 편집되어 출판된다. 그의 강의록은 철학사를 비롯해 미학, 역사철학 등이 있는데, 이는 그가 매우 독창적이고 폭넓은 지성을 소유했던 학자였음을 보여준다.

3-2. 헤겔이 사상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는 철학에 역사적 요소를 도입한 것이다. 그가 역사철학을 다룰 당시 고전적인 저술 두 권이 이미 출판되어있었는데, 그 책은 비코의 《새로운 과학》과 헤르더의 《인류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이었다. 이 두 권은 역사 탐구 방법을 검토하고 인류의 진화론적 발전을 강조했다. 하지만 철학 안에서 역사에 특별한 지위를, 그리고 역사 서술에서 철학자에게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인물은 헤겔이다.

사상

3-3. 헤겔은 철학자가 역사에 대해 일반 역사학자들이 지닐 수 없는 특별한 통찰이 있다고 보았다. 오직 철학자만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이성이고, 세계사는 이성의 전개 과정이라는 점을 안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해에 도달하는 방법은 형이상학적 체계를 탐구하는 방법과 역사 자체를 귀납적으로 탐구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역사가 이성의 전개라는 믿음은 신의 섭리에 대한 종교적 신앙과 대응하는데, 헤겔은 형이상학적 이해를 하는 철학자가 신학보다 더 세계의 궁극적 운명과 궁극적인 운명 그리고 그 실현 방법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3-4. 헤겔에 따르면 세계사는 정신(Geist)이 전개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정신의 내적 발전은 구체적인 실재로 통하여 자신을 드러낸다. 헤겔은 태초로부터 하늘과 땅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은 오직 자신을 인식하고 발견하려는 정신의 투쟁일 뿐이라고 보았다. 정신은 사전에 완벽하게 완성된 형태로 주어지는 무언가가 아니라, 잠재성에서 현실성으로 나아가고 잠재성을 실현하려는 정신의 충동을 동인으로 갖는 것이다. 보편사는 ‘정신이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바에 관해 인식을 점차 드러내고 현실화하는 과정이다’.

3-5. 헤겔은 정신의 존재를 논리학과 관련되는 주제라고 말하며 ‘논리학’을 자신만의 특별한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역사를 논리의 현시로 여기고 동시에 논리학을 역사적인, 대립 및 투쟁과 관련되는 용어로 여긴다. 두 명제가 서로 모순을 이룰 경우 그는 이를 두 명제 사이의 대립으로 표현한다. 두 명제가 서로 싸워 승패가 나뉘는 이것을 ‘변증법’이라 한다. 이는 한 명제(정립)가 다른 명제(반정립)와 싸움을 벌이고 결국 이들 모두를 극복한 제 3의 명제(종합)이 등장하는 과정이다. 정신에 이르기 위해서는 두 단계의 변증법을 거쳐야 한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는 최초의 정립은 절대적인 것이 순수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어떤 성질도 지니지 않는 순수한 존재는 무와 같으므로 ‘절대적인 것은 무’라는 반정립에 이르게 된다. 종합은 정립과 반정립을 극복하며, 존재와 무의 결합은 생성이므로 ‘절대적인 것은 생성’이라는 종합에 이른다.

3-6. 생성과 생명 그리고 절대적인 것은 다시 두 번째 단계의 변증법을 제공한다. 헤겔은 절대적인 것을 사고의 주체, 즉 보편적인 사고의 주체로 여기며 이를 ‘개념’이라 불렀다. 이는 지성이 사고를 통하여 산출하는 모든 개념의 총체를 의미한다. 또한 그는 절대적인 것을 사고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자연’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지성이 탐구할 수 있는 대상의 총체라는 의미한다. 이렇게 자기의식이라는 종합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정신이다.

3-7. 헤겔이 생각한 정신의 개념은 처음 접하면 몹시 당황스럽다. 헤겔이 말하는 정신이 신 – 스피노자의 경우처럼 자연과 동일시되는 – 이라고 생각할 수도, 혹은 개인으로서 인간이 지닌 정신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중 어떤 것도 완전히 옳지는 않다. 이들보다 인류에 관해 언급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나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헤겔은 ‘정신’이라는 용어에 두 가지 형이상학적 요소를 더한다. 첫째, 그는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에 관해 언급한다. 둘째, 그는 세계를 세밀하게 나타나는 나름대로의 생활 주기를 지니는 유기적 전체로 여긴다.

3-8. 헤겔은 우리가 자연의 구체적인 유기체를 볼 때처럼 세계도 그렇게 보기를 요청한다. 그는 식물은 자신의 이념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어린아이는 육체가 발달하고 지적인 기법을 습득하면서 점차 자신의 본성과 이념을 의식하게 되는 예를 들며, 정신이 진보함으로써 이런 발달 과정은 세계를 포괄하는 규모로 재현된다고 보았다. “정신은 개인적이고 유한한 의식으로 여겨져서는 안되며 그 자체로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정신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진보는 가장 풍부한 형태로 세계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보편적 정신에 의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따라서 세계사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정신의 자기의식이 전개되는 역사이다. 정신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에 대한 의식이 성장하는 것에 맞춰 자유의 의식을 통해 진보한다.

3-9. 정신의 자유는 정신을 물체와 구별하는 근거가 되는데, 물체는 만유인력과 같은 필연적인 법칙의 제한을 받는다. 세계의 전개는 정신이 자신의 자유를 확장하고 의식해 나가는 과정이다. 국가는 ‘자유의 실현, 즉 절대적인 최종 목표의 실현이며 따라서 오직 그 자체를 위하여 존재한다’. 국가는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은 오직 국가의 구성원이 됨으로써만 가치를 소유하게 된다.

3-10. 어떤 국가를 구성하는 민족의 정신이 어떤가에 따라 서로 다른 국가들이 서로 다른 특징을 드러낸다. 각 민족에게 한번의, 오직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헤겔은 이 기회가 자기가 살았던 당시 독일 민족의 프로이센 왕국에게 주어졌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정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치 제도가 아니라 철학 자체에서 드러난다. 헤겔은 철학이 진보한다고 굳게 믿었다. 절대적 존재의 자기의식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통해 현존하고, 철학사를 통해 절대적 존재는 자기 자신을 직접 마주보게 된다. 그는 철학사 강의에서 이전의 다양한 철학들을 차례대로 독일 관념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인 발전에 굴복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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