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념과 인상에 관한 흄의 견해

1. 관념과 인상에 관한 흄의 견해

1-1. 사고와 심성을 동일시하려는 경험론자의 태도는 흄의 철학에서 가장 극단적인 지점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흄은 모든 지각을 ‘관념’이라고 부르는 대신 인상과 관념이라는 두 종류로 구별함으로써 로크와 버클리의 주장을 개선하려한다. 흄은 모든 사람이 감정과 사고의 차이를 안다고 말한다. 감정은 인상, 즉 감각 및 정서와 관련된다. 반면 사고에는 관념이 포함된다.

여기서 흄이 말하는 관념이 정신적 심상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이 관념은 인상과 유사하지만 덜 강력하고 덜 생생하다. 단순 관념은 인상의 모사에 지나지 않으며 이를 옹호하기 위해 그는 사고 실험을 통한 경험에 호소한다. 예컨대, 파란색만 지각하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특정한 색조가 빠져있는 빈자리를 지각한다. 또한 그 사람은 상상력으로 빠져있는 파란색의 색조를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보충하고 이에 따른 관념을 스스로 떠올린다.

이런 사고 실험을 통하여 그는 모든 관념이 인상으로부터 도출된다는 자신의 원리에 대한 예외를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이런 사례는 무척 드물기 때문에’와 같은 말로 제멋대로 반례를 무시한다. 어쨌든 그는 ‘앞선 이상이 없다면 관념 또한 없다’라는 원리를 형이상학을 공격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1-2. 생생함의 정도를 사용하여 관념과 인상을 구별하는 기준은 생생함에 근거하여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관념, 즉 기억에 관한 관념과 상상에 의한 관념을 구별한다. 그는 기억의 관념이 상상에 의한 관념보다 훨씬 생생하고 강렬하다. 또한 기억과 달리 상상에 의한 관념은 인상이 지닌 시간과 공간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과 상상에 의한 관념 모두 자신에 선행하고 대응되는 인상을 지녀야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기억에 관한 관념과 상상에 관한 관념을 구별하는 두 가지 기준이, 즉 생생함과 질서정연함이 마련된다. 하지만 이런 기준들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들을 통해 진정한 기억과 공상적 기억을 구별할 수는 있겠지만 회의의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공상이 기억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를 압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1-3. 흄은 기억이 정신 안에 일련의 과거 사건들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에는 수 많은 종류의 기억이 존재하며 상상도 마찬가지로 공상을 펼치는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포괄한다. 상상은 착각, 가정, 창조적 독창성 등을 모두 포함한다. 그는 기억과 상상 안에 다양한 정신적 사건과 능력, 활동을 모두 포함시킬하지만 이들 모두를 오직 경험론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강요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동시에 흄의 설명이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듯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새소리를 듣고 그것의 선율을 정신 안에서 재현할 때 우리는 나와 새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새가 내는 듯이 보이는 생생한 소리를 내가 접한 결과인 것이다. 그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의 지각뿐이라는 경험론의 주장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의 삶 또한 내적 감각의 연속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2-1. 그렇다면 기억과 상상 사이의 차이 또한 내적 감각을 통해 밝혀져야 한다. 누군가는 이들 사이의 차이가 믿음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다. 그 자신도 우리가 스스로 믿지 않는 것들을 상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상태를 이런 방식으로 분류한다면 그는 믿음에 적절한 지위를 부여하기 어렵게 된다.

단순히 p를 생각 하는 것과 실제로 p를 믿는 것 사이의 차이가 내용의 차이일 수는 없다. 흄이 표현하듯 믿음은 우리가 믿는 바를 구성하는 관념 또는 관념들에 어떤 특별한 관념을 더함으로써 형성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어떤 관념이라도 자유롭게 더할 수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바를 선택해서 믿을 수는 없다. 이를 지지하는 근거는 만약 특별한 관념을 더함으로써 믿음이 형성된다면 누군가는 카이사르가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믿는 것과 카이사르가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서로 전혀 충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은 동일한 명제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2.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에서 흄은 믿음이 ‘그저 느슨한 공상이나 몽상과는 다른, 어떤 감정이나 정서를 동반하는’ 개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감정은 일종의 인상인 것처럼 보이지만 흄은 이런 생각이 경험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믿음은 오직 관념들로만 구성되지만 그는 여전히 관념은 감정에 동의한다고 고집하면서 강력함, 생생함, 견고함, 확고함, 견실함 등의 용어로 예를 든다. 결국 그는 ‘이런 감정 또는 태도의 개념을 완벽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면서 논의를 마친다.

2-3. 믿음의 특징을 생생함으로 설명하려는 흄의 시도는 그의 체계 안에서 난점을 일으킨다. 이와 관련해 흄은 명백한 관념도 아니고 명백한 인상도 아닌 지각에 놀란다. 예컨대, 우리는 침대에서 세상을 떠났다. 떠나지 않았다는 카이사르의 예에서 이 둘의 기억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의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경우 모두 생생함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의 최대 난점은 믿음이 상상을 포함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믿음에 상상이 포함될 경우 강박적인 공상이 실제 믿음보다 생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4. 흄은 뉴턴이 물리학에서 행한 바를 인식론에서 행하기 위하여 관념의 연상을 도입했는데 여기저기 흩어진 매우 적은 언급만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그의 착각에는 다소 안쓰러운 면이 있다. 하지만 그의 철학적 심리학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이유로 그를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는 솔직하게 경험론 전통의 허점과 모순을 인정했다. 그의 통찰은 이 전 철학자들의 심리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계속해서 연구대상이 되었다. 또한 그는 인식론에서 새로운 형태의 회의주의를 제시하면서 크게 기여했다

그의 회의주의는 관념들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명제와 사실을 표현하는 명제 사이의 구별로부터 출발하는데 그는 어떤 사실이라도 부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더라도 결코 모순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내일 해가 떠오를 것과 떠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명제 중 후자의 명제를 믿는가?

2-5. 흄은 사실의 문제에 관한 우리의 모든 추론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기초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인과 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가? 가장 단순한 자연의 규칙성도 경험 없이는 확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는 서로 전혀 다른 사건이며 전자로부터 후자를 추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자연의 규칙성을 배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흄은 이에 대한 고찰을 계속해 나간다. 그는 설령 우리가 원인과 결과의 작용을 경험한 후라 할지라도 경험으로부터 이런 결론을 이끌어낼 근거가 과연 이성 안에 존재하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미래의 대상이 과거의 대상과 유사하리라고 단지 현상적으로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다음 번에 내가 주잔자를 다시 난로 위에 올려놓았을 때 물이 끓지 않으리라는 가정은 아무런자기모순도 포함하지 않는다. 경험에 근거한 어떤 논증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연의 전행이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허용한다면 경험을 신뢰할 만한 인도자로 여길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과거와 유사할 것이라는 시도는 명백한 순환 논증에 빠진다.

2-6. 그렇다면 엄밀한 논증의 수준에서는 회의주의가 승리를 거두는 듯하다. 하지만 흄은 이런 발견 때문에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추론보다 더 강력한 원리인 습관을 통해서 자연의 규칙성을 믿게 된다. ‘두 가지 대상이 -예를 들면 뜨거움과 불꽃이, 무게와 단단함이- 서로 항상 연결되는 것을 본 후에 우리는 하나의 현상이 다른 현상으로부터 등장하리라고 오직 습관적으로 기대할 뿐이다.’ 인간의 삶은 주로 추론이 아니라 습관에 의해서 인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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