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흄

1-1. 버클리가 더블린에서 경험론의 형이상학을 세상에 선보인 직후에 경험론의 원칙을 형이상학에 반대하는 극단까지 밀고 나간 철학자가 에든버러(Edinburgh)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흄(David Hume)이다.  그는 1711년 스코틀랜드 작은 귀족 가문 출신으로 에든버러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과 사랑에 빠진다. 뒤이어 법률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했는데 포기했는데 그의 말을 빌리면 “철학과 폭넓은 배움을 추구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모든 일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혐오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또한 1734년부터 37년까지 양주의 라 플레슈라는 이전에 데카르트가 예수회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했던 곳에 살았다. 그는 그곳에서 첫 번째 저술이자 가장 중요한 저술인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썼다.  출판된 당시 책은 많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가 세상에 떠난 후 이 책은 대단한 명성을 얻었다.  20세기 영국 경험론자들은 이를 영어로 쓴 철학 저술 중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격찬했다.

2-1. «논고»는 모두 세권으로 구성되는데 ‘지성에 관하여’, ‘정념에 관하여’ 는 1739년에, ‘도덕에 관하여’는 1740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의 목표는 초판의 부제에 언급된 대로 실험적인 추론 방법을 도덕적 주제들에 도입하려는 시도이다.  그는 실험적 방법을 도덕적 주제들에 적용함으로써 뉴턴이 물리학에서 행한 바를 자신은 심리학에서 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관념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고 지금까지 형이상학자들이 잘못 해석하여 혼란스럽게 된 인과성이나 의무 등의 개념을 자신이 처음으로 확실히 해명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학문은 우리에게 이익을 준다. 이제 우리는 지식의 변방에서 작은 요새를 지키는 대신 ‘이런 학문들의 중심 또는 중앙을 향하여, 인간 본성 자체를 향하여 직접 행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2.  «논고»의 1권은 정신의 내용물을 경험론적으로 분류하는 작업과 더불어 시작된다. 여기서 로크 및 버클리 인식론의 근거가 많이 등장하지만 흄은 지각을 오직 인상과 관념으로 나눈다. 인상은 관념보다 강렬하며 생생하고 감각과 감정을 포함한다. 반면 관념은 사고와 추런을 포함한다. 그는 기억과 상상력의 관념 및 관념들 사이의 연상을 상세히 다루면서 로크의 추상관념에 대한 버클리의 비판을 더욱 강화한다.

«논고»의 1권 2부에서 그는 공간과 시간의 관념을 다룬 후 ‘지식과 개연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절에서 자신의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한다. 그는 감각이 직접 전하는 바를 넘어서서 확장된 모든 지식은 원인과 결과의 관념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과거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또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 추측하는 일은 모두 이 두 관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 두 관념의 근원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인관성의 관념이 본래 대상에 속하는 그 어떤 성질로 부터 생겨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대상들이 원인과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신 이 대상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아야한다. 그러면 우리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근접해서 발생하고 원인이 시간상 결과에 앞선다는 점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원인과 결과를 선언하기에 충분치않다.

그는 몇 페이지에 걸쳐 뛰어난 논증을 펼친 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의 추론이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 연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연결이 우리가 원인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추론에 의존한다. 즉 원인과 결과 사이에 필연적 연결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믿음은 추론이 아니라 습관의 산물이다.

2-3.  «논고» 2권에서 정념 또는 감정에 관하여 탐구함으로써 흄은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행보를 따른다. 하지만 이 주제는 합리론 철학자들보다 흄에게 더 큰 중요성을 지니는데 왜냐하면 흄은 합리론자들이 이성의 활동으로 여겼던 수많은 작용을 정념의 역할로 돌리기 때문이다.

흄에 따르면 정념은 특별한 종류의 인상이다. 지각을 인상과 관념으로 나눈 후에 흄은 다시 인상을 원초적 인상과 이차적 인상으로 분류한다. 감각적 인상과 육체적 쾌락과 고통은 원초적 인상인 반면 정념은 이차적 인상에 해달되는데 이것이 바로 2권의 주제를 형성한다.  그에 따르면 이성 자체는 어떤 행위도 산출할 수 없다. 모든 자발적인 행위는 정념에 의해서 동기가 부여된다. 이성은 결코 정념을 이길 수 없으며 오직 상반되는 정념만이 정념을 이긴다.  ‘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또한 노예여만 한다. 그리고 이성은 정념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임무도 탐내서는 안된다’

2권 끝부분에서 우리는 흄의 윤리 체계가 다른 전통적인 도덕철학과 다르다는 것을 명백히 예상한다. 이성은 우리를 행위하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도덕 판단을 이성의 산물일 수 없다.  도덕판단의 목표는 오직 우리의 행위를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이것은 오직 정념만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성은 우리의 정념에 원인을 제공하지도 평가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해야만 한다’는 ‘이다’로부터 도출될 수 없으며 우리가 이끌어 내야 하는 결론, 즉 선과 악, 옮고 그름 사이의 구별은 이성이 아니라 도덕감의 산물이다.

2-4. 이를 기초로 삼아  흄은 «논고» 3권 2부에서 정의와 불의에 관해 논의하며, 자비심이나 정신의 위대함 같은 인간 본성의 덕을 다룬다. 그는 도덕적 구별의 주요 원천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감(sympathy)의 감정이라고 결론 짓는다. 예컨대 정의가 칭찬받는 까닭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하기 때문이지만 만약 공감의 감정을 통해 공공의 이익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할 것이다.  ‘덕은 오직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오직 그 목적이 가치있을 경우에만 수단 또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행복은 오직 공감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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