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

 

  1. 시대적 배경과 생애

1-1 라이프니츠는 17세기와 18세기의 경계선에 걸쳐 앉은 철학자이다. 그는 체계적인 저술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철학사가들은 단편적인 조각글로부터 일관되고 종합적인 체계를 이끌어 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해 왔다. 또한 이후 등장한 수많은 철학자들은 그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1-2 라이프니츠는 라이프치히에서 철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유년기 시절부터 서재의 책들을 읽으며 보냈던 그는 문학, 역사, 법률, 수학, 자연학, 화학, 신학 등의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보였다. 1661년 라이프니츠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3년 만에 학사학위를, 그리고 1667년 21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교수직 제의를 거부하고 마인츠 대주교 아래로 들어가 외교관으로 일하며 몇몇 학문적 저술들을 대주교에게 헌정했다. 한편 그는 가톨릭이 지배하는 궁정에서 개신교도로 살면서 모든 기독교 교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교리들을 기반으로 기독교의 통합을 주장하는 여러 저술을 쓰기도 했다. 1672년 라이프니츠는 십자군 원정에 나서도록 루이 14세를 설득하는 비밀 임무를 띠고 파리로 갔으나 아무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아르노와 말브랑슈를 만났으며, 다음 해에는 런던을 방문하여 보일과 올덴버그 등 왕립학회 회원들에게 학회의 회원으로 초대되었다. 파리로 돌아온 그는 1676년 미분법을 발견했는데, 사실 뉴턴이 이보다 먼저 미분법을 발견하였으나 출판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독일로 돌아오며 스피노자를 방문하여 <<에티카>>의 초고를 읽고 논평을 쓰기도 하였다.

1-3 이후 라이프니츠는 그가 이전부터 해왔던 기독교 호교론 전파에 관하여 가명으로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전 유럽의 기독교 국가를 연방으로 통합하여 황제는 세속적인 통치를, 교황은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분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독교 통합 계획을 후원했던 공작이 사망하자 계획은 무너졌다.

2.사상

2-1 1685년 겨울 라이프니츠는 그의 저술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형이상학 논고>>를 집필했다. 그는 이를 자신의 성숙한 철학 체계를 언급한 최초의 저술로 여겼다. 짧지만 명료한 이 저술은 오늘날에도 라이프니츠 철학체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로 평가되며, 그의 철학이 지닌 많은 특징을 잘 보여준다.

2-2. 이 저술에 맨 처음 등장하는 주장은 우리가 항상 이성에 따라 질서 잡힌 방식으로 작용하는 신이 자유롭게 선택한 세계에 산다는 것이다. 각각의 개체는 자신의 내력을 통해 자신에 대해 참인 많은 술어들을 얻고, 이런 술어들 전체가 그 실체가 어떤 존재인지를 정의한다. 이런 실체들은 자신의 방식에 따라 세계를 표현하며, 특정한 관점에서 세계를 요약하는데, 이 실체 중의 하나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인간의 행위는 우연적이며 자유 의지에 의존한다. 선택 또한 근거는 있지만 그 근거가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실체들은 서로 직접 작용할 수 없되, 한 실체에 일어나는 일이 다른 모든 실체에게 대응되도록 신이 배열해 놓았다. 결국 각각의 실체는 분리된 하나의 세계와 같으며, 신 이외의 다른 어떤 존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

2-3 인간의 정신은 모든 것들의 관념을 포함하며, 신을 제외한 어떤 외부적 대상도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관념과 의지 작용은 우리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신은 우리를 강제하지 않으면서 이끈다. 정신과 육체는 서로 상호작용을 주고받지는 않지만 사고와 육체적 사건은 서로 대응해서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 까닭은 이들이 우리를 사랑하는 신의 섭리에 의해서 연결되기 때문이다(라고 적혀있는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형이상학 논고>>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전통적인 기독교가 배경에 깔려 있으며, 이 둘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주의 깊게 변형하려는 당시 대륙 철학자들의 시도가 드러남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체계가 지닌 특징을 데카르트, 말브랑슈, 스피노자의 체계와 대비하여 명확히 제시하면서 자신이 이들을 종합했다고 주장했다.

2-4.기독교 호교론 전파에 실패한 라이프니츠는 다른 방향으로 칼뱅주의 개신교도와 루터주의 개신교도 사이의 화해를 모색했다. 또한 그는 유럽 기독교 국가들을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두 가지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기독교 통합을 포기하지 않고 이후에도 가톨릭과 중국 유교의 신앙과 제사 사이에 조화를 모색하려는 예수회 선교사들을 격려했다.

2-5. 한편, 로크의 본유관념 부정에 크게 자극받은 라이프니츠는 경험론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를 위하여 쓴 저술은 로크의 사망소식을 알고 출판하기를 단념하였고, 결국 라이프니츠의 사망 후 50년이 지난 뒤에서야 출판되었다. (<<신인간지성론>>)

2-6. 라이프니츠가 프로이센의 샤를로트 왕비에게 헌정한 <<변신론>>은 세계의 현실적인 악에 직면해서도 신은 여전히 정의롭다는 주장을 정당화한다. 이 책에서 그는 악으로 보이는 여러 현상에도 우리가 실제로 여러 가능 세계 중 최선의 세계에 산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낙관주의는 이후 볼테르의 강력한 비판을 받는다. ‘이것이 최선의 세계라면 다른 세계는 도대체 어떻다는 말인가?’

2-7. 1713년 출간된 <<모나드론>>에서 그는 <<형이상학 논고>>에서 암시했던 체계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 모든 복합적인 것은 단순한 것들로 구성되며, 모든 단순한 것은 연장성을 지니지 않는다. 단순한 것이 연장성을 지닌다면 또 다시 분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하고 비물질적인 어떤 요소를 라이프니츠는 모나드라고 부르는데, 영혼과 유사한 정신적인 속성만을 지니는 무한히 많은 실체라고 생각했다. 라이프니츠는 ‘모나드에게는 창문이 없으므로 그 무엇도 드나들 수 없다’고 말하며 다른 피조물로부터 인과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한다. 또한 신이 미리 모나드가 세계의 변화와 동시에 변화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2-8. 라이프니츠는 1716년 세상을 떠났는데 엄청난 분량의 미출판 원고와 수많은 미완의 계획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계획들은 남겨진 모든 저술을 포함한 전집을 출판하려는 사업과 함께 300여년이 지나도록 완성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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