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동시에 세속적인 회의주의

1-1 칼뱅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다양한 이유로 이교도 처형이 이루어졌다. 1553년, 폐에서 이루어지는 혈액순환을 발견한 의사 세르베투스가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제네바에서 화형당했다. 당시 바젤 대학 교수였던 고전학자 카스텔요는 그의 처형 소식을 듣고 <이교도들은 처형되어야 하는가>라는 원전을 인용하고 그리스도의 예에 호소하는 내용의 책을 썼다. 이후 쓴 저술 <회의의 기술>에서도 카스텔요는 종교적 주제와 관련해서는 어느 누구도 충분히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교도로 몰아 죽이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을 인식론적인 논변으로 주장을 펼쳤다. 당시에 이런 주장을 했던 이는 오직 카스텔요 뿐이었지만, 이후 관용을 지지한 사람들은 그를 선구자로 기리게 되었다.

1-2 카스텔요가 종교에 관하여 지나치게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여겼던 동시대인들은 점차 종교와 무관한 영역에서는 회의주의가 상당히 매력적인 이론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잊혀졌던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자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저술이 16세기 중반 재발견되면서 이 분위기는 크게 강화되었고, 섹스투스의 회의주의 논변들은 프랑스 귀족 출신인 몽테뉴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그가 프랑스어 산문으로 서술한 <레몽 세봉을 위한 변명>은 근대적 회의주의를 드러낸 고전이 되었다.

1-3 이 책은 인간이 자신을 피조물들 중 최고의 존재라고 여기는 성향이 강함을 보여주며, 과연 인간이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한가를 회의한다.

1-4 몽테뉴는 여러 종류의 다른 동물들이 인간보다 훨씬 예민한 감각을 지녀 뛰어난 직관력을 지녔다고 주장하며 충직하고 용기있는 개나 은혜를 갚는 사자의 이야기 등과 인간의 잔인무도함이나 배반을 대조시킨다.

1-5 이외에도 참치가 기하와 산술에서 인간 못지않게 뛰어나며 천문학에서는 오히려 인간을 능가한다고 확신한다. 참치는 완벽한 정육면체를 형성하는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헤엄치며, 동지가 되면 마치 죽은 듯이 이동을 멈추고 한곳에 계속 머물다가 춘분이 되면 다시 이동을 시작함을 보여준다.

1-6 다양한 예시와 함께 몽테뉴는 동물들이 이런 일들을 능숙하게 수행한다는 사실은 그들의 머리 안에서 인간과 같은 사고 작용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증명해 준다고 굳게 믿는다.

1-7 인간 고유의 산물이라고 특히 자랑하는 두 영역은 종교와 철학이다. 몽테뉴는 오직 인간만이 종교적 숭배의 능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개미의 장례의식이나 코끼리의 태양 숭배의식을 예로 들었다. 인간이 종교적 믿음을 지니고 또 그런 활동을 한다고 해도 서로 모순되는 다양한 교리들이 난무하고 자주 종교적 실천의 본성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비난했다. 또한 철학과 관련해서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비판을 버텨 낸 철학 체계를 제시한 철학자는 아무도 없었음을 제시한다. 다음은 그가 활용한 키케로의 격언이다. “무언가가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아직 이런저런 철학자들 중 아무도 그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1-8 몽테뉴가 인간의 본성을 낮게 평가한 것은 미란돌라가 1486년에 펴낸 저술 <인간의 존엄성에 관하여>에서 인류를 미화한 것에 대한 반박이다. 고대 고전의 재발견과 르네상스 시대 시각 예술의 결과로 등장한 낙관주의 이후 종교 전쟁으로 인한 반종교 개혁의 분위기가 강했던 프랑스에서는 비관주의에 길을 내줄 수 밖에 없었다.

1-9 자신의 회의주의와 자신이 선택한 종교적 정통설을 조화시키기 위해 몽테뉴는 지금까지 자신이 공격한 바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진리에 도달한 체 하는 인간의 지성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신앙이 지성이 도달할 수 있는 일종의 성취가 아니라 신의 자유로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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