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1-1. 16세기 후반, 철학자 브루노(Giodano Bruno, 1548~1600)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나폴리에서 태어난 그는 도미니크 수도회에 들어갔는데(1565년), 이단설의 혐의를 받고 교단에서 추방된다(1576년). 그는 도피 생활 중 제네바에서 칼뱅주의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는 국왕 앙리 3세가 눈여겨봤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고 툴루즈와 파리에서 연구와 강의를 했다.  브루노의 첫 주요 저술은 「관념의 그림자에 관하여(On the Shadows of Ideas)」로, 신플라톤주의 형이상학 체계를 기억법에 관한 실용적인 충고와 결합시킨다. 그는 인간의 관념이 가장 낮은 단계이며 신의 정신 안에서 통일성을 형성하는 신성한 관념이 가장 높은 단계라고, 즉 관념들 사이에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신성한 관념은 그 자체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자연은 곧 신이 만든 보편적인 결과)을 통해서 표현된다. 지상 세계의 모습보다는 천상 세계의 모습이 신과 가깝다. 브루노는 우리가 천상 세계를 떠올리게끔 우리의 지식을 조직화하기를 원한다면, 황도를 이루는 열두 개의 별자리에 따라 정신적인 사고를 배열해야 한다고 보았다.

1-2. 1583년에 브루노는 잉글랜드로 넘어와 옥스퍼드에서 몇 개의 강의를 맡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그는 폭넓은 철학적 관심과 언변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옥스퍼드의 현학자를 경멸하는 내용을 담은 대화편들을 썼는데, 그 첫 작품 「재의 수요일 성찬」이 1584년에 출판되었다. 사람들이 브루노가 런던과 프랑스, 잉글랜드를 위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이중간첩 활동을 하면서 이 대화편들을 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브루노의 대화편은 읽기가 힘들다. 그의 글은 바그너의 작품에 등장하는 신들이나 톨킨이 만든 전능한 힘을 가진 등장인물과 같은 존재들이 난무한다. 브루노는 그 당시 유행했던 헤르메스 교단의 교리를 반영하기도 했다. 브루노는 헤르메스 교단이 언젠가 기독교의 자리를 빼앗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브루노의 여러 대화편에서 제시된 체계에 따르면, 우리가 관찰하는 현상은 자연에 생명을 불어넣어 그 자연을 하나의 생명체로 만드는 세계영혼이 낳은 결과이다. 자연계는 무한성을 가지고 있어 어떤 경계, 표면, 한계가 없다. 하지만 이 세계의 무한성은 신의 무한성과 다르다. 왜냐하면 세계는 무한하지 않은 부분들로 구성되는 반면, 신은 전체 세계에서도 완전히 내재하고 그 각각의 부분들에도 완전히 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브루노의 견해를 범신론과 구별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의 견해는 신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브루노는 신은 자연을 만드는 자연(natura naturans)이고 우주는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자연(natura naturata)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주장으로는 그 관계를 제대로 해명되지 않는다.

1-3. 역사가와 과학자들은 브루노의 체계에서 드러나는 두 가지 특징에 주목했다. 첫 째, 브루노가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을 채택했다는 점이고, 둘 째, 그가 다수의 우주를 요청한다는 점이다. 브루노는 지구가 태양을 둘레를 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는데,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을 더 극적인 방식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지구나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우리가 보는 태양은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일 뿐, 무한한 우주 공간에는 수없이 많은 태양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모든 별들의 위치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태양도 다른 별도 우주의 중심일 수 없다. 우리의 지구와 태양계는 어떤 고유한 특권을 누리지 못한다. 우주 안에는 우리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태양계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데, 현재 상황은 유일한 무한한 존재가 잠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며, 이 존재의 영혼이 세계영혼이다. 우주 안에 각각의 지적인 존재는 의식적이고 불멸하는 원자로, 그 자체로 창조 과정 전체를 반영한다. 신과 자연을 동일시한 브루노의 생각은 스피노자를 예견하게 하고, 이성적 원자에 관한 그의 설명은 라이프니츠를 예견하게 한다.

1-4. 헤르메스 교단을 지지한 브루노의 태도와 여러 우주가 존재한다는 그의 이론은, 신이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의 육체로 태어났고 명확한 신의 계시라는 정통 교리를 가진 기독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브루노는 잉글랜드를 떠난 후 잠시 비텐베르크에서 루터교신자로 인정받았고, 1591년에 취리히에서 강의도 했다. 1592년 그는 베네치아 총독의 초대로 그곳에 가 바로 종교 재판소 감옥에 갇혔다. 그 다음 해 로마의 종교 재판소 감옥으로 옮겨진 후 약 7년에 걸친 길고 지루한 재판을 거쳐 1600년 이단의 죄로 로마의 꽃의 광장(Campo dei Fiori)에서 화형을 당한다. 지금 그곳에는 그의 동상이 서있다고 한다. 브루노가 자신의 저술에서 표현한 사상은 기독교의 정통성에 어긋난다. 그의 재판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가 일관되게 자신의 사상을 옹호했고, 이 때문에 이단 심문관이 브루노를 이단자라고 판결하는데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다수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이 오늘날 우주과학자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유행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브루노를 과학의 순교자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브루노의 사상은 관찰과 실험을 통한 것이 아닌, 신비주의 전통 및 경험과 무관한 철학적 사변에 기초하였다. 그리고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이단의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마법을 행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이단의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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