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신앙부터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나라까지

 철학과 신앙 : 아우구스티누스에서 마이모니데스까지

1-1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는 서양 사상사에서 하나의 새로운 기원이다. 그는 생애 초반에 다양한 철학적 전통들을 몇 가지 경로를 통하여 받아들였다.  그중 특히 플라톤적인 전통을,  아카데메이아학파의 회의적 관점에서든 아니면 신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적 관점에서든 간에, 받아들였다. 이는 유대교와 그리스  그리고  기독교 사상을 종합한 것인데 서양의 철학적 사고라는 관점에서 다음  천년을 위한 준비였다.

1-2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 중 황금기는 그가 기독교도로 세례를 받은 387년 부활절 직전과 직후다.   많은  저술중 ≪아카데메이아학파에 반대하여≫(Contra Academicos)가 유명한 데 이를 통해 그는 회의주의에서 참인 바와 거짓인 바를 구별하려 한다.

1-3-1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글을 썼는데 이를 ‘독백’이라 한다. 여기서 그는 이성은 태양이 우리 눈에 분명히 보이듯이 신이 그의 마음에 분명히 드러나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를 위하여 영혼의 눈은 유한한 것들에 대한 모든 욕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화 중에 아우구스티누스는 부와 명예, 성적인 쾌락의 추구를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이성은 신을 드러내보이겠다는 약속을아직 지키지 않았지만 그 대신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영혼의 불멸에 대한 증명을 제시한다. 진리의 개념을 생각해보라. 참인 것들도 사라져 버릴 수 있지만 진리 자체는 영원하다.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세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참이다. 그런데 진리의 안식처는 영혼이므로 진리와 마찬가지로 영혼도 불멸해야 한다.  (S 1. 15 . 28 . 2. 15 .28)

1-3-2   397년 그는 ≪고백론≫ (Confessions) 라는 제목의 저술을 썼는데 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개종에 이르는 과정을 마치 기도를 하면서 신과 대화하듯이 서술한 책이다. 이는 일반적인 종류의 자서전은 아니지만 자서전이라는 형식의 기초를 제공한 대표적 저술로 평가된다. 이는 또한 개종 이전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 관하여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수많은 철학적 성찰을 포함하며 특히 시간의 본성이라는 독립적인 주제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더불어 마무리 된다.

역사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

2-1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 중 그가 가장 공을 들인 작품은 ≪신국론≫(The City of God)이다.  이 저술을 그리스 고전 사상과 기독교 사상 사이의 종합을 최초로 드러낸다. ≪신국론≫은 십자가에 못 박힌 유대인들의 왕 예수를 이교도의 철학이 이상화한 도시국가의 정상에 놓으려 한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그랬듯 아우구스티누스도 지금 자신이 제시하려는 진리를 철학자들이 오래전부터 다뤘지만 이에 제대로 이르지 못한 것을 보이기 위해 탈레스 시대부터 당시의 철학사를 요약한다.  또한 ≪신국론≫ 전반에 걸쳐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핵심적인 주장과 함께 나란히 제시하는데 특히 그가 가장 좋아하였으며 거의 기독교도로 여기기까지 했던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자주 언급된다. (DCD Ⅷ. 8~9)

 2-2=1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이나 키케로와 마찬가지로 로마인들이 오랫동안 숭배한 신화와 신들을 불경스러운 것이라 비난한다. 그는 이런 사소한 신들을 숭배하는 것이 많은 철학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제국의 위대함이 어떤 참된 유일신이 시민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자들이 지닌 덕에 대한 보상으로 부여된 것이라 본 것이다.

2-2-2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가 이교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을 허구로만 본 것은 아니다. 그는 이러한 신들이 참된 신에게 향해야 할 마땅한 숭배를 가로채는 사악한 악령이라 보았다. ( DCD Ⅷ. 14, ⅸ,8,Ⅹ.9).또한 정령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는데 그는 정령들을 타락한 천사와 동일시 했다. 정령들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고 천상이라는 감옥에 내던졌다고 본 것이다.

2-2-3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서에는 최초 천사들의 창조에 관한 내용이 그리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천사가 진정 신의 피조물이란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천사들이 서로 대조되고 상방되는 두 사회를 형성했다고 보았다. 그는 이를 “빛”과 “어둠”이라는 개념으로 선과 악을 표현했다.

2-2-4 천사들이 구성한 두 사회가 ≪신국론≫ 전체의 외형적인 주제인 두 국가의 기원에 해당한다. 그는 선한 천사가 있듯 악한 천사가 있고 사람 역시 이와 같다고 보았다. 또한 천사와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결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2-5 그는 또한 인간을 천사와 말 못하는 동물 그 중간쯤으로 보았다. 창조를 설명할 때도 플라톤의≪티마이오스≫ 에선 최고의 존재가 아닌 그 하위의 신이 대리인의 역할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과는 달리, 그는 하위의 신은 존재하지만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을 오직 유일신만의 특권이라고 규정하였다. (DCD ⅩⅢ. 6). 인간의 창조에 대해 플라톤과 성서가 가장 대비되는 부분은 “혼과 육체의 분리인 죽음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대한 물음에서 극명하게 갈리기도 한다.

2-3 아우구스티누스는 육체적 욕구와 정념이 영혼의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는 오직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육체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낙원에서 인간의 육체는 감정이나 욕구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나라

3-1  그는 인류의 역사를 두 나라 이야기에 맞추어 추적한다. 많은 위대한 국가들 중 인간 사회를 오직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성서의 표현에 따하 이를 두 나라로 부를 수 있다 한다. (DCD ⅩⅣ.1). 그는 전자는 육체에 살고 자기애에 의해 창조 됐고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며 사탄과 함세해 멸망하도록 운명 지워졌다고 보았다. 후자의 경우엔 신의 사랑으로 창조되고 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며, 영원한 신이 다스리도록 결정되어 있다고 했다. (DCD ⅩⅤ. 1과 4). 또한 이러한 두 나라의 분리는 아담과 이브의 자식들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했다. 첫째아들 카인이 인간의 나라이고 그의 동생인 아벨이 신의 나라에 속했다는 것이다 (DCD. ⅩⅤ.2). 또한  예루살렘은 신의 나라를 상징하고 바빌로니아는 지상의 나라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3-1-2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 ≫ 15권 .16권에서 신의 나라가 전개된 초기 역사를 추적한다. 17권에서는 선지자와 시편 작가들을 인용해 신의 나라를 설명하려 한다. 18권에서는 다시 세속의 역사로 돌아와 아시리아 , 이집트 등 여러 이교도 제국의 흥망을 다룬다.  여기서 철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장 중요한 논쟁 부분은 궁극적인 선과 악에 대한 것이다. 철학자들은 현세에서 궁극적 선을 발견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의 나라는 영원한 삶이 최고선이고 영원한 죽음을 최고의 악으로 보았다. 오직 신앙과 은총을 통해서 이러한 최고 선에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안다고 주장했다. (DCD ⅩⅠⅩ. 1~4).

3-2-1 아우구스티누스는 여러 예언자와 그리스도교의 설교 그리고 사도들 및 계시록 내용을 종합해 세계의 미래에 대한 내용을 우리에게 전한다. 그는 부활과 역사의 종말 사이엔 천 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는 계시록의 내용과 같은 것이다. 또한 천년이 흐른 후 벌어질 마지막 일들을 언급하기도 한다. 천상의 예루살렘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아래 있는 지옥은 이러한 두 나라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3-2-2  주목할 점은 사악한 자들이 육체적 처벌을 받기 보다는 그들의 육체가 완전히 불 타 없어져 버려 금새 죽어버릴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그의 반박이다. 그는 영혼이 불멸한다는 사례를 들어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영원히 사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DCD ⅩⅩⅠ. 3~7). 또한 그는 영원한 처벌이 가능하며 정당할 뿐 아니라 이를 피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는 것을 각각의 단계를 밟아가며 설명한다. 이에 더불어 참된 신앙이 없는 이교들의 덕은 화려한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기도 했다. 

3-3 마침내 그의 ≪신국론≫ 22권에 이르러 예루살렘의 영원한 축복을 받은 성자들의 내용을 살펴볼 수있다.  그는 기독교도라면 인간의 육체가 천상에서 존재할 가능성을 부정하면 안된다고 보았다. 이로 인해 축복받은 자들의 약속된 영원한 삶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는 이러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믿을 만한 것으로 보이기 위해 신의 전능함으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육체의 부활이라는 개념 전반에 관해 철학적 비판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해 반드시 답할 필요를 느끼기도 했다.

3-4 ≪신국론≫의 거의 모든 내용은 성서에 의존하지만 철학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적 전통과는 별개로 자신의 종교관을 세우려 노력했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고, 훗 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를 넘어서까지도 철학적 논의의 체계를 제공한 성서적이며 고전적인 요소를 처음 생각해 낸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는 철학사를 통틀어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였다. 그의 글은 뛰어났으며 중세의 다른 철학자와는 달리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구체적으로 묘사했고 일화와 풍자나 역설등 또한 자세히 드는 정성을 들였다. 또한 철학적 문제들을 끝까지 추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학적 표현을 지나치게 사용했다는 점과 만년에 이르러 진정한 논리 분석과 언어상의 기교 사이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에게 수사학과 논리학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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