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철학에서부터 이슬람과 유대 철학자들

 

1. 카롤링거 왕조 시대의 철학

1-1.  시대적 상황

로마제국의 외부적 상황에 큰 변화가 있었다. 마호메트가 633년 세상을 떠난 뒤로 10년도 체 되지 않은 시기에 이슬람교가 정복전쟁을 통해 종교를 많은 지역(페르시아 제국,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에 널리 전파하였다. 708~711년 북아프리카 맹주가 되었으며 스페인으로 교세를 확장시켰다. 이후 북유럽으로 진출하였는데 이러한 확장은 732년 프랑크족과의 전투에서 패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768년 샤를마뉴가 왕위에 오른 후 이슬람교도들을 피레네 산맥 밖으로 내몰았지만 조금의 영토가 줄어든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동쪽 지방의 점령을 통해 이탈리아에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세웠다. 샤를마뉴는 반란으로 쫓겨난 교황레오3세를 보호하고 다시 복위 시켰으며 800년 로마제국의 왕관을 받으면서 신성로마제국의 수립을 성립하였다. 814년 샤를마뉴가 세상을 떠난 이후 거의 모든 서유럽대륙의 기독교인이 이 제국 안에서 살게 되었다. 샤를마뉴는 표준적인 교육과 문화를 확립하려 노력하였다. 이것을 위해 왕립학교를 세우려 하였고 많은 학자들을 초빙하였는데 이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은 앨퀸이다. 앨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관심이 있었으며 논리학의 교과서로 <<변증학>>을 저술하였고 소수의 특권층에게 천문학을 선보였다. 이러한 9~11세기에 철학이 부활하였을 때 주 무대로는 샤를마뉴를 계승한 프랑크왕국과 이슬람교도들의 아바스 왕조가 있었다. 각 무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로는 서방의 요하네스 스코투스와 동방의 이븐 시나가 있다.

1-2.  인물: 요하네스 스코투스

아일랜드 출생으로 9세기에 활동하였다. 그는 종종 14세기의 둔스 스코투스와 혼동되는데 두 명의 영어 표기가 동일한 점 때문과 두 사람 모두 스코틀랜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혼동의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요하네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에리우게나라는 성을 사용하였다. 에리우게나는 샤를 궁전으로 갔는데 이는 샤를이 그리스와 관련된 것을 좋아하여 그리스어에 능통한 에리우게나를 총애하였다. 그는 궁정에서 자유의 7과목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이후 철학에 관심을 점차 가지었다. 그는 힝크마르 대주교의 초청으로 철학에 직접관여하게 되었다. 힝크마르가 그를 초청한 이유는 고트샬크의 이중 예정설(성자뿐만 아니라 죄인도 운명이 정해져있다)에 대한 반박을 하기 위해서이다. 에리우게나의 이중 예정설 반박은 매우 빈약했으며 기존의 예정설에 대한 것까지 무너뜨리는 듯 보였다. 그 반박내용으로는 신의 단일성과 나누어지지 않음으로 이중예정설의 성립 불가를 주장하며 나아가 신의 영원성으로 미리 정해진 운명이 없음을 주장하였다. 이것이 빈약한 이유는 이중예정설이 신의 단일성을 위협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고 반박의 논거가 죄인의 회개할만한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신의 작용에 시간상의 제약을 준다 해도 그 작용은 우리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후 에리우게나는 공의회에서 파문당하였고 공의회는 기존의 예정설을 확고히 하였다. 그가 파문을 당한 후에도 샤를은 여전히 에리우게나를 총애하여 위 디오니시오스의 세 저술의 번역을 맡겼다. 그는 이것들을 번역하면서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이 자신과 잘 맞음을 깨닫고 이와 유사한 체계로 자신의 사상을 구성하였는데 그 내용을 <<자연에 관하여>> 라는 5권의 저술에 담아 보였다.

1-3.  사상과 평가: 에리우게나의 사상과 평가

에리우게나는 자연을 4가지로 나누었다. 그 4가지는 1.창조하며 창조되지 않는 자연, 2.창조되며 창조하는 자연, 3.창조되며 창조하지 않는 자연, 4.창조하지 않으며 창조되지 않는 자연이다. 1번은 신이며 2번은 플라톤의 이데아로 이루어진 지적세계 3번은 2번에서 파생된 물질적 대상의 세계이고 4번은 최종목적으로서 만물의 돌아가는 것으로써의 신이다. 이러한 자연의 4가지 구분에서 중요한 것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구분이다, 그는 이에 따라 신을 존재하지 않는 것에 속한다고 하였는데 이 뜻은 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10가지 존재의 범주 안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뜻한다. 신은 존재를 초월하며 현존을 넘어서고 언어적 표현불가와 파악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무이다. 그의 분류에서 가장 파악하기 쉬운 것은 3번 세계로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가 동일한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그는 우주가 세 개의 천구로 이루어짐을 주장하였는데 지구 해와 이외의 행성 달과 별이 그 구성요소이다. 에리우게나는 지구 중심설을 설파 했지만 지구외의 다른 행성들이 태양을 회전한다고 믿으며 태양중심설에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의 자연의 분류중 인간은 2,3번의 세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동물로서 3번째 세계에 속하지만 이성, 정신과 같은 것을 가짐으로서 동물을 능가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두 번 창조되었다고 보아야한다. 이 말은 두 영혼을 지님을 뜻하는 것이 아닌데 인간은 오직 각각의 것으로 분리되지 않은 영혼 하나를 지니며 영혼이 신의 대리인으로 작용하여 육체를 창조한다. 따라서 영혼은 2번 세계에 속하며 이 분류의 것을 에리우게나는 사물의 근본원인으로 부르며 플라톤의 이데아와 동일시한다. 인간의 이데아는 신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질 때의 형상과 동일한데 이것은 인간의 타락으로 손상되었다.

1-3-1.  그에 대한 평가로는 독창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로 그리스 철학에서 유래한 사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체계를 세운 인물이다. 그는 역설을 즐겼으며 모순명제로부터 문장을 이끌어 내었다. 그는 이러한 모순명제의 사용으로 상호 조화적 해석방법을 제시하였지만 그 스스로가 자신의 말의 수렁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의 저술은 신 플라톤 주의적 내용 탓에 이교도철학으로 간주해 금서로 처분 받았다.

2. 이슬람과 유대 철학자들

2-1. 배경

이슬람 지역의 학자들은 그리스 학문의 대부분을 서방 라틴세계로 전해지는 우회로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비중이 크다. 이러한 이슬람 학자들에 배경으로는 4세기에 에데사 지역에 세워진 기독교학교에서 시작되었다. 489년 이학교가 폐쇄된 이후에도 페르시아로 이주하여 기존의 작업들을 지속하였다. 이후 이슬람교도들이 페르시아 지방을 정복한 후 여러 이슬람시대의 군주들이 이학교의 출신 학자들과 후계자들을 바그다드 궁정으로 초빙하였다. 이시기(750~900) 시리아 출신 학자들은 플라톤의 저술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대부분을 아랍어로 번역 하였고 다양한 의학 저서를 번역하여 이슬람 세계에서 통용하게 하였다, 인도의 수학과 천문학 저술 역시 번역되면서 아라비아 숫자가 들어왔다. 번역된 고대 그리스 철학은 이슬람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슬람교의 사변신학은 이미 기본적인 철학용어를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리스 철학이라는 외래적 사상에 배타적 태도를 보였다.

2-2. 인물: 알 킨디와 알 파라비, 가온 사아디아

알 킨디는 전통적으로 이슬람 철학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인물로 에리우게나와 동시대 사람으로 이슬람 사변신학과 외래 사상 사이의 중간에 위치하였다. 그는 제일철학에 관한 저서에서 세계의 시간적 유한성에 대하여 사변신학적 논증이 매우 형식적으로 전개된다. 그는 단일한 우주적 지성의 작용에 의해 우리의 지성이 작용하게 됨을 주장하였는데 여기서 우주적지성은 신플라톤주의의 삼위일체설 중 정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알 파라비가 이 생각을 계승 발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에 등장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는 문법과 논리를 명확히 구분한 후 논리를 철학을 위한 기초적 도구로 여기고 철학을 세분과로 나누었다. 세분과는 자연학 형이상학 윤리학으로 구성되며 신학을 철학과 별개 학문으로 생각하였고 심리학은 자연학의 일부로 파악하였다. 그러나 신학에 대해서는 최초 운동의 원인으로서 필연적 존재로 신이 현존함을 증명하는 철학적 논증을 사용할 수 있다. 그는 신비주의 교파의 일원으로 신으로부터의 회귀를 강조했다.

2-2-1. 알 파라비와 동시대 사람인 가온 사아디아는 중세 최초 유대인 철학자로 이집트에서 출생하여 바빌론에서 성서연구 학교의 수장이 되었다. 그는 성서를 아랍어로 번역하였고 유대교의 전례와 전통에 관한 여러 저술을 남겼다. 이런 작업과 동시에 그는 성서의 교리와 이성적 철학의 조화를 꾀하려 노력하면서 이 두 가지를 같은 줄기에서 나온 가지로 생각하였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적 원천과 이슬람의 사변신학적 자료에 의존하였으며 <<교리와 신앙에 관하여>>라는 저술을 통해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인간이 얻을 수 있는 확실성을 이성 감각 전통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보았다. 이성은 이성적 직관과 이성적 추론의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이성적 추론을 통해 인간이 영혼소유와 우주의 원인 등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서로 예언자들에 의해 그 타당성이 입증되며 독립적 원천임에도 다른 원천에서의 지식을 염두하고 신중하며 사려 깊게 해석되어야 한다. 감각은 세계의 시작이나 현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에 이성으로 파악해야 하는데 그는 세계가 시간상의 어떠한 때에 창조됨에 대한 4가지 증명을 제시하였다. 1.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유한하기에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우주 역시 유한하며 계속 현존해온 것이라 볼 수 없다, 2. 우주의 구성요소는 복잡하지만 서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에 창조자가 존재한다. 3. 자연의 것들은 우연적이기에 필연적 실체가 필요하다. 4. 무한한 것은 파악하거나 추적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간은 유한하다. 이러한 증명들은 필로포노스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후세에까지 논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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