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학파의 인식론부터 피론의 회의주의까지

1.스토아 학파의 인식론

1-1.초기 스토아 학파는 지식의 본성에 관한 많은 가정들을 에피쿠로스학파와 공유하였다. 에피쿠로스학파와 마찬가지로 스토아학파도 지식의 기초를  두 가지, 오류에 빠질 수 없는 감각적 인상과 원초적, 후천적 개념들이라고 믿었다. 또한 스토아 학파는 개념의 근원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유사한 설명을 하는데 그에 따르면 한 사람이 태어날 때 그의 정신은 텅 빈 백지같지만 그가 이성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성장하고 발전하면서 개념이 이 백지 위에 쓰여진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최초의 개념은 감각들에서 유래하며 이 경험들이 기억에 남는다. 몇몇 개념들은 자연적으로 생기기도 하는데 이를 ‘프롤렙시스’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것이다.

1-2. 스토아학파는 에피쿠로스학파에 비해 인간의 정신적 상태에 대한 분류를 훨씬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그들은 회의주의에 맞설 수 있을만한 인식론을 제시했는데 플라톤이 대비했던 지식(episteme)과 의견(doxa)이라는 상태에 ‘인상(katalepsis)’을 도입한 것이다.  섹스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이 문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인상을 인식적 현상(phatasia kataleptike)과 관련해서 정의한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서로 연결된 세 가지가 있는데 지식과 의견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인상이 바로 그들이다. 지식은 건전하고 확고하며 논증에 의해서 변화될 수 없는 인식이다. 의견은 근거가 약하며 거짓인 동의이다. 이들 사이에 인상이 위치하는데 이는 인식적 현상에 대한 동의라 할 수 있다.”

1-3. 위와 같은 현상이란 폭넓은 용어로서 감각에 드러나는 바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의견을 갖도록 하는 근거까지 포함한다. 인상 또한 마찬가지로 감각에서 유래할 수도, 이성에서 유래할 수 도 있다. 인상은 지식과 의견 사이에 위치하는데 의견은 일종의 특별한 요소인 동의를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상은 의견과 달리 거짓일 수 없으며 또한 지식과 달리 결코 우리의 마음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 확고부동한 힘을 포함하지 않는다. 고로 인식적 현상이란 ‘존재하는 바로부터 생겨나며, 존재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하게 각인된 인상을 주는것’이다.

1-4. 스토아학파는 인식적 인상을 설득력을 기준으로 네 유형으로 분류한다.

(1)설득력이 있는 인상: ‘지금은 낮이다’,  ‘나는 말하는 중이다’

(2)설득력이 없는 인상: ‘만일 어둡다면 지금은 낮이다’

(3)설득력이 있는 동시에 없는 인상: 철학적 역설들

(4)설득력이 있지도 없지도 않는 인상: ‘모든 별들의 수는 홀수이다’

 그러나 설득력이 진리를 보장해주는 기준은 아니다. 현명한 사람은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합리거이기도 한 현상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이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인상적 인상 뿐만 아니라 합리적 인상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르케실라오스는 스토아학파의 인식적 인상인  ‘어떤 것이 존재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하게 각인된 무언가’라는 정의를 비판한다. 그는 과연 참인 인상과 구별될 수 없는 거짓 인상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제논은 만일 정확하게 일치하는 거짓인상이 존재하면 그런 인상은 인식적 인상알 수 없다고 동의한다. 그래서 그는 인식적 인상에 대한 위의 정의를 수정하여 ‘존재하지 않는 바로부터는 생겨날 수 없는 종류의 인상’이라는 점을 더한다.

2.아카데메이아의 회의주의

2-1.스토아학파의 인식론이 회의주의 진영으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유산을 이어받은 아카데메이아로부터 제기됬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예를 들면 아카데메이아 지도자중 아르케실라오스나 그 후계자 카르네아데스는 플라톤보다 위쪽인 소크라테스에 의지하면서, 그의 문답법이야말로 지식에서 거짓문장을 걸러 내는 탁월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소크라테스과 달리 훨씬 극단적인 회의주의를 주장함으로써 철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일상적 문제에 대해서도 판단을 중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2. 회의주의에는 여러단계들이 있다.  어떤 회의지주의자들은 그저 진정한 지식의 성립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이런 회의주의자는 다양한 주제들에 관한 의견을 지니는 것에 단, 의견의 소유자가 의견이 지식의 지위에 도달했다고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또한 그 자신도 지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포함한 일련의 의견을 얼마든지 지닐 수 있다. 이때 그 사실을 인식하였다고 주장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보다 더 극단적인 회의주의자들은 지식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의견의 적절성까지도 의문시한다. 이들은 확실성에 대하여 확고한 동의를 표하는 일뿐만  아니라 어떤 의견에 대하여 잠정적인 동의를 표하는 일도 삼가야한다고 권고할 듯하다.

2-3.이 극단적인 회의주의에  ‘회의주의자가 모든 판단을 유보한다면 어떻게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있겠는가’라고 흔히 제기되는 반박에 그들은 충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동의는 의지와 관련해 스스로 자제할 수 있지만 현상은 우리의 통제 밖에 놓여있으며 현상에는 반드시 충동이 뒤따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진리를 발견하고 거짓을 피하려는 정신적인 작용인 동의가 없어도 이런 충동에 따르는 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3.피론의 회의주의

3-1.기원전 1세기 무렵 철저한 회의주의를 내세우는 새로운 근본주의 학파가 성장하였는데 이 학파의 창시자는 아이네시데모스다.  이 학파의 창시자들은 엘리스 출신이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소속 군인인 피론을 진정한 창시자로 여겼다.

3-2.  기원후 2세기에 활동한 피론주의 회의주의자인 섹스토스는 그가 우리에게 전한 아케데메이아의 회의주의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느 회의주의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분명한 동의를 표시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일상적인 지각의 문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견해를 지닐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저술이 가치있는 까닭은 회의주의 논의에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한 게 아니라 초기에 등장한 더욱 독창적인 회의주의자들의 추론 방식에 관한 많은 귀중한 정보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3-3. 우리는 고대의 인식론을 연구함녀서 지식의 본성과 회의주의의 한계 등에 대하여 많은 것은 배울 수 있다. 특히 다음 몇 지의 통찰은 이후 모든 철학에 전해진 유산이 되었다. 먼저 오직 참인 것만이 지식이 될 수 있다. 지식은 오직 무언가에 의해, 경험이든 추론이든 혹은 다른 근거에 의에 암시적으로 또는 명시적으로 지지될 경우에만 지식일 수 있다. 그리고 지식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후에 자신의 지식이 뒤집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로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한다. 그러나 이 인식론은 두 가지 오류에 빠져있다. 두 오류 모두 무엇이든 간에 지식은 참이어야만 한다는 진리를 오해한 결과로 등장하였다.

3-3-1.첫 번째 오류

‘무엇이든 간에 지식은 참이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필연적으로 만일 p가 인식된다면 p는 참이다

(2)만일 p가 인식된다면 p는 필연적으로 참이다

여기서 (1)은 참이지만 (2)는 거짓이다. 이 오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까지 이어지는 고전적인 인식론에서 자주 발견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거듭해서 (2)를 (1)과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3-3-2.두 번째 오류

무엇이든 간에 참이어야만 한다면 지식은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 능력을 발휘한 결과여야만 하는 듯이 보인다. 이 오류는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제국 시대의 인식론에서 자주 발견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영원한 진리로서의 지식이 아니라 평범하고 우연적인 일도 지식으로 인정하려 한다. 그러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작용하는 능력을 우리가 지닐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 오류는 이 전 고전 시대의 오류를 거울에 비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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