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메이아의 회의주의 ~ 유대교와 기독교

1.아카데메이아의 회의주의

1-1 아카데메이아의 노선 : 기원전 3세기 경, 아카데메이아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받아 회의주의를 채택한다. 철학에서의 회의주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피론은 아무것도 인식될 수 없다고 가르친 바 있으며, 그의 자제인 아르케실라오스는 한 때 아카데메이아의 수장이 되었다. 또한 티몬은 과학의 기초로 활용할 수 있는 자명한 원리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1-2 스토아철학에 대한 비판 : 스토아철학은 아카데메이아의 주 공격대상이었다. 아르케실라오스는 그들이 존재할 수 없는 정신적 인상을 근거로 진리를 추구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비판하였다. 그의 뒤를 이어 수장이 된 카르네아데스 또한 진리가 아닌 개연성이 우리의 삶을 인도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판은 키케로에게 이어져 더욱 세련된 형태로 발전한다.

2. 루크레티우스

2-1 주도권 : 기원전 1세기 이후, 철학의 주도권은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간다. 로마의 라틴철학 역시 운문형태의 저술에서 산문형태의 것으로 변화되었으며, 당시 전체가 완벽히 라틴어로 서술된 최초의 철학적 저술은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철학시 이다.

2-2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이 시는 종교가 주는 두려움을 떨쳐낸 에피쿠로스를 칭찬하면서 시작된다. 1권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설명하고, 2권에서는 소박한 쾌락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칭송한다. 3권은 영혼과 감각의 기능에 대한 에피쿠로스적 이론을 설명한다. 우리 영혼의 본성이 물질적이라는 사실을 알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4권은 원자론에 기초한 생리학적 설명 및 성행위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다.

3. 키케로

3-1 생애 : 키케로의 저술의 특징은 당시의 철학적 흐름을 잘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젊었을 때의 그는 스토아철학, 아카데메이아 등등 다양한 철학학파들을 접했으며, 그 후에는 정치가로서 오랫동안 몸을 담았다. 그 영향으로 주로 정치철학을 연구하였으며, 특히 카이사르의 독재기간 및 딸이 죽었던 시기에 철학과 관련된 저술 대부분을 남겼다. 《위안에 관하여》와 《호르텐시우스》가 이 시기의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3-2 키케로의 철학 : 키케로는 로마인들이 ‘모국어’로 철학을 할 수 있도록 라틴어로 구성된 철학 용어들을 만들어 내었다. 인식론에서의 그는 아카데메이아의 수장인 필론의 영향을 받아 온건한 회의주의를 선호하였고, 윤리학에서는 에피쿠로스가 아닌 스토아학파를 따랐다. 그는 위안과 마음의 평안을 위한 도덕철학을 추구하였으며, 감정과 덕, 행복 사이의 관계 및 철학적 신론과 결정론에 관한 논의들을 다루었다.

3-3 말년 : 카이사르가 죽은 뒤, 다시 복직하여 정치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죽고 만다. 그는 그리 깊이있는 철학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논증은 날카로웠고 문체 또한 우아하여 항상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4.유대교와 기독교

4-1 예수의 등장 : 나자렛 출신인 예수의 등장은 철학의 발전과정 중에서도 중요한 사건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도덕철학은 이전의 철학에서도 볼 수 있었던 만큼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도덕철학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4-2 가르침 : 예수의 가르침은 《구약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유일신 야훼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삼는다. 또한 신의 심판이 임박하여 자신이 곧 구세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4-3 필론 : 예수가 죽은 이후로도 그의 유대사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필론은 기원후 1세기의 유대 문화를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유대인을 박해하고 황제숭배를 강요한 일에 대해 항의하였으며, 모세의 삶에 대한 저술의 주석서를 쓰기도 하였다.

4-4 바울로 : 기독교는 주로 그리스어를 할 줄 아는 유대인 학자들을 통해 로마 제국에 전파되었다. 그 과정에서 바울로는 에피쿠로스와 스토아학파와 논쟁을 벌인 바 있다. 그는 기독교가 알 수 없는 신을 위한 제단을 차렸다는 비난에 대항하여 철학자들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신을 숭배한다고 되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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