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유산부터 스토아학파까지

1.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유산

    1.  기원전 323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하자 민주적이었던 아테네인들은 알렉산드로스 제국에 반대했던 인물들까지 달갑지 않게 여겼다. 이러한 위험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칼키스(Charcis)로 피신하였다가 그곳에서 바로 그 다음 해 사망하였다.
    2.  콜리지(S.T.Coleridge)가  ‘모든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 아니면 플라톤주의자로 태어난다’라고  말할 정도로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아케데메이아와 리케이온을 상반되는 철학의 두축으로 여기는 태도가 일종의 전통이 되었다.
    3. 플라톤은 이상주의자이며,  유토피아를 꿈꾸고,  내세를 중시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적이며, 공리주의자이고, 상식을 중시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특히 플라톤은 그가 제시한 대답이 얼마나 옳은가보다 던진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해본다면 비교할 대상이 없는 최고의 탁월한 인물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세계의 지적인 유산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점엥서 위대한 철학자이다. 기여한 바를 세분하면 다음과 같다.
      • 자연 현상을 세부적으로 관찰한 최초의 인물임
      • 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관찰과 이론사이의 관계를 건전하게 파악한 최초의 철학자
      • 학문의 여러 분과를 확인, 분류하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함
      • 강의를 연속도니 강좌 형태로 구성한 최초의 교육자
      • 그가 설립한 리케이온은 수많은 학자들과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탐구한 최초의 연구기관임
      • 연구를 위해 도서관을 설립한 역사상 최초의 인물

2.아리스토텔레스 학파

    1.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리케이온을 물려받은 테오프라스토스(기원전 372~287)는 재능을 발휘하여 스승의 연구를 이어받았다. 그는 많은 저술 활동을 했는데 대표작으로는  «성격»으로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상세하고 생생하게 개인의 성격을 묘사했다.
    2. 테오프라스토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팔레론(Pharleron) 출신의 디미트리오스(Demetrius)는 알렉산드로스 휘하의 장군인 프톨레마이오스(Ptolemy)의 조언자였다.
    3. 그가 죽은 후 아리스토텔레스의 장서들은 스켑시스 출신의 넬레우스(Neleus of Skepsis)에게 넘겨진 듯하다. 장서들은 그 뒤에 행방이 모호하다가 기원전 1세기 중반쯤 로마에게 로도스 출신의 안드로니쿠스(Andronicus of Rhodes)에 의해서 편집,출판되었다.
    4. 하지만 당시 아테네를 지배했던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학파의 창시자들이었다. 한 사람은 정원(The Garden)이라고 알려진 학파를 세운 에피쿠로스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스토아 학파로 불린 키티움 출신의 제논(Zeno of Citium)이었다.

3.에피쿠로스

  1. 에피쿠로스는 사모스 섬으로 추방된 아테네 출신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원전 306년 아테네에 자신의 집을 지었으며 271년 사망할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정원으로 불린 이 집에서 그는 소박한 음식을 먹으며 은둔생활을 하였다.
  2. 에피쿠로스 철학의 목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인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거함으로써 가능한 한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꾸며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에서 얻은 설명이다.
  3.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과 끝이다. 하지만 그가 향락주의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추구하는 쾌락은 개인적인 우정이 주는 것과 같은 조용한 쾌락이다. 음식,술,성행위에 대한 쾌락은 열등한 수준의 쾌락일 뿐이다.

4.스토아학파

  1.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스토아학파도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였지만 그 방법은 달랐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은 크세노폰이 쓴 소크라테스 회상기를 읽고 철학을 공부하려는 열정을 지니게 되었다.제논의 유명한 저술은  «국가»(Republic)이었다. 이는 플라톤의 유토피아주의와 견유학파의 몇가지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다.
  2. 제논이 세상을 떠난후 클레안테스(Cleanthes,331~232)이 제논이 세운 학파의 수장자리에 올랐다. 그는 종교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제우스에게 바치는 송가’를 쓰기도 했다.
  3. 클레안테스 뒤를 이은 인물은 크리시포스(Chrysippus of Soli)였는데 스승을 그리 존경한 것 같진 않지만 스토아사상을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다,
  4. 스토아학파 철학자들은 신을 능동적인 원리이며 신이 설계한 체계를 자연이라 보았다. 그러므로 스토아학파의 삶의 목표는 바로 이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자유롭고 책임을 져야하는 존재이다. 만일 의지가 이성에 복종한다면 우리는 자연에 따라 살게 된다.  이렇게 자연의 법칙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일이 덕이며 이 덕은 행복에 이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5. 그들은 모두 사회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조직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자신의 목표와 자연사이에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선한 사람은 사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하며 사회적 덕목을 함양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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