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근세란?

근세의 개념

우리는 일반적으로 근세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서양사의 한 시기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편의상 본 글에서는 ‘근 세’ 를 헤겔의 죽음까지로 한정하고, 이후 19세기와 20세기는 ‘현대 철학’ 이라고 따로 분리하여 다루기로 하겠다.

근세의 정신

중세의 사상과 근세 철학을 구분할 만한 특징을 살펴볼 경우, 근세(Neuzeit)라는 독일어의 의미가 ‘새 시대’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기 쉽다.

특별히 우리는 근세의 철학에는 중세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문제를 다룰 것이고 이것이 근세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 대의 많은 문제들은 이미 후기스콜라학파, 옥캄과 유명론자들, 엑크하르트와 쿠 사누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둔스 스코투스 같은 사람과 아벨라르두스 등 여러 사람들이 이미 중세에서 논의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중세철학의 여러 중요한 문제들은 근세의 사고 안에 그냥 남아 있다. H. 하임쉬트의 연구에서처럼 서양의 커다란 주제들은 서양의 정신사 전체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위대한 모든 시대를 넘어서서 한결같이 꿰뚫고 있는 철학적인 연속성을 이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근세의 철학은 단지 상대적으로 새로울 뿐이다.

또한 ‘근세철학은 그 목표와 나아가는 길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고 자율적 이라는 점에서 중세와 구별된다’ 는 견해 또한 적절한 주장이 아니다. 이 주장은

단지 근세인들이 의식적으로 자유와 독립을 추구하고 중세기 사람들보다 이런 것에 관해 더 많은 말들을 했다는 점을 주장할 뿐이다. 사실 중세인들도 자유 로웠으며, 이를 반대하기 위해서 중세에 실제로 있었던 여러 가지 구속들을 지 적한다면, 또한 근세에 있어서도 그랬다는 것을 지적해낼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데까르트에 대한 네델란드 정부의 조치, 스피노자의 암스테르담시의회의 태도, 정치적인 풍조에 대한 철학자들의 지나친 묵인 등등. 결론적으로 근세를 그 어 떤 개념들을 가지고 한 마디로 특징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가치개념들은, 이미 그것들이 시대적인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주관화될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세를 구별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근세의 사고의 분열을 지적하 는 태도일 것이다. 이런 분열은 근세철학의 정신에게만 고유한 특징처럼 보인다. 어느 시대에도 이런 분열은 없었다. 근세에 이르러 문화의식의 분열이 생기고 더 나아가 각각의 민족국가들이 형성되었으며 민족들이 분열하게 되었다. 따라서 유럽의 정신과 통일되어 있던 세계관도 분열을 하게 되었다. 이론적인 이성과 실천적인 이성, 앎과 믿음, 종교와 형이상학, 정치와 도덕들만 서로 떨어져 나가 독립했던 것이 아니라 문제, 방법, 이론 등도 너무나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래서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내다볼 수도 없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까 지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회의들은 언어의 혼란을 겪었고, 마침내 정신은 자포자기를 하고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인 것보다 높게 평가하면서 자 살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모순된 상황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가져다 줘 철학에서 등을 돌리고 일종의 절망적인 회의주의의 상황에 처하게 할 위험이 있다. 물론 이런 관찰은 피상적인 관찰이고 속단에 지나지 않는다. 의견이 너무 많아 생기는 이런 혼란은 철학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이고 극복되어야만 한다. 지나치게 빨리 단념하지 않고, 한층 더 깊게 철학을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이야 말로 서로 다르고 일방적인 이론들과 입장들이 어떻게 서로를 다시 고쳐주며, 부분적인 것들을 보충해주고 앞으로 이끌고 나가는 학설들의 총제적인 구조를 갖는 전체로서의 철학이 진리로 나아가는 왕도라는 것을 당장 깨닫게 될 것이다.

처음엔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잘못되었던 것도, 나중에 와서는 절대적인 진리 에로 나아가려는 의지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모든 철학자들이나 학파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철학 정신은 항상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을 활짝 열고 있었다. 이런 태도 때문에 철학은 비록 인간에게 가능한 한의 확실성이긴 하지만, 몇 가지의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매우 당연한 일이며, 이런 진리들을 모두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실존철학에 이르기까지의 근세철학의 최근의 발전상은 이런 입장과 앞뒤가 들어맞으며, 이런 입장이 근세철학의 내적인 본질을 알맞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발전은 제일 마지막 종착역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진리에로 나 아가려는 의지도 물론 가치 있는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진리 그 자체가 아니기 때 문이다. 우리는 단순한 의지만으로, 진리를 추구해나가는 도중에 있는 것만으로, 그리고 단순한 문제제기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근세철학을 앞으로 이끌어나 가는 일은, 깊은 지혜를 가지고서 몇 가지의 변치 않는 진리들이 참된 철학적인 사고의 진짜 열매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성공할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 근세의 사고를 해결할 수 없는 분열이라고 너무나도 가볍게 단죄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 리낌 없이 맞부딪혀서 보다 좋은 것을 보여주고, 보다 깊이 파고들고, 보다 더 멀리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 근세의 사고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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