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스트~소크라테스 자신의 철학

소피스트

  1. 소피스트들은 원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순회교사를 말한다. 이들은 또한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쳐 주면서 대가를 받았기에 최초의 직업적인 철학자로 불러도 무방하다. 기원전 5세기 중반에 주로 아테네에서 활동하였으며, 당시 아테네에서는 법정에서 변론을 펴거나 정치에 진출하는 젊은이들 많았기에 소피스트는 이들의 교육과 지도를 대가로 상당한 액수의 비용을 받았다.

프로타고라스

  1. 소피스트의 선두주자.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상대주의적인 인식론적 입장을 내세웠다. 이 밖에 그는 명사의 성 및 동사와 시제와 법을 처음으로 구별했을 뿐 아니라 애매한 문헌을 해석하고 상대방의 연설을 평가하면서 최초의 문학 비평가로도 활동했다. 그는 어떤 질문에도 논증을 펼칠 수 있는 준비를 항상 갖췄다. 유명한 예로는 그에게 교육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자자 에우알토스를 고소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논증에 대해서 단지 나쁜 논증을 좋게 보이게 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2. 히피아스 : 수학, 천문, 음악, 역사, 문학, 신화 등에 모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옷과 신발을 만드는 실용적인 기술까지도 겸비한 엘리스 출신의 소피스트
  3. 프로디코스 : 문법보다는 단어의 의미에 더 큰 관심을 지닌 최초의 사전 편찬가 이자 언어학자. 그가 무엇을 ‘원한다’라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두 그리스어 단어 boulesthai와 epithumein을 구별하는 것은 후에 큰 철학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고르기아스

  1. 그는 엠페도클레스의 제자로 설득력 있는 웅변가였을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수사학자로서 연설에서 사용되는 서로 다른 수사법을 분류했다. 그의 저술 중에는 지금까지 철학적 관심을 끄는 두 편의 짧은 글이 있다.
  2. 첫 번째 글에서 그는 트로이(troy)의 헬레네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에 따르면 어떠한 인간도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녀가 설득에 굴복 당했더라도 ‘말은 실재하거나 지각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존재’이자 ‘신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인간이 저항할 수 없’으며 ‘우리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일종의 정신적 질병’인 사랑에 빠졌다면 또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고르기아스의 언급은 자유, 결정론, 불가항력, 외부의 자극, 충동 등을 둘러싼 다양한 철학적 논의의 출발점을 이룬다.
  3. 그의 저술 《존재하지 않는 바에 관하여》에는 세 가지 회의적인 결론에 이르는 논증이 등장한다. 이 세 가지 결론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무엇인가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으며, 무엇인가를 인식하더라도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이다. 이러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한 논증들은 사실상 궤변에 가깝다
  4. 이외에 ‘힘이 곧 옮음‘이라 주장한 칼리클레스,’정의란 권력을 쥔 자들의 자기이익‘이라고 폭로한 트라시마코스, 상대방에게 당신의 아버지는 개라는 점을 증명해 보이려 했던 한 쌍의 궤변가 에우티데모스와 디오니시도로스가 있다.
  1. 소크라테스
    1. 그는 어떤 의미에서 철학 자체의 막을 연 인물로 제시된다. 철학 교과서에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와 이 후의 철학자로 나누어 분류한다. 수많은 철학 학파들이 그를 학파의 창시자라고 주장하였으며 현대에도 많은 철학자들이 독재 치하의 비이성적인 이데올로기에 반발하면서 그의 삶을 철학적 삶의 전형으로 여겨왔다. 그는 기원전 469년 아테네에서 태어나 민주주의가 가장 꽃 필 때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생애 중 후반기에서는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함에 따라 민주주의가 과두정치로 변모하였다. 이 과정 중 그는 불법적인 명령은 거부했지만 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일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주주의자와 귀족주의자들 모두의 미움을 받고 ‘신을 믿지 않고, 젊은이를 타락시킨다’는 명목으로 고소당해 독당근즙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2. 크세노폰이 묘사한 소크라테스: 크세노폰은 네 권으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 회상록과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향연》을 썼다. 그는 플라톤과 달리 소크라테스를 평범한 노동자와 같은 태도로 질문을 던지고 주장을 펴면서 상대방을 타이르는 인물로 그렸다. 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인물로 종교적인 의식에 충실히 따랐으며 신탁을 존중하였다. 또한 소크라테스를 예의바르고 온화하며 절제심이 높은 사람으로 표현했다. 크세노폰은 그가 대화 중 애매한 점을 해소하고 위선적 표현을 제거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논증이나 사변을 펼치려는 시도는 거의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이 유용하다면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어떤 계획의 결과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비록 아테네의 민주주의에 어떤 측면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사람들의 친구였으며 범죄나 국가 반역은 저지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크세노폰의 주된 관심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정에서 그의 무고함을 밝히고 존경할 만하다는 것에 집중되었다.
    3. 플라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
      1.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크세노폰과 달리 수준 높은 문학적 장치를 동원하여 깊이 있는 형이상학적 강의를 해나가는 인물로 표현한다. 그러나 논의를 하기에 앞서 어떤 대화가 소크라테스의 실제 모습인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대화가 일관성이 없으며 이 중에서는 플라톤의 주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은 대화편의 극적인 구성, 철학적 내용, 문체의 특성에 따라 초기, 중기, 후기로 분류되며 후기로 갈수록 플라톤 자신의 주장을 대변하는 내용이 많다.
      2.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며 낯선 신들을 도입하였다’는 비판이 서로 모순을 일으킨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생각이 아낙사고라스의 세속적인 물리적 우주관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한 때 우주론에 관심이 있었으나 델포이 신전에서 여사제가 전한 신탁으로 인해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여사제는 ‘소크라테스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라고 신탁했으며 소크라테스는 이 말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결국 그는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지혜가 무의미함을 깨달았다는 점에서 현명하며 따라서 신탁을 옳았다고 결론 내린다. 그가 진정한 지식을 추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분야는 바로 도덕의 영역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덕과 도덕적 지식은 동일한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선이 무엇인지 전정으로 아는 사람은 다른 행위를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모든 그릇된 행위는 무지의 결과라는 주장을 내리게 된다. 이에 비추어 그가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다.
      3.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은 자신의 철학적 임무를 끝없이 수행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묘사한다. 그는 정의를 추구했는데 왜냐하면 정의가 정의로운 사람에게 유익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어떤 덕목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 덕목이 어떤 특수한 속성을 보편적으로 지니는지 결정할 수 없으며 미묘한 경우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정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논증 중 주로 귀납법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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