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年代)에 관한 여러 학설들

  • 연대(年代)에 관한 여러 학설들

예거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발전에 관한 책을 쓰고 난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연구가 여러 학설을 토대로 발전하고 있다. 예거의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사상은 다음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청년기는 그의 스승인 플라톤과 가까우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플라톤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초기의 저작과 후기의 저작을 살펴봄으로써 알 수 있다. a)먼저 아리스토텔레스의 초기 저작들은 대화편들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화편에서는 아직 아카데미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다분히 플라톤적이라 할 수 있다. b) 과도기 시절의 저작들도 아직은 플라톤의 사상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저작들은 원래적인 자연학(「자연학」 1ㆍ2ㆍ3권, 「천계론」, 「발생과 소멸」), 원래적인 형이상학(「형이상학」 1ㆍ3권, 11권 1-8장, 제8장을 제외한 12권 전부, 13권 9장-10장, 14권), 원래적인 윤리학(에우데모스윤리학 1ㆍ2ㆍ3ㆍ5권) 및 원래적인 정치학(「정치학」 2ㆍ3ㆍ7ㆍ8권)등이다. c) 이 시기가 지난 리케이온 시대에 와서야 플라톤의 영향을 벗어나게 되는 데, 이 때 그의 저작 「형이상학」 7, 8, 9권에서 형이상학을 초감각적인 세계가 아닌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하나의 실체로 파악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 집필된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도 현실과 떨어져 있지 않게 된다.
Hv. 아르님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발전을 예거의 그것과는 다르게 본다. 「형이상학」의 11ㆍ12ㆍ14권이 초기의 것이고, 그 이외의 권들이 리케이온시대에 속한다고 본다. 따라서 예거가 후기에 속한다고 본, 7ㆍ8ㆍ9권도 1ㆍ3권과 같은 시대의 것으로 본다. 또 「대윤리학」이 「에우데모스윤리학」 대신에 원래적인 윤리학이며, 「에우데모스 윤리학」은 두 번째로 아테나이에 머물렀던 시기의 것이라고 본다.
W.D. 로스는 예거의 사상과 비슷하다. a) 아카데미아시대 : 플라톤을 본받은 대화편. b) 아소스, 레스보스 및 마케도니아 시대 : 플라톤의 영향력이 짙은 시기로 이런 사상을 드러내는 이 시기의 저작들로는 「자연학」, 「천계론」, 「발생과 소멸」, 「영혼론」 제 3권, 「에우데모스윤리학」, 「형이상학」, 「정치학」의 오래된 부분, 「동물지」의 오래된 부분이 있다. 이 때 「형이상학」의 오래된 부분이란, 1ㆍ5ㆍ11권 1장-8장ㆍ12ㆍ14권을 말하고, 「정치학」의 오래된 부분이란 7ㆍ8권을 말한다. c) 리케이온시대에는 「형이상학」, 「니코마코스윤리학」, 「정치학」 및 「수사학」, 국가헌번의 수집, 「기상학」, 심리학적 저작들과 생물학적 저작들이 완성된다. 로스가 말하는 요점은, 「다른 세계, 즉 저쪽 편에 있는 세계로부터, 자연과 역사의 구체적인 요인들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세계의 형상과 의미가 질료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질료 속에 뿌리박고 있다고 확신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로스는 플라톤에게서도 이러한 발전을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플라톤은 거꾸로 이데아의 초월성을 강화시킴으로써 「초감각적인 것」을 전적으로 분리시킨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초감각적인 것에서 감각적인 것으로 다시 옮겨간다고 한다. 그런데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분리」란, 전면적인 분리가 아니라, 일정한 견해에 따라 행해지는 특수한 분리이다. 로스는 이러한 초감각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형이상학의 개념을 잘못 이해한다. 이러한 잘못된 개념은 문헌사적인 개념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올케의 이론은 또 다르다. a) 40세까지는 플라톤적이다. b)아테나이에서 아소스로 옮겨간 후부터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스로의 윤리적ㆍ정치적인 생각을 형성하기에 전념한다. 이 때에 「대윤리학」, 가장 오래된 「논리학」, 형이상학에 관한 여러 책이 나온다. 그러나 그는 철학적으로는 아직 「이데아론」의 바탕 위에 서있다. c) 아테나이로 되돌아온 후 그의 철학은 구체적이고 개체적인 실체를 대상으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可能態, Dynamis)의 개념을 뚜렷하게 드러냄으로써 옛날의 형상개념(Eidosbegriff)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고올케가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뚜렷한 변화는 그가 신학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예거가 말하는 것과는 반대된다. 형이상학에 관한 고올케의 연대기는 다음과 같다. 형이상학에는 네 가지의 층이 있다. 1)초기의 형이상학(1권 1장-9장, 3ㆍ4ㆍ5ㆍ7권, 구고(舊稿)와 10권), 2)중간기의 형이상학(1권 1장-7장과 10장, 2권-6권, 8권의 구고, 10ㆍ13권 1086a 21이하 14권), 3)소위 초안(草案, 11ㆍ12권), 4) 개고(改稿)를 시작했을 때의 형식. 이것은 중간기의 형이상학, 특히 제7권과 완전히 새로운 부분(2ㆍ8권, 13권의 1086a 21까지)에 대한 보충임이 분명하다. 자연학에 관한 그의 연대기는 다음과 같다. <움직여지지 않고 움직이는 자>라는 개념이 들어있지 않은 1ㆍ5ㆍ6권에서 8권까지의 구고, 2권에서 4권까지, 마지막으로 8권의 신고와 전체의 총괄.
M. 분트(Wundt)는 많은 점에서 고올케와 일치한다. 그도 역시 리케이온시대의 초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하나하나의 사물을 원래적인 뜻의 존재라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란 바로 다른 종류의 실체, 즉 초감각적인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구체적인 개별자와 보편자라는 양극 사이에 끼여들게 될 수도 있다. 이 개별자에 해당되는 것은 이오니아학파가 문제삼았던 질료와 운동 및 여러 원리들에 관한 문제이고, 보편자에 해당되는 것은 이탈리아 철학과 플라톤의 철학이 문제삼았던 존재 그 자체와 형상 및 보편적인 에이도스(Eidos)에 관한 문제이다. 「자연학」 2권과 「형이상학」 4ㆍ6ㆍ12권에 나타나 있는 플라톤적인 층은, 보다 뒤에 와서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처음으로 「가능태와 현실태」라는 한 쌍의 개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뒤에 와서야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해낸 개념이다. 「자연학」1권과 「형이상학」1권 1-2장 및 5권에 나타나 있는 이오니아적인 층은 진작부터 있었다. 우 두 가지의 사상의 영역이 대립하는 데서, 형이상학의 아포리아들이 생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와 현실태라는 개념들을 가지고서 이 아포리아들을 해결하려고 한다. 이 두가지의 개념을 포함하지 않은 책들은 포함한 책들보다 오래된 것이다. 「형이상학」의 6권과 12권이 보다 더 후기의 것이라고 하는 사실은 <움직여지지 않으면서도 움직이는 자>라는 개념이 더 후기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형이상학」 제7권의 첫머리에 실체란 제일실체이며 이렇게 됨으로써 형이상학이 추구하고 있는 대상이 주어진다는 근본사상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형이상학의 뜻은 감각적이고 제약되어 있는 개별적인 실체를 제일 처음에 움직이는 자로서의 무제약적인 실체에로 이끌어올리는 데 있다.
J. 씰르허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전체 중에 순수한 것은 플라톤의 철할뿐이다. 그 나머지 것들은 후세에 테오프라스트가 가필을 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 테오프라스트는 30년간 스승의 원고를 정리했는데, 그러는 동안 원고들을 철저히 고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A. 지식과 학문

  1. a)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을 탄생시키고, 고전적인 완성까지 이루었다. 이러한 완성도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온다. 논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사상은 「분석론」에 포함되어 있는 데, 분석론이라는 말처럼 논리학은 인간의 사고와 언어를 분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이 여러 가지 요소들과 기본적인 기능들로 이루어진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구될 수 있고 기술될 수 있다 생각했다. 이 여러 가지 요소들이 바로 개념ㆍ판단 및 추리(推理) 속에 있다고 보았는 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 가지를 기술하고 분류하려고 하였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양한 경험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였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분류하려고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이론적인 관심 뿐 아니라 실천적인 관심으로 논리학을 전개시켰다. 이러한 실천적인 관심은 그가 반박할 여지가 없는 학문적인 사고와 증명, 그리고 반론 등을 제시하려고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작업은 「토피카」와 「궤변론」을 통해 알 수 있다. 결국 그가 가지고 있던 물음은 형식적으로 볼 때, 우리들의 사고수단이 도구로서 얼마나 알맞으냐 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연 그것이 파악해야 할 바의 것을 파악하느냐 하는 물음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이 말하는 인식론이기도 하다. 최근에 이르러 논리학의 현대적인 형식인 논리 계산(Logistik)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여 그가 이미 논리학의 정교한 형식에 접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의 형식논리학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는가를 그의 논리적인 사고의 발전과 함께 개관해보려는 시도도 행해졌다. 이러한 시도에서 그의 초기 작품인 제 1기의 논리학에서는 아직 원시적인 논리학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론도 내려졌다. 이 시기의 저작인 「분석론」, 「토피카」 및 「궤변론」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제 2기의 논리학은 8~22장을 제외한 「분석론 전편」의 제 1편과, 「후편」의 제1권에 들어있다. 이 제2기의 논리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연적(實然的) 삼단논법을 완성하고, 변항(變項)의 개념을 도출함으로써 논리적인 기술의 비교적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된다. 제3의 논리학(분석론 전편, 1권 8-22장과 2권)에는 일종의 양상논리학(樣相論理學), 「놀랄 만큼 예리한 형식 논리학적인 통찰」을 갖추고 있는 삼단논법에 대한 초논리학적인 성찰(보헨스키) 및 변항이 없는 상항(常項)만을 포함하고 있는 언표(言表) 논리적인 명제들이 덧붙어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논리학이 아리스토텔레스한테서 이어받아 왔던 것은 개념과 판단 및 추리에 관한 사상뿐이었던 것이다.
분석이 발견해 낸 궁극적인 요소는 개념이다. 「한 가지의 명제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요소들, 즉 명제의 대상(主辭)과, 명제가 언표하는 것(賓辭)을, 나는 개념이라 한다」(분석론 전편, 1권 1장, 224b). 즉, 개념이란 명제에서 주어부분과 주어를 규정하는 부분으로 나누어져있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념이란 참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다. 개념은 항상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파악한다. 이러한 본질을 파악하는 속성이 개념으로 하여금 진리가 되게 만든다. 이러한 사실이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정식으로 용인되지는 않았지만 그 말 뜻에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은 판단의 단순한 구성요소가 아니라 존재를 자명하게 밝혀내는 것인 플라톤의 「실체의 로고스」가 하는 역할을 보아 분명해진다.
올바르게 형성된 개념을 정의(定議)라 한다. 정의란 「본질을 드러내는 말」(토피카, 7권5장; 154 a 31 및 101 b 38 비교)이다. 이렇게 하는 규칙은 다음과 같다. 정의는 유개념(類槪念)과 종개념(種槪念)을 지적함으로써 생긴다. 즉 정의는 한 가지의 대상이 한 가지의 보편적인 유(類)에 끼어 넣어지면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3이라는 숫자는 그의 보편적인 유(類)인 수에 의해서 규정된다. 그러나 많은 수들이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유(類)로서의 수는, 여러 가지 수들 중에서 3이라는 수만 생각되어질 수 있도록 또 다른 규정에 의해서 좁게 제한되어야 한다. 이것은 바로 3을 특정짓는 특이성인 ‘최초의 홀수’라는 말을 통해 드러난다. 그래서 3의 개념규정이 「첫 번째의 홀수」(분석론 후편, 2권 3장)라는 것이다. 이렇듯 정의는 항상 종개념(種槪念)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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